소설리스트

장야여화-203화 (203/649)

203화. 전술

호숫가 별장에서 약간 떨어진 빌딩 옥상.

장목화는 꼭대기에서 지하 주차장 입구를 내려다보았다.

“아까 나랑 건우가 정탐해보니까 저 안엔 꽤 많은 사람이 있어. 앙헤바스가 오늘 저곳에 묵을 거란 뜻이야.”

“맹목적으로 믿을 수는 없죠.”

성건우는 역시 틈을 놓치지 않았다.

사실 용여홍도 동조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아냈다.

장목화는 성건우를 또 타박하기보단 기회를 빌려 팀원들을 가르쳤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나도 이런 판단을 내리진 않았을 거야. 레드스톤 마켓의 신중한 주민이자 나름의 수단이 있는 앙헤바스라면, 수하들만 특정 장소에 소집해둔 채 자신 역시 그곳에 있는 척 위장할 수 있지 않겠어?

근데 오늘은 달라. 버즈는 앙헤바스와 헬빅의 음모를 까발렸어. 그들이 산 요괴와 결탁해 레드스톤 마켓을 위협하려 하고 있다는 게 밝혀졌지. 우린 그게 진실이란 걸 알고 있고.

이런 상황이니 에이돌른의 신도인 앙헤바스는 꽤 불안할 거야. 언제 발생할지 모를 뜻밖의 상황을 경계하고 있을 게 분명해. 그러니 해결 방법을 찾는 동시에 자기 주위 방어를 더욱 공고히 하겠지. 그러다 무슨 낌새라도 보인다 싶으면 많은 인력으로 시간을 끌어놓고 레드스톤 마켓을 빠져나갈 거고.”

“사람이라면 두려울수록 최대한의 힘을 곁에 두려고 하는 법이니까요.”

백새벽이 동조했다.

용여홍도 점차 상황을 파악해나갔다.

“이런 때라면 앙헤바스는 감히 수하들을 다른 곳으로 분산해 위장할 엄두는 못 내겠네요. 왜냐하면 그의 경계 대상은 우리가 아니라 경계 교파고, 곁에 있는 사람들은 은신처를 까발리면서 방어 조치를 무너뜨릴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니 차라리 모든 수하를 곁에 묶어두는 편이 나을 거예요. 적어도 그들 중 일부라도 시간을 끌 수는 있을 테니.”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런 셈이지.”

이때 성건우가 또 다른 가능성을 제기했다.

“레드스톤 마켓의 수하를 한곳에 두고, 앙헤바스 자신은 외지 망명자들과 함께 다른 곳에 숨을 수도 있어요. 에이돌른의 신도가 아닌 망명자들은 그를 배반할 리 없으니까요.”

장목화가 칭찬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앙헤바스가 레드스톤 마켓 주민이 아니거나 경계 교파 신도가 아니라면 그런 선택지도 있었을 거야. 근데 그만한 경계심을 가진 자가 과연 외지 망명자들 곁에서 안심할 수 있을까? 앙헤바스는 너처럼 로페즈와 친구가 되어 신뢰를 쌓을 수도 없는 사람이잖아.”

그러자 백새벽이 덧붙였다.

“난 용병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소형 세력들을 많이 봐왔어. 그 용병들에게 모든 걸 다 털린 후에 보호를 받는 정도만 돼도 다행이지.”

‘그래, 도망칠 생각이라면 앙헤바스는 그간 모아둔 물자들도 다 챙겨 가려 할 거야. 외지 망명자들이 그의 물자를 빼앗아 도망치지 않으려 할 리가 없잖아? 그만한 물자를 손에 넣기만 하면 어디로든 가서 편하게 살 수도 있을 거야. 애쉬랜드도 이렇게 넓잖아.’

용여홍은 잠깐의 고민 끝에 앙헤바스가 그런 선택을 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이윽고 장목화가 두 손바닥을 맞부딪혔다.

“좋아. 교대로 호숫가 주차장을 감시하면서 기회를 노려보자.”

그리고 그녀는 옆에 있던 군용 망원경을 집어 용여홍에게 건넸다.

“일단 여홍이 너 먼저.”

약간 신난 듯 망원경을 받아든 용여홍은 창틀이 이미 다 떨어져 나간 난간 근처로 움직였다. 그런데 자리를 잡던 그가 문득 의아함을 드러냈다.

“건우가 직접 찾아가서 앙헤바스를 친구로 삼으면 안 돼요? 그 무기는 이미 뜨거운 감자예요. 차라리 우리가 맡아 처리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 말에 장목화가 웃었다.

“건우의 능력에 지나치게 의지하지 않으려고 이러는 거야. 평범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일반적인 방법으로 해결해야만 너희들의 능력도 강해질 테니까. 게다가 레드스톤 마켓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는 너희들도 봤을 거 아냐. 비장의 카드는 될 수 있는 한 숨겨놓는 편이 나아.”

‘팀장님, 굳이 너희라고 말씀하실 필요 없어요. 그냥 제 전자카드 번호를 대놓고 말씀하셔도 괜찮아요⋯⋯.’

용여홍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용여홍이 호숫가 주차장을 감시하는 사이, 장목화가 성건우와 백새벽에게 말했다.

“우리도 적당히 자리를 찾아 앉자. 체력을 비축해야지.”

* * *

한 사람씩 차례대로 감시하는 동안, 하늘도 조금씩 어두워졌다. 본래 겨울의 밤은 걸음이 좀 빠른 편이었다.

이제 구조팀은 망원경이 아닌 야간 투시경으로 장비를 교체했다.

그리고 밤 10시쯤 됐을 무렵, 감시 차례였던 백새벽이 낮게 외쳤다.

“움직인다.”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키우지 않은 건, 장목화가 잘 듣지 못하더라도 성건우와 용여홍의 반응을 통해 상황을 파악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예측대로 용여홍과 성건우가 창문 쪽으로 다가오자, 장목화 역시 뒤따라 일어나 다가왔다.

망원 기능이 딸린 야간 투시경을 통해, 호숫가 주차장에서 나오는 차 두 대가 보였다. 하나는 로페즈가 앉아있던 황토색 ATV, 다른 하나는 검은색과 붉은색이 어우러진 소형 트럭이었다.

두 차량은 앞뒤로 나란히 서서, 나름 온전한 길을 따라 폐허 도시 동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장목화는 잠시 생각에 잠겨 추측을 시작했다.

“외지 망명자들에게 숨겨놓은 무기를 가져오게 하려는 걸까? 마을 경비대에 기부하려고?”

“쫓아갈까요?”

용여홍이 약간 흥분해서 물었다. 지금 바로 쫓아간다면 무기를 발견할 수 있을 테고, 찾아낸 무기를 군용 외골격 장치로 바꿀 수 있었다. 군용 외골격 장치가 있으면 그의 생존 능력도 대폭 강화될 터였다.

장목화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어떻게 쫓게? 지금 당장 내려간다 해도 저들은 이미 저만치 멀어져 내 감지 범위에서 벗어날걸? 그냥 위드 시티에 있을 때 허양원한테 드론 한 대를 부탁할 걸 그랬어. 그게 있었으면 일도 훨씬 간단해졌을 텐데.”

그녀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당시 군용 외골격 장치로 바꿀 물자를 모으는 데에만 집중해서, 드론 한 대는 별 쓸모가 없는 물건으로 여겼었다.

“그럼 어쩌죠?”

용여홍이 물었다.

“적당한 곳에 매복하고 저들이 오기를 기다려야지.”

장목화는 미리 생각해뒀던 듯 곧장 답했다.

고개부터 끄덕이던 용여홍이 다시 질문을 이었다.

“하지만 호숫가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은 한두 개가 아닌데요.”

외지 망명자들이 갔던 길로 돌아오리라는 보장은 누구도 할 수 없었다. 그보다는 충분한 경계심을 발휘해 다른 길로 돌아올 가능성이 더 컸다.

“그거야 네 달리기 속도에 달린 문제지.”

성건우는 당장이라도 용여홍과 달리기 시합을 하려는 것처럼 대꾸했다.

용여홍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외지 망명자들이 어느 길로 돌아올지 지켜보다가 미친 듯이 뛰어 내려가서 매복하자고?’

그로부터 몇 초가 흐른 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한 명은 이 건물에 남아 있고, 나머지 세 명만 매복하고 있으면 안 되나?”

그들에게는 무전기가 있으니, 이보다 더 간단한 방법은 없었다.

장목화가 그 말을 듣고 웃었다.

“그것도 방법이긴 한데, 저들이 계속 길을 바꿀 가능성도 고려해야 해. 만약 그런다면 끊임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겠지. 더 좋은 방법이 있어. 호숫가 주차장 입구 밖에서 매복하는 거야. 그들이 어느 길로 돌아오든 꼭 그 입구를 통해야만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갈 수 있잖아.”

용여홍은 말을 살짝 더듬거리며 반박했다.

“하, 하지만 입구에는 앙헤바스의 수하들이 숨어있을 가능성이 크잖아요. 우, 우리만으로는 그들에 대적할 수 없을 거예요.”

그곳은 그야말로 적의 본부였다. 적의 본부 입구에서 매복하겠다니!

장목화는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그러니까 전술을 세워야지.”

구조팀은 곧 ATV와 소형 트럭이 호숫가 구역으로 돌아오는 것을 확인한 뒤, 팀장 장목화의 분부에 따라 건물 아래로 내려갔다.

* * *

네 사람은 지하 주차장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단층 빌딩 안에 숨어들었다.

전쟁의 타격을 입진 않았지만, 오래도록 유지도, 보수도 되지 않은 이 빌딩은 칠도 군데군데 벗겨져 있으며, 곳곳에 떨어진 유리창도 널려 있었다.

“각자 임무 다 기억하고 있지?”

장목화는 모두에게 묻는 듯했지만, 정작 그녀의 시선은 용여홍에게만 꽂혀 있었다.

“예.”

용여홍은 사신 바주카포를 짊어진 채 잔뜩 소리를 죽여 답했다.

그는 팀장의 방안이 무엇인지 대충 이해하고 있었다. 신기하고 믿음이 잘 안 가기는 했지만, 곰곰이 고민한 뒤엔 이 방안이 레드스톤 마켓과 앙헤바스의 현실에 더없이 적합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다른 곳에서라면 통하지 않겠지만 이곳에서는 효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컸다.

주위를 한번 더 둘러보던 장목화가 명령했다.

“각자 위치로.”

지정된 자리로 흩어진 팀원들은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았다.

높은 하늘에선 구름이 태양 주위에서 조금씩 이동하면서 수시로 빛을 가리거나 대지를 밝히는 장난을 반복하고 있었다.

* * *

한편, 황토색 ATV에 탑승 중인 로페즈는 무전기로 뒤쪽 소형 트럭에 방향을 틀라고 지시했다.

그는 혹시 있을지 모를 매복을 피하려 벌써 세 번째나 방향을 전환했다.

키도 크고 건장한 체격의 로페즈는 뇌까지 근육으로 가득 찬 거친 사람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사실 이는 겉모습에 불과했다. 거기에 다년간 정규 훈련을 받고 유랑 생활을 했던 만큼 충분한 경험까지 가지고 있어, 그는 어떤 때에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로부터 몇 분 더 지났을 무렵, 그의 시야에 호숫가 구역이 들어왔다.

점점 가까워지는 지하 주차장 입구를 확인한 로페즈는 비로소 무전기를 내려놓고 조수석 의자에 몸을 기대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에 이르렀으면 이제는 안전하다고 볼 수 있었다.

이곳에는 잠복 초소가 매우 많았다. 지하 주차장 안에 배치된 완전 무장 인원의 수도 놀라울 정도였다.

* * *

차량 좌측의 단층 건물 3층.

야간 투시경을 쓴 백새벽이 오렌지 소총을 들고, 검은색과 붉은색이 어우러진 소형 트럭을 겨냥했다.

묵묵히 거리를 계산하던 그녀가 곧 방아쇠를 당겼다.

픽-

총알은 소리와 함께 소형 트럭 왼쪽 앞바퀴를 정확히 뚫고 들어갔다.

끼익-!

타이어가 터진 까닭에, 평온하게 주행하던 트럭이 급격히 한쪽으로 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사가 황급히 트럭을 멈춰 세웠다.

앞서 달리던 황토색 ATV 안의 로페즈는 충격과 분노에 휩싸인 채 안고 있던 경기관총을 쳐들었다.

호숫가 주차장 근처의 잠복 초소 안 보초들도 분분히 대응에 나섰다.

바로 그때, 단층 건물 오른편에 있는 확성기에서 도저히 인간의 것이라곤 믿을 수 없는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다.

- 저는 교회의 경고자입니다. 앙헤바스와 산 요괴의 결탁과 관련한 일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이미 모든 조사가 끝났습니다. 앙헤바스는 외지 망명자에게 속아 이런 짓을 저지른 겁니다. 증거는 저 트럭 안에 있습니다! 모든 레드스톤 마켓 주민은 저항을 포기하고. 제자리에서 지시를 기다리십시오!

로페즈가 낮에 교회당을 다녀간 이래, 버즈가 앙헤바스를 지목했다는 사실은 앙헤바스에게 속한 레드스톤 주민들 사이에 이미 다 퍼져있었다.

물론 그들은 그 이야기를 맹목적으로 믿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불신하지도 않았다.

그런 상황에 확성기를 통해 반복적으로 울려 퍼지는 내용은 꽤 힘이 있었다. 다들 계속 이어지는 확성기 소리를 들으며 망설이고 있었다.

에이돌른의 신도인 그들은 교회를 더 믿었고 주교와 경고자의 분부에 더 순종했다. 게다가 확성기에선 교회가 노리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외지 망명자들임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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