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173화 (173/649)

173화. 평화가 우선입니다

경비들이 의사당 밖에서 기다린 지도 거의 20분이 다 되었다.

그때, 대문이 그제야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몹시 충격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성건우와 허양원, 귀족들 전체가 서로 정답게 어깨동무를 하고 걸어 나왔다. 거기에 다들 하나같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곧이어 두리번거리며 심복을 찾던 조기정이 호탕하게 웃으며 외쳤다.

“오해가 풀렸어! 이 사람들이 지시한 대로 따라. 내 형제의 일은 곧 내 일과 같으니까!”

놀란 경비들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도중, 뒤따라온 장목화가 위보배를 포함한 구조팀원들의 사진을 그들에게 돌렸다.

“부근에 이 세 사람이 있는지 얼른 찾아보세요.”

신부가 사라진 구조팀원들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울 생각이었다면, 그들은 분명 성주 저택에 잠입해 있을 것이었다.

* * *

조씨 저택, 어느 서재 안.

창가에 앉은 한 남자가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남자는 조기정의 둘째 아들, 조이한이었다.

- 이따 잘 들어봐. 성주가 될 널 위한 축포로 쾅, 하고 폭발음이 울릴 거야.

전화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약간 거친 목소리엔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

“폭발? 그럼 우리 아버지랑 형은요?”

조이한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그러자 전화 너머의 신부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 당연히 함께 천국으로 가는 거지. 생각해봐, 만약 그들이 살아남으면 허양원과 다른 귀족이 없더라도 네가 성주가 될 수 있겠어? 네가 직접 하지 못할 걸 알아서 내가 하는 거야.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걱정하지 마, 퍼스트 시티에 있는 그 사람의 지지만 받으면 나머지 사람들도 어쩌진 못할 거야.

조이한이 침묵에 빠진 사이, 그의 심복이 서재로 들어와 조이한의 귓가에 조용히 상황을 보고했다.

- 어때? 폭발음이 들려?

전화 건너편의 신부가 웃으며 물었다.

조이한의 얼굴엔 기이한 표정만 떠올랐다.

“폭발은 없고. 그 사람들은……. 지금 의사당에서 춤을 추고 있대요.”

- 춤?

못 믿겠다는 듯 상대의 말을 반복한 신부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 * *

윤복 총포사 건물 꼭대기.

백새벽이 옥상 난간에 오렌지 소총을 받쳐둔 뒤, 약간 괴상한 자세로 아래쪽을 향해 총을 쏘고 있었다.

탕!

그러자 황야유랑자 무리 속 한 사람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지금 황야유랑자 무리는 한창 뜰 입구를 막아놓은 장애물을 뚫고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백새벽도 더 이상 욕심을 부리는 대신, 곧장 몸을 웅크리며 황야유랑자 무리의 무의식적인 반격을 피했다.

한 차례 난사 이후, 두목이자 지휘관을 잃은 황야유랑자 무리는 뜰 안으로부터 쏟아지는 왕성한 화력에 허둥지둥 각기 다른 곳으로 달아났다.

이 광경을 확인한 용여홍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얼른 자신의 총기 상태를 살피며 총알을 채워 넣었다. 소총은 남이 이모의 남동생, 윤복 총포사의 사장에게서 빌린 것이었다. 이 소총도 충분히 저격용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현재 백새벽과 용여홍은 비교적 높은 자리에서 바리케이드 후방의 이웃들과 합세해, 따로 떨어져 나온 황야유랑자들과 규율을 잃은 도시 방위군 일부에 대적하고 있었다.

용여홍은 훈련받을 적에 저격 기술도 배운 바 있었다. 다만 평소에 그 기술을 익힐 기회가 워낙 없었던지라, 총알을 열 발 이상이나 낭비한 끝에 점차 감을 익히고 두세 발에 한 번씩 적을 명중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에 비하면 백새벽은 모든 총알을 적에게 명중시켰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관찰력으로 무리 지은 적들의 우두머리를 정확히 골라 처리했다. 결국 백새벽이 쏜 총알 몇 발에 대장을 잃은 적들은 알아서 흩어져 달아나버렸다.

“언제쯤 끝나려나⋯⋯.”

용여홍이 옥상 아래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태까진 몇 차례 방어 모두 성공적이었다.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어떤 결과가 펼쳐질진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내 백새벽이 노스 스트리트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곧 끝날 거야. 위드 시티의 고위층이 몰살당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들이 힘을 합쳐 일어나는 대로 황야유랑자들도 더는 버티지 못할 거야.”

가장 알기 쉬운 사실은 여태까지도 도시 방위군의 반격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형편없다고 해도 계속 훈련을 받고, 황야에서도 실전에 나선 경험이 있는 정규군이 단번에 무너져 내렸을 리는 없었다.

게다가 노스 스트리트 귀족 저택에는 언제든 기관총이나 대포 여러 대로 어마어마한 화력과 함께 출전할 수 있는 사병도 있었다.

또한 백새벽은 성주 저택에 사냥꾼 길드의 도움과 머신헤븐과의 긴밀한 합작으로 마련한 비밀 무기가 숨겨져 있다는 소문을 듣기도 했었다.

콰광! 콰광! 콰광!

순간, 백새벽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일련의 묵직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노스 스트리트 쪽에서 시작된 굉음이었다. 끊이지 않는 포성에 땅에서도 살짝 진동이 느껴졌다. 용여홍 역시 건물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도시 방위군이 마침내 반격에 나선 건지, 황야유랑자들이 대포를 빼앗아 바리케이드를 부수기 시작한 건진 알 수가 없었다.

한 차례 포격 이후, 다시금 총성이 이어졌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노스 스트리트 쪽에서 남쪽으로 소란스러운 소리가 밀려들었다. 수많은 이들이 성문을 향해 미친 듯이 내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뒤이어 확성기를 통해 증폭된 목소리가 퍼져 나왔다.

- 무기를 버리고 머리에 손 올리고서 쪼그려 앉아. 투항만 한다면 구제받을 수 있다. 장원에서 노예로 살 수도 있다.

반복되는 알림에 시끄러운 소리와 총성은 차차 사그라들었다. 활로가 있는 한 끝까지 완강하게 저항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용여홍은 비로소 백새벽과 마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끝났다⋯⋯.”

* * *

성주 저택, 귀족 의사당 안.

테이블 맨 끝에 앉은 성건우는 소형 스피커를 만지작거리며 주위에 자리한 모두를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엔 굉장히 만족스럽다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다들 이렇게 화목하고 평화롭게 지내니까 얼마나 좋아? 정말 무슨 갈등이 생기면 댄스 배틀이나, 팔씨름이나, 눈싸움으로 승부를 보란 말이야.”

허양원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의 말에 깊이 동조했다.

“맞아. 우리 형제끼리 넘지 못한 난관이 어디 있겠어?”

“안 되지, 안 돼. 그래도 위아래 구분은 있어야지. 우린 네 삼촌이야.”

모리치가 느릿하게 반박했다.

허양원이 그 말에 곧장 대꾸하려던 그때, 문으로 경비 하나가 달려왔다. 경비의 얼굴은 몹시 기뻐 보였다.

“성주님! 첫 번째 반격군이 황야유랑자들을 다 흩어버렸답니다! 구제해주겠다는 약속 때문에 수많은 이들이 저항을 포기했습니다. 도시 질서가 조금씩 회복 중입니다! 연락이 끊겼던 도시 방위군도 찾았다고 합니다!”

허양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웃었다.

“역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하는 게 정답이었어. 이런 때에는 절대 인색하게 굴면 안 돼. 자비를 베푸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몰라. 각기 다른 상황에서는 각기 다른 수완이 필요한 법이지.”

허양원은 이번 일로 자신의 지위가 어느 정도 굳건해졌음을 느꼈다. 하지만 모두가 형제가 된 이때 굳이 권위를 내보여 휘두를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사후 처리를 위한 명령을 전달하는데, 또 다른 경비가 달려왔다.

“성주님, 퍼스트 시티 쪽 황원 초소에서 온 보고입니다. 모습을 드러낸 퍼스트 시티의 정규군 한 부대가 여러 노예 포획대와 합류했답니다.”

순간 허양원의 눈이 가늘어졌다.

“역시⋯⋯.”

장목화 역시 이러한 사실에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신부의 진정한 목적을 확인한 후 그녀는 이 사건의 배후에 퍼스트 시티의 특정 세력이 숨어 있으리라 의심했다. 어쩌면 퍼스트 시티 원로원의 의지인지도 몰랐다. 그들은 일찍부터 위드 시티라는 이 자주적인 요충지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허양원은 주위를 한번 둘러본 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약 우리가 이렇게 빨리 사태를 진정시키지 못했다면 그들은 어떤 이유로든 이곳에 들어왔겠지.”

그리고 그가 유 비서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드론 부대를 출동시켜 그 부대의 전방 황원을 폭격하세요. 우리는 이미 난민을 처리했으니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말라고, 그러지 않으면 공격당할지도 모른다고 전하는 겁니다. 하하, 대형 불꽃놀이가 펼쳐지면 우리 도시 주민들에게 충분한 볼거리가 되겠네요.”

“예, 성주님! 앞으로도 무엇보다 평화가 우선입니다.”

유 비서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압니다.”

허양원도 분노하기는 했지만, 이성을 잃지는 않았다. 그들이 얻을 수 있는 자원, 개입할 수 있는 무역, 받을 수 있는 보호, 누릴 수 있는 자치의 정도로 볼 때 그 모든 건 퍼스트 시티에 의지하는 편이 가장 낫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이미 해결됐음을 확인하고, 장목화가 성건우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성건우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전술 배낭에 소형 스피커를 챙겨 넣었다.

“우리는 일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겠어.”

그러자 조정기의 큰아들이 못내 아쉽다는 듯 그를 초대했다.

“일 다 마치고 나면 꼭 무도회에 참석하기야!”

“시간이 나면.”

성건우가 눈을 빛내며 답했다.

곧이어 좌우를 둘러보던 허양원이 입을 열었다.

“세 사람을 데리고 가야 하니, 차 없인 불편하지. 여기! 내 특별 개조 방탄 SUV를 가져오도록.”

분부를 마친 그는 성건우를 바라보며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

“고맙게 받을게.”

성건우가 웃으며 답했다.

* * *

성주 저택을 떠난 국방색 방탄 SUV는 노스 스트리트를 따라 시청 쪽으로 향했다. 이 차에는 성건우, 장목화뿐만 아니라 위보배를 비롯한 구조팀 세 명도 타고 있었다.

구조팀 세 명은 예상대로 성주 저택에서 발견됐다.

원래라면 최면에 걸린 그들을 대적하기란 쉽지 않았을 테지만, 우딕이 도와준 덕분에 세 사람은 금세 잠들어버렸다.

당시 주위에 경비도 적잖게 있어서 장목화는 성건우에게 추리 광대 능력을 쓰라고 하지도 않았고, 직접 세 사람을 깨워 최면을 풀어주면서 어색한 인사를 나누지도 않았다.

그녀가 선택한 건 다름 아닌 마취 가스였다. 그것으로 세 사람을 기절시킨 뒤, 그대로 데리고 가서 후속 처리를 할 작정이었다.

장목화는 뒷좌석을 한번 돌아봤다가, 다시 운전 중인 성건우를 쳐다봤다.

“이번에 사용한 추리 광대 능력은 얼마나 유지돼?”

그걸 바탕으로 위드 시티를 떠날 시간이 정해질 것이었다.

성건우는 몸을 살짝 흔들며 답했다.

“이미 순환 논증이 형성됐으니, 별일 없으면 적어도 열흘에서 보름 정도는 유지될 거예요. 평소 생활 속에서 추리 결과와 모순되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더라도, 특별히 강력하거나 완전히 상반된 모순이 아닌 이상 순환 논증에 덮여버릴 거고요. 그런 경험의 축적이 임계점에 달할 때까지는요.”

고개를 끄덕이던 장목화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잘됐네. 근데 넌 그들에게 너를 형제로 여기게 하면서, 네 생각에 감명받아 도움을 베풀게 했을 뿐이잖아. 이는 현실 생활 속의 여러 상황과 별 관계도 없고, 이와 반대되는 상황이 나타날 가능성도 극히 적어. 만약에 반대되는 상황이 끝까지 나타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돼?”

“귀족 의사당은 형제 의사당으로 불리게 되겠죠.”

성건우의 진지한 답에, 장목화가는 실소를 터뜨렸다.

“그럴 가능성은 없을 것 같은데. 그들에게는 현실적인 갈등이 존재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언젠가는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될 거야. 자, 그럼 말이야. 방금 그 상황에서 네가 한 잘못이 뭘까?”

장목화가 몸을 아예 틀고서 성건우를 엄숙하게 쳐다보았다.

성건우는 잠시 고민한 끝에 대답했다.

“팀장님부터 먼저 내보냈어야 합니다!”

장목화가 눈동자를 위로 굴리며 한숨을 한번 토해냈다.

“아니, 그거야말로 잘못이지! 적어도 그런 짓을 벌이기 전에 나한테 눈짓이라도 했어야지. 그렇게 갑자기 달려들지 말고! 내가 조금이라도 늦게 반응했다면 우린 정말 죽었을지도 몰라!”

“알겠습니다.”

성건우가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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