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179화 (179/649)

179화. 질문

이윽고 우딕이 다시 성건우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네가 지불한 대가는 사고나 정신과 관련된 모양이네. 네 생각은 정말이지 종잡을 수가 없어. 가끔은 너 스스로도 통제하지 못하는 것 같던데.

그건 일상생활에서는 불편한 요소로 작용하겠지만, 특정 각성자와의 전투에서는 꽤 유리한 요소로 작용하기도 할 거야. 최면에 걸리는 와중에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생각을 한다면 그 일에서 효과적으로 빠져나올 수 있겠지.

말하자면 너한테 최면을 거는 건 같은 급의 다른 각성자에게 최면을 거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들 거야. 나도 각성자 몇몇을 만나봤어. 그들 중 더러는 자신의 대가를 직접적으로 응용했다고 언급하더라고.

음, 모든 대가를 직접 응용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신 냄새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후각을 가진 나도 그렇고.”

성건우와 장목화는 우딕의 치명적인 약점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때문에 우딕도 더 이상 그 사실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진짜 신부를 만날 날이 기대되기까지 해.”

하지만 성건우는 자신의 대가를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다는 듯 답했다.

장목화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본 후 화제를 전환했다.

“관제 무기를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지 알고 있어? 조금 전 말했던 군용 외골격 장치 같은 거 말이야.”

우딕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퍼스트 시티에 간다면 연줄을 대줄 수는 있어. 하지만 반드시 거래가 성사되리라는 보장은 못 해. 위드 시티에서는 나이트클럽 오늘의 배후 사장 손영배를 찾아가 보면 될 거야. 그 사람이 지하 시장의 주도자니까. 손영배는 수정의식교와 관련된 사람 같더라고.”

“알겠어.”

장목화는 일찍이 백새벽에게서 그 손영배라는 사람이 손 영감이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들었었다. 그녀는 이 기회를 틈타 용여홍의 힘을 키울 수 있을지 확인해 볼 작정이었다.

* * *

책을 빌린 후 도서관을 나와 중앙 광장 가장자리에 이르렀을 무렵, 순간 장목화의 눈빛이 다르게 변했다.

그녀의 시선 끝자락에, 남녀노소로 이뤄진 한 무리 앞에서 박자에 맞춰 격투 기술을 선보이는 용여홍이 있었다.

“쟤 지금 뭐 하는 거지?”

장목화가 놀라서 중얼거렸다.

이내 용여홍은 한 차례 교육을 마치고, 백새벽의 곁으로 다가갔다.

백새벽이 바로 수건을 건네자, 용여홍은 그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한숨을 토해냈다.

“큰일을 겪고 나서 그런지 다들 스스로를 단련하고 전투력을 강화하는 데 흥미를 느끼는 모양이야.”

잠시 침묵하던 백새벽이 물었다.

“왜 임시 교련 임무를 맡은 거야?”

“그게…… 다른 사람은 전부 정식 사냥꾼인데 나만 신입 사냥꾼으로 남고 싶지는 않았거든.”

용여홍이 살짝 부끄러워하며 답했다.

그의 작은 집념에 백새벽도 아무 말 없이 광장 가장자리 벤치에 앉아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수업을 경청했다.

* * *

그 후, 윤복 총포사로 돌아가 장목화, 성건우와 잠시 만난 백새벽은 저녁이 되길 기다렸다가 다시 용여홍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백새벽은 나이트클럽 오늘로 찾아가 지하 시장이 열렸는지 확인하진 않았다. 대신 날이 아직 어두워지기 전에 용여홍과 함께 곧장 목적지로 향했다.

손영배의 집은 나이트클럽 오늘이 자리한 그 건물이 아닌, 노스 스트리트에 있었다. 하지만 현재 그는 이미 와일드울프 앨리의 사무실에 출근한 상태였다.

아무래도 유진의 사건이 손영배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모양이었다. 백새벽이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하자, 손영배도 곧장 승낙했다.

그의 경호원이 직접 나와 두 사람을 데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백새벽과 용여홍은 안내를 받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에 이르렀다.

“사장님, 도착했습니다.”

경호원이 사무실 문을 열고 공손하게 말했다.

손영배의 사무실은 용여홍이 예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방 몇 개를 터서 만들어놓은 듯한 사무실은 매우 넓었지만, 사무용 탁자도, 책장도, 의자도 없었다.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검은색 병풍과 함께, 같은 색으로 된 우아한 감실만 하나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정교한 배치 덕분에 사무실은 광활하고도 고요해 보였다.

희끗희끗한 귀밑머리에 수척한 얼굴인 손영배는 구세계 고전풍의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매트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그의 뒤로는 큼지막한 감실이, 앞에는 흑단으로 만들어진 다기 한 벌이 놓여 있었다.

한 손에 윤이 나는 염주를 쥐고 있던 그는 이내 다른 손으로 작은 주전자를 들고 찻잔에 차를 따랐다. 호박색 차는 모락모락 연기 속에 맑은 향을 흩뿌렸다. 한순간 심신이 다 안정되는 듯한 맑고 좋은 향기였다.

“손 영감님.”

백새벽이 인사하자, 손영배는 주전자를 내려놓고 미소를 지었다.

“그래, 앉지.”

그의 주위에는 아무 냄새도 풍기지 않으면서 빨갛게 달아올라 있는 숯이 담긴 단지 여러 개가 놓여 있었다. 그 덕분에 사무실 안은 퍽 따뜻했다.

백새벽은 사양치 않고 용여홍과 함께 손영배 맞은편에 놓인 매트에 꿇어앉았다. 책상다리를 하고 앉지 않은 것은 혹여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바로 일어나기 위해서였다.

곧 손영배가 손에 쥔 염주를 돌리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날이 유진의 마지막 날이었을 줄이야.”

‘……그게 무슨 뜻이지?’

그 말에 용여홍은 순간 얼굴이 굳어졌지만, 더는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가 생각하기에 손영배가 이 말을 한 건, 유진을 습격한 진범을 알고 있다는 걸 암시하기 위함인 것 같았다.

“그 사람에게 딱 맞는 결말이었죠.”

백새벽은 덤덤하게 대꾸했다. 동시에 그녀는 일부러 목에 두른 회색 스카프를 살짝 잡아당기기도 했다.

손영배 역시 별일 아니라는 듯 여유롭게 대꾸했다.

“어쨌든 잘된 일이지. 나랑 우리 동생은 그 사람을 처치해준 사람에게 상당히 감사하고 있어. 만약 우리가 퍼스트 시티 세력 범위 내에서 살고 있지 않았더라면, 가문과 사업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유진도 여태 목숨 부지하진 못했을 거야. 하하, 게다가 우리 부처님의 자비로 잘못을 깨닫고 후회할 기회를 얻었는데도, 결국 그 기회를 잡지 못했지.”

‘그 말은 유진이 이번 일로 죽지 않았대도 위드 시티를 살아서 떠나진 못했을 거란 건가? 잠깐, 이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이 사람은 수정의식교와 관련돼있다고 했지? 어쩌면 타심통 능력이 있는 각성자인지도 몰라.’

용여홍은 얼른 생각을 접어버렸다. 급히 생각을 돌리려니 평소 꽤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던 잡생각이 떠올랐다. 습관처럼 반복하던 자조였다.

‘휴, 나는 유전자 개량을 했는데도 키가 175센티미터밖에 안 되고⋯⋯.’

한숨을 토해낸 용여홍은 지난 며칠 동안 먹었던 음식에 집중했다.

이때 그는 자신에게로 향하는 손영배의 시선을 발견했다. 용여홍과 눈을 맞춘 손영배는 빙그레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달지기 보리를 믿으시나 봐요?”

백새벽이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손영배가 중요한 단어를 뱉은 이 기회를 절대로 그냥 넘기지 않았다.

그러자 손영배가 아주 느릿한 말투로 답했다.

“오래 살수록, 그리고 보는 것이 더 많아질수록 달지기의 존재를 믿게 되는 법이지. 거기다 이만큼 나이가 들면 육신은 점차 쇠약해지기 마련이야. 그러니 의식의 수행과 정신 단련에 더 신경쓰게 돼 있지.”

‘지금 건우가 곁에 있었다면, 승려 교단에 찾아가 의식을 업로드하고 튼튼한 육신으로 바꿔보라고 제안했을 텐데.’

용여홍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윽고 손영배가 용여홍, 백새벽을 쓱 훑어보다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승려 교단이 가려는 길은 잘못됐어. 육신은 겉껍데기에 불과하고 의식은 영원하다는 말은 다른 사물로 썩기 쉬운 육신을 대체하라는 말이 아니거든. 의식을 단련시켜 그것이 설령 육신을 떠나게 되는 날이 오더라도 영원히 썩지 않고 멸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로 불법의 정도야. 난 의식을 수정처럼 여기며 여래만을 보지. 이건 달지기들의 존재 방식이기도 해.”

‘그건 당신이 속한 교단에서 생각하는 달지기 존재 방식일 뿐이잖아요.’

솔직히 말해서 용여홍은 손영배의 이념보다 과학기술을 훨씬 더 신뢰하고 인정했다. 그래서 그에겐 정법의 말이 더 일리 있고 더 명확하게 느껴졌다.

만약 그 기계 승려들이 걸핏하면 발광하고, 세세한 부분에서 우스운 꼴을 보이지만 않았어도 용여홍은 정말로 그들의 말을 믿었을지도 몰랐다.

물론 그는 성건우가 아니니 손영배의 말에 직접적으로 반박을 하진 않았다. 여전히 예의 바른 자세로 그의 말을 얌전히 경청하고 있을 뿐이었다.

백새벽 역시 손영배의 이념에 가타부타하지 않았다. 대신 같은 팀원을 위해, 좋은 동료로의 역할을 다하고자, 잠시 망설이다가 질문을 던졌다.

“그렇군요. 영감님이 믿는 교파에도 성찬이 있나요?”

손영배는 뜻밖의 질문에 살짝 놀란 눈치였다.

“우리 성찬은 채식이야. 굳이 호화로운 음식을 구하려 하지는 않아. 단순히 물에 넣고 삶아낸 무면 족하지.”

“고기는 안 드세요?”

용여홍이 의아하다는 듯 반문했다.

손영배가 고개를 저었다.

“성찬에 고기가 포함되지 않을 뿐, 평소에는 자신이 죽인 동물이 아니기만 하면 고기도 먹을 수는 있어.”

‘보아하니 당신들과 건우는 연이 닿지 않을 것 같네요.’

용여홍은 한숨을 내쉬며 그들 대신 다행스러워했다.

이렇게 대충 한담이 마무리되자, 백새벽도 본론으로 들어갔다.

“손 영감님, 혹시 관제 무기도 파시나요? 군용 외골격 장치나 인공지능 갑옷 같은 거요.”

손영배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그런 걸 어디 쉽게 구할 수 있던가? 어쩌다 한두 대 정도 들어온다 해도 금방 팔려버리지.”

잠시 망설이던 그가 덧붙였다.

“만약 정말로 필요하다면 남쪽으로 가서 레드스톤 마켓을 한번 살펴봐.”

백새벽도 레드스톤 마켓을 잘 알고 있었다. 분노의 호수 지구에 자리한 그곳은 어느 대형 세력에도 속하지 않은 시장이었다. 그런 데다 연합 공업에 가깝고 퓨쳐인텔리, 머신헤븐 등의 지역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라, 점진적으로 암거래상 거래의 중심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곳은 더 혼란스럽고 더욱 무질서하면서, 사냥꾼 길드의 세력은 그다지 강하지 못한 위드 시티인 셈이었다.

그때, 이해를 못 하는 용여홍의 모습을 보고 손영배가 말했다.

“그곳은 연합 공업과 비교적 가까워. 밀수품이 흘러나가는 큰 관문이지. 우리가 가진 물건 중에서도 그곳에서 가져온 것이 아주 많아.”

순간 용여홍은 깨달음을 얻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연합 공업 영향 범위에 속한 곳이라고? 어쩐지⋯⋯.’

연합 공업은 레드리버 유역에 속한 대형 세력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레드리버의 주요 줄기 부근이 아니라 지류인 골드리버 유역에 자리해 있었다.

퍼스트 시티 이남에 있는 그곳 사람들은 구세계 파괴 직후만 해도 각기 다른 공장과 부속 농장에 의지해 탄탄한 소형 세력을 이루었다.

이후 퍼스트 시티의 압박과 침략 아래, 원래부터 어느 정도 연계돼 있던 그 소형 세력들은 합종연횡을 통해 좀 성긴 회사 연합체 하나를 형성했다.

그래서 그곳은 반고 바이오와는 구조적으로 꽤 달랐다. 최고 결정권은 총재실에 있었고, 그 아래로는 대량의 계열사와 자회사가 있었다.

안보만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 무기 생산을 하는 회사, 경공업 위주의 회사, 형제 회사에 강철만 충분히 제공하는 회사 등 갖가지 업무를 분담하면서도 서로 연계된 그들은 애쉬랜드의 최고 공업체라고 불렸다.

또한 그곳은 애쉬랜드에서 입 모아 칭찬하는 중무기 제작 실력을 갖추고 있어, 군용 외골격 장치를 판매하는 주요 세력이기도 했다.

손영배도 이제 용여홍이 이해했음을 알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레드스톤 마켓에서 군용 외골격 장치를 구하려 한다면 경화(硬貨)를 가지고 있는 편이 좋아. 자네들도 알겠지만, 연합 공업은 석유, 석탄, 소금, 스마트 칩, 고성능 배터리 등의 제한 때문에 발전에 방해를 받고 있지.

그러니 그 방면을 파고들어야 해. 하하, 근데 관제 무기에만 목을 매지는 말라고. 레드스톤 마켓에는 그것 말고도 좋은 물건이 아주 많아.

아, 이 찻잎도 연합 공업 남쪽에서 생산된 거야. 구산 내의 퓨쳐인텔리 같은 세력에서도 이런 찻잎을 얼마나 많이 사 가는지 몰라.”

그는 백새벽과 용여홍에게 돈을 버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백새벽은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한편, 용여홍은 남몰래 팀에 남은 자산을 계산해보았다. 허양원이 준 방탄 SUV를 팔지 않는 이상, 겨우 식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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