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187화 (187/649)

187화. 최종 빌런

레나토는 다시 백새벽을 바라보았다.

“카를 선생의 사무실은 레드스톤 마켓 5층에 있습니다. ‘비자 무역 회사’라는 간판이 달려 있지요.”

“비자? 왜 그런 이름이 붙은 거죠?”

장목화는 늘 새로운 정보를 마주하면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디마르코 선생 조부의 이름입니다.”

레나토가 설명했다.

장목화는 이내 엘리베이터와 액정 패널을 바라보았다.

“이것도 전부 구세계의 유물인가요?”

“틀은 그렇습니다. 머신헤븐의 개조를 통해 낡고 망가진 부분을 교체했죠.”

그가 주관하는 교회당을 통해야만 지하로 진입할 수 있는 만큼, 레나토는 이에 대해 꽤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이를 듣고도 장목화는 전혀 의아해하지 않았다. 이곳은 본래 중요한 암거래 시장이니, 머신헤븐에 필요한 자원도 적지 않게 있을 것이었다. 그런 점으로 볼 때 디마르코 가문과 머신헤븐이 합작했다는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위드 시티와 비교하면, 이곳이 머신헤븐이 있는 남쪽 해안 지역과 훨씬 더 가깝기도 했다.

“인간은 지하 방주에 들어갈 수 없지만, 로봇은 가능하다는 건가요?”

장목화가 물었다.

“예, 하지만 인공지능 로봇이나 무장 로봇은 불가합니다. 당시 머신헤븐에선 소형 비 인공지능 로봇 엔지니어 팀을 보냈었거든요.

음, 디마르코 선생은 지하 방주에 이 분야에 관련된 전문 인재를 길러두기도 했을 겁니다. 그 둘에 힘입어 지하 방주 개조는 금세 끝났어요. 관련 데이터나 자료는 로봇 엔지니어 팀이 이곳을 떠나기 전에 다 제거됐고요.”

레나토가 답했다.

* * *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일행은 보루 지상의 교회당으로 돌아갔다.

이곳에서 구조팀은 레나토와 작별하고 지프에 올랐다.

조수석에 탑승한 장목화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비엘이 한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해?”

백새벽은 운전석에 앉아 차를 몰면서 덤덤히 대꾸했다.

“최소 그중 일부분은 거짓말이겠죠.”

뒷좌석에서 용여홍도 고개를 끄덕였고, 곁에 있던 성건우는 깊은 감명이라도 받은 눈빛을 하고서 손뼉을 쳤다.

“연기력이 상당하던데요.”

장목화는 고개를 돌려 용여홍을 돌아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럼 어느 부분이 가장 거짓말 같아?”

잠시 용여홍의 고민이 이어졌다.

“레나토 주교가 그랬잖아요. 미사를 끝내기로 하고 비엘을 불렀지만 아무 대답도 없었다고요. 아까 관찰해봤는데 저 안 곳곳에 확성기가 설치돼있더라고요. 레나토의 목소리는 지하 1층 전역에 다 닿았을 거예요. 비엘은 당연히 그 소리를 들었겠지만, 꼬박 하룻밤이 지나서야 나온 거고요.”

장목화가 칭찬했다.

“훌륭해, 관찰력 합격! 그때 만약 비엘이 자고 있었다면?”

용여홍도 팀장의 칭찬에 자신감을 얻었다.

“잠든 비엘이 주교의 수색을 피할 수 있었을까요? 각성자는 일정 범위 내의 의식을 감지할 수 있다고 했잖아요. 잠든 사람이 자리를 옮길 순 없죠.”

친구 성건우가 각성자라, 용여홍도 그 방면의 상식이 아예 없진 않았다.

그때 성건우가 웃었다.

“비엘도 각성자일 거라는 생각은 안 해? 내 생각에 숨기 의식은 일종의 각성자 의식일 수도 있을 것 같아.”

성건우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을 끝냈다.

“왜?”

용여홍의 물음에, 성건우가 다시 분석을 시작했다.

“봐봐⋯⋯.”

“아, 그만! 그만! 보긴 어딜 봐, 그 말 하지 말고 답만 말해, 답만.”

저 한마디를 듣자마자 용여홍은 머리가 다 저릿해졌다.

성건우는 그를 힐긋 쳐다보다 손가락을 하나하나 펼쳤다.

“첫째, 경계 교파의 숨바꼭질 시합은 상당히 의식적인 느낌이 있다. 둘째, 달지기를 믿는 종교 조직 내 각성자는 비교적 많은 편이다. 그러니까⋯⋯.”

짝!

“그러니까 숨바꼭질 의식은 각성자 의식이구나!”

용여홍은 손뼉을 치며 확신에 차 말했다.

전 과정을 가만히 방관하던 장목화는 한숨과 함께 얼굴을 감싸 쥐었다.

“여홍이 좀 그만 놀려라⋯⋯.”

용여홍은 약간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려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그때, 장목화가 한마디 덧붙였다.

“종교 조직의 미사와 각성자 의식이 같다고 볼 증거는 어디에도 없어.”

“아⋯⋯.”

낮게 탄식하는 용여홍을 보고, 성건우가 웃었다.

“봐봐, 난 봐봐, 라는 말을 쓰지 않고도 널 설득한 거야.”

“그게 무슨 설득이냐?”

용여홍이 짜증을 냈다.

장목화는 다시 전방의 길을 바라보며 두 사람의 말싸움을 저지했다.

“그럼, 여기서 문제. 각성자는 잠들어 있을 때도 위장을 유지하고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을 수 있을까?”

“실험해본 적 없는데.”

성건우가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비엘이 각성자든 아니든, 주교가 미사를 끝내기로 했는데도 나오지 않은 이유는 뭘까?”

이어진 질문에, 성건우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답했다.

“재미있으니까!”

장목화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용여홍을 바라보았다.

“성격마다 다르겠죠? 건우 같은 성격이면 그냥 재미를 위해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면 계속 숨어있는 게 무슨 이익이 있지 않았을까요? 주교를 피해 계속 숨어있어야 더 쉽게 각성할 수 있는 거 아니었을까요?”

용여홍은 매우 진지하게 답을 했다.

“넌 역시 내 친구야.”

성건우가 곁에서 칭찬했다.

용여홍은 그제야 자신도 모르게 숨바꼭질 의식은 각성 의식일 수 있다는 그 논리로 상황을 판단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서 잠시 머뭇거리다 덧붙였다.

“그, 그냥 추리를 해본 거예요. 정말 그럴 가능성도 있으니까…….”

그러자 장목화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래. 다른 가능성은 없을까?”

“못 들었을 수도 있죠.”

성건우가 재차 답을 가로챘다.

용여홍은 비엘이 청각 장애를 앓고 있는 거냐고 말하려다, 순간 실제로 청각 장애가 있는 장목화가 떠올라 입을 다물었다.

그때, 운전 중인 백새벽이 전방을 주시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비엘이 나오지 않은 이유는 일부러 안 나왔거나, 주교의 말을 못 들었거나 이 두 가지뿐이야. 자처해서 안 나온 거면 본인의 의지대로 한 일이지. 너희가 방금 분석한 것처럼 지금은 그 이상의 추측을 하긴 어려워.

또 비엘이 정말 주교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그때 그 층에 없었다는 거겠지. 다들 미사를 드린 장소에 배치된 확성기의 개수를 봤잖아.”

용여홍은 순간 깨달음을 얻었다.

“맞아! 혹시 통풍관으로 디마르코의 지하 방주에 들어갔던 거 아닐까?”

그렇다면 밖에 있는 사람들도 비엘을 찾을 수 없고, 비엘 역시 미사의 끝을 알리는 주교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럴 가능성도 있는데, 사실 방주로 들어가긴 굉장히 어렵지. 디마르코 가문이 보인 모습을 보면 통풍관과 지하 방주가 그렇게 쉽게 통하도록 설계해 두진 않았을 것 같아. 지하 방주로 이어지는 통풍관의 출구도 누군가 지키고 있을걸?”

여기까지 말을 잇던 장목화가 돌연 웃음 지었다.

“그리고 난 지하 방주 통풍구가 교회당뿐만 아니라 다른 곳으로도 이어졌을 거라 생각해. 굉장히 비밀스럽게 숨겨져 있겠지. 안 그럼 외부의 적이 그곳을 막으면 지하 방주에서는 누구도 살 수 없게 될 테니까.

생각해봐. 내부 생태 순환 시스템을 갖춰둔 회사에서도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지표면과 공기 순환을 차단하지 않잖아.”

물론 통풍구가 설치된 지역에 심각한 오염이 발생하면 얘기가 달라졌다.

“맞아요.”

용여홍이 동의했다.

장목화는 웃음을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통풍관을 통해 아래로 내려갈 가능성은 낮아도, 위로 올라갈 가능성까지 배제할 순 없지. 통풍관에 숨으려는 사람은 아주 많아. 그래서 나도 교회당에 들어갔을 때 통풍관을 중점적으로 관찰해봤어. 경계 교파에선 통풍구를 지키는 사람을 따로 배치해두지 않았더라고. 그래, 이미 그 안에 숨었을 가능성도 있지. 하지만 내가 감지한 범위 내에서는 없었어.”

용여홍이 말을 받았다.

“그러니까 비엘은 미사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비가 보지 못하는 통풍관을 통해 아예 교회당을 빠져나간 거라고요? 그렇게 부근의 폐허 도시에 숨어있다가 이쯤이면 됐다고 생각될 때쯤 돌아온 거고요? 고작 최후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 그게 신도들에게는 그렇게 큰 영광인가요?”

그 말에 성건우가 신이 난 듯 바로 답을 내놓았다.

“팀장님, 그럼 숨바꼭질의 승자는 신의 은혜 아래 각성 능력을 얻게 되나 보네요?”

“누가 알겠어? 엄밀히 말해 비엘은 규칙을 위반한 거야. 하지만 경계 교파 내부의 일이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이걸 계기로 사고력이나 키우자는 거지. 자, 이제 레드스톤 마켓으로 돌아가 어떤 임무가 또 올라왔는지 보자고.”

장목화가 대꾸했다.

폐허 도시는 이미 지척에 가까워졌다. 이를 보던 백새벽이 이야기했다.

“디마르코 가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구세계 파괴 원인을 회사 내부에서부터 조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빅 보스와 이사회 이사들, 그리고 가장 초기의 사건 파일에 먼저 손을 대야 할 것 같아요.”

장목화가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 리 없었다. 다만 지금의 자격과 권한으로는 불가능했다.

회사는 구세계가 파괴되지 않았을 때부터 대량의 자원과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과학기술을 이용해 지하 건물을 세워놓았다. 그 건물은 몹시 거대할 뿐만 아니라 내부 순환까지 가능한 곳이었다.

사실 이는 구세계가 파괴되리라는 것을 예감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반고 바이오의 직원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자기 자신을 속이는데 능한 용여홍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는 회사가 여러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애써 여러 이유를 찾을 뿐이었다.

백새벽의 말에 장목화는 어색하게 웃었다.

“일단 기회를 기다려 보자. 우리 작은 흰둥이, 그런 말까지 하는 걸 보니 이제 우리를 상당히 믿는 모양이네!”

어느덧 장목화는 뿌듯하게 웃고 있었다.

백새벽은 운전에 집중하려는 듯 전방만 주시하다, 몇 초 후 입을 열었다.

“애쉬랜드를 유랑하던 시절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회사에 들어와 실제로 그렇게 거대한 지하 건물을 보고 나서야 내가 최종 빌런의 진영에 들어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행이네.”

성건우의 짤막한 대꾸에 이어, 용여홍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상의 여러 대형 세력이 우리 회사가 어디에 있는지, 내부 모습이 어떤지 몰라서 다행이야. 그런 걸 알고 있다면 반고 바이오가 구세계 파괴와 연관돼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을 테니⋯⋯.”

용여홍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속한 회사의 나쁜 선입견이 얼마나 공고하게 잡혀있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장목화가 웃었다.

“앞으로 우리 구조팀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을 만난다면, 최종 빌런의 모습이 어떤 건지 똑똑히 보여주자고!”

“좋습니다!”

성건우는 이상하리만치 적극적인 모습으로 호응했다.

* * *

다시 레드스톤 마켓에 돌아왔지만, 아직 점심을 먹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이에 구조팀 네 사람은 사냥꾼 길드로 향했다.

네 사람은 모두 가면을 쓰고 있긴 했지만, 레드스톤 마켓의 주민들에 비해 성건우와 장목화의 키가 너무도 커서 확실히 튀는 부분이 있었다.

역시 호랑이 가면을 쓴 직원이 자발적으로 먼저 인사를 해왔다.

“무기 임무에 후속 임무가 붙었어요.”

성건우가 흠칫 놀란 듯 물었다.

“제 위장을 간파한 건가요?”

“더 효과적인 위장을 위해서 다리라도 부러뜨려야겠네.”

용여홍은 어렵게 얻은 성건우를 놀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레드스톤 마켓에 들어온 뒤부터는 줄곧 무릎을 굽히고 다녔는데?”

성건우가 말했다.

“난 안 그랬어. 그렇게 걸으니까 더 원숭이 같긴 하네.”

한숨을 내쉬던 장목화도 결국 성건우를 놀리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무기 임무를 계속해서 맡으실 건가요?”

호랑이 가면을 쓴 직원은 그제야 힘겹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자 백새벽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네.”

직원은 곧장 입을 열었다.

“헬빅의 부인이 와서 이 임무를 그대로 두겠다고 말했어요. 테레사 부인은 지금 건파이어에서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상황을 파악한 구조팀은 금세 3층의 건파이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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