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의사당
장목화 혼자 수십 명에 달하는 경비들을 대적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들을 노려보면서 성건우가 볼 수 없는 곳에 자리한 누군가가 그의 머리통을 날려버리지 못하도록 막는 것뿐이었다.
어쨌든 누구라도 이상 행동을 보인다면 장목화는 권총으로 그를 지목할 각오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이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었다. 심연 위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는 듯한 상황에 장목화는 머리를 빠르게 굴려보았다.
그로부터 몇 초 지났을 무렵, 장목화가 돌연 크게 웃으며 외쳤다.
“하하하! 제 동료가 머리에 문제가 좀 있거든요. 꽤 오랫동안 정신과 선생님에게 상담받고 있기도 해요. 간단히 말해서 저 녀석은 정신질환……. 아니, 그냥 미친놈이에요!
저희가 이번에 위드 시티에 온 것도, 임무를 통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더 나은 의사 선생님에게 치료받기 위해서였어요.
여러분, 이건 농담이 아니에요. 저 녀석, 정말 버튼을 누를지도 몰라요. 소중한 생명을 미친놈에게 거는 미련한 짓은 하지 마세요. 미친놈에게 하지 못할 일이 있을까요? 저 녀석은 자살이라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놈이에요!”
귀족들은 겉으론 멀쩡해 보이고 외모도 잘생긴데다, 젊고 예쁜 동료와 함께 다니는 저 남자가 본인 목숨까지 버려가며 모두를 지옥으로 끌고 들어가진 않으리라 믿었다. 그래서 그냥 성건우를 좀 더 압박하면서 당황하게 만들어 허점을 드러내도록 만들어야 하는 건지 고민하던 중이었다.
그 찰나에 장목화가 이 같은 말을 던진 것이었다.
흠칫한 귀족들은 모든 생각이 그대로 멈춰버렸다. 장목화의 말을 완전히 신뢰하는 건 아니었지만, 만일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만약 저 남자가 정말 미친놈이라면? 다른 사람과 달리 정말 죽을 각오까지 되어있다면……?’
한편 여태까지 봐왔던 성건우의 모습을 떠올리던 우딕은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함께 경고에 나섰다. 그도 별다른 수가 없었다.
“머리에 정말 문제가 있는 사람이긴 합니다. 저 둘과 합작한 건 이번이 처음인데, 계속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긴 했어요.”
우딕이 이 사실을 밝힌 건 귀족들의 성급한 행동으로 갈등이 심화되고, 결국 모두 리틀머시룸과 함께 가루가 돼버릴까 걱정되기 때문이었다.
이런 평가에도 성건우는 치욕스러워하긴커녕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의사 선생님의 증명서도 있어. 원한다면 이따가 보여 주지.”
그리고 정념과 우딕을 번갈아 보다가 미소와 함께 덧붙였다.
“난 저기 두 사람이 각성자란 걸 알아. 어쩌면 이곳에 다른 각성자가 더 있을지도 모르지. 미리 말해두겠는데, 내 배후 세력은 생체 공학 의수를 만드는 데 아주 능하고 그 의수에는 보조 칩도 장착돼 있어.
영향 범위 안에 자리한 각성자가 나를 통제할 기회를 찾아내더라도, 내 손가락은 알아서 이 버튼을 누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야. 자, 내가 지금껏 한 말은 거짓말일 수도, 참말일 수도 있어. 어느 쪽일까, 한번 맞혀볼래?”
성건우가 환하게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광기가 느껴지는 그 웃음에 모든 귀족과 경호원들은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성건우의 웃음이 환해질수록 다들 자신들을 뒤덮은 그림자가 더 짙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반면, 정념과 우딕을 비롯한 몇몇은 성건우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감히 확신할 수는 없었다.
특히 정념은 강력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기도 했다. 그 때문에 정말 저 미친놈이 버튼을 눌러 폭약을 터트릴지도 모른단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미리 준비해둔 육도윤회의 축생도를 끝내 사용하지도 못했다.
물론 정념 자신은 이 정도의 폭발에도 죽지는 않을 것이었다. 기계로 이루어진 신체는 파괴될지 몰라도, 이중 삼중으로 보호되고 있는 핵심 부품만 온전하다면 열흘에서 보름 안에 회복할 수 있었다.
한편, 성건우의 뒤를 지키고 있던 장목화는 한숨을 내쉬고 싶은 충동을 애써 억누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런 수작까지 부리다니⋯⋯.’
성건우가 방금 했던 말에는 틀린 부분이 없었다. 그래서 정념이 타심통 능력을 발휘하더라도 아무런 문제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들이 성건우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그에게 보조 칩이 장착된 생체 공학 의수가 달려있어 통제되더라도 폭발을 일으킬 수 있단 사실뿐이었다. 하지만 실제 보조 칩이 장착된 생체 공학 의수를 갖고 있는 건 장목화였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성건우는 각성자 능력이 더해지지 않은, 넓은 범위의 추리 광대 능력을 발휘한 셈이었다.
현장의 모든 이들이 충격에 빠진 이때, 정념이 전자합성음으로 물었다.
“나무아뇩다라삼먁삼보리. 시주님, 대체 이러시는 이유가 뭔가요?”
“맞혀보시죠.”
성건우는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진짜 미친놈이잖아⋯⋯.’
이 순간, 귀족들은 장목화의 말을 완전히 신뢰하게 되었다. 이 광기와 신경질적인 모습은 절대 연기로 꾸며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장목화는 헛기침을 하며 성건우에게 더 이상 정념 선사를 도발하지는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모든 기계 승려에게는 역린이 있고, 그것을 건드리면 그 기계 승려는 곧장 발광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었다.
만약 정념이 성건우의 말실수로 분노하게 된다면, 일단 이 자리에 있는 귀족들을 죄다 죽여 인질을 제거할 게 분명했다.
장목화는 성건우가 무슨 말을 꺼내기 전, 문밖 경비들에게 말했다.
“첫 번째 요구 사항, 문 닫아.”
바깥의 경비들은 문을 닫은 순간부터는 더 이상 성건우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없으니 함부로 사격할 수 없게 될 터였다. 그렇게 그들을 무력화시키면 장목화가 받는 압박도 대폭 줄어들 것이다.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성건우는 귀족들을 보며 콧소리를 냈다.
“흐음?”
허양원은 곧장 침을 꼴깍 삼킨 뒤 큰소리로 외쳤다.
“닫아! 문 닫아!”
성주의 명령에 경비 중 몇몇이 나서서 귀족 의사당 대문을 천천히 닫았다.
성건우는 그제야 폭약과 권총을 든 채 뚜벅뚜벅 테이블 쪽으로 향했다.
“앉아, 다들 앉아. 나눠야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우딕, 정념, 대문 밖의 동정까지 살피던 장목화는 순간 눈썹을 꿈틀거렸다. 팀원은 각기 다른 곳에 숨어있던 귀족들을 열정적으로 불러 모으고 있었다.
‘선 넘네……. 건우 쟤 진짜 머리에 쥐라도 난 거 아냐?’
이내 조기정이 웃음을 짜내며 대꾸했다.
“괘, 괜찮아. 할 말이 있거든 해. 다 듣고 있으니까.”
이 기회를 틈타 허양원도 말을 보탰다.
“이야기야 얼마든지 나눌 수 있지! 무기, 탄약, 식량, 황금, 석유, 석탄, 대마, 뭐든 말만 해!”
허양원은 아직 어린 데다 성주가 된 지 몇 년 지나지도 않았다. 그러니 지금 당장 조상님들을 뵈러 가고 싶지는 않았다.
곧이어 성건우는 천천히 테이블 맨 끝 쪽의 의자로 다가가 앉아선, 난감하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 버튼을 누르면 여기 있는 사람들은 과연 몇 조각으로 쪼개지려나? 앉아, 다들 이리 와 앉으라니까? 남들은 다 서 있는데 어떻게 나만 앉아서 이야기해, 버릇없게. 안 그래?”
그의 제안에 테이블 아래에 웅크려 앉아 있던 모리치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의자 위로 조금씩 올라왔다. 그가 먼저 움직이자, 조정기를 비롯한 귀족 의원들도 천천히 각자 자리에 앉았다.
한편, 그들을 지키는 경호원들은 성건우의 손가락에서 눈을 떼질 못했다.
허양원이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서 물었다.
“이, 이제 요구 사항을 밝혀도 될 것 같은데?”
성건우는 웃으며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황야유랑자들을 몰아내고 다들 남은 식량과 의료 물자를 내놔. 그걸로 남은 사람들을 수습하고 주민들을 구제하면서, 최대한 빨리 위드 시티를 안정시키고 생기를 되찾는 거야.”
‘요구 사항이 이거라고? 저 사람이 위드 시티 성주야? 내가 아니고?’
허양원은 하마터면 자신의 귀를 의심할 뻔했다.
귀족들도 이제야 성건우가 미친놈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반면 의미심장한 눈으로 성건우와 장목화를 바라보던 우딕은 언제라도 강제 입면 능력을 사용하려는 듯 자세를 취하다가 곧 그만뒀다.
몇 초간의 침묵 끝에 허양원이 재차 물었다.
“구제 대상에 황야유랑자들도 포함되나?”
“포함되지.”
성건우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모든 귀족이 넋을 놓은 가운데 장목화가 덧붙였다.
“그들을 모아 따로따로 심문한 뒤, 살인을 한 이는 여러분의 장원에서 일하는 노예와 교체하세요. 난리 통에 수많은 이들이 죽었으니, 도시 방위군도 성주 호위대도 인력 증원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허양원은 살짝 흔들리는 눈빛을 보이다 질문을 이어갔다.
“다른 요구 사항도 있나?”
“있어.”
성건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답에 귀족들은 되레 안도했다. 그들의 머리로는 난민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가며 귀족들과 함께 죽으려는 행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만큼 무식하고 대담한 짓을 저질렀다면, 개인적인 요구 사항도 있어야 옳았다.
“그래, 일단 이 일부터 마무리하고 나머진 나중에 얘기하는 게 좋겠네.”
성건우는 웃으며 운을 뗀 뒤, 조기정을 바라보았다.
“그쪽부터 시작하지. 심복에게 전화해. 만약 내가 그들에게 ‘이 사람이 허튼짓하면 난 이 사람 머리통을 터뜨려버릴 거다. 너희들이 이 사람을 도우려 해도 난 곧장 스위치를 누를 거야.’라고 하면 그들은 어떻게 나올까?”
성건우는 조기정이 뭐라고 말할 틈도 주지 않았다. 그저 빙그레 웃으며 질문만 쏟아냈다.
그러자 조기정은 성건우의 웃는 얼굴을 마주하며 힘겹게 침을 삼켰다.
“내가 뭐라고 하든, 그쪽도 다 들을 수 있잖아. 난 수작을 부릴 수 없어.”
그는 암시나 다른 뜻이 숨어 있는 말을 할 생각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잘못해서 그 사실을 들키기라도 하면, 갈등은 즉시 심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조기정은 빠르게 핸드폰을 꺼내 심복에게 전화를 건 후, 성건우가 방금 한 말을 공명정대하게 전했다. 모든 과정은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하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의사당 밖에 있는 그의 심복은 조기정이 위협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가 없었다. 그저 가만히 기다리며 상황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렇게 귀족들이 차례대로 전화하는 사이, 성건우가 천천히 일어났다.
“두 번째 요구 사항은 사람마다 달라. 한 명 한 명 따로 처리하겠어.”
신중히 테이블에서 물러나 옆쪽 구석에 이른 그가 큰소리로 외쳤다.
“선사, 선사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믿는 구석이 있는 정념은 망설이지 않고 곧장 성건우에게 다가갔다.
이때 성건우는 검은색 리모컨을 장목화에게 건네면서 웃는 얼굴로 현장의 모든 이들에게 말했다.
“내 동료에게도 생체 공학 의수가 달려있어.”
장목화는 그 말을 증명해 보이듯 왼손 손가락 사이로 아크를 흘렸다.
틀림없는 사실로 증명된 성건우의 말에, 귀족들도 조금 전 자신이 섣불리 행동하지 않았다는 걸 다행스레 여겼다.
그렇게 이 의사당을 완전히 통제한 성건우는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정념을 응시했다. 기계 승려의 눈에선 붉은빛이 번득이고 있었다.
“선사, 혹시 정법 대사를 알고 있습니까?”
그는 일부러 목소리를 낮춰서 물었기에, 테이블 주위에 자리한 귀족들은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을 수 없었다.
“제 사제입니다.”
정념이 솔직하게 답했다.
곧이어 성건우의 말이 이어졌다.
“보세요, 전 정법 대사를 알고, 그의 설법을 들었어요. 전 성주의 자폭을 저지하는 데 도움을 보태면서, 선사의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 하기도 했죠. 그러니까⋯⋯.”
정념의 붉은 눈빛이 번득이는 속도가 점차 빨라지다가 원상태로 돌아왔다. 그리고 낮게 염불을 외던 그가 전자합성음으로 말을 받았다.
“교단의 연맹인 시주님께 이 빈승이 힘을 보태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사. 이만 돌아가도 좋습니다.”
성건우는 재차 손을 뻗어 정념과 악수를 했다.
이내 정념이 허양원 곁으로 돌아가자, 성건우는 이어서 우딕을 불렀다.
“우딕? 다음은 당신 차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