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201화 (201/649)

201화. 드문 평온

“그렇군. 앙헤바스는 평소 어디에서 지내?”

장목화가 화제를 전환했다.

“수시로 거주지를 바꿔. 비교적 위험한 상황일 때는 대개 호숫가 별장을 택하지. 그곳에 있는 지하 주차장은 부두로 통하고, 부두에는 배도 있거든.”

도제훈이 간단히 답했다.

‘앙헤바스를 꽤 오랫동안 지켜봐 왔나 본데.’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불쑥 물었다.

“한 대장, 2년여 전에 쇼크사 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계 교파에선 해당 사건이 각성자와 관련돼있단 걸 모를 리 없었을 거야. 그때 그들 반응이 어땠는지 기억해? 혹시 경고자 한 명이 갑자기 늘어나지는 않았어?”

한명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더듬는 사이, 도제훈이 벌떡 일어났다.

“마지막 사건이 발생한 지 반년 정도 지났을 때, 교파에 유암자(幽暗者)가 한 명 늘어났어! 유암자란 어두운 밤 안에서 고행하는 성직자를 말해.”

그의 말투는 약간 격앙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순간 한명호도 급격한 표정 변화를 보이며 다급히 일어났다.

“그래! 앙헤바스의 동생, 브랜드야!”

“앙헤바스의 동생?”

장목화가 확인하듯 되물었다. 동시에 그녀는 앙헤바스가 경계 교파의 각성자에 관한 정보를 어디에서 얻었을지 알아차렸다.

한명호는 확신에 찬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똑똑히 기억해.”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도제훈의 입에서 한 사람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버즈.”

버즈는 지금 경계 교회당 안에 있었다.

또한 그는 앙헤바스를 지목한 중요 증인이었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성건우가 말없이 돌아서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장목화도 곧장 결단을 내렸다.

“교회당으로 가자.”

그녀는 유암자 브랜드가 교회당에서 버즈를 죽일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경계 교파 내 다른 성직자의 지능을 완전히 무시하고 모욕하는 행위였다. 게다가 달지기 에이돌른은 정말로 이쪽을 주시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각성자와 관련한 사건에선 그 무엇도 단언할 수 없었다. 게다가 장목화는 상대가 대체 무슨 대가를 지불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만약 그가 성건우처럼 머리에 수시로 쥐가 나서 비이성적이고 괴상한 짓을 저지르는 각성자라면……?

한명호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도제훈과 함께 나와 차를 탔다. 그의 차는 흔한 검은색 SUV였지만, 당장 퍼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낡아 있었다.

* * *

두 차에 나뉘어 탄 여섯 명은 곧 보루처럼 생긴 경계 교회당에 도착했다.

위험을 상징하는 붉은색, 그리고 신성함을 뜻하는 황금으로 장식된 홀 안엔 반쯤 열린 흰색 문 뒤에 보일 듯 말 듯 숨겨진 여성 인영 상징이 있었다. 눈에 확 띄는 모습이었다.

장목화는 그 광경을 힐끗 살피다, 감지되는 정보에 근거해 곳곳에 숨은 교회당 경비를 찾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성건우와 한명호가 동시에 큰 소리로 외쳤다.

“주교님!”

“불이야!”

주교를 외친 건 한명호, 후자는 당연히 성건우였다.

도제훈은 특유의 그 무표정한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살폈고, 장목화는 눈동자를 위로 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숨어있는 사람을 나오게 하려면 저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긴 하지.’

그로부터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검은 가운 차림의 경고자 송하균이 홀 옆쪽에서 걸어왔다. 주위를 한번 둘러본 그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한 대장, 무슨 일입니까?”

성건우가 한명호의 답을 가로챘다.

“버즈는요?”

“비엘과 숨기 기술을 연마하고 있습니다.”

송하균이 덤덤하게 답했다.

‘외쳐!’

용여홍이 마음속으로 외치던 순간, 성건우가 목청을 높였다.

“버즈!”

곧 검은색 철 가면을 쓴 버즈가 가볍게 홀로 뛰어 들어왔다.

“또 왔어?”

‘이게 바로 친구지!’

버즈는 매우 기쁜 기색이었다.

하지만 성건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물었다.

“내가 좀 전에 불이야 라고 소리쳤을 땐 왜 안 나왔어?”

“맹목적으로 믿어서는 안 되잖아.”

버즈는 그 어떤 망설임도 없이 바로 답했다.

“훌륭한 경계심이네. 가면 벗어봐. 네가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해야겠어. 맹목적으로 믿어서는 안 되니까.”

성건우의 말에, 버즈는 순순히 가면을 벗었다.

주근깨가 난 각진 얼굴이 드러나자, 성건우는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둘의 대화가 끝나기만 기다리던 송하균이 비로소 끼어들었다.

“버즈, 비엘은?”

“숨었어요. 막 찾던 중이에요.”

답을 하는 와중에도 버즈는 비엘의 흔적을 찾듯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송하균은 다시 고개를 돌려 물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경고자님, 유암자 브랜드를 만났으면 합니다.”

한명호가 솔직하게 말했다.

“유암자는 신의 주시 아래 고행 중이라,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만날 수가 없습니다.”

송하균이 침착하게 설명했다.

한명호는 손을 들어 얼굴에 가로세로로 난 두 갈래 흉터를 만지작거렸다. 동시에 흰자가 약간 누런색인 눈으로 송하균을 흔들림 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브랜디가 몇 년 전 발생한 애쉬랜더 쇼크사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의심됩니다.”

잠시 침묵하던 송하균이 한숨을 내쉬었다.

“문밖에서 대화할 수 있게 해드리죠.”

그는 곧 일행을 데리고 홀 옆문으로 나가 뒤쪽 복도로 향했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송하균이 암적색 나무 문 앞에 멈춰 섰다.

“브랜드, 치안관 한 대장이 찾아왔습니다.”

레드리버어로 말하는 송하균의 목소리는 높지도, 낮지도 않았다.

몇 초 후, 굳게 닫힌 문 안쪽에서 약간 거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치안소의 한명호?”

그는 아주 오랫동안 사람과 대화를 나누지 않아서인지, 이 간단한 말을 하는 것도 상당히 힘든 듯했다.

이때 장목화는 용여홍, 백새벽, 성건우 모두에게 눈짓하며 주의를 시켰다. 언제든 페이카 생물학적제제를 주사할 준비를 하라는 뜻이었다.

한명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신중하게 물었다.

“브랜드, 넌 각성자냐?”

잠깐의 침묵 끝에 재차 거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맞아.”

한명호가 질문을 이어나갔다.

“타인에게 죽음에 이를 정도의 두려움을 안기는 능력을 가졌나?”

“이름은 ‘극도의 두려움’이지.”

브랜드는 거친 목소리로 유창하게 답했다.

그러자 한명호가 눈을 감으며 문 쪽으로 한발 다가갔다.

“2, 3년 전 발생한 애쉬랜더 쇼크사 사건, 네가 저지른 거야?”

너무 오래된 일이었기에 충분한 증거는 없었다. 게다가 레드스톤 마켓의 주민들은 숨는 것을 좋아해서, 다른 이의 행적도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거친 목소리의 주인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훨씬 빨리 찾아낼 거라 생각했는데, 여태까지 기다리게 될 줄이야.”

그 순간, 장목화는 전기 신호를 통해 상대가 한 걸음, 한 걸음 문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걸 감지했다.

도제훈 역시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인정하는 거냐?”

그가 사용한 건 애쉬랜드어였다. 브랜드는 그 말을 알아들은 건지, 못 알아들은 건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능력을 얻었을 때부터 내 마음속에선 언제나 분노가 타올랐지. 나와 우리 레드리버인에게 피해 입히는 자들을 모두 죽여버리고 싶었어. 때로는 상대와 눈만 마주쳐도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지.

그러던 어느 날, 레나토 주교가 찾아와 내게 모든 인간관계를 끊고 어둠의 방에서 고행하기를 제안하더군. 달지기의 주시 아래 오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는 거야. 한 대장, 난 네가 날 더 빨리 찾아낼 줄 알았다.”

‘그가 지불한 대가가 이건가? 감정 통제 불능? 정도가 심해지기 전에는 분노 쪽에 감정이 치우쳐져 있는 건가?’

장목화는 빠르게 상황을 분석했다.

몇 초간 침묵하던 한명호가 다시 입을 뗐다. 그의 목소리엔 자책이 가득했다.

“넌 마지막 사건이 발생한 지 반년이 지난 후에야 유암자가 됐어. 난 그 사실을 사건과 연관 짓지 못했고.”

“그래? 몰랐군. 레나토 주교가 반년 후에야 그 사실을 공포한 모양인데.”

브랜드는 모종의 깨달음을 얻은 듯 중얼거렸다.

도제훈은 고개를 돌려 경고자 송하균을 바라보았다.

“교파에서는 이 범인을 보호할 겁니까?”

레드리버어로 말하는 목소리에는 분노가 어려 있었다. 하지만 표정은 여전히 아무런 변화도 없이 한결같았다.

송하균이 덤덤하게 답했다.

“브랜드는 구세계의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고 있습니다. 교파가 엄중한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만 이 방을 떠나 본인의 생명을 달지기에게 바칠 수 있지요.”

한동안 말이 없던 도제훈이 물었다.

“각성자라서 그런 겁니까?”

송하균이 어떤 답을 하기도 전, 도제훈은 암적색 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말 경멸스럽군. 넌 네가 저지른 짓을 직면할 엄두도 못 내는 거야.”

그러자 문 뒤에 자리한 브랜드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와 동시에 송하균의 표정이 살짝 변하더니, 눈동자 색도 짙어졌다.

바로 그때였다. 브랜드가 낮게 포효했다.

“제기랄! 난 달지기의 주시 때문에 이런 고통을 기꺼이 감내했어! 내가 누군가를 두려워한 적 있던가!”

그에게서 뚝뚝 묻어나는 분노에, 기이하게도 주변이 어두워졌다. 꼭 태양이 흘러 다니던 구름에 삼켜지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급격한 환경 변화로 인해, 모두의 심장 박동도 빨라졌다. 문 뒤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공포가 숨어있는 듯했다. 마치 오랫동안 불어난 물처럼 당장이라도 둑을 허물고 모두를 잠식시킬 것만 같은 공포였다.

지금 제일 앞에 선 도제훈은 누군가의 손에 심장이 꽉 쥐어짜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조금씩 극도의 두려움이 깨어나려 하고 있었다.

이내 도제훈은 언제나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일찍이 뽑아둔 권총으로 문을 겨눴다. 방아쇠에 손가락까지 건 그때, 갑자기 안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날 자극해서 너한테 극도의 두려움을 발휘하게 하려고? 난 속지 않아!”

브랜드의 말에 장목화는 심호흡으로 심장 박동을 안정시키며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성건우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두 분 모두 진정하세요.”

입을 연 것은 송하균이었다.

도제훈은 몸을 바르르 떨더니 권총을 거두었다. 점차 살벌할 정도로 무시무시했던 분위기 역시 씻은 듯 사라졌으며, 복도도 원래의 빛을 되찾았다.

“브랜드에게는 지금의 상황이 처형보다 훨씬 큰 고통일 겁니다.”

송하균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침착했다.

도제훈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직 희망이 있잖아요.”

“희망이야말로 가장 고통스러운 존재지.”

문 뒤의 브랜드가 한 걸음,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며 대꾸했다.

도제훈이 다시 무슨 말을 하려는데, 갑자기 성건우가 불쑥 끼어들었다.

“잘못했어.”

“뭐?”

도제훈이 고개를 돌렸다.

“내가 당신이었다면 저 사람을 은근히 자극하다가 틈을 노려 죽이려 하지 않고, 너를 죽이고 말겠다고 직접 말했을 거야.”

성건우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 말에, 문 뒤의 브랜드가 걸음을 우뚝 멈췄다.

“너도 각성자냐? 방금 도발 능력을 쓴 거야? 하하, 도발은 나처럼 분노에 찬 사람에게 정말 효과적이지. 송 경고자님이 모두를 우호적인 사이로 만들어 적대적인 감정을 제거해서 다행이군.”

장목화의 눈빛이 살짝 밝아졌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브랜드의 입을 틀어막아 버리고 싶었다.

경고자 송하균은 헛기침을 하며 도제훈에게 말했다.

“만약 당신이 정말로 브랜드에게 복수하길 바란다면, 우리도 굳이 막진 않겠습니다. 그래도 신중히 생각해 보세요. 브랜드는 적어도 한 명은 반드시 저승길로 끌고 들어갈 겁니다.”

한명호가 도제훈을 바라보았다.

“복수하겠다면 내가 도와줄게.”

“네가?”

도제훈이 놀란 듯 되물었다. 복수를 선택할 경우 둘 중 한 명은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게 치안관의 책임이니까.”

한명호가 덤덤하게 대꾸했다.

도제훈은 곧 침묵에 빠졌다.

장목화는 지금 쇼크를 받고도 구조받을 방법이 있다는 것을, 그러니까 쇼크받은 후에 수술로 치료를 받으면 된다고 알려주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참고 있었다.

‘그래, 레드스톤 마켓의 의료 수준을 생각해 보면 완치하리라 보장할 수 없지.’

그녀는 속으로 자신을 다독이며, 행여 성건우가 허튼 말을 하지 못하도록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도제훈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한명호는 재차 문을 향해 입을 열었다.

“브랜드, 헬빅도 네가 죽인 거냐? 헬빅은 이틀 전 쇼크사했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