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추측을 이어나가다
적당한 창문을 찾아 골목길로 뛰어내린 장목화는 차를 타고 성건우와 함께 사우스 스트리트로 향했다.
그녀는 황야유랑자들이 노스 스트리트를 공격하기 위해 중앙 광장으로 결집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곳을 피해 크게 우회했다.
전과 마찬가지로 남문을 통해 도시 밖으로 나가서 북문으로 돌아간 두 사람은 특별 통행증을 이용해 삼엄한 방어선을 깔끔하게 통과했다.
어떤 방면에서 보자면, 지금 황야유랑자들이 중앙 광장에 모여드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 때문에 우딕도 당연히 사냥꾼 길드로 돌아오지 못하고 성주 저택에 머물고 있을 게 뻔했다.
이로써 장목화와 성건우는 우딕에게 차도 돌려주고, 성주 저택에서 가짜 신부를 심문할 기회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그건 특별 통행증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 * *
장목화와 성건우는 여러 절차 끝에 마침내 성주 저택에 진입했다.
곧이어 외당에서 우딕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장목화는 우딕을 보자마자 차 키를 던져주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가짜 신부는 깨어났어?”
이 질문엔 1차 심문을 끝냈냐는 뜻이 담겨있었다.
우딕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 사람은 자기가 신부라는 사실을 확고하게 믿고 있었어. 예정된 계획에 따르면 우리를 유인한 후, 나한테 최면을 걸어서 날 한패로 만들려는 생각이었다더군. 그 사이, 미리 심어둔 씨앗에 의지해 거대한 소란을 일으키려 했는데, 이건 최후의 암살을 하기에 가장 알맞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였어.”
“만약 허 성주가 사냥꾼 길드에서 거의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몰랐더라면 꽤 그럴듯하다고 생각했을 계획이네.”
장목화의 평가에, 성건우도 말을 보탰다.
“그 계획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약했던 게 안타깝네요.”
우딕은 순간 표정이 굳었다. 자신은 그 약하다는 사람 앞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거의 초장부터 재채기 지옥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장목화는 잠시 성건우를 흘겨보다 바로 질문에 들어갔다. 지금은 단 1초도 낭비할 수 없었다.
“배윤수와 임보경 동료의 행방에 대해서는 밝혀졌어?”
이는 그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우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짜 신부가 말하길, 벙어리라는 별칭을 가진 사람한테 그 사람들을 다 넘겼다더군. 암살에 성공하면 그 사람들에게 그 죄를 뒤집어씌울 생각이라면서.
근데 정작 벙어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 사는지는 전혀 모르는 눈치야. 반 지성교 내부에서 약속된 연락 방식을 통해서만 소통했다고 털어놨어. 지금은 노스 스트리트 밖이 너무 혼란하니까 그 수단으로 연락을 취할 수도 없고.”
이 말을 듣고, 장목화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그 벙어리가 혹시 진짜 신부 아닐까? 그 사람이랑 가짜 신부 사이에 존재하는 연락이나 소통 방식이란 게, 실은 그냥 일종의 최면 같은 거 아냐?”
“그럴 수도 있지.”
우딕도 그런 추측을 했었던 모양이었다.
이들은 가짜 신부가 진짜 신부에게 최면이 걸렸거나 기억이 곡해된 각성자일 거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가짜 신부는 당연히 자신이 진짜 신부라고 생각하면서 교파 고위층 지시에 따라 각종 임무를 완수했던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교파 고위층이라는 게 진짜 신부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동시에 그는 이 사건의 협력자인 벙어리일 수도 있었다.
이때, 성건우가 불쑥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가짜 신부도 최면을 걸 수 있는 걸까요?”
장목화가 함께 추측에 나섰다.
“음, 진짜 신부가 일부러 최면이 가능한 각성자를 찾아낸 거 아닐까? 그래야만 자신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을 테니까.”
가짜 신부에게 최면 능력이 없다면 다른 이들은 그를 신부로 착각하지도 않을 테고, 가짜 신부 본인도 최면 및 곡해로 조작된 해당 생각을 의심했을 것이었다.
“최면 능력이 있는 각성자를 어떻게 이렇게 정확하게 찾아낸 거지⋯⋯.”
우딕이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리다 도중에 말을 멈췄다. 생각하는 동시에 이미 답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일단 각성자의 수는 매우 적은 편이었다. 게다가 그들 모두가 스스로 가진 능력의 특징을 숨기는데 습관이 되어있었다.
이내 성건우가 약간 흥분이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반 지성교에서는 각성자 한 무리가 탄생할 때마다 신부 한 명이 나오도록 정해져 있는 거지!”
3월을 관장하는 달지기 말인의 영역은 최면, 기억과 관련돼있었다. 이러한 달지기를 믿는 교파에서는 그런 능력을 가진 각성자가 대부분을 차지하지는 않더라도 절대 그 수가 적지는 않을 터였다.
“최면 능력을 가진 각성자가 일정 수에 달하면 그들을 한 장소로 몰아넣고 서로를 죽이게 한다는 거야? 그렇게 해서 마지막에 살아남은 이들이 진짜 신부 하나랑 가짜 신부 여럿이 되는 거고?”
장목화는 성건우의 말을 해석하려 애썼다. 생각하면 할수록 이 가설은 굉장히 그럴듯하게 들렸다. 가만히 보면, 반 지성교의 교리와 완벽하게 부합하는 방법이었다.
“그들은 다 사람들에게 사고가, 그러니까 뇌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그저 꼭두각시나 말인으로 살면서 사고는 전부 신이 선택한 자에게 맡겨버려. 지금까지 우린 반 지성교에 대해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 그들은 교파의 역군인 각성자 무리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를 적용하는 거야. 완벽한 지행합일이네.”
대체 그게 무슨 정신이란 말인가……. 장목화는 한숨 섞인 웃음을 흘리며 말을 끝맺었다.
그때, 장목화의 곁눈에 굉장히 불타는 열의를 빛내는 성건우가 보였다. 여러모로 추측해보면 아마도 성건우는 진짜 신부라는 신분을 놓고 경쟁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장목화는 성건우가 추리 광대 능력 하나로 진짜 신부를 처리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 않았다. 심지어는 되레 최면에 걸리거나 기억을 조작당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성건우가 정말로 가짜 신부가 된다면, 진짜 신부는 그가 벌인 난장판을 수습하느라 고생깨나 할 것이었다.
‘여러 차례 그런 일을 겪고 나면 진짜 신부도 신물이 난 나머지 말썽꾸러기 가짜 신부를 쫓아내 버리겠지.’
그러나 그때부터가 진정한 시작이었다. 진짜 신부는 그제야 성건우가 가짜 신부 모두를 다 데리고 나가서 새로운 신부 형제회를 조직했다는 걸 깨닫게 되고, 자신만 홀로 남겨진 것을 실감하게 될 것이었다.
“하…….”
한숨을 토해낸 장목화는 이런 말도 안 되는 망상을 재빨리 머릿속에서 치워버렸다. 가짜 신부를 통해서는 진짜 신부와 구조팀원들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장목화도 질문을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
“허 성주는 봤지? 기습 당시의 자세한 상황은 물어봤어?”
그녀는 그 사건 속에서 작은 단서라도 파악하고 싶었다.
우딕은 곧 허양원에게서 들은 기습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물론 이 이야기에 기계 승려 정념이 가진 능력의 특징이 포함되지는 않았다. 허양원이 그 부분을 그대로 건너뛰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 장목화의 표정은 점차 엄숙해졌지만, 성건우는 어떠한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한편 우딕은 점점 장목화와 성건우의 능력에 대해 상당히 감탄하고 있었다. 정신에 좀 문제가 있는 것 같기는 해도, 아마 그건 그들이 지불한 대가일 가능성이 컸다.
장목화 역시 꿈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을 가진 우딕의 심문 능력을 신뢰했다. 그녀가 굳이 직접 가짜 신부를 심문하고 싶다는 부탁을 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윽고 우딕이 말을 마치자, 성건우가 문득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념 선사는 정법 선사를 알고 있나?”
“아마 알고 있을걸⋯⋯”
사실 우딕도 그다지 확신이 없었다. 기계 승려는 원체 수가 적어 대부분 서로를 알았지만, 우딕 자신은 기계 승려가 아니니 단언할 수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입을 열었다.
“난 이번 습격에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적어도 세 부분 정도는.”
“어떤 게?”
우딕 역시 이상하다고 여기긴 했지만, 정확하게 짚을 수는 없었다.
장목화는 곧 손가락 하나를 펴면서 입을 열었다.
“첫째, 습격한 시기와 당시 상황을 보면 가짜 신부가 한 일은 거의 아무런 쓸모도 없어 보여. 너를 길드에서 나오게 한 것도, 황야유랑자들의 소란을 일으킨 것도 습격 자체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잖아.
생각해봐. 평소에도 넌 길드에 죽치고 있지 않고 밖에 나가서 단서를 찾기도 하잖아. 그리고 소란이 일어나도 도시 방위군과 성주 호위대에만 그 영향이 미칠 뿐이고.
길드에는 정념 선사와 경호원 넷이 있었어. 긴장된 분위기가 조성되더라도 그 다섯 명만큼은 다른 일에는 신경 쓰지 않고 성주를 지키는 데만 열중하지.”
“그렇지.”
우딕이 동조했다.
진짜 신부 및 가짜 신부가 세운 계획은 겉보기에는 정교한 것 같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굳이 가짜 신부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이내 장목화가 손가락 하나를 더 펴면서 말했다.
“둘째, 실제적인 환각을 통해 정념 선사의 정체와 능력의 특징을 미리 파악했는데도 진짜 신부가 이후에 보였던 모습은 정말이지, 정말이지⋯⋯.”
적당한 표현을 찾지 못하는 팀장을 보고, 성건우가 나섰다.
“뇌가 없는 것 같죠.”
장목화는 성건우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은 문을 연 허 성주에게 전혀 답할 필요도 없었어. 경호원인 척 위장한 상황이라면 일단 다시 한번 실제적인 환각으로 정념 선사에게 영향을 미치고, 최면에 걸린 경호원 넷이 허 성주를 죽이도록 하면 될 일이야.
그러니까 내 말은 가장 위협적인 존재인 정념 선사를 내버려 두고 직접 목표를 처리하려 하지는 말았어야 한다는 거지. 만약 신부가 이 방법을 사용했더라면 넌 이미 허 성주의 영정 사진을 마주하고 있었을걸?”
약간 머뭇거리던 우딕이 말했다.
“어쩌면 너무 급해서 최면을 걸 여력이 없었던 거 아닌가? 경호원들이 직업의식을 버리고 성주를 죽이게 하려면 따로 또 유도해야 했던 거 아냐?”
이는 당시 정념 선사가 했던 생각이기도 했다.
“그럴 가능성도 분명 있지. 근데 사냥꾼 길드의 크리스티나가 그의 동료인지, 무고하게 끌려든 사람인지는 차치하더라도 신부가 장악한 자원과 그 배후 세력으로 볼 때, 그 최후의 선택이 총살이었다는 건 너무 초라해.
그 정도 거리에서는 수류탄은 던지든, 독가스를 살포하든, 오렌지컴퍼니에서 발명한 고성능 원격 조종 폭탄을 투척하든 다 상관없었어. 그랬다면 제아무리 정념 선사라도 성주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을 거야.”
장목화의 말은 경호원 무리에 섞여 들어간 것도 신부 자신이 아니라, 최면에 걸려 목숨을 바칠 작정이던 또 다른 사람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어쨌든 나머지 경호원 넷은 총 팀원이 다섯 명이라고 믿고 있었으니, 실제적인 환각 속에서 그 사람을 굳이 신부의 모습으로 보이게 할 필요는 없었다.
“확실히 뭔가 이상하긴 한데⋯⋯.”
곰곰이 고민해보던 우딕도 장목화의 의견에 마음이 기울었다. 그녀의 말대로 했다면 허양원은 죽어도 벌써 몇 번은 죽었을 것이었다.
바로 그때, 손뼉을 한번 친 성건우가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말했다.
“알겠다.”
우딕의 시선이 쏠리자, 성건우가 바로 진지하게 말했다.
“신부는 허 성주를 놀린 거야.”
그 말에 우딕의 입꼬리가 경련을 일으키자, 장목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신부는 허 성주를 죽일 생각이 없는 것 같아. 근데도 이렇게 세심하게 계획을 세우고, 직접 나서서 허 성주를 습격한 이유는 뭘까?”
순간 우딕의 머릿속에 한 단어가 번쩍 떠올랐다.
최면!
신부는 공을 들여 허양원과의 거리를 좁히고 상대와 눈을 맞추면서 그에게 최면을 건 것이었다.
장목화도 동시에 우딕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허 성주는 지금 어디에 있지?”
“귀족 의사당에. 모든 귀족과 모여서 황야유랑자 소요 사태에 대해 상의하고 있⋯⋯.”
장목화에게 답을 하던 우딕이 일순 상황을 파악했다. 황야유랑자들이 소란을 일으키게 된 이유,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신부의 진짜 목적인지도 몰랐다.
“가자!”
우딕은 곧장 핸드폰을 꺼내며 뒤돌아 의사당을 향해 돌진했다.
번호를 눌렀지만,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회의 중이라 무음으로 해뒀나 봐.”
우딕이 열심히 달리며 중얼거렸다.
장목화와 성건우 역시 곧장 그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