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168화 (168/649)

168화. 다시 노스 스트리트로

노스 스트리트, 성주 저택.

익숙한 집으로 돌아온 허양원은 공황과 불안에서 벗어나 다시금 자신을 되찾고 침착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가 곧 황급히 달려온 중년 남자에게 물었다.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40살이 거의 다 된 남자 비서는 허영덕 시대와 허무공 시대를 직접 겪으며 여러 차례 반란과 정변을 목격해서인지 상당히 침착했다.

“우딕이 이미 신부로 의심되는 범인을 잡아와 성주님을 뵙길 청하고 있습니다. 쳐들어온 황야유랑자들은 상당한 무기와 식량을 탈취하고 현재 중앙 광장에 결집하고 있습니다. 노스 스트리트로 진격하려는 모양입니다.

본래 조직화 돼 있지도 않았었는데, 그들은 지금은 진정한 집단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반면 도시 방위군은 처음부터 심각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여러 팀이 편제를 잃고 도시 곳곳으로 흩어진 터라 현재로는 가장 기본적인 수준의 방어와 정리만 가능합니다. 소동으로 야기된 혼란은 당장이라도 그들을 휩쓸어버릴지 모릅니다.

성주님께서 보낸 성주 호위대는 제1 병원을 떠나 노스 브리지와 시청 건물로 지원을 나가서 그곳에 있던 도시 방위군과 합류했습니다. 무기를 가지고 있으니 한동안 문제없이 버티겠지만, 병력이 지나치게 적다는 게 문제입니다.”

이는 대량의 황야유랑자와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거의 죽다 살아난 조금 전에 비하면 지금은 그렇게 급하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뒷짐을 진 채 이리저리 서성이던 허양원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유 비서, 유 비서가 보기에는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더 많은 인원을 모으십시오.”

유 비서가 공손하게 답했다.

허양원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명령입니다. 귀족 의사회의 모든 회원을 소집해요. 대책 회의를 열어야겠습니다. 그들도 힘을 보태야 합니다.

이제 정예병을 뽑아 북문으로 보낼 겁니다. 그들이 도시를 빙 돌아 사우스 스트리트로 진격하면 흩어졌던 도시 방위군을 규합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난민들은 걱정거리도 아니에요.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드론 부대를 파견해 폭격이라도 하세요. 도시가 파괴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모든 사냥꾼을 대상으로 용병 임무를 발표하게 하세요. 길드는 해당 임무를 확성기로 알려야 할 겁니다.”

마찬가지로 도시 곳곳에 흩어진 유적 사냥꾼들 역시 지금으로서는 임무를 확인하겠답시고 길드로 갈 수 없었다.

“예, 성주님!”

유 비서가 다시 공손하게 답했다.

“네, 그 김에 우딕도 불러주시고요.”

질서정연하게 지시 내린 허양원이 이내 기계 승려 정념을 바라보았다.

“선사, 앞으로의 상황을 좀 예측해주시죠.”

정념은 붉은 눈빛을 번득였다.

“좋습니다.”

기계로 만들어진 그 눈빛이 점차 굳어졌다.

그로부터 7~8초 후, 정념이 입을 열었다.

“위험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적들에게도 앞으로의 계획이 있네요. 폭발과 관련한 계획이니 시주님도 반드시 조심하셔야 합니다.”

스스로를 이기고 심령의 복도에 들어가기 전까지, 정념의 예지 능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저 자기 자신과 대응하는 목표의 생존에 위협이 될 요소가 존재하는지 확인하는 정도에만 그칠 뿐이었다.

그러니 정념도 미래에 펼쳐진 일을 직접 확인하거나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파악할 순 없었다. 그러한 정보는 너무나 흐릿하게 보일 뿐이었다.

허양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의하겠습니다. 경호원도 한 명, 한 명 다 검사할 겁니다. 선사, 저는 일단 씻고 옷을 좀 갈아입어야겠습니다.”

조금 전 습격을 피하느라 땅을 굴렀을 뿐만 아니라 정념이 묵직한 몸으로 눌러오는 바람에 사실 그는 살짝 지리기까지 했다.

그런 실수가 없었더라도 그에게는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정리하는 한편 앞으로의 어지러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정념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예, 저는 문밖을 지키겠습니다.”

그는 이미 허양원의 침실과 발코니, 바깥의 정원을 수색하고 잠재된 위험이 없다는 걸 확인했었다.

* * *

윤복 총포사 뒤쪽 뜰.

첫 번째 충격을 물리친 주민들은 각종 장애물을 입구로 옮기며 바리케이드를 칠 준비를 했다. 입구를 아예 봉쇄해 앞으로 더 몰려들 폭도들을 막기 위해서였다.

4~50대의 남녀는 어린 사람만큼 빠릿빠릿하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상황에 훨씬 더 능숙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있었다. 마치 물 만난 물고기 같은 모습이었다. 젊었을 시절 이러한 혼란을 겪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붉은 SUV가 골목길에 진입했다.

장목화와 성건우는 SUV를 골목길에 세워두고, 각자 또 배윤수와 임보경을 둘러맨 채 황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함께 데려온 두 아이도 잊지 않았다.

뜰이 완전히 봉쇄되기 전 무사히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마침내 백새벽, 용여홍과 합류했다.

장목화와 성건우는 남이 이모와 고상아에게 두 아이를 맡긴 다음, 모두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 * *

드디어 한자리에 모인 구조팀은 그간 있었던 일을 서로에게 설명했다.

이내 잠시 머뭇거리던 장목화가 물었다.

“꼭 도시 밖으로 나가야 할까?”

몇 초간 침묵 후, 백새벽이 답했다.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는 이미 지나갔어요.”

“그래. 오는 길에 보니까 유랑자들은 중앙 광장에 몰려 있었어. 아마 노스 스트리트로 진격하려는 것 같아. 식량이 가장 많은 곳이 그곳이잖아. 위드 시티가 새롭게 조직된다면 질서는 금방 회복될 거야. 그들은 이미 무기랑 탄약을 상당히 많이 비축해두고 있을 테니까.”

장목화가 동조했다.

이 도시는 세 대형 세력의 경계에 있는 가장 중요한 무역 중심으로, 대형 세력이 공격해도 한동안 버틸 수 있게끔 자체적으로 방어 체계가 구축돼 있었다.

그러니 최초의 소란을 일으킨 황야유랑자들이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기대 대규모로 노스 스트리트에 진격하지 않은 이상, 온 도시를 철저히 마비시키기는 어려웠다.

백새벽이 말을 받았다.

“이쪽에 재차 타격이 가해지지만 않는다면,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버티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예요.”

이곳에 저장된 식량과 무기, 구축해둔 방어시설 정도라면 이삼 일은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백새벽이 덧붙였다.

“남이 이모한테 딸린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들을 다 데리고 나가려면 차가 여러 대 필요해요. 그럼 눈에 확 띌 테니 공격당할 가능성도 커지죠.”

장목화는 백새벽을 보며 민망해할 필요 없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그래. 남는 것도 나름의 장점이 있지. 모두가 남아서 이곳을 지키는 것도 나쁜 생각은 아니야. 마침⋯⋯.”

순간 그녀의 시선이 성건우에게로 향했다.

“배윤수와 임보경을 깨울 수 있는지 확인해 볼까? 만약 위보배를 비롯한 나머지 팀원들의 행방을 파악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도시 안에 남아 위험을 감수해야 할지도 몰라.”

장목화의 말투는 굉장히 여유로웠다. 꼭 어디론가 나들이를 나가자고 말하는 사람 같았다. 뒤이어 그녀가 용여홍을 향해서도 웃어 보였다.

“오늘 아주 잘했어. 이미 훌륭한 전사가 됐던데?”

용여홍은 저도 모르게 가슴을 쫙 폈다.

그때, 성건우는 이미 침대 가장자리로 다가가 배윤수의 가슴팍을 압박하려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장목화는 그를 말리지 않았다. 그저 못 말린다는 듯 눈동자를 위쪽으로 굴릴 뿐, 그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한 번, 두 번⋯⋯. 이어지는 가슴 압박에 배윤수는 돌연 기침을 하면서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눈앞에, 가장 먼저 붉은 바탕에 금색 글자가 박힌 명찰이 보였다.

「반고 바이오」

“이거 기억해?”

장목화는 성건우에게 상대를 친구로 삼으라고 지시할지 말지를 판단하기 위해 배윤수의 상태부터 찬찬히 살폈다.

배윤수는 분명히 눈을 크게 뜨고 있었으나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로부터 몇 초 뒤, 그가 점점 눈의 초점을 되찾았다. 무려 두 달이나 이어진 긴 악몽에서 비로소 깨어난 것이다.

남자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다급하게 물었다.

“회사에서 보냈나?”

성건우가 씩 웃으며 답했다.

“맞혀보시지.”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장목화가 성건우를 뒤로 홱 치워버렸다.

“본인이 누구인지, 위드 시티에 와서 뭘 했는지 기억해?”

성건우를 밀어내고 앞으로 나선 장목화가 다시 한번 질문했다.

그녀의 질문에 배윤수의 미간이 점차 구겨졌다. 얼굴 근육도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 난⋯⋯. 조심해야 해! 그 비실비실해 보이는 사람을 조심해야 해!”

돌연 벌떡 일어나 앉은 그가 숨을 거칠게 헐떡였다. 배윤수의 얼굴은 어느새 식은땀에 젖어 번들거리고 있었다.

성건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만약 그 사람에게서 도망쳐 나올 능력이 있다면, 조심해야겠지.”

아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배윤수는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윽고 잠시 후에야 완전히 정신을 차린 그가 입을 열었다.

“난 배윤수야. 회사의 한 구조팀을 맡고 있는 팀장이지. 위드 시티에 온 건 머신헤븐의 메인 브레인과 관련한 조사를 위해서였어.

근데 성주의 저택을 떠나 노스 스트리트에서 막 벗어나려는데, 검은 트렌치코트를 입은 남자를 마주쳤어. 병을 앓는 사람처럼 비쩍 마른 남자였지.”

점차 작아지는 배윤수의 목소리엔 두려움이 잔뜩 어려 있었다.

그러자 장목화가 물었다.

“그 남자가 단번에 너희 다섯 명 모두에게 최면을 건 거야?”

이전의 교전으로 그녀는 가짜 신부는 한 번에 오직 한 명에게만 최면을 걸 수 있다는 걸 확신하고 있었다.

배윤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당시 그 사람과 눈을 마주친 건 나였어. 호텔로 돌아와 잠들었을 때, 난 꼭 몽유병에 걸린 것처럼 밖으로 나와 다시 그 사람과 만났지.

그 후에는 그 사람이 내린 분부에 따라,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구실과 기회를 마련해 팀원들을 차례대로 그 사람과 만나게 했어.”

배윤수의 진술을 다 듣고, 장목화는 마음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배윤수는 최면 환경으로부터 떨어져 익숙한 물건에 자극을 받은 덕에, 이미 최면에서 완전히 벗어나 원상태로 돌아온 것 같아.’

이내 장목화가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위보배를 포함한 나머지 팀원은 다 어디에 있는지 알아?”

배윤수는 자책하듯 고개를 저었다.

“팀원들과 뿔뿔이 흩어졌어. 나랑 보경이는 사우스 스트리트에 이웃한 건물에 따로 묵으면서 그 남자의 명령에 따라 일을 했고, 나머지 팀원은 그들에게 붙잡혀 어디론가 끌려갔어.”

“단서 같은 것도 없어?”

장목화가 캐묻자, 배윤수는 미간을 찌푸린 채 한동안 기억을 더듬었다.

“그 사람이 건 최면에는 시간제한이 있는 것 같았어. 일정 시간마다 한 번씩 화장을 한 채 우리를 찾아와선 새롭게 최면을 걸고 명령을 내렸지.

언젠가 한 번은 평소보다 조금 늦게 왔었어. 덕분에 난 상태를 좀 회복해서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더라고. 그래서 밖으로 나가 남자가 오는 길을 관찰해봤지.

평소에 그 사람은 노스 스트리트에 있었을 텐데, 그때는 전자기기를 이용해 누군가와 대화하면서 전부 데리고 노스 스트리트로 가라고 하더라고.”

때맞춰 임보경도 깨어났다.

이전의 과정을 한 번 더 반복한 장목화는 상대를 통해 배윤수의 진술을 한 번 더 확인했다.

“그래, 너희는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으니 일단 좀 쉬어. 우리는 노스 스트리트로 가서 그 가짜 신부를 만나볼 테니까. 그래서 위보배를 포함해 나머지 팀원들 행방을 알아낼 수 있을지 봐야겠어.”

장목화는 시원시원하게 결정을 내렸다.

뒤이어 성건우도 곧장 덧붙였다.

“어차피 차도 돌려줘야 하거든.”

이 말을 듣고, 배윤수와 임보경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아리송한 말에 자신들이 아직 최면에서 완전히 벗어난 게 아닌가, 아니면 마취 가스의 효과가 여태 가시지 않은 건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방을 나서 계단까지 걸어간 장목화가 뒤따르는 용여홍에게 말했다.

“넌 이곳에 남아 작은 흰둥이를 도와. 음, 새벽이한테 배윤수와 임보경 좀 주의하라고 전해줘. 멀쩡해진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예, 팀장님!”

용여홍은 왠지 중대한 임무를 맡은 것 같은 느낌에 힘차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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