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확신
구조팀은 다시 모여서 여관으로 향했다.
이동하는 도중, 용여홍은 로페즈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선 한껏 의욕 넘치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부터는 로페즈를 생포할 기회를 노리는 건가요?”
장목화도 부인하지 않았다.
“응. 일단 회사에 보고부터 하고. 유용한 자료를 얻을 수 있을지 보자.”
성건우가 웃으며 덧붙였다.
“로페즈를 낚을 미끼도 마련해야겠네요.”
순간 몸을 웅크린 용여홍은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뜻이야?”
성건우의 답은 언제나처럼 진지했다.
“버즈는 아주 좋은 미끼잖아.”
“그건 그렇지⋯⋯.”
용여홍이 멍하니 대꾸했다.
* * *
반고 바이오가 보낸 답장은 구조팀이 늦은 점심을 먹고 있을 때야 도착했다.
장목화는 해독을 거쳐 가며 전보 내용을 읽어내려갔다.
「경계 교파, 10월 달지기 에이돌른을 신봉. 최고 지도자는 유암(幽暗) 교황. 그 아래로 공포 주교단, 주교, 경고자 순서로 따름.
신도를 가리키는 칭호는 ‘경계하는 이’.
이 교파의 각성자 대부분이 다른 이들의 감정과 상태에 영향을 끼치는 데 능함. 개중에는 도발의 고수도 있고, 공포의 화신도 있고, 남에게 우호적인 이도 있으며, 타인을 냉담하게 만들거나 그들에게 상응하는 능력을 강화할 줄 아는 사람도 있음.
현재 애쉬랜드에서 경계 교파가 주로 출몰하는 곳은 화이트 기사단과 오렌지 컴퍼티 세력 범위, 그리고 일부 중소형 거점임.」
전보를 다 읽은 장목화가 웃으며 말했다.
“안 읽으니만 못한 전보였네. 관련 영역의 각성자에게 어떤 능력이 있는지 알게 됐다 뿐이지, 현재 상황을 분석하는 데엔 아무런 도움도 안 되잖아. 레드스톤 마켓에서 애쉬랜더는 에이돌른의 신도, 즉 경계하는 이야. 레드리버인도 그렇고. 이 두 집단 모두 우연히 각성한 누군가가 있을 수 있어.”
성건우는 아쉽다는 듯 말을 받았다.
“전 그 각성자들의 능력이 숨바꼭질과 관련돼 있을 줄 알았어요.”
“두려움 때문에 경계하고, 두려움 때문에 숨는 거니까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할 수만도 없지. 게다가 이건 회사에서 파악하고 있는 일부 정보일 뿐이야. 경계 교파의 각성자에게는 정말 자신을 숨기는 능력이 있는지도 몰라.”
대답하던 장목화가 종이를 쥔 채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그래, 이 전보가 아무 쓸모도 없는 건 아니네. 적어도 에이돌른 영역의 각성자가 남을 놀라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알았으니까. 앞으로는 다들 페이카 생물학적제제를 휴대하고 다녀야겠어. 그건 강심제 작용도 하니까 중요한 순간에 목숨을 구해줄 거야.”
페이카 생물학적제제는 해자 마을의 전 촌장에게 주사했던 바로 그 약이었다.
용여홍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구조팀에 그런 응급 약품까지 지원해주다니, 회사의 뛰어난 연구 개발 능력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러던 그가 약간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놀랐을 때는 이미 정신을 잃은 빈사 상태일 텐데, 어떻게 자기 몸에 페이카를 놓죠?”
그 말에 장목화가 웃으며 답했다.
“그러니 혼자 움직일 생각 말고, 적어도 2인 1조로 움직여야지. 그럼 네가 죽기 직전일 때 동료가 적을 쫓고 너에게 페이카를 놔줄 거 아냐.”
그때, 장목화는 두 손을 든 채 뭔가 망설이듯 그대로 멈춘 성건우의 모습을 발견했다. 순간 장목화의 경계심도 높아졌다.
“……뭐 하는 거야?”
성건우는 진지하게 답했다.
“어느 교파의 방식으로 기도해야 할지 고민 중이에요.”
그는 곧 결심한 듯 아이를 안아 어를 때처럼 두 팔을 굽혀 흔들었다.
“넌 생명 제례를 참 좋아하는구나.”
장목화가 웃으며 말했다.
성건우는 여느 때처럼 진지하게 이유를 밝혔다.
“여태까지 접한 교파 중 생명 제례 성찬이 가장 맛있었거든요.”
‘……건우답네.’
용여홍은 이제 성건우의 답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그러다 잠시 후, 용여홍이 또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근데 갑자기 기도는 왜?”
“에이돌른 영역의 능력이 범위형 능력이 아니라 한 번에 한 명에게만 가해지는 능력이기를 빌려고.”
성건우가 솔직하게 답했다.
그 말에 장목화와 백새벽의 미간이 동시에 구겨졌다.
몇 초 후, 장목화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게 범위형 공격이라면 정말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러니까 각성자와의 전투는 정말 까다롭고 말도 안 되는 거야. 때로는 먼저 능력을 발휘한 쪽이 바로 이기게 되잖아. 근데, 사실 나한테 자구책이 있긴 해.”
이 대목에서 그녀가 씩, 미소를 지었다.
용여홍이 놀란 듯 멍한 표정을 드러내자, 장목화가 왼팔을 들어 보였다.
“이렇게나 많은 전류가 저장된 팔에 심장 제세동 능력이 갖춰져 있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어? 보조 칩에는 신체 상태를 감시하는 기능도 있다고. 구세계에서는 이걸 특정 손목시계로 확인할 수 있었대.”
용여홍이 거듭 놀라는 사이, 장목화는 재차 그와 백새벽을 유혹하듯 말했다.
“어때? 마음이 좀 동하지 않아? 이번에 회사로 돌아가면 축적된 공로를 생체 공학 의수로 바꿀 수 있을걸? 내 몸에 달린 이 실험 모델이랑 똑같은 걸 구할 수는 없겠지만, 다른 모델들도 그렇게 약하지는 않아.”
“고민 중이에요.”
뜻밖에도 그에 대한 대답은 성건우에게서 나왔다.
“음?”
장목화가 그를 힐긋 바라보았다.
“기계 팔은 남자의 로망이죠.”
성건우가 진지하게 말했다.
“회사에선 기계 팔을 취급 안 해. 정 원하면 퍼스트 시티 같은 델 가야지.”
장목화가 대꾸했다.
내내 얌전히 경청만 하던 백새벽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 질문했다.
“자신이 원하는 유형과 모델을 선택할 수도 있나요?”
그녀도 마음이 동한 모양이었다.
장목화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공로를 충분히 쌓았거나 공헌 점수가 그만큼 축적돼 있기만 하면 얼마든지 고를 수 있어.”
그러나 외부에서의 전투 중에 신체 일부를 잃는다면 무료로 생체 의수 이식 수술을 받을 순 있어도, 모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이들의 점심시간도 마무리되었다.
* * *
식사를 마치고 네 사람이 한창 도시락통 등의 식기를 정리하던 그때였다. 장목화와 성건우의 시선이 동시에 문 쪽으로 향했다.
그로부터 10여 초 후, 누군가가 05호의 문을 두드렸다.
빠르게 원숭이 가면을 챙겨 얼굴에 쓴 성건우가 문으로 달려갔다. 좌우를 살피던 그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봉이 없네.”
장목화는 그를 애써 무시한 채 가면을 쓴 뒤 큰 소리로 물었다.
“누구세요?”
그녀는 애쉬랜드어, 레드리버어로 반복해 물었다.
문밖의 방문자는 예의 바르게도 곧장 이름을 댔다.
“한명호.”
‘돌아왔군.’
장목화도 안도했다.
“들어와.”
백새벽과 용여홍 역시 이미 가면을 쓴 채 그녀의 양옆에 서 있었다.
문밖에 서 있는 건 한명호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그의 곁에는 20대 애쉬랜더도 한 명 더 있었다.
검은 머리칼과 갈색 눈동자를 가진 남자는 170센티미터가 채 안 돼 보였다. 또한 많이 고생한 듯 피부가 좀 거칠었다. 무척 앳된 모습이었지만, 그 얼굴엔 아무런 표정도 걸려 있지 않았다.
“이쪽은 누구?”
장목화가 나서서 물었다.
한명호는 곧장 소개에 나섰다.
“도제훈, 치안소 일원이야. 애쉬랜더고.”
마지막 단어에는 유독 힘이 실려 있었다.
장목화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와서 앉아.”
각자 자리를 찾아 앉는 와중에도 성건우는 경호원처럼 팔짱을 낀 채 문 앞에 서 있었다.
“웰러가 말하길, 너희가 중요한 일로 날 찾았다고 그러던데.”
한명호는 자연스럽고도 당당하게 물었다.
장목화는 고개를 끄덕인 후, 로켓포 습격을 받았던 당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전했다. 자신들을 진짜 죽일 의도는 없어 보였다는 것도 숨기지 않았다.
한명호는 고개를 들고 도제훈을 바라보더니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너희들을 자극해서 맡은 두 사건에 더 몰두하게 하려는 수작일 수도, 너희에게 겁을 줘서 더는 레드스톤 마켓의 더러운 물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려는 시도일 수도 있어.”
그의 말은 아주 솔직했다. 레드스톤 마켓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일부러 숨긴다거나 포장하려는 기색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습격자는 그 두 사건이 큰 풍파를 일으킬 수 있단 걸 확신하나 보네.”
도제훈이 덧붙였다.
장목화는 웃으며 말을 받았다.
“전에 우리 방에 경고장 끼워 넣은 거, 너희들이지?”
그녀의 질문에는 거침이 없었다.
몇 초간 침묵 끝에, 도제훈이 답했다.
“같은 애쉬랜더라 그랬어. 너희는 너무 약해. 이런 일에 휘말렸다가는 목숨이 위험해질지도 몰라.”
이때, 성건우가 진심으로 이야기했다.
“고마워.”
너무 갑작스러운 인사에 도제훈이 흠칫 놀란 사이, 장목화가 다시금 질문을 건네왔다.
“진상을 밝히고 싶지 않은 거야? 너희들이 저지른 짓이 아니라면 우리를 도와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오명을 씻어버리면 되잖아.”
도제훈은 어떠한 표정 변화도 없이 담담히 대꾸했다.
“세상에는 진상이 아니라 한 가지 구실만을 원하는 이들도 있어. 지난 몇 년 동안 모두가 선을 넘는 짓을 해왔지. 그러니 정말로 무고한 사람은 없는 거야.”
백새벽은 그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생존 자체가 쉽지 않은 애쉬랜드에선 자원을 쟁탈하기 위한 집단 간의 칼부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편이었다.
장목화는 이 이야기를 끌고 나가기보단, 버즈로 화제를 돌렸다.
헬빅과 앙헤바스가 자작극을 꾸며 일석이조를 노리려 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제훈은 무표정한 얼굴로 웃음을 흘렸다.
“놀랍지도 않네. 근데 안타깝게도 헬빅은 너무 쉽게 죽어버렸어.”
장목화는 그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이번에는 경계 교회당에서 있었던 일을 전했다. 물론 약속을 지키기 위해 레나토가 무심병에 걸렸다는 일은 생략했다. 경고자 송하균을 만난 건 우연의 일치였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또한 그녀는 로페즈가 준 단서도 숨기지 않았으며, 에이돌른 영역의 각성자는 두려움을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도 그대로 고했다.
“맞아.”
도제훈도 확신에 찬 말투로 그 이야기를 긍정했다.
한명호 역시 놀란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애쉬랜더 사이에서는 일찍이 그러한 정보가 돌았던 모양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말했다.
“레드스톤 마켓 상황은 경계 교파 교리에 매우 적합해. 이곳 각성자가 평균치보다 많은 건 그 때문일 거야.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일 뿐 무슨 증거가 있는 건 아니야.”
장목화가 말을 받았다.
“그래서 상황은 더 복잡해졌어. 일단 그건 차치하고 앙헤바스에 관한 이야기만 해보자. 만약 그가 정말로 헬빅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면, 오늘은 절대 경계 교회당에 가려 하지 않을 거야. 각성자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게 분명하니까.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그자는 어떤 행동을 취할까?”
장목화는 말을 내뱉자마자 후회했다. 이는 팀원들과 토론할 때 흔히 쓰는, 교육용 말투였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건 레드스톤 마켓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한명호는 협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내가 그 사람이면 최대한 빨리 그 무기를 마을 수비대에게 보내고, 전에 모아둔 물자라고 둘러댈 거야. 그럼 경계 교파에서도 눈감아줄 테니까.”
“로페즈 같은 외부인을 버리면서, 자기는 모르는 사이에 그들이 저지른 짓이라고 둘러댈 수도 있고.”
도제훈도 덤덤하게 덧붙였다.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그자가 오늘 밤 무기를 레드스톤 마켓 밖의 산 요괴에게 넘긴 후에, 경계 교회당에는 안 가고 버티면서 조사자들에게 자신이 있는 곳으로 와서 조사하라고 할 가능성은 없을까?”
“그럴 리 없어. 끝까지 경계 교회당에 가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가 뭔가 켕기는 게 있어서 달지기의 주시를 받을 용기를 내지 못하는 거라고 여길 거야. 자기를 의심하기 시작한 수하들을 거느린 그가 어떻게 편히 잠잘 수 있겠어? 게다가 그는 경계 교파의 실력을 아주 잘 알고 있기도 해.”
한명호가 단호하게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