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167화 (167/649)

167화. 혼란

몇 초 후, 장목화는 재차 무전기를 꺼내 백새벽, 용여홍과의 연결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돌아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응, 너희 지금 어디야?”

장목화는 침착한 목소리를 유지하려 애썼다. 그녀는 자신이 초조해하면 팀원들도 함께 불안해하고 긴장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곧이어 백새벽이 입을 열었다. 무전기 너머, 백새벽의 목소리와 함께 주변의 시끌벅적한 소리도 함께 실려왔다.

- 저희 지금 급히 윤복 총포사로 가고 있어요. 유랑자들이 들이닥쳤을 때는 이스트 스트리트에 있어서 적당한 장소에 숨어 있었거든요.

첫 번째 소란은 이미 사그라들었어요. 많은 사람이 한 곳에 밀집되어 있지도 않고요.

일단 저희는 방에 물건들을 지프로 옮기고, 다시 팀장님과 건우를 찾으러 가려고 했어요. 이스트 스트리트 성문으로 잠시 빠져나갔다가 상황이 좀 안정되고 나면 다시 돌아오려고요.

“좋아, 그럼 윤복 총포사 근처에 있는 골목에서 만나자.”

장목화는 백새벽을 칭찬하며, 운전하는 성건우에게 사우스 스트리트로 몰라는 지시를 내렸다.

탕탕!

이따금 총알이 날아들긴 했지만 차의 두꺼운 강판과 방탄유리가 날카로운 공격을 다 막아주었다.

* * *

사우스 스트리트 상황은 중앙 광장보다 더 심각했다.

거리 가장자리에 핏물 한 줄기가 흐르고 있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곳에도 거리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의 시신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몇몇은 억울한 빛이 가득 담긴 눈을 차마 감지도 못하고 있었다.

가끔 한두 명씩 보이는 살아있는 사람도 대부분은 곧 숨이 끊어질 듯 위태로운 모습으로 신음만 흘리는 중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장목화가 돌연 한쪽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그녀가 가리킨 곳은 구조팀이 위드 시티에 들어온 이래 처음으로 식사를 했던 식당, 원조 국수집이었다.

여러 지역 방언이 섞인 말씨를 쓰며,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손자에게 글을 가르친다는 사장은 구조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었다. 맛 좋은 고추기름 국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식당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이미 난장판이었다.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한 그 사장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이마에 난 구멍에서 옷을 다 적실 만큼 피를 흘린 그에게선 더 이상 생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뒤쪽 구석에는 일고여덟 살 정도로 보이는 한 남자아이가 쪼그려 앉은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아이 주변엔 그림책 몇 권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그 맞은편, 이 식당에서 유일하게 엎어지지 않은 한 테이블이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 두 명이 그 테이블에 앉아 국수를 먹고 있었다. 30대로 보이는 한 남자와 벌벌 떨고 있는 여자아이 한 명이었다. 소녀는 구석에 앉아 떨고 있는 남자아이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두 사람 모두 그릇에 고개를 처박다시피 하며 국수를 흡입 중이었다. 참 아이러니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저 두 사람에겐 이 어지러운 상황과 총성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이내 성건우가 차를 세우자, 장목화는 곧장 차에서 내려 한 손에 총을 쥐고 국수를 먹고 있는 남자를 겨눴다. 그와 동시에 매우 빠른 속도로 식당 사장과 그 뒤쪽의 남자아이에게 접근했다.

따로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느껴지는 전기 신호만으로도 그녀는 사장이 이미 죽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국수를 먹던 남자는 급히 그릇에 남은 파까지 털어먹곤 젓가락을 쪽쪽 빨았다. 소녀 역시 멈추지 않고 남은 국수를 두 입 만에 모조리 먹어 치웠다.

못내 아쉽다는 듯 미적미적 일어난 남자는 딸로 보이는 소녀를 제 등 뒤로 숨겼다. 소녀는 얼굴은 꼬질꼬질했지만, 눈만은 예쁘게 반짝이고 있었다.

남자는 장목화, 성건우와도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성건우도 한눈에 이 남자를 알아보았다.

고동색 피부에 각진 얼굴, 상당히 성실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는 전에 우딕의 질문에 답하며 가짜 신부의 행방을 알려 준 그 황야유랑자였다.

곧이어 성건우와 장목화가 총으로 자신을 겨누자, 황야유랑자는 울음에 가까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쏴, 날 죽여. 저 사람은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어. 난 알아서 빼앗고 알아서 요리하는 수밖에 없었지. 안 그럼 굶어 죽게 생겼으니까!

우리 모두 다 같은 사람이잖아. 그런데 우리는 살아서는 안 된다는 거야? 우리도 사람인데 굶어 죽어도 된다는 거냐고!”

남자는 조금 전 일을 떠올리고 있는지 표정이 점차 일그러졌고, 격해진 감정에 따라 목소리도 점점 커졌다.

장목화는 남자와 뒤쪽에서 아직도 젓가락과 그릇을 놓지 못하고 있는 소녀의 모습에 한동안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탕!

몇 초 후에야 울린 총성과 함께 남자가 쓰러졌다. 가슴팍에 난 상처에서는 피가 쏟아져 나왔다.

총을 쏜 건 성건우였다.

소녀는 멍하니 이 광경을 바라볼 뿐 울지도,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장목화는 천천히 고개를 틀었다. 성건우는 두 손으로 총을 쥔 채 이상하리만치 진지한 표정으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내 시선을 거둔 그녀가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아이 둘은 데려가. 작은 흰둥이랑 합류한다.”

만약 이대로 내버려 두고 간다면 혼란한 상황 속에서 두 아이는 절대 살아남지 못할 것이었다. 두 아이가 안정적으로 살아갈 만한 장소와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일단 위드 시티가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고개를 끄덕인 성건우는 재빨리 두 아이를 빨간 SUV에 태웠다.

한 명은 정신을 잃은 배윤수, 임보경과 함께 뒷좌석에, 다른 한 명은 보조석에 장목화와 붙어 앉혔다.

두 아이 모두 울지도, 저항하지도 않았다. 아마도 이 어마어마한 충격에 아예 넋을 놓아버린 듯했다.

이윽고 차가 원조 국수집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그제야 정신이 든 듯 동시에 차창에 달라붙었다. 두 아이는 내내 시신 두 구에서 눈을 떼지도 못하고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할아버지!”

“아빠!”

* * *

윤복 총포사 골목길.

용여홍이 다급하게 오른팔을 뻗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어디에서 튀어나왔을지 모를 칼을 든 유랑자는 총을 맞고 즉각 쓰러져서는 그대로 몸을 웅크렸다.

처음에 비하면 지금의 용여홍은 상당히 안정된 상태였다. 그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 황야유랑자는 열 명까진 못 돼도 일고여덟 명은 됐다.

지금껏 이스트 스트리트에 숨어 있던 용여홍과 백새벽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해 사람이 최대한 적은 길을 따라 윤복 총포사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도중, 두 사람은 살인으로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황야유랑자들과 혼란을 틈타 약탈에 나선 현지 악당들을 적잖게 맞닥뜨렸다.

처음에만 해도 무척 당황했던 용여홍은 곧 그들의 사격술과 실력이 그렇게 뛰어나진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수적으로 우세한 집단을 피하기만 한다면, 또한 총알이 빗발치는 곳으로 달려들지만 않는다면 백새벽과 협력해 난관 대부분을 알아서 헤쳐나갈 수 있었다.

유일하게 걱정스러운 건 휴대하고 있는 탄약이 소모되고 있고, 그걸 보충할 시간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이렇게 이동하며 위험스러운 상황을 한 번도 마주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두 사람은 황야유랑자를 처치한 도시 방위군 팀 하나를 맞닥뜨리기도 했다.

도시 방위군 팀은 지나친 긴장으로 인해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두 사람을 난민으로 여긴 건지, 인원이 둘뿐이라 손쉽게 제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건지, 곧장 공격에 나섰다.

그 팀이 겨우 다섯 명이고 백새벽이 일찍이 그들의 의도를 간파했다는 게 참 다행일 따름이었다.

한 차례 난전이 펼쳐진 다음, 도시 방위군 팀은 시체가 되어버린 동료 둘을 내버려 둔 채 다른 골목길로 철수했다.

그러자 용여홍은 두려움과 동시에 흥분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죽은 두 명 중 한 사람은 용여홍의 일격에 머리가 날아갔기 때문이었다.

이는 아주 인상적인 성취였다.

* * *

두 사람은 고생 끝에 윤복 총포사에 들어오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백새벽은 주위를 둘러보고 마음이 착잡해졌다.

이곳에서 팔던 그 수많은 총기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사방이 어지럽혀진 것으로 봐서는 누군가에 의해 빼앗긴 것 같았다.

거의 동시에 위층에서 총성이 들려왔다. 수시로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하는 총성은 듣는 이의 마음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용여홍이 백새벽을 보며 조용하게 말했다.

“남이 이모는 괜찮을까⋯⋯?”

“올라가 보자. 방에 아직 짐이 많이 남아 있어.”

백새벽은 변함없는 표정을 유지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이의를 표하는 대신 총구가 약간 뜨거워진 아이스모스를 거둬 넣은 용여홍은 다시 연합202 권총을 꺼내 탄창을 가득 채웠다.

곧이어 두 사람은 윤복 총포사 뒷문에 이르러, 문구멍을 통해 뜰을 내다보았다. 지프는 원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곳으로 들이닥친 황야유랑자들은 아직 차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그 안에 실린 상당한 물자들도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계단에 진입하자, 다시 또 시체들이 보였다. 엎어지거나 쓰러져 있는 남녀들은 모두 총에 맞아 죽은 듯했다.

빠르게 그들을 훑어본 백새벽은 저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그렇게 2층에 오르기 직전, 위쪽에서 또다시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백새벽은 곧장 자세를 낮춰 조심스럽게 위쪽으로 이동했다. 용여홍도 그녀의 동작을 흉내 내며 그 뒤를 바짝 따랐다.

모퉁이를 돈 두 사람은 무장한 남자 대여섯이 2층 어느 방 안에 있는 사람과 응사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 앞쪽에 밀집된 시체는 하도 많아 쌓여있을 정도였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두 손을 든 백새벽은 황야유랑자로 보이는 남자들을 향해 쉬지 않고 총을 쏘았다. 용여홍 역시 이유도 묻지 않고 그녀에게 힘을 보탰다.

탕탕탕!

방 안에 있는 사람의 도움 아래, 두 사람은 탄창을 다 비운 끝에 전방에 자리한 모든 적을 처리했다.

“우리예요!”

적을 다 해치운 백새벽이 소리쳤다.

“얼른 올라와.”

방에서 들려온 건 남이 이모의 목소리였다.

황급히 위로 올라간 백새벽과 용여홍은 방에 숨어 있던 사람들 한 무리를 보았다. 남이 이모와 고상아를 비롯한 윤복 총포사의 주주들, 다양한 나이대의 몸 파는 여자들이었다. 그들은 방에 몸을 숨긴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이 모두를 지키며, 황야유랑자들이 달려들지 못하도록 문 앞을 막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다름 아닌 안여향이었다.

임시 교사인 동시에 유적 사냥꾼인 그녀는 권총을 쥔 채 벽에 기대 반쯤 쪼그려 앉아 있었다. 얼굴은 평소처럼 침착하고 덤덤해 보였다.

남이 이모의 남동생 윤복은 장전과 총기 전달 등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때 백새벽과 용여홍을 발견한 안여향은 그제야 털썩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의 얼굴에 모처럼 깨끗하고 순수한 웃음이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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