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185화 (185/649)

185화. 지하 방주

장목화가 생각에 잠긴 사이, 백새벽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가 비엘이라는 그 사람을 찾아주기를 바라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미사 의식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신도들은 제 신실함을 의심할 거예요. 제가 신을 욕보였다고 생각하겠죠.”

레나토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백새벽은 팀원들과 상의해야 하는 문제인 양, 일단 성건우와 용여홍을 훑어본 뒤 장목화를 바라보았다.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백새벽은 그제야 답을 이었다.

“네, 그럴게요. 하지만 상세한 상황을 알지 못하는 만큼 반드시 완수하리라는 보장은 못 합니다.”

레나토도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알겠습니다. 원하는 보수는 뭡니까?”

“중무기와 전신 장비를 파는 무기 상인을 소개해주세요. 이건 우리가 원하는 보수 중 일부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현장을 살펴본 뒤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죠. 비엘을 찾은 후에 지불해도 좋아요.”

백새벽이 덤덤하게 말했다.

단순히 소개하는 일이야 레나토에게는 아무런 부담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응했다.

“문제없습니다. 현장 조사는 언제쯤 할 생각입니까?”

“날이 이미 어두워졌으니 내일 아침에나 시작하도록 할게요.”

백새벽이 여유롭게 말했다.

“좋아요, 경계심이 상당하군요. 내일 날이 밝으면 공원 밖의 길을 따라 호숫가로 오세요. 그곳에서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칭찬을 건넨 레나토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백새벽도 따라서 몸을 일으켰다.

“좋아요, 즐거운 합작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경계는 신의 힌트.”

레나토는 재차 양팔을 가슴팍 앞에 교차하며 뒤로 물러나는 예를 취했다.

떠나는 그를 지켜보던 성건우는 문을 닫고 형형한 눈빛으로 돌아섰다.

“최후의 대결이 시작됐네요.”

장목화도 가면을 벗으며 웃었다.

“만약 내가 못 찾을 곳에 숨어버릴 생각이라면, 난 널 레드스톤 마켓에다 두고 떠나버릴 거야!”

“전 창입니다.”

성건우는 숨을 생각이 조금도 없다는 듯, 그저 상대의 방패만 뚫을 작정이라는 듯 강한 어조로 대꾸했다.

여관 구역에는 다른 손님들도 있었다. 레드스톤 마켓을 방문한 암거래상이나 유적 사냥꾼이겠지만, 장목화는 그들과 접촉하는 데 급급하지 않았다.

아직 이곳이 낯설기도 하고, 경계하는 마음이 무엇보다 우선시되는 이곳에선 상대가 교류를 원치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섣부른 행동이 좋지 않은 오해를 불러일으킬지도 몰랐다.

그래서 구세계 얘기를 다 들려준 장목화는 팀원들에게 이제 각자 방으로 돌아가 씻고 쉬라며 자리를 파했다.

* * *

다음 날 아침,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해결한 구조팀은 오랜 동료와도 같은 지프를 끌고 공원 밖의 길을 따라 호숫가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주위 환경에 매우 잘 녹아든 회색 승용차가 한 대 서 있었다. 안에는 머리에 무명천을 쓴 사람이 탑승해 있었다.

자신을 숨긴다는 건 경계 교파에서 비롯된 레드스톤 마켓의 풍습임을 이제는 잘 알지만, 그래도 장목화는 상대의 꼴이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성건우가 아끼는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 난 학교를 폭발시켜버릴 거야⋯⋯.

“그만! 스피커 꺼. 이제 일할 시간이라고.”

조수석에 앉은 장목화가 전방을 바라보며 명령을 내렸다.

이후, 구조팀은 승용차 근처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머리에 천을 쓴 사람이 차창을 내린 뒤 큰소리로 외쳤다.

“따라와!”

“뭘 믿고?”

성건우가 지지 않겠다는 듯 응수했다.

머리에 천을 쓴 사람은 흠칫 놀랐다.

“주교님의 부탁을 받고 온 거 아니었어?”

“경계하는 마음은 영구히 존재하리라!”

성건우는 이 틈을 타, 그간 해보고 싶어서 안달이었던 구호를 외쳤다.

한층 더 멍해진 상대는 한동안 설득을 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하고 돌아가 레나토 주교를 데려오고 싶지도 않았다.

순간 용여홍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친구의 목표가 자신이 아닐 땐, 그가 하는 농담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장목화는 더 이상 성건우의 허튼짓을 용인할 수 없다는 듯 차창을 열고 크게 소리쳤다.

“안내해!”

레드스톤 마켓 주민은 비로소 안도하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 * *

두 차량은 호숫가를 따라 폐허 도시 가장자리 산맥으로 향했다. 가는 길은 보수가 된 건지 크게 움푹 팬 곳도, 각종 장애물도 많지 않았다.

근 20분을 달렸을 무렵, 도시를 빠져나온 두 차량은 한 건물 앞에 이르렀다. 보루처럼 보이는 2층 건물이었다.

그 2층 발코니에 레나토가 있었다. 남자는 오늘도 흰 바탕에 검은 무늬가 들어간 가면을 쓰고서 검은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들어오세요.”

레나토가 구조팀을 향해 말했다.

“데이터상의 특징이 부합해. 일단은 어젯밤 만난 그 사람인 것 같아.”

장목화가 보조 칩 내에 기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일러주었다.

모두가 좀처럼 얼굴을 드러내려 하지 않으니, 장목화도 신체적인 특징과 목소리 특징, 전기 신호 데이터에 근거해 판단하는 수밖에 없었다.

전기 신호는 지문이나 홍채처럼 개인마다 차이가 나지는 않지만, 각자의 신체 조건과 운동 습관 등이 다른 만큼 어느 정도의 차이점은 존재했다.

하지만 같은 사람이라도 신체 상황과 움직임 등에 따라 전기 신호에 변화가 일어나기에 참고로만 삼아야 했다.

장목화의 확인이 이어지고서야 차에서 내린 팀원들은 머리에 천을 쓴 안내자를 따라 상당히 견고해 보이는 회백색 보루 안으로 들어갔다.

* * *

레나토는 2층에서 내려와 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게 당신들의 교회당인가요?”

장목화가 흥미롭다는 듯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붉은색을 대량으로 사용해서 그런지, 아주 위험하게 보여 반드시 경계심을 유지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반면, 그 붉은색 사이사이에 들어간 황금은 모종의 신성함을 상징하는 듯했다.

홀 가장 안쪽 벽엔 거대한 상징이 그려져 있었다. 흰 문이었다. 반쯤 닫힌 컴컴한 문 뒤쪽에는, 보일 듯 말 듯 한 여자의 인영이 숨겨져 있었다.

“지상은 그렇습니다.”

레나토가 사실대로 답했다.

“지하도 있는 건가요?”

장목화는 자신이 팀의 수장이란 사실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 그래야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일어나면 자신에게 선제공격이 가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녀는 팀원을 통틀어 반응속도도 가장 빠르고 생존 가능성도 가장 높은 사람이었다.

이때 성건우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토마토 달걀 볶음 같아.”

붉은색과 황금색이 조합된 보루 내부에 대한 그의 감상평이었다. 하지만 그는 손을 들어 입가를 훔쳐내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친구 수종이를 그리워하는 건가?’

장목화는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다. 무심자의 왕으로 의심되는 어린 수종이가 토마토 달걀 볶음을 연상케 하는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내 레나토가 장목화의 질문에 답했다.

“지하의 면적은 지상의 10배입니다. 디마르코 선생에게 속해있죠.”

이번엔 백새벽이 팀원들을 대신해 물었다.

“10배? 구세계 파괴 이후에 지어진 건가요, 아니면 원래부터 존재했던 건가요?”

레나토가 간단히 설명했다.

“디마르코 선생의 선조는 말하자면 종말론 애호가였어요. 언젠가 지상에 종말이 닥쳐오리라 생각했죠. 그래서 거금을 들여 전문가를 초빙하고, 몇 년 만에 생존자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지하 피난소를 만들었습니다. 들리는 말로, 족히 10층은 된다고 하더군요.

정작 본인은 이 피난소를 사용할 수 없었지만, 후손들에게는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디마르코 선생의 증조부는 이 피난소 덕분에 구세계 파괴와 혼란의 시대에 있었던 전쟁에서도 무사할 수 있었다더군요.”

그 말에 용여홍은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구세계 사람들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지하 피난소를 만들었구나. 회사는 그들보다 좀 더 큰 피난소를 지었을 뿐이야. 좀 과하게 큰 곳이지만⋯⋯.’

레나토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 후 우리 주 에이돌른에 귀의한 그는 죽기 전 이 보루의 지상 부분을 영원히 우리 교파에 임대하겠다고 말했어요. 이 교회당 덕분에 우리는 비로소 레드스톤 마켓에 안정적으로 발을 붙일 수 있었고요.”

여기까지 말을 잇던 레나토가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신을 찬미했다.

“경계는 신의 힌트!”

“애쉬랜드어를 상당히 잘 쓰시네요.”

성건우의 칭찬을 듣고, 레나토가 웃었다.

“레드스톤 마켓의 사람 중 절반 이상이 애쉬랜드어를 쓰니까요.”

“그렇군요.”

“디마르코 선생도 레드스톤 마켓의 주민인가요?”

이번엔 장목화가 물었다. 그녀는 디마르코 가문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구세계 파괴 이전부터 계속해서 이어진 가문이라면 분명 중요한 정보들을 파악하고 있을 것이었다.

레나토가 다시 또 간단히 설명했다.

“그럼요, 명예 촌장이시죠. 최초의 레드스톤 마켓도 디마르코 선생의 증조부, 조부께서 대외 물자 교환을 시작하면서 상인들과 황야유랑자들을 끌어들였기 때문에 형성된 거였습니다. 디마르코 선생이 지하 방주를 떠나기 싫어하지만 않았어도, 지금까지 실제 촌장 역할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백새벽은 상당히 놀랐다. 반고 바이오 직원이 아닌데도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디마르코 선생이 지상으로 나오지 않는다고요?”

“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지하 방주에 들어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죠. 매해 정해진 날짜에 노예를 받아들일 때만 빼고요. 그 노예들도 지하 방주 최상층에서 최소 반년간은 시험과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정말이지 대단한 경계심이죠! 만약 여러분들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디마르코 선생의 이야기를 해주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레나토는 정말 신실하게 감탄했다. 지하 방주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디마르코 선생에게 직접 독신자 훈장이라도 내릴 기세였다.

“디마르코 가문의 대외 교역은 누가 책임지고 있죠?”

장목화가 물었다.

“디마르코 선생의 세 집사가 각자 일부분을 맡고 있습니다. 자, 그럼 이제 미사를 드리는 장소로 가볼까요?”

레나토가 홀 가장자리의 엘리베이터를 가리켰다.

구조팀은 걸음을 옮기며 새삼 느낀 사실이 있었다. 자신들과 레나토가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홀 안에 다른 교도는 단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길을 안내한 남자도 어느새 어디론가 숨어버린 상태였다.

그러자 교회당은 더욱 고요하고 공허해졌으며 공포스럽게 보였다. 하지만 팀원들 모두 교회당 내 중요한 곳곳에 사람들이 숨어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 *

엘리베이터에 오른 레나토가 B1 버튼을 눌렀다.

“지하는 전부 디마르코 선생에게 속한 곳 아니었습니까?”

백새벽이 예리하게 물었다.

“지하 1층은 지하 방주와 지상 건물을 격리하는 구역입니다. 디마르코 선생은 이곳에서 노예 교육이나 시험을 진행하지 않을 동안엔, 한 해 미사를 드릴 때 쓰라고 빌려줬습니다.”

레나토가 답했다.

“이 층이 숨바꼭질하기 적합한가요?”

곧장 캐묻는 성건우를 보고, 레나토가 다시금 강조했다.

“숨기 의식입니다.”

말하는 사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전방에는 크지 않은 홀이 자리해 있었다. 통로는 여러 갈래로 나 있었는데, 제각기 다른 방향이었다.

잠시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동안, 레나토가 입을 열었다.

“이곳은 굉장히 넓고, 방도, 복도도 아주 많아서 숨기엔 최적입니다. 이런 곳이 없었다면 우린 폐허 도시의 일정 구역을 찾아 미사를 거행했을 텐데, 그랬다면 신도들을 찾기는 훨씬 더 어려웠겠죠.”

주위를 한번 둘러보던 백새벽이 말했다.

“우선 저희랑 함께 한번 돌아보시죠. 놓치는 곳이 없어야 할 테니까요.”

일단 현장 조사를 마쳐야 보수에 대해 제대로 상의할 수 있었다.

“그러죠.”

레나토는 망설이지 않고, 오른쪽 첫 번째 통로로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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