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174화 (174/649)

174화. 화술

윤복 총포사 골목으로 돌아오니, 도시는 이미 기본적인 질서를 회복한 상태였다. 뜰 입구를 막은 바리케이드도 전부 옮겨져 있었다.

장목화와 성건우는 위보배를 비롯한 세 명을 안정시킨 후, 더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방에만 머물렀다.

이따금 총성이 울려 퍼지고, 위드 시티가 비로소 잠잠해진 것은 오후 5시, 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장목화의 구조팀은 다시 둘로 나뉘어 사우스 스트리트를 살피면서 현재 상황을 살피러 나섰다.

상황은 처참했다. 가게들은 이미 다 초토화가 돼 있었고, 그렇게 난장판이 된 수많은 가게 입구엔 전부 누군가가 다 앉아 있었다.

더러는 등을 구부린 채 땅바닥만 바라보며 작게 흐느꼈고, 더러는 전방의 거리를 응시하며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도시 방위군은 거리 곳곳을 순찰 중이었다. 또한 여러 주민과 유랑자들이 더 많은 식량을 얻고자 시신 수습을 돕고 있었다.

이끌려가는 시신들은 저마다 길고 긴 붉은 흔적을 남겼다.

한참 전방만 살피던 용여홍은 문득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낮게 내려앉은 납빛 구름에서 응결된 눈송이가 폴폴 내려오고 있었다.

용여홍은 이를 멍하게 바라보다, 허공에 오른손을 뻗어보았다. 눈송이들은 금세 그의 손금에 고여 하얀 몸을 녹이기 시작했다.

“눈 온다⋯⋯.”

* * *

눈은 진즉 그쳤지만, 옥상과 길가는 모두 하얀 흔적으로 덮여 있었다.

장목화와 성건우는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중 성건우는 한창 거대한 눈덩이를 뭉치려고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배윤수 구조팀에게 다가간 장목화가 먼저 말을 건넸다.

“나중에 회사에서 보자고.”

황야유랑자들의 소란이 워낙 급작스럽게 일어났던 탓에, 그들은 아직 무선 통신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임무를 마쳐서 다시 진병욱에게 연락을 취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를 통해 회사에 대략적인 상황을 보고한 장목화는 배윤수 구조팀을 위해 기본적인 물자를 신청하기도 했다.

회사에서는 진병욱에게 배윤수 구조팀을 위한 차 두 대, 보름 정도 버틸 수 있는 식량, 무기와 탄약까지 준비시켜 최대한 빨리 지하 건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꽤 오랜 시간 최면에 걸려 있던 만큼 그들은 심리 평가와 정신 상해 치료를 받아야 했다.

배윤수는 완전히 다 뜨지 않은 눈으로 차 문에 손을 얹고 답했다.

“머신헤븐 사람과 접촉하는 거 잊지 마. 그 사람들은 분명 구세계 파괴의 비밀 중 일부를 알고 있을 거야!”

나머지 팀원보다 일찍이 정신을 차린 배윤수와 임보경은 전에 자신들 팀이 위드 시티에 온 이유와 그 후에 있었던 일들을 있는 그대로 전해주었었다.

배윤수의 팀은 남쪽에 있는 한 황야유랑자 거점에서 지능 로봇의 망가진 칩 몇 개를 발견하고 수리와 해독, 데이터 환원을 거친 끝에 유용한 정보를 조금 찾아냈다.

그렇게 확인한 정보에 따르면 그들이 찾은 칩들은 머신헤븐의 로봇 경비대가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언젠가 경비대는 무역 거래를 진행하다가 적들의 습격을 받아 심각한 손상을 입고 일부 부품을 떨어뜨린 모양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도출된 정보에는 메인 브레인이란 단어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그건 이미 생활 어느 방면에서든 머신헤븐의 각 사업을 점거한 것 같아서, 이젠 그 통제를 벗어날 순 없을 것 같았다.

또한 정보 속에 표시된 일부 시간에 근거하면, 메인 브레인은 구세계 파괴 이전에도 존재했으며 운행에도 투입됐을 가능성이 있었다.

배윤수 구조팀은 이러한 정보를 검증하고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위드 시티에 왔다. 이들이 조사를 위해 제일 먼저 가본 곳은 현지 사냥꾼 길드였다. 그들과 머신헤븐은 긴밀한 합작 관계이기 때문이었다.

출신이 비천한 황야유랑자들은 당연하게도 평등한 대우를 받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질문을 위해 의도적으로 가장 좋은 호텔을 선택한 배윤수는 쓰는 언어와 행동을 통해 자기 일행의 배후에 대형 세력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은근히 흘렸다.

하지만 배윤수 팀도 자신들이 언제부터 반 지성교 신부의 눈에 들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노스 스트리트로 가서 성주 저택을 방문한 뒤 병색이 짙어 보이는 남자를 마주쳤다는 것만 확신할 수 있을 뿐이었다.

곧이어 배윤수의 부탁에 장목화가 답했다.

“최종적인 결정은 회사에서 내릴 거야. 너희가 조사해 찾아낸 실마리는 너희가 끝까지 책임지게 될 가능성이 커.”

이 말을 듣고 배윤수는 한숨을 토해냈다.

“아마 회사로 돌아가면 이제 우린 다시는 외근을 나오지 못하게 될걸. 우리 팀은 분명 해체될 거야.”

오랫동안 구세계 조사 작업을 해온 그들은 자신들이 해왔던 일에 어느 정도의 애정과 집착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장목화 팀이라도 그 일을 받아 조사를 이어나가면서 자신들에게 답을 알려 주기를 바랐다.

이윽고 장목화가 위로하듯 말했다.

“그건 최종 평가 결과를 봐야 알 수 있는 일이지. 기회는 아직 많아.”

배윤수가 자신의 팀원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사실 잘된 일이기도 해. 우리에게는 모두 각자 가족이 있으니까. 회사를 떠나 지상으로 올라올 때마다 얼마나 불안했는지 몰라.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고. 봐봐, 이번에도 정말 큰일이 날 뻔했잖아.

이번 기회로 우리는 내근직으로 전환할 거야. 새옹지마인 셈이지. 더 이상 아내와 아이들과 부모, 형제들을 걱정시키지 않을 수 있을 거야. 몇 년간 애쉬랜드를 돌아다니고 적잖은 곳을 방문하면서 회사 직원들보다 평균적으로 훨씬 나은 삶을 살았으니 이만하면 만족하려고.”

‘그렇게 얘기하면 내가 뭐가 돼. 꼭 바짓가랑이 붙잡고 매달리는 것처럼 보이잖아. 휴, 지상 생활에 익숙해진 회사 직원 중에 위험이 가득하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외부에 미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데.’

속으로 중얼거리던 장목화가 웃음을 짜내며 손을 휘둘렀다.

“최종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지, 뭐. 적어도 살아서 돌아가잖아. 그래, 이제 조심해서 돌아가!”

“가서 보자.”

배윤수 구조팀 역시 손을 흔들며 차 문을 열고 탑승했다.

사우스 스트리트로 향하는 그들의 차를 눈으로 배웅하던 장목화는 느릿하게 한숨을 내쉬며 곁에 있는 성건우를 쳐다보았다.

“벌써 몇 번이나 시도했잖아. 언제쯤 그만할래?”

성건우는 그가 뭉친 초대형 눈덩이를 또 깨물어 먹고 있었다.

“그냥 목이 말라서요.”

입안에 눈을 가득 머금은 그가 웅얼웅얼 답했다.

혀를 쯧쯧 차던 장목화는 허양원이 준 방탄 SUV로 걸음을 옮겼다.

“우리도 이만 일 하러 가야지.”

그리고 그녀는 2층 창문 앞에 자리한 백새벽과 용여홍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각자 할 일을 하자는 신호였다.

유진 노예 포획대가 아직 도시 밖에 있고, 그 납치범을 잡는 임무도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백새벽이 접한 최신 소식에서, 유진의 노예 포획대는 짧은 분열 끝에 새로운 두목을 정한 상태라고 했다.

새로운 두목은 유진을 찾길 바라지는 않았다. 그는 그저 범인을 잡아 전 두목에 대한 의리를 드러냄으로써, 대원들을 자신의 밑으로 규합시키고 싶어 할 뿐이었다.

* * *

성건우는 거대 눈덩이를 내려두고 운전석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용여홍이 창문을 열고 있었더라면 방금 만든 눈덩이를 그에게 던졌겠지만, 닫힌 창문에 던졌다가는 유리가 깨질지도 몰랐다. 그래서 성건우도 친구에게 장난치려는 걸 얌전히 포기한 상태였다.

장목화도 조수석에 올라, 뒤로 몸을 뻗어 전병욱의 답장을 꺼냈다.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은 두 가지야. 첫째, 허양원을 찾아 우리가 반고 바이오 직원임을 밝히고 상호 이익 관계를 맺는다. 둘째, 직접 가짜 신부를 심문하면서 반 지성교의 상황을 최대한 파악한다.”

이는 회사에서 그들에게 내린 새로운 임무였다.

장목화는 지난 2~3일 동안 눈을 가지고 노는 데 심취해있던 성건우가 당시 떨어진 명령을 제대로 듣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서 한 번 더 반복해 들려준 것이었다.

“지금도 상호 이익 관계잖아요.”

성건우가 허양원의 의형제처럼 대꾸했다.

그 답에 장목화가 피식 웃었다.

“그런 관계가 얼마나 유지될 수 있는데? 회사는 허양원과 퍼스트 시티 사이에 균열이 벌어진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허양원을 끌어들이려는 거야. 만약 성공한다면 그 형제애가 사라지더라도 우리는 아무런 문제 없이 위드 시티를 빠져나갈 수 있겠지.”

이익 관계는 가장 쉽게 변할 수 있으면서도 가장 공고한 관계였다.

잠시 고민하던 성건우가 물었다.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관계라는 게 정확히 뭔가요?”

장목화가 설명했다.

“입장은 달라도 함께 돈을 벌고, 즐거움을 나누고, 어려움이 있을 때는 음, 상황을 봐서 지원하기도 하는 관계야. 아무튼 우리가 순조롭게 못 하나를 막아서 퍼스트 시티를 방해한다면 이사들도 상당히 만족스러워하겠지.”

“왜 그렇게 어린애들 같을까요?”

성건우의 중얼거림에도, 장목화는 말없이 눈동자만 굴릴 뿐이었다.

* * *

성주와 의형제인 성건우는 어렵지 않게 허양원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의 곁에는 여전히 가운 차림의 기계 승려 정념이 자리해 있었다.

정념을 본 성건우는 묘한 리듬에 맞춰 몸을 살짝 흔들다가 장목화의 매서운 눈빛에 행동을 멈췄다.

“허 성주님,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장목화는 눈짓으로 이는 정념이 들어서는 안 될 말임을 표했다.

그러자 허양원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 의형제가 하는 말인데 뭔들 못 들어줄까. 선사는 신경 쓰지 마. 우리는 비밀 유지 협의를 한 상태거든. 승려들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상당히 믿을만하지.”

그 말에 장목화도 고집을 피우는 대신 책상 맞은편에 있던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그녀가 곧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성주님, 혹시 성주님의 힘을 키우는 일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성건우는 고개를 돌려 팀장을 바라보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순간 허양원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게 무슨 뜻이지?”

장목화는 허양원과 정념을 훑어보다가 다시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이번 습격 사건처럼 적들이 경호원의 봉쇄를 뚫고 정념 선사의 활동을 제한한다면, 성주님은 도살되기를 기다리는 어린 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상대가 원하는 대로 처분되는 거죠.

압니다, 성주님은 길드의 고급 사냥꾼을 포함해 지금보다 더 많은 경호원을 고용할 수 있으시죠. 일반적으로 그런 상황에서 성주님을 암살하기란 매우 어렵고요. 하지만 언제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지 않을 수는 없죠.

스스로의 힘을 키울 수 있다면 중요한 순간에 본인 목숨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이 세상에는 평범한 수준을 월등히 뛰어넘는 무기와 인간이 아주 많습니다.”

허양원에게 있어 신부 사건은 평생 겪어본 일 중 가장 위험한 일이었다. 그 위기의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무기력해지고, 불안해졌다. 지난 며칠 동안은 그로 인해 악몽을 꾸기도 했었다.

그래도 허양원은 타인의 앞에선 침착한 모습을 보이려 애썼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장목화가 웃으며 답했다.

“애쉬랜드에는 본인의 힘을 키우는 방법이 아주 많지만, 일반적인 수준을 뛰어넘는 방법은 극히 드물죠. 첫 번째 방법은 바로 각성자가 되는 겁니다.

하지만 각성자는 노력을 한다고 되는 것도, 권세가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운에만 달려있죠.

두 번째는 의식 업로드를 통해 영생인이 되는 겁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상당히 유혹적인 방법이긴 하나 성주님은 아직 젊으시고, 아직 누려보지 못한 즐거움도 많이 남아 있죠.

세 번째는 기계 개조입니다. 성주님과 퍼스트 시티의 관계로 볼 때 이는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최고급 설비를 갖추긴 좀 힘들지도 모르지만요. 게다가 기계 개조를 한 사람의 이미지가 그렇게 좋은 편인 것도 아니고요.”

그대로 잠시 뜸을 들이던 장목화가 화제를 전환했다.

“보세요, 제 생체 공학 의수는 겉으로도 아무런 티도 안 나지만 인간을 능가하는 능력을 가졌죠.”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서 은백색 아크가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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