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190화 (190/649)

190화. 태업 (1)

“좋은 방법이네. 이쪽의 지질구조와 토양 상태로 보면 굴을 파기 꽤 어려웠을 텐데.”

장목화도 감탄했다.

“우리한테 연합 공업 기계가 있거든. 혹시 필요해? 땅굴을 파야 하는 전쟁에서는 상당한 물자랑 교환할 수 있을 거야.”

버즈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 말에 장목화가 빙그레 웃었다.

“일단 빼앗긴 무기를 찾고 보수를 받은 다음에. 게다가 실제 전쟁에선 언제든 벙커 버스터와 열압력탄이 떨어질지 모르니, 땅굴에 숨는 것도 마냥 좋은 수는 아닐 것 같은데.

근데 말이야, 그 강도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봤어? 혹시 그들의 내력을 알고 있나?”

그녀는 한담을 이어가는 대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버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다들 가면과 선글라스, 가발을 쓰고 있었어. 그게 바로 문제야. 외부에서 온 강도면 무기를 빼앗은 뒤 곧장 달아나면 그만이잖아. 상식적으로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위장할 필요가 있어? 가발까지 쓴 걸 보면 머리 색도 들키기 싫어하는 것 같은데⋯⋯.”

냉소하는 버즈를 두고, 성건우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걸 위해서였다면 염색을 해도 됐을 텐데. 내가 전문적인 염색 팀을 소개해줄 수도 있어. 좀 멀리 있기는 한데⋯⋯”

“보아하니 의심 가는 대상이 있는가 보네.”

이번엔 장목화가 성건우의 말을 끊었다.

“분명 그 애쉬랜더들일 거야! 일이 있고 난 뒤, 난 몇 사람들과 함께 차 바퀴 자국을 추적했어. 먼저 남쪽으로 폐허 도시를 떠나선 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더라고!”

버즈가 분통을 터뜨렸다. 그래도 그는 잊지 않고 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의 의미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디마르코 가문의 지하 방주와 경계 교회당은 폐허 도시 북쪽에 있고, 레드리버인 대부분이 서쪽 호숫가에 사는 데 반해, 애쉬랜더는 주로 폐허 도시 동쪽 건물에 산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또한 그는 남쪽은 대개 혼혈들이 활동하는 곳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한편 레드스톤 마켓에 대응하는 공원은 그 중앙에서 살짝 서쪽으로 치우쳐진 곳에 있었다.

이 말을 다 듣고도, 장목화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렇군. 그것 말고 또 뭘 발견했지?”

버즈가 재차 고개를 저었다.

“없어. 음⋯⋯ 강도 짓을 한 놈들은 아홉 명이었어. 키는 다들 평범한 편이었고, 주위에 일고여덟 명 정도가 매복해 있었어.”

그 후로 몇 가지 질문을 더한 뒤, 장목화가 말했다.

“그럼 우리는 애쉬랜더들이 산다는 그곳에 가서 한번 조사해볼게.”

* * *

구조팀은 버즈에게 작별을 고한 뒤 지프에 올랐다.

제일 먼저 용여홍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그 무기들, 정말로 애쉬랜더가 훔쳐 간 모양인데요.”

장목화는 그 말에 전방을 바라보며 살짝 웃었다.

“애쉬랜더의 특징을 숨기는 데 그렇게까지 위장을 해야만 하는 걸까? 실은 어쩌면 레드리버인의 머리 색과 눈동자 색을 가리기 위해서였는지도 몰라.”

장목화의 말에 용여홍은 입을 살짝 벌린 채 화들짝 놀란 표정을 보였다.

‘그런 각도로도 생각할 수 있구나. 그건 너무 음험한 거 아닌가?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분명 존재하잖아!’

잠시 후, 용여홍이 다시금 물었다.

“사건의 본질은 내란을 일으키는 거였을까요?”

“어쩌면 다른 방식의 숨바꼭질이었을 수도 있지. 무기를 숨겨놓고 모두에게 찾게 하는 거.”

성건우는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뜻밖의 의견에 멍한 표정을 드러낸 용여홍은 몇 초간 생각하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럴 리가! 설마 애초부터 그 무기는 도둑맞은 게 아닐 수도 있을까요? 레드스톤 마켓 안의 애쉬랜더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 헬빅과 버즈가 어딘가에 숨겨놓은 건가요?”

백미러로 빠르게 스치는 폐허를 보던 장목화가 미소 지으며 답했다.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 봐봐, 아니, 생각해봐. 헬빅의 수하는 적지 않아. 테레사가 우리에게 알려준 심복만 해도 네다섯 명은 돼. 그들은 각 팀의 핵심 구성원들일 거야. 그런데 헬빅은 왜 굳이 길드에 임무를 의뢰했을까? 자기가 직접 팀을 짜서 움직이는 게, 유적 사냥꾼에게 의뢰하는 것보다 훨씬 더 편하고 효율적이지 않겠어?”

운전 중인 백새벽도 덧붙였다.

“상식적으로 무기 거래를 하는 상인의 실력이 약할 리 없어. 그들의 실력은 최소 일반 유적 사냥꾼 네다섯으로 이뤄진 팀이랑 엇비슷해.”

이는 거느린 수하의 규모, 구비한 무기 모두 아울렀을 때의 이야기였다.

구조팀은 이런 일반 유적 사냥꾼 팀에 포함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겉보기엔 고급 사냥꾼은커녕 베테랑 사냥꾼도 없이, 중급 사냥꾼 한 명에 흔해 빠진 정식 사냥꾼 셋으로 이루어진 팀일 뿐이었다.

이들이 내세울 수 있는 공로라고 할만한 것도 배지 뒤에 새겨진 ‘유호중 총격 살인 사건 해결’ 밖에 없었다.

“그렇네요. 그런데 왜 그랬을까요?”

용여홍은 장목화의 말에 그제야 뭔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빙그레 미소 짓던 장목화가 대답하려는데, 성건우가 끼어들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정의를 대표하니까!”

장목화는 이내 이를 악문 채 답했다.

“이 임무는 우리를 위해 준비된 게 아니었어. 레드스톤 마켓 내 유적 사냥꾼들을 위한 것도 아니었지.

경계 교파 교도들 입장에서 유적 사냥꾼 팀을 크게 꾸리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야. 적을 경계하는 것보다 동료를 경계하는 게 더 힘든 일이잖아.

헬빅의 실력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면, 규모가 작은 팀으론 이 임무를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을 테고.

즉, 이건 외부에서 온,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는 이들을 위한 임무야. 그렇다면 외부인들은 현지 주민들에 비해 어떤 점에서 우세할까?”

잠시 망설이던 용여홍이 답했다.

“비교적 객관적이라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니 조사 결과를 상당히 신뢰할 수 있겠죠. 그리고 통제하기도 쉬울⋯⋯.”

순간 용여홍은 모종의 깨달음을 얻은 듯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장목화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사실 상황은 이미 또렷해졌어. 강도가 애쉬랜더든, 레드리버인이든 이 사건은 레드스톤 마켓 내의 갈등을 심화시킬 거야. 만약 우리의 조사 결과가 애쉬랜더를 가리킨다면, 레드리버인들은 그걸 공격의 명분으로 삼겠지.”

용여홍이 말을 받았다.

“그렇군요⋯⋯. 그럼 어쩌죠? 이 사건에 휘말렸다간 분명 위험해질 텐데.”

그는 팀원들 한 명 한 명이 각각 서너 명쯤은 너끈히 감당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동료의 실력을 믿기에, 열 명 정도 되는 강도단이라고 한들 충분히 대적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거의 수백 명의 무장 인원이 연루돼 있을지 모를 풍파에 겨우 넷이 달려드는 것은 아무런 승산이 없는 일이었다.

레드스톤 마켓 주민들은 경계 교파에 대한 신앙으로 내내 숨어 지냈기에 구체적인 숫자를 파악할 수도 없었다. 다만 마을의 규모로 볼 때 이곳 주민 중 성인은 이삼백 명 정도에 달할 듯했다.

장목화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당연히 일단 동맹부터 찾아야지.”

“동맹이요?”

용여홍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그녀의 말을 반복했다.

그러자 장목화가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생각해봐, 레드스톤 마켓에 분쟁이 일어나면 레드리버인만 혹은 애쉬랜더만 남기를 바라지 않는 건 과연 어느 쪽일까?”

자세히 고민해 보던 용여홍은 하나하나 배제한 끝에 답을 찾아냈다.

“경계 교파?”

장목화는 그 대답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경계 교파 입장에선 작은 갈등은 이어지되 큰 소란은 일어나지 않으면서, 서로 간의 경계가 유지되는 게 제일 좋은 상황이야. 이런 상황이라야 계속 그들의 교리가 실현되고 지켜질 수 있지. 레드스톤 마켓에 한 집단만 남게 된다면 확실히 숨어지낼 필요가 줄어들잖아.

그럼 헬빅은 왜 굳이 외부인에게 조사를 맡기려고 했을까? 누굴 설득하려고 그런 걸까? 전쟁을 선포할 충분한 이유가 갖춰지지 않는다면, 그들은 절대 교리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어.”

모든 것을 관통하는 이야기에 용여홍도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이어 고개를 돌려 단층 빌딩 구역을 돌아보다가 다시금 물었다.

“그럼 우리는 바로 교회당으로 돌아가나요?”

그는 레나토가 비엘을 찾아달라고 부탁한 것에 다른 목적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비엘을 찾을 겸, 무기 강도 사건을 맡은 외부인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경계 교파의 존재감을 분명히 드러내려 한 것인지도 몰랐다.

“급할 것 없어. 이건 분석이지, 사실로 판명된 건 아니잖아. 일단 이틀 정도 건성건성 지내보자. 더 이상 누군가 못 참고 튀어나올 때까지.”

장목화는 웃으며 시원하게 기지개를 켰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던 도중, 성건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그들은 무엇보다 평화가 우선이라는 진리를 알지 못하는 모양이군. 만약 내가 교주였다면 매일 미사를 거행하면서 숨바꼭질에다 친구를 찾게 하는 의식을 더 했을 텐데. 찾아라, 찾아라, 친구를 찾아라~!”

성건우는 말미에 급기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럼 성건우 형제회 레드스톤 지부가 설립되겠지.’

속으로 중얼거리던 용여홍이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

“팀장님, 그럼 헬빅이 죽은 이유는 뭐죠? 애쉬랜더를 모함하기 위해 일부러 무기를 숨겨뒀지만, 동료 중 누군가의 탐욕 때문에 죽게 된 걸까요?”

짝짝짝!

성건우가 손뼉을 쳤다.

“드디어 드라마 대본을 쓸 자격이 생긴 것 같네.”

장목화가 눈동자를 살짝 굴리며 답했다.

“무기를 숨겨놓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도로 적겠지. 안 그럼 무턱대고 사람만 다 죽일 수도 없잖아. 그러니 이다음엔 누가 죽는지 지켜보자.”

이내 고개를 돌린 그녀가 백새벽을 보며 미소 지었다.

“만약 그들이 그 무기를 다른 이들에게 다 나눠줘 버리면, 우린 그게 사라진 무기인지 확신할 수가 없을 거야. 새벽아, 전엔 이런 상황을 어떻게 처리했어?”

그녀는 어느새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다. 사냥꾼 길드에서 제공한 빼앗긴 무기 목록이었다.

“연합202 200정, 트롱그 돌격소총 200정⋯⋯.”

백새벽이 덤덤하게 답했다.

“고용주는 빼앗긴 만큼의 물건을 회수할 수 있느냐에만 신경 쓰지, 그게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는 신경 쓰지 않아요.”

“그럼 직접 빼앗아버리는 게 더 빠르겠네. 하지만 빼앗은 무기를 내가 왜 고용주에게 돌려줘야 하지?”

장목화가 피식 웃었다.

그때, 성건우가 열의 넘치는 얼굴로 제안했다.

“그 무기를 고용주 앞으로 가져가서 그에게 무기를 불러보라고 하는 거예요. 그 부름에 응하는 무기만 그 사람 것인 거죠.”

장목화는 혀를 쯧쯧 차며 고개를 저었다.

“너, 그런 스마트 기기를 본 적이 없는 모양이구나. 그것들은 너한테 대답할 뿐만 아니라 싸우기까지 할 수 있어.”

* * *

정오 무렵, 헬빅의 몇몇 심복들과 만나본 구조팀은 레드스톤 마켓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곧장 치안소를 찾아가 헬빅의 사망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먼저 각 층에 붙은 안내에 따라 한 가게를 찾아갔다.

[무독 식당]

가게에는 다양한 크기의 테이블이 예닐곱 개 놓여 있었다. 각기 의자와 스툴이 딸린 테이블이었다. 하지만 이곳 역시도 예상대로 아무도 없었다. 주방장은 물론, 사장도 보이지 않았다.

“휴⋯⋯.”

장목화는 피식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와 동시에 성건우가 뒤쪽 주방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렌지대 앞에 쪼그려 앉았다.

똑똑똑-

렌지대 아래 찬장 문을 두드리자, 바깥쪽으로 벌컥 문이 열렸다. 안에선 곧 뚱뚱한 남자 한 명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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