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170화 (170/649)

170화. 귀족 의사회

성주 저택, 귀족 의사당.

이곳 귀족 의사당에는 중앙에 놓인 테이블 상석에 화려한 차림의 성주 허양원이 앉아 있었으며, 테이블 양옆으로는 세 사람씩 자리해 있었다. 성주를 비롯한 이 사람들이 바로 위드 시티의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 의사회 의원, 일곱 명의 대귀족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허영덕 시대 이래 권력의 중심이 시청과 도시 방위군으로 이전되고, 성주는 그 두 부서를 관리하며 퍼스트 시티 내 특정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었기에 이 귀족 의사회의 힘은 점차 약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지금 같은 위급 상황에서는 귀족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다. 설령 허영덕이 살아온다고 해도 이들의 의견을 꼭 물어봐야만 했다. 바로 이들의 손에 사병과 장원, 인구, 모아둔 각종 자원이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들이 혼란한 틈을 이용해 황야유랑자를 끌어모으기라도 한다면 위드 시티는 전에 없이 큰 변화를 맞게 될 것이었다.

현재 각 귀족 뒤에는 경호원이 딱 두 명씩 서 있었다. 허양원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의사회 출범 이후 여러 마찰, 비밀 누설, 정변, 유혈 사태 등을 겪으며 생겨난 규칙이었다.

그렇게 의사당에는 경호원 최대 두 명만 대동할 수 있었다. 거기에 대귀족과 경호원들은 무기를 휴대할 수는 있으나 그 무기를 밖으로 드러내선 안 됐다. 위드 시티에 적용되는 무기 관련 규칙도 이로부터 기인한 것이었다.

한때는 각 무장단체 수장들에게 무기 반입 및 경호원 대동을 금지하기도 했다. 당시 그들은 갑작스러운 기습, 혹은 성주가 컵을 깨뜨리는 신호에 맞춰 사수 수십 명이 들이닥쳐 별안간 난사할지도 모른단 두려움에 떨었었다.

그렇다고 무기 반입과 경호원 대동에 제한을 두지 않으면, 다들 또 믿을 구석이 생겼다는 이유로 걸핏하면 싸우며 유혈 사태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

이로 인해 호위대는 밖에 두고 대동할 경호 인원에 제한을 두는 한편, 무기를 휴대하는 것까진 좋으나 드러내지는 않게 주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총으로 적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고 싶더라도 일단 참을 여지가 생겼고, 그 사이 중립자는 갈등을 좀 잠재울 수도 있었다.

또한 남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숨겨둔 총을 뽑아 드는 데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험악해지던 분위기가 우스꽝스럽게 마무리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 규칙을 준수하기 위해, 회의가 있을 때마다 엄격한 폭발물 검사가 실시되었다. 혹여나 누군가가 죽음마저 불사하려 할 수도 있으니, 회의에 참석한 모두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현재 허양원의 왼편에는 가운에 달린 후드를 뒤집어쓴 기계 승려 정념이, 오른편엔 그의 비서 유 씨가 서 있었다. 문무관을 두루 갖춘 격이었다.

그렇다고 유 비서가 전투에 전혀 문외한인 것도 아니었다. 그는 젊었을 적, 위드 시티를 공격하려는 적이나 유혈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이들을 수도 없이 처리한 사람이었다. 당시 고작 양손에 권총만 쥔 채 모든 난을 평정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이도 들고 성질도 많이 죽은 데다가 자신에게 정무 처리에 관한 천부적인 재능이 있음을 발견한 뒤엔, 무엇보다 평화가 우선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다니곤 했다.

이내 주위를 한 번 둘러본 허양원이 미소를 지었다.

“현재 위드 시티에 어떤 사건이 벌어졌는지 다들 이미 확인하셨을 테죠.”

그는 공식적이고 격식 있는 말 대신, 편안한 어투를 썼다.

자세를 낮추는 그의 모습에 조씨 저택의 주인 조기정이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성주, 할 말이 있거든 바로 하세요. 이곳은 우리 모두의 위드 시티입니다. 누가 힘을 보태려 하지 않겠습니까?”

쉰 살이 넘은 조기정은 수염이 이미 희끗희끗해졌다. 체격이 건장한 편인 그는 비쩍 마른 사람이 대부분인 애쉬랜드에서는 상당히 눈에 띄었다.

그가 오늘 데려온 경호원 두 명은 스스로 키워낸 결사대원과 서른이 조금 넘은 큰아들이었다. 아들을 데리고 온 건 귀족 의사회의 방식이나 흐름을 익히게 하기 위함이었다.

‘모두의 위드 시티라⋯⋯.’

허양원은 속으로 냉소하면서도 겉으론 깊이 동감한다는 듯 말을 받았다.

“이미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해 인력이 부족합니다. 황야유랑자들은 언제든 시청 건물 방어선을 돌파하고 노스 스트리트로 밀려들 겁니다. 여러분들께서 저택 내 사병을 파견해 함께 반격에 나서주셨으면 합니다. 황야유랑자들이 진정한 조직으로 결집하기 전에 도시 밖으로 몰아내야 합니다.”

조기정은 조용히 한 사람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사돈 모리치였다.

그의 조상은 레드리버인이었으나 몇 대를 거쳐 이어진 통혼으로 모리치는 애쉬랜드인의 특징도 적잖게 가지고 있었다. 이목구비가 부드러운 편이었고 모공도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거기에 노란 머리칼과 파란 눈동자, 깊은 팔자주름까지 두루두루 갖추고 있었다.

이윽고 모리치가 말문을 열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별일 아니라는 여유롭고 느긋한 태도를 보였다.

“성주, 사병을 파견하는 거야 문제도 아닙니다. 위드 시티는 우리 모두의 것인데, 우리가 어떻게 가만히 앉아서 이 사태를 지켜볼 수 있겠습니까?

저택을 지킬 병력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성주에게 협조하겠습니다. 근데 제 사병들은 정규군이 아니라 저택과 장원을 지킬 정도의 훈련만 받았습니다. 그들을 시켜 반격에 나서게 해도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겁니다.

차라리 저희 사병으로는 도시 방위군과 성주 호위대를 대신해 노스 브리지와 시청 건물을 지키게 하고, 정규군인 도시 방위군과 성주 호위대에게 반격을 맡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허양원이 애쉬랜드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모리치 역시 같은 언어를 사용했다. 능숙한 발음과 사용하는 단어를 보면, 여태 꽤 적잖은 노력을 들인 듯했다.

모리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조기정을 비롯한 다른 귀족 의사회 회원들이 즉각 동조해왔다. 그 순간, 허양원의 이마 가장자리 핏줄이 살짝 꿈틀거렸다. 의자 팔걸이를 움켜쥔 손에도 어느새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때, 유 비서가 성주에게 눈짓했다. 비서는 언제나처럼 무엇보다 평화가 우선이라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 눈을 보고서야 허양원은 애써 웃음을 쥐어짜며 입을 열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께서 염려하고 계신단 건 저도 압니다. 저도 도시 방위군과 호위대에서 다치지 않은 일부를 뽑아 반격에 나서게 할 생각이었어요. 다만 이런 이들의 수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수도 있으니, 필요한 때가 되면 여러분들 사병에서도 일부 차출하고자 말씀드린 겁니다.”

귀족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그중 조기정이 제일 먼저 운을 뗐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다른 귀족들도 이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스트 스트리트와 웨스트 스트리트, 사우스 스트리트에도 그들의 재산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본래가 특정 창고의 실제 주인 아니면 호텔 사장, 쌀가게 소유자, 나이트클럽 대주주였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황야유랑자들을 처리해 자신의 재산을 지키고 싶지 않겠는가.

허양원은 결정을 전달해 정식으로 실행케 한 뒤, 다음 문제로 넘어갔다.

“소란은 분명 금세 안정될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사후 처리 문제를 상의해야죠.

노스 스트리트 이외 구역에 사는 수많은 평민이 죽었습니다. 다들 이번 겨울을 나기가 평소보다 훨씬 더 힘들 거예요.

전 앞장서 식량 일부를 기부해 구제하고자 합니다. 그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도록요. 예, 의료 물자도 기부해야겠죠. 다친 사람은 많아도, 돈 내고 치료받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테니까요.”

허양원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조기정이 딸랑이처럼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희한테 남는 식량이 없습니다. 거기다 이제 겨우 반나절이 지났을 뿐인데, 도시 내 식량이 줄어봤자 얼마나 줄었겠습니까? 조금 아껴서 살라고 하면 이번 겨울이야 충분히 지낼 수 있을 겁니다.”

그가 보기에는 정말 우스운 일이었다. 자신의 사람도 아닌 그들을 왜 굳이 지원하고 도와야 한단 말인가? 모리치도 이 의견에 동조했다.

“그렇습니다. 평민들이야 좀 죽은들 뭐가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부릴 노예는 이미 충분한데요.”

또 다른 귀족 의원 장유신도 의견을 밝혔다.

“맞습니다. 감히 말썽을 부린다면 도시 밖으로 쫓아내 황야유랑자로 만들어버리면 그만입니다. 정세가 안정되고 난 후 우리가 식량을 팔기 시작하면, 수많은 이들이 위드 시티로 와서 부족한 인력을 채워줄 겁니다.”

귀족들의 반대 의견에 허양원은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머릿속이 웅웅 울리는 것 같았다. 그는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한편, 상황을 진지하게 분석했다.

“사병들 가족들은 노스 스트리트 외 지역에서 생활한다는 걸 고려해야죠. 그들이 무기를 거꾸로 돌린다면 우린 퍼스트 시티로 달아날 수밖에 없어요.”

이 말에, 조기정이 호탕하게 웃었다.

“성주, 걱정할 것 없습니다. 우리 사병들의 가족은 다 장원에 있으니까요.”

‘근데 도시 방위군은 안 그렇다고⋯⋯!’

허양원의 이마에 돋아난 핏줄은 더욱 강하게 꿈틀거렸다.

이후로 다른 귀족 의원들의 반대 의견까지 더해지자, 허양원의 머릿속은 터질 듯 웅웅거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귓가엔 허상의 외침이 맴돌기도 했다.

‘저들을 날려버려! 저들을 날려버려!’

허양원의 눈빛이 점차 멍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한 손으론 이마를 짚더니 다른 손은 옷 주머니 속, 작고 정교한 검은색 리모컨을 움켜쥐었다.

‘저들을 날려버려! 저들을 날려버려!’

머릿속에서 악마의 외침이 끊임없이 이어지자, 허양원의 호흡도 조금씩 거칠어졌다.

그때, 귀족 의사당의 문이 벌컥 열리며 경비 하나가 들어와 외쳤다.

“성주님, 우딕이 급한 일로 뵙기를 원한답니다!”

그 순간, 문밖에 선 장목화는 뛰어난 시력으로 허양원의 눈빛을 확인했다. 뭔가 심상치 않았다. 분명 혼란과 광기에 찬 눈빛이었다.

“얼른!”

그녀는 우딕을 향해 외치며, 곧장 권총을 뽑아 귀족 의사당 테이블 위쪽에 걸린 크리스털 샹들리에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역시 성건우도 총을 뽑아 들면서 몸을 틀어 장목화의 등 뒤를 지켰다.

곧이어, 총성과 함께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대량의 유리 파편이 의사당 테이블로 떨어져 내렸다.

허양원을 제외하곤, 이 귀족 의원들은 나이가 꽤 있었다. 그렇게 과거 전쟁과 소란을 경험했던 덕분인지 총성에 대한 반응이 매우 빨랐다.

모리치는 말투는 한없이 느려도 곧장 아래쪽으로 미끄러지듯 내려가 테이블 아래 숨었고, 뚱뚱한 조기정도 즉각 허리를 굽힌 채 자리를 벗어나더니 큰아들을 데리고 구석으로 몸을 날렸다.

그 사이 경호원들은 분분히 무기를 꺼내 각자 자리에서 문을 겨냥했다.

한편, 허양원은 총성에 놀랐는지 악마의 속삭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다시 또 그 지독한 속삭임에 잠식됐다.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허양원이 리모컨을 냅다 누르려던 순간, 그는 눈을 감고서 그대로 의식을 잃은 채 의자에 축 늘어졌다. 돌연 깊은 잠에 빠진 모양이었다.

바로 우딕이 허양원에게 건, 강제 입면의 효과였다. 우딕은 장목화가 만든 이 짧은 틈 덕분에 앞으로 몸을 날리고 굴려 허양원과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

그런데 동시에 우딕의 시야에 새카맣고 두꺼운 총구가 들어왔다. 기계 승려 정념이 들이댄 총구였다. 그러자 우딕은 그에게 황급히 자신이 추측한 바를 외쳤다.

“신부가 성주에게 최면을 걸었어. 여기 모두랑 함께 죽을 작정이었다고!”

이 말에 장목화와 성건우를 공격하려던 경호원과 외부 경비들이 멈칫했다.

정념은 우딕을 겨눈 총을 거두지 않은 채로, 금속 팔을 뻗어 허양원의 외투를 열어젖혔다. 드러난 성주의 허리춤엔 폭약 여러 개가 매여 있었다. 전부 오렌지컴퍼니의 고성능 제품이었다.

이 폭약이 정말로 폭발했다면 귀족 의사당에 있던 사람들은 물론 그 옆방과 옆 옆방까지도 화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기계 승려 정념만이 현장의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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