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치안소
다른 가게들과 마찬가지로 건파이어라는 가게에는 총도, 사람도 없었다.
장목화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사진을 들어 보였다.
“보아하니 일단 이 임무의 의뢰자부터 찾아야 하는 모양인데.”
사진의 주인공은 통통한 남자였다. 3~4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의 눈동자는 흑녹색이었고, 머리는 광이 나도록 박박 민 상태였다.
“여기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곧장 결론을 내린 성건우를 보고, 장목화가 빙그레 웃었다.
“그런데 왜 여기에 남아있어? 다른 곳으로 가보지 않고?”
“절차에 따라 처리해야 하니까요. 모든 걸 능력에만 의지할 순 없죠.”
성건우가 단호하게 답했다.
“훌륭해.”
장목화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사이, 백새벽과 용여홍은 또 다른 곳으로 흩어졌다.
둘은 거기서도 각각 나뉘어 한 명은 위쪽 통풍관을 살피고, 다른 한 명은 조심스레 수납장을 열어보고 있었다.
몇 초 후, 백새벽이 위쪽을 가리켰다.
“저쪽이 뭔가 이상하네요.”
그녀의 손가락 끝, 통풍관 출구 철책 쪽에 검은 옷자락이 끼어있었다.
순간 장목화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성건우도 사람의 의식을 감지하지 못했고, 그녀 역시 사람의 전기 신호를 감지하지 못했다. 이 상황이 뜻하는 건 딱 하나밖에 없었다.
저 통풍관에 있을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의미였다.
장목화는 테이블을 끌어와 그 위로 훌쩍 올라갔다. 그녀가 왼손으로 통풍관 입구를 막은 철책을 뜯어내자, 안쪽엔 역시나 숨을 거둔 사람이 있었다.
이내 그녀는 검은 옷을 입은 시신을 천천히 테이블 위로 끌어왔다.
용여홍은 사진을 들고 테이블 위의 시신과 한번 비교해보았다. 민머리에다 통통한 얼굴, 그리고 크게 부릅뜬 흑녹색 눈.
“헬빅, 정말 헬빅이에요!”
“죽은 지 좀 됐어. 냄새는 이미 흩어져 사라졌는데 아직 부패가 진행되진 않았고. 이렇게 보수가 짭짤한 임무가 순조롭게 진행될 리 없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
장목화가 테이블 아래로 뛰어내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초장부터 시신이 된 의뢰자를 발견하다니!’
마음 같아서는 형편없는 운수에 대해 한탄하고 싶었지만, 장목화는 용여홍을 배려해 억지로 말을 바꿨다. 거기에 행여 성건우가 허튼소리 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바로 분부부터 내렸다.
“여홍아, 지금 가서 레드스톤 마켓의 치안 담당자 좀 데려올래?”
레드스톤 마켓이 위드 시티보다 더 혼란스럽다는 건 이미 들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들은 이곳 질서를 유지하는 무장 요원이 있으리라 믿었다. 이만한 시장 마을을 유지하기 위해선 반드시 질서가 필요하니, 그에 걸맞은 기구가 있을 것이다.
“어디로 가야 하죠?”
용여홍은 사람들 대부분이 숨어버린 이곳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곳은 정말이지 신기하고도 참 답이 없는 장소였다.
그때, 성건우가 어려울 것 하나도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숨바꼭질 안 해봤어?”
말을 마친 그는 건파이어라는 가게에서 튀어 나가 유리 난간 앞에 이르더니, 곧장 전방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사람이 죽었다! 사람이 죽었어! 건파이어의 헬빅이 죽었다!”
천둥처럼 우렁찬 성건우의 목소리가 지하 건물 전역에 쩌렁쩌렁 울렸다.
용여홍은 멍한 얼굴로 그 소리를 듣다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게 숨바꼭질이랑 무슨 상관이야?”
“뭐라고?”
장목화가 귀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그녀를 위해 백새벽이 용여홍의 말을 반복해주었다.
백새벽의 말이 끝나고, 잠시 생각하던 장목화가 입을 열었다.
“건우 쟤는 어린 시절에 숨바꼭질하다가도 ‘저녁 먹자, 얼른 와.’ 소리가 들리면 숨어있던 사람도 튀어나왔던 걸 떠올린 모양이야.”
팀장의 말을 따라 어린 시절을 회상하던 용여홍의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그러한 속임수에 넘어갔던 때가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성건우가 소리를 지른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때, 맞은편 유리 난간 너머 평범한 가게 배치도로 쓰이는 철판 상자가 벌컥 열렸다. 그 안에서 자라목 기관단총을 쥔 남자 한 명이 걸어 나왔다.
“헬빅이 죽었다고?”
난간으로 걸어오는 남자를 보며 성건우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어쩌면 아직 살아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예컨대 지금 당장 의식 업로드를 통해 상대를 기계 승려로 만든다면, 살리는 것도 영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이내 남자가 헬빅의 시신을 바라보며 무전기를 들었다.
“한 대장님, 건파이어에 일이 났습니다. 헬빅이 죽었습니다.”
* * *
레드스톤 마켓 치안소.
레드스톤 마켓 제일 아래층, 사냥꾼 길드에서 비스듬히 떨어진 맞은편에 치안소가 자리해있었다.
구조팀은 이곳에서 레드스톤 마켓의 치안관을 만났다.
“한명호다.”
호리호리하고 키가 큰 남자는 먼저 자기소개부터 했다. 물론 키가 크다는 건 애쉬랜드의 평균 신장을 기준으로 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구조팀과 비교하자면 용여홍과 엇비슷한 키였다.
또한 짧게 깎은 검은 머리에 눈썹이 숭숭 난 남자는 상당히 흉악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거기다 얼굴엔 가로세로 두 갈래로 난 흉터가 있는 데다, 허리춤에는 권총 두 자리를 차고 있어 어딜 봐도 다정해 보이는 인상은 아니었다.
남자의 이목구비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눈이었다. 흰자는 좀 누런 빛이었고, 눈동자는 갈색 하나 섞이지 않은 무척 새카만 색이었다.
장목화도 자신의 이름을 밝힌 뒤 물었다.
“이제 더 이상 우리한테 볼일은 없겠지?”
“아직 부검하지는 않았지만, 현재 상황으로 볼 때 헬빅이 사망한 건 너희들이 레드스톤 마켓에 들어오기 전이었던 것 같다.”
한명호 역시 아무나 골라 범인으로 몰 생각 따위는 없는 것 같았다.
이내 성건우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한명호가 옆에 있는 또 다른 남자를 가리키며 대꾸했다.
“웰러야. 의사이자 우리 치안소의 부검의를 겸직하고 있지.”
웰러는 아주 전형적인 레드리버 사람이었다. 머리칼은 노랬고, 눈동자는 파란색이었다. 그리고 피부도 좀 거친 편인데다 아이홀도 상당히 깊었다. 또 온 얼굴엔 수염이 덥수룩했는데, 그래도 나이는 한명호와 비슷한 30대 정도로 보였다.
“여기서는 교육도 이뤄져? 의학까지 가르치는 거야?”
장목화가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한명호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웰러는 연합 공업에서 왔어.”
곧 웰러가 손을 펼쳐 보이며 애쉬랜드어로 말했다.
“회사 상사가 내내 아이를 갖지 못해서 열정을 다해 도와줬다가, 하마터면 감옥에 갇힌 채 죽을 때까지 고문을 당할 뻔했어.”
“도와주는 방식이 좀 잘못됐네.”
성건우는 진지한 얼굴로 평가했다.
“뭐?”
그러자 웰러가 약간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성건우는 웰러와 눈을 맞추며 완벽한 해결 방법을 제시했다.
“생식기 이식과 신경 재건술, 인공 자궁을 통해 직접 그 사람의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했어야지. 그랬다면 그 사람도 절대 너를 감옥에 보내지 못했을걸? 너한테 모종의 감정이 생겼을지도 모르고.”
성건우는 상당히 낯선 말들을 뱉고 있었지만, 의료인인 웰러는 어렵지 않게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 난 그런 게 아니라.”
갑작스러운 상황에 뭐라고 변명해야 할지 알 수도 없어서, 웰러가 매우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그저 자조하는 방식으로 자기소개를 했을 뿐인데, 성건우는 그걸 너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당황한 웰러는 이렇게 진지하게 구는 상대를 눈앞에 두고, 사실 상사가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도운 것이 아니고, 상사의 어린 아내를 건드린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용여홍은 동정 어린 눈으로 웰러를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한편 장목화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한명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는 이만 가봐도 될까?”
“그래.”
한명호가 단호하게 답했다.
장목화는 손목시계를 한번 확인하고 물었다.
“여기도 여관 같은 게 있나?”
이미 꽤 늦은 시간이었다. 다른 임무를 접수하려고 한다면 저녁을 보낼 숙소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곧이어 한명호가 천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입구 반대편에 간이 가옥이 몇 채 있어. 일단 4층 카샤 여관에 가서 물자로 전자 카드를 교환해야 그곳 문을 열 수 있어. 만약 강제적으로 진입하려 한다면 금방 또 나를 만나게 될 거다.”
장목화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그때, 웰러가 자진해 나섰다.
“내가 안내해줄게. 아직 저녁 안 먹었지? 내가 대접할게. 허풍을 떨려는 게 아니라, 레드스톤 마켓에서 나만큼 사람을 잘 찾는 사람도 없거든. 나랑 같이 가면 시간을 훨씬 아낄 수 있을 거야.”
“아직은 필요 없어.”
장목화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성건우가 흥미진진한 목소리로 물었다.
“숨는 기술은 어느 정도인데?”
웰러는 아쉬움을 숨기지 않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 그들만큼 유난스럽지는 않아. 별일이 없는 한 숨지 않지.”
“넌 경계 교파 신도가 아니야?”
장목화도 질문했다.
“아니야. 한 대장도 신도가 아니고.”
웰러는 고개를 돌려 한명호를 보며 답했다.
그러자 한명호도 간단히 설명했다.
“치안관이 숨으면 질서 유지에 도움이 안 되잖아. 레드스톤 마켓에서 날 초빙한 것도 바로 그 점 때문이고.”
장목화는 잠시 생각하다가 질문을 이어갔다.
“너도 레드스톤 마켓 사람이 아닌 거야?”
“그래, 난 원래 황야유랑자였어. 오랜 시간 유적 사냥꾼 일도 했고.”
한명호가 답했다.
장목화는 너랑 좀 비슷하다는 눈빛으로 백새벽을 돌아보았다.
유일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백새벽은 결국 반고 바이오라는 대형 세력에 들어갔지만, 한명호는 그저 레드스톤이라는 암거래 시장의 일원이 되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 * *
구조팀은 한명호와 웰러에게 작별을 고하고 치안소를 나왔다. 장목화는 팀원들을 데리고 다시금 맞은편에 비스듬히 자리한 사냥꾼 길드로 향했다.
“헬빅이 죽었으니, 우리가 접수한 임무는 자동으로 무효가 되나요?”
장목화는 호랑이 가면을 쓴 여자 직원을 다시 찾았다. 임무가 무효화 되면, 다른 임무를 받는 데에도 아무런 제한이 따르지 않았다.
호랑이 가면 직원이 빠른 말투로 답했다.
“서두를 것 없습니다. 헬빅에겐 가족이 있어요. 그러니 아마 빼앗긴 무기를 찾는 임무는 계속될 겁니다. 여러분들은 치안소를 도와 헬빅의 사망 원인을 찾는 새 임무를 받게 되실지도 몰라요. 그 두 임무는 함께 맡으셔도 됩니다.”
“그럼⋯⋯. 그건 언제 확정받을 수 있죠?”
장목화도 당연히 짭짤한 보수가 약속된 이 임무를 그냥 포기해버리고 싶지 않았다. 특히 그들은 아직 정식 임무 돌입도 하지 않은 상태라 대략적인 상황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호랑이 가면을 쓴 직원이 답했다.
“늦어도 내일 오후에는 확정될 겁니다.”
“알겠어요.”
장목화가 손을 저으며 떠나려는데, 직원이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여러분도 얼른 가면부터 사서 착용하세요. 얼굴을 훤히 드러내놓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건 매우 위험해요. 전 여러분의 그런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두렵네요. 헬빅은 분명 잘 숨지 못해서 살해당한 걸 거예요.”
‘범인이 찾아내지 못할 정도로 헬빅이 잘 숨었더라면 아직 살아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말은 꼭 숨바꼭질에서 실패한 사람은 소리소문없이 죽어버린다는 이야기처럼 들리는데⋯⋯.’
속으로 중얼거리던 장목화가 직원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그때, 성건우가 눈을 빛내며 끼어들었다.
“그럼 가면은 어디서 살 수 있는데요?”
“카샤 여관으로 가실 거 아닌가요? 전자 카드를 교환할 때 그곳에서 가면도 살 수 있을 거예요.”
직원은 언제나처럼 매우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알겠습니다!”
성건우가 기쁨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