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164화 (164/649)

164화. 난동의 시작

제1 병원.

배윤수와 임보경이 총으로 회사 동료를 겨누었을 때, 장목화는 마침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임보경이 와일드울프 앨리로 들어간 것은 어느 술집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 골목을 관통한 그녀는 한 비밀 통로를 따라 노스 스트리트에 진입했던 모양이었다.

그때였다. 자신의 손과 싸우고 있던 성건우가 불쑥 물었다.

“왜 스스로 총을 쏘지는 않지? 왜 굳이 하인들을 찾은 거야?”

신부는 원래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자신이 공들여 세운 계획을 상대에게 알려 주고 싶어졌다. 그러지 않으면 그간 해온 모든 일에 보람이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잠깐.”

신부가 배윤수와 임보경을 제지한 뒤, 미소 지으며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이 시간, 지금도 우딕은 여전히 끊임없이 재채기 중이었다.

“맞혀보시죠.”

그 말에 성건우는 순간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그 능력에 따르는 제한 때문 아니겠어? 네 능력의 본질은 자신의 신체 특정 부위를 다른 사람의 해당 부위랑 연결하는 거야. 상대에게 네가 취하고자 하는 동작을 대신 취하게 하는 거지.

즉, 우리가 취하는 동작은 네 손이 행하는 것과 같아. 양손이 이렇게 움직이는 상황에서는 총을 쏘는 것 같은 다른 동작은 취할 수 없겠지.”

신부가 작게 웃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거의 비슷해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똑똑하네요. 머리에 좀 문제가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만.”

성건우는 웃으며 상대를 바라보더니 묘한 말을 내뱉었다.

“쓰러져라, 쓰러져라, 쓰러져라⋯⋯.”

그때, 배윤수와 임보경의 눈빛이 멍해지더니 갑자기 픽 쓰러졌다.

신부 역시 자신의 의식이 흐릿해지려 하는 것을 깨달았다.

놀란 그가 입을 열었다.

“다, 당신들⋯⋯.”

문 쪽에 있던 장목화가 웃음을 터뜨렸다.

“생물과 의학에 일가견 있는 회사 직원에게 마취 가스가 지급되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지. 넌 다른 사람을 조종해 스스로를 해하게 하는 사람인데, 우리가 그걸 알고도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을 리 없잖아?”

그녀의 전기뱀장어형 생체 의수에는 또 다른 기능도 있었다. 바로 의식 연동 칩을 통해 마취 가스를 분사하는 기능이었다. 의수에서 나오는 가스는 매우 옅어서 거의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그 때문에 아무런 기척도 없이 가스 분사가 가능했다.

당시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강도단을 처리했을 때, 장목화가 일단 투항한 뒤 극한의 반격에 나서는 방법이 있다고 말한 게 바로 이 때문이었다.

유전자 조작으로 얻은 숨을 참는 능력과 조합해 사용하면 상황을 반전시키긴 충분했다. 여기에 장목화는 마취 가스를 독가스로 바꿔 적을 독살할 수도 있었다. 물론 지금 같은 상황에 그런 능력까지 선보일 필요는 없었다.

장목화와 성건우가 마취 가스를 맡고도 멀쩡한 것은 미리 준비하면서 복용한 예방약 덕분이었다.

거기다 신부가 우딕을 통제하려고 이미 신 냄새를 풍겨둬서, 마취 가스 특유의 기이한 냄새도 완벽하게 숨길 수 있었다. 그 효과는 장목화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났다.

신부는 점점 의식이 가물가물해지고 있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그도 상대를 단번에 죽이지 않고 나불거렸던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도 그의 의지력이 강하다는 사실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취 가스를 마신 우딕은 이미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재채기도 멈춘 상태였다.

이내 성건우가 환하게 웃었다.

“네가 정말로 말하는 것을 좋아해서 그렇게 나불거린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내가 너한테 능력을 발휘한 건 언제였을까?”

그가 몸을 굴려 신부에게 접근한 건 단순히 사격을 통해 상대를 우딕 쪽으로 떠밀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단순히 그것만 위해서였다면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어도 상관이 없었다.

건물이 아무리 넓어봤자 명중률에 큰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성건우의 실력으론 이미 충분한 범위였다.

비로소 그의 진짜 목적이 드러났다. 바로 신부에게 억지쟁이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다만 이번에 그는 상대에게 이성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며, 그 행동을 하자마자 후회하게 하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억지쟁이 능력의 효과는 곧바로 사라졌을 것이다.

성건우는 그저 우딕이 신부를 통제할 수 없게 된 상황에 자신의 동작과 말, 표현을 통해 신부의 수다를 유도하면서 장목화에게 최대한의 시간을 벌어주려 했을 뿐이었다.

억지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은 상황이라면 목표는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이 모종의 능력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잘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 경우 억지쟁이 능력은 2~3분 정도 유지되었다.

그러니 설령 성건우가 그 후에도 계속 자신과 장목화의 손에 대항하느라 다른 각성자 능력을 사용하지 못할지라도, 신부를 수다스럽게 만드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성건우의 말을 들으며 점차 고꾸라지던 신부의 눈빛에 불만스러운 기색이 어렸다. 하지만 성건우는 변함없이 웃음을 머금은 채 덧붙였다.

“네가 진 건 너희들이 지성에 반했기 때문이야. 네 하인은 멍청하게 네 명령에만 따를 뿐이지만, 내 동료는 아주 아주 강하거든.”

풀썩.

바닥에 쓰러진 신부는 의식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쯧, 그렇게 알랑거릴 필요 없어.”

돌아선 장목화가 문을 열어 환기하려고 왼팔에 힘을 살짝 주었다. 그러자 전동 셔터가 그대로 들어 올려졌다.

곧장 바깥의 찬 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뚫린 창문을 통해 들어온 바람도 합세해 건물 안의 마취 가스를 다 흩어버렸다.

그 사이 장목화가 물었다.

“내 마취 가스 효력을 기다리는 것 말고 또 어떤 준비를 했는데?”

성건우는 곧장 손에 쥔 아이스모스를 들어 올리더니 자신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에선 공허한 소리만 날 뿐, 총알은 나오지 않았다.

“모든 총에 총알을 세 발만 장전해뒀거든요.”

성건우가 웃으며 설명했다.

장전된 총알은 전의 공격으로 이미 다 소진한 상태였다.

만약 기회가 더 있었거나 필시 사격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성건우는 아이스모스를 버리고 연합202를 꺼냈을 것이었다.

장목화는 이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럼 마지막까지 저 사람을 놀린 거야?”

애초부터 성건우는 자신의 두 손을 통제하느라 애를 먹을 필요가 없었다. 그는 언제라도 신부에게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이 자를 마취시키는 게 계획이었잖아요. 그럼 마취를 시켜야죠. 이미 계획을 성공시킬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요.”

성건우가 진지하게 답했다.

장목화는 웃으며 일단 배윤수와 임보경을 바깥 잔디밭 위에 눕혀두자고 말했다. 덧붙여, 깨어나면 추리 광대 능력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할 계획이었다. 최면 해제는 그다음 상황에 맞춰 방법을 또 마련할 생각이었다.

이 계획을 말하려는데, 갑자기 멀찍이서 밀집된 총성이 들려왔다. 마치 전쟁이라도 발발한 것 같았다.

미간을 구긴 장목화가 급히 이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황야유랑자⋯⋯. 이런!”

그녀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성건우 역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 소리에 장목화의 시선이 성건우에게로 향하자, 성건우도 시선을 느끼고 자발적으로 설명했다.

“제가 보기에 이 신부는 너무 약해요.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장목화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문제점 하나를 발견했어. 신부는 정광용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최면을 걸었을 때 그들의 자살이 실패로 돌아가 자신의 생김새와 능력의 특징에 대해 떠벌리고 다닐 가능성은 생각도 하지 않았어.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지. 그게 이 자의 스타일이든, 아니면 우딕을 노린 함정이었든, 이런 자가 퍼스트 시티라는 대형 세력의 수배를 받고도 여태까지 살아 돌아다녔을 인물이라는 생각은 안 들어. 그러기에는 너무 신중하지가 않잖아.”

잠시 뜸을 들이던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자는 미끼일 뿐인 것 같아.”

* * *

사냥꾼 길드 2층, 회장 사무실.

이곳은 오늘도 여전히 무장 경호원 네 명이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노스 스트리트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진 후, 이곳 사무실에도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허양원이 검은색 전화기를 들자, 수화기 너머 수하가 자신의 드론이 감시한 상황을 보고해왔다.

그에 대해 무슨 명령을 내리기도 전, 다시 남문 쪽에서 격렬한 총성이 들렸다. 불길한 예감에 허양원의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이후로도 한참을 인내심 있게 기다리던 그는 전화를 바꾼 사람에게서 황야유랑자들이 소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도시 안으로 난입할 기세라고 했다.

“이것이 신부가 원하던 상황이었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전화를 끊은 허양원은 새로운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수신자는 도시 방위군 최고 장관이었다.

허양원은 곧 냉혹한 표정으로 지시했다.

“곧장 주력군을 결집해 황야유랑자들을 전부 몰아내. 사망자가 몇 명이 나오든 상관없다.”

뒤이어, 그는 성주 호위대를 관장하는 심복에게도 연락을 취했다.

“호위대를 둘로 나눠. 한쪽은 중무기를 챙겨 제1 병원으로 가 우딕과 함께 신부를 처리하고, 한쪽은 아래층에 모여 날 성주 저택으로 호송해.”

영구 축성뿐만 아니라 지하 벙커도 설치된 성주 저택은 사냥꾼 길드의 이 오래된 건물보다 훨씬 더 안전했다.

게다가 만약 소란이 심화되고 신부가 포위망을 뚫기라도 한다면 위드 시티 내의 정세는 한동안 통제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성주 호위대의 보호를 받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안전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곳으로부터 가까운 북문으로 나가 자신의 장원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도시에 찾아가 의탁할 수도 있었다.

일사불란하게 지시를 마친 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허양원은 후드가 달린 가운을 뒤집어쓴 사람과 함께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무장 경호원 네 명 역시 즉시 각자의 자리로 흩어져 혹시 있을지 모를 습격에 대비했다.

바로 그때였다. 허양원은 왼손등이 급작스럽게 간지러웠다. 무의식적으로 그는 오른손으로 왼손을 몇 번 긁었지만, 가려움은 해소되지 않았다. 오히려 심화될 뿐이었다.

조급해진 허양원은 오른손에 조금 더 힘을 실었다. 그러자 왼손등에는 곧 한 줄기 붉은 흔적이 남았다.

동시에 등, 가슴, 허벅지, 얼굴 등 옷으로 가려진 곳과 가려지지 않은 곳을 막론하고 몸 곳곳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간지러워졌다. 가려움은 긁으면 긁을수록 심해지기만 했다. 꼭 개미 수만 마리가 몸 위를 기어 다니는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옷을 훌훌 벗고 구석구석을 벅벅 긁고 싶었다.

무장 경호원 네 명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극심한 고통에 그들은 심지어 총조차 제대로 쥐지 못한 채 몸을 긁는 데에만 집중했다.

툭, 툭.

총기들 한 자루, 한 자루가 바닥에 떨어졌다.

이들 중 후드와 가운으로 온몸을 가린 비밀스러운 사람만 유일하게 아무런 이상도 보이지 않았다.

“헉⋯⋯.”

복도 반대편 끝, 어느 방에서 약간 놀란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방에서 한 여자가 걸어 나왔다.

긴 금발에 옅은 파란색 눈동자, 좀 거친 피부에 큰 모공을 가진, 위드 시티 사냥꾼 길드의 부회장 크리스티나였다.

“너는 가려움을 느끼지 않는 거냐?”

그녀가 허양원의 비밀스러운 수행원을 향해 물었다.

그 사이, 회장 사무실 근처의 계단으로 세 사람이 내려왔다. 권총과 자라목 기관단총을 쥔 그들의 눈빛은 미친 듯이 온몸을 긁고 있는 허양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세 사람 중 여자는 한 명뿐이었다. 키가 165센티미터 정도 되는, 조금 앳된 얼굴의 여자였다. 그리고 남자 하나는 상당히 준수한 편이었고, 다른 한 명은 온갖 시련을 다 겪은 사람처럼 보였다.

이들은 바로 실종된 구조팀의 나머지 팀원, 위보배, 노기호, 김원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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