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182화 (182/649)

182화. 임무

지하 건물은 누구도 드나들지 않는 듯 텅 비어있어서, 이곳에 있는 사람이라곤 구조팀과 가우디밖에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맨 아래층에 이르러 사냥꾼 길드 간판을 확인하자, 그제야 다른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곳에 자리한 사냥꾼 길드는 그리 크지 않았다. 위드 시티의 사냥꾼 길드에 비하자면, 10분의 1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또한 이곳에는 그 어떤 과학기술 제품도 없었다. 오직 대형 스크린 딱 하나랑 창구 한 줄만 있을 뿐이었다.

창구 안의 직원들도 모두 가면을 쓰고 있었다. 토끼 가면, 광대 가면, 호랑이 가면, 심지어는 구멍을 뚫은 종이 가방을 뒤집어쓴 사람도 있었다.

“어쩔 수 없어. 사냥군 길드에서는 직원들에게 숨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거든. 그래서 다들 가면을 쓰고 실제 모습을 숨기는 거야.”

가우디의 설명에, 장목화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칭찬했다.

“대단하네.”

사실 장목화도, 성건우도 사람 하나 찾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지만, 굳이 남을 놀릴 생각이 아니라면 굳이 그 사실을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이윽고 빠르게 사냥꾼 길드로 들어선 일행은 한 창구 앞에 이르렀다.

호랑이 가면을 쓴 직원이 곧장 일행을 맞아주었다.

“임무는 전부 스크린에 나와 있습니다. 테이블 위에 놓인 기록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고요. 글자를 모르신다면 가이드를 찾아오세요. 가이드들은 근처 어딘가에 숨어있을 거예요.”

호랑이 가면을 쓴 직원의 말은 그리 길지 않았고, 말투도 굉장히 빨랐다.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모든 안내를 마침으로써 타인이 자기 목소리의 특징을 기억하지 못하도록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임무를 확인한 다음에는 배지를 제출하면 되나요?”

장목화가 미소를 띤 얼굴로 물었다. 레드스톤 마켓의 풍습을 이미 다 파악한 상태라, 상대의 언행이 딱히 불만스럽지는 않았다.

“맞습니다.”

호랑이 가면을 쓴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장목화가 팀원들을 데리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나 대형 스크린을 살피려는데, 천 가면을 쓴 가우디가 물었다.

“난 이만 가도 될까?”

“그래.”

장목화가 여유롭게 답했다.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가우디가 몇 마디 강조했다.

“레드스톤 마켓을 떠난 뒤에는 누구에게도 입구의 위치를 말해서는 안 돼. 대략적인 범위를 알려주는 것은 괜찮지만. 그리고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바깥 폐허에서 레드스톤 마켓의 주민을 찾아 안내를 받아야만 해.”

성건우가 호기심이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의 안내도 받지 않았는데 이곳을 찾아낸다면?”

“경비들이 막고 누구한테서 입구의 위치를 알아냈냐고 물을 거야. 그리고 정보를 발설한 사람들과 그 사람이 속한 세력을 블랙리스트에 올리겠지. 만약 운이 좋다면 일단 돌아가서 레드스톤 마켓 주민을 찾은 다음에 다시 오라는 안내를 받게 될 테고.”

가우디는 이미 이런 말을 숱하게 해본 듯, 막힘 없이 이야기했다.

“정말 의식이랑 비슷하네.”

성건우가 칭찬했다.

장목화도 이에 동감했다. 이러한 행위가 외부에서 오는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보다는 종교적인 의식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또한 지금에야 플린이 이곳의 구체적인 위치를 알려주지 않았던 이유도 깨닫게 되었다.

성건우의 칭찬에 가우디는 뿌듯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 달지기 에이돌른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지.”

솔직하게도 그는 그것이 종교 의식이나 다름없는 행동임을 인정했다.

곧이어 성건우가 불쑥 또 다른 질문을 건넸다.

“만약 모든 주민의 숨는 실력이 비엘만큼 대단해져서 외부인이 아무리 애써도 주민을 찾을 수 없다면 어떻게 돼? 너희 레드스톤 마켓엔 더 이상 새로운 사냥꾼도, 암거래상도 못 오는 거 아냐? 그럼 레드스톤 마켓의 활력은 점점 떨어지고 결국에는 누구도 찾지 않게 될 텐데.”

이를 듣고, 장목화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름을 잘 기억하고 있네. 혹시 그 비엘이라는 사람하고 숨바꼭질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

가우디는 몇 초간 침묵했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러다 한참 후,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모두가 비엘처럼 잘 숨게 될 수는 없어. 그리고 만약 모두가 레드스톤 마켓을 잊게 된다면, 그건 우리가 그만큼 잘 숨었다는 뜻이니까 에이돌른의 상을 받게 될 거야. 우리한테는 주위 은신처에 개척해놓은 논밭도 있고, 주위 호수에는 물고기도 아주 많아. 사람들에게 잠깐 잊혔다고 해도 굶어 죽을 리는 없지.”

장목화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래서는 석유나 다른 공업 제품을 얻을 수가 없잖아. 설마 구세계의 농경 시대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거야? 이미 문명의 맛을 본 사람은 그런 삶에 적응하기 어려울 텐데.”

“훗날 에이돌른은 우리를 신세계로 인도할 거야. 그곳은 더 이상 위험하지 않으니 이렇게 경계심을 드높일 필요도 없지.”

가우디는 확신에 찬 말투로 대꾸했다. 그러자 장목화도 그를 더 설득할 수도 없고, 사실 설득할 생각도 없어서 그냥 손을 휘휘 저었다.

“그래, 이만 가봐.”

“고마워.”

가우디는 구조팀만 쳐다보며 한 발, 한 발 멀어졌다. 그렇게 네 사람과 거리를 충분히 벌렸을 때야 그는 곧장 옆쪽 안전 통로로 달려갔다.

장목화는 이제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생각해?”

가장 먼저 성건우가 답했다.

“너무 융통성이 없네요. 머리만 숨긴다고 엉덩이까지 숨겨지는 게 아닌데. 우리를 경계할 줄만 알지, 등 뒤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는 생각도 안 하잖아요. 이럴 줄 알았으면 녀석의 뒤쪽에 바나나 껍질이라도 던져 놓을 걸 그랬나 봐요. 그걸 밟고 미끄러지면 적어도 교훈이라도 얻지 않겠어요?”

장목화는 소리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일단 바나나부터 찾고 나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근데 가우디 저 녀석도 이미 주위 환경을 관찰하고 뒤쪽에 밟아서는 안 될 게 없다는 사실을 파악했으니까 저랬겠지만, 그런 사고방식은 나름 훌륭하네.”

지금과 같은 계절에, 이런 기후 아래서 그런 과일이 열릴 리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핀잔 대신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뒤이어 장목화가 용여홍을 돌아보았다.

“넌 어때?”

용여홍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저들 이념은 언뜻 듣기엔 일리가 있는데, 알면 알수록 극단적이네요.”

장목화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 됐든 극단적인 건 옳은 방향이 아니야. 그래서 애쉬랜드에 이렇게나 많은 종교가 전파될 수 있던 거였지. 그들은 구세계의 일리 있던 것들을 본인이 원하는 것으로 포장해 개인적인 이익을 더하니까.”

용여홍의 의견을 논평한 장목화가 이번에는 백새벽을 바라보며 웃었다.

“너는?”

백새벽이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전 저들의 이념이 팀장님이 말씀하셨던 구세계의 철학 사상과 약간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음⋯⋯, 소국과민이었던가요?”

위드 시티에서 적응기를 거치고 레드스톤 마켓으로 오는 동안, 구조팀도 전보다 제법 안정을 찾은 상태였다. 장목화는 그 틈을 타 팀원들에게 구세계의 지식을 가르쳐준 바 있었다.

백새벽의 말에 장목화는 웃으며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그렇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극단적이야. 잊지 마, 개인은 아주 미미하고 보잘것없어. 서로 돕고 힘을 합쳐야만 문명을 이룰 수 있는 거야.”

짝짝짝!

어김없이 손뼉을 치는 성건우를 보고, 장목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좋아, 이제 새로 받을 임무를 찾아보자.”

장목화도 잘 알고 있었다. 앞으로 성건우가 다른 친구를 사귀지 않는 이상, 군용 외골격 장치를 살 순 없었다. 허양원의 방탄 SUV를 판 물자 중 절반 정도를 퍼붓는다 해도 불가능했다. 설령 사려는 장치가 구형 모델이라고 해도 그랬다.

그래서 장목화는 레드스톤 마켓에서 길드의 임무를 받아 경화를 약간 더 모을 생각이었다. 팀장에게는 팀원들의 실력과 생존 능력을 높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할 의무도 있었다.

* * *

이로써 구조팀은 다시 두 조로 나뉘었다. 장목화와 성건우는 제자리에 남아 스크린에 뜨는 임무를 살폈고, 백새벽과 용여홍은 주변 테이블로 향해 그곳에 놓인 서류를 확인했다.

“사실 네 의형제한테 한 대 지원해 달라고 해도 되는데 말이야. 이번 난리로 허양원도 호위대와 도시 방위군에 군용 외골격 장치를 몇 대 더 배치해야 한다고 했었잖아?”

장목화가 의도적으로 물었다.

황야유랑자들의 난을 처리하러 사우스 스트리트에 파견된 위드 시티의 군용 외골격 장치는 이제 거의 쓸 수 없게 된 상태였다. 유일한 위안은 황야유랑자들이 그걸 사용할 줄 모른다는 사실뿐이었다.

성건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짜 친형제라도 계산은 확실히 하잖아요.”

장목화가 웃었다.

“안다니 다행이네.”

“전 팀장님보다 모질긴 해도, 도덕적인 하한선이 낮지는 않아요.”

성건우가 던진 말에, 장목화는 습관처럼 귀를 만지며 못 들은 척했다.

“뭐?”

물론 장목화도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위드 시티에 소란이 일어났을 당시, 그녀는 그저 굶주린 배를 채우고자 노포 국숫집 사장을 죽인 남자를 처리하는 것을 망설였었다. 성건우는 지금 그때를 짚고 있었다.

성건우 역시 장목화의 왼팔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그 사이, 장목화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퍽 재미있어 보이는 임무 하나를 발견한 까닭이었다. 임무의 내용을 읽던 장목화가 웃으며 말했다.

“레드스톤 마켓 주위 구역에서 무심병 발병을 조사하는 임무가 있어. 임무를 맡는 동안 기본적으로 보호를 해주겠대. 그게 보수래. 보름간 먹을 식량도 주는데, 종류는 마음대로 택할 수 있어도 보존하는 건 개인의 몫이래. 하하, 식량 보존이 뭐가 어렵겠어. 너 같은 먹보한텐 비용이 두 배로 든다는 게 문제지.”

그러자 성건우가 진지하게 대꾸했다.

“의뢰자가 과연 제가 선택한 음식을 마련할 수 있을지 걱정이네요.”

“의뢰자가 누군지 볼까⋯⋯. 파이어아이? 이곳에서는 임무를 의뢰할 때도 별칭을 사용하는 모양이지?”

장목화는 이로써 레드스톤 마켓 풍습을 한층 더 파악했다. 어쨌건 모두 길드의 심사를 거쳐 발표된 의뢰이니 신뢰도는 어느 정도 보장될 것이다.

그때, 백새벽과 용여홍이 돌아왔다. 그중 용여홍이 들고 온 종이 한 장을 장목화에게 내밀었다.

“팀장님, 이 임무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장목화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빠르게 내용을 훑어보았다.

[임무 : 헬빅을 도와 빼앗긴 무기 회수하기.

설명 : 건파이어의 사장 헬빅이 수백 명을 무장시킬 수 있는 무기를 호숫가 구역에서 도둑맞음. 강도는 약 10명 정도.

보수 : 빼앗긴 무기의 5분의 1.

임무 등급 : C, 신용 점수 100점.

비고 : 일정한 위험이 존재하니 최대한 팀을 이룰 것.

임무 접수 조건 : 중급 이상 사냥꾼.

의뢰인 : 헬빅.]

“빼앗긴 무기의 5분의 1? 상당한데.”

장목화의 눈에서 빛이 반짝였다.

“게다가 인원수도 딱 적당하고요.”

용여홍도 기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들 팀의 실력이라면 한 명이서 세 명, 심지어 네 명과도 충분히 맞설 만할 것 같았다.

성건우는 곧장 분석에 나섰다.

“강도 사건이 벌어졌을 때 주위에 100명 정도의 사람이 매복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용여홍은 전처럼 바로 난감한 기색을 드러내는 대신 웃으며 반문했다.

“100명이 매복해 있는 상황에 그중 7, 8명만 나섰을 리 있겠어?”

그 정도로 인원이 충분했다면 최소 4~50명은 나서주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들의 수장이 나처럼 정신병자였다면?”

당당히 묻는 성건우를 보고, 장목화가 제지하며 나섰다.

“구세계에 이런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 하나 있었어. 뭐라더라, 한 곳에서 난리가 나면 그 팔방에서 지켜보고 있다던가? 게다가 이만한 무기를 가져간 사람들이면 규모는 절대 작지 않을 거야. 무지 강한 녀석들로만 이루어져 있거나, 훨씬 더 많은 수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분명해.”

용여홍이 뭐라 입을 열기 전, 그녀가 바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받아보자. 정탐하지 않을 것도 아니니까. 봐서 적들의 수가 너무 많다 싶으면, 다른 유적 사냥꾼들을 모아 더 큰 팀을 이루면 되잖아.”

장목화는 접수 조건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백새벽이 중급 사냥꾼이기 때문이었다.

한 차례의 이야기를 나눈 끝에 이들은 ‘전하얀 팀’이라는 명의로 이 임무를 접수하고, 헬빅의 사진과 그의 가게 위치를 받았다.

헬빅의 가게는 지하 건물 3층, C1 안전 통로 근처에 자리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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