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합작 (1)
장목화가 성건우를 살짝 째려보던 그때, 안여향이 말을 맺었다.
“난 상처 부위를 간단히 싸매기만 하고 바로 너희를 찾아온 거야.”
시간은 이제 막 자정을 겨우 넘기고 있었다.
“그건 반 지성교야. 너를 공격한 사람은 신부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자일 가능성이 크고.”
장목화는 지금껏 파악한 정보 일부를 전달했다.
“불쌍한 녀석.”
성건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뭐?”
장목화는 이번엔 성건우의 생각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이내 한숨을 푹 내쉬던 그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바로 반 지성 교육의 폐해 아니겠습니까. 무슨 일이든 다 자기가 직접 해야 하잖아요. 짐만 될 뿐인 멍청한 부하들에게 시킬 수는 없으니까요.”
그 말에 장목화가 피식 웃었다.
“그건 그렇네. 여태까지 이어진 세 차례 습격 모두 신부가 직접 나서서 한 일이야. 수장씩이나 되어서 체면이 말이 아닌걸. 엄청 피곤할 텐데.”
여기까지 말을 잇던 장목화는 문득 생각에 잠긴 채 혼잣말을 이어갔다.
“그 사람이 배윤수 구조팀을 사로잡은 것도 이해될 것 같아. 반 지성교에서는 쓸 만한 수하를 찾아내기 쉽지 않았을 거야. 음, 문제의 원인을 그들에게로 돌려서 분쟁을 일으킬 생각도 있었겠지.”
장목화는 반 지성교가 배윤수 구조팀이 반고 바이오의 직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그들을 노렸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을 사로잡아 이곳에서 흉악한 범죄를 일으키게 한다면 위드 시티, 그리고 위드 시티를 관장하는 퍼스트 시티와 반고 바이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게 될 것이었다.
한편, 안여향은 길드에서 발표하는 임무를 관심 있게 지켜봤던 터라 배윤수, 임보경에 관련한 사건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딱히 장목화의 혼잣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장목화가 안여향에게 말했다.
“넌 오늘 여기서 자는 게 좋겠어. 날이 밝으면 도시 방위군을 찾아가 네가 겪은 일을 신고해. 그리고 그들에게 협조해서 길드에 신부라는 별칭을 가진 반 지성교의 수장을 찾는다는 임무를 발표하는 거야.”
안여향은 배윤수나 임보경을 비롯한 그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으므로, 그녀가 나선다 한들 적들의 경계심을 자극해 일을 그르칠 리 없었다.
“차라리 지금 당장 가는 게 낫지 않아?”
안여향이 물었다.
“도시 방위군만으로는 한밤중에 아무것도 못 해. 길드가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나아. 게다가 아직 해결해야 할 작은 문제도 하나 남아있고.”
장목화의 설명에, 안여항도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좋아.”
이때, 성건우가 손을 들었다.
“팀장님, 전 어디서 자요?”
“당연히 네 침대지! 여향이는 내 침대에서 나랑 부대껴서 자고.”
장목화가 그를 대번에 노려보았다.
“다친 사람한테 너무하네요.”
성건우가 말했다.
“좋아! 그럼 여향이를 네 침대에서 자게 하고, 넌 맞은편 방으로 가. 거기서 여홍이랑 부대껴서 자든가, 저 스툴에서 자면 되겠네.”
장목화는 거리낌 없이 말을 바꿨다.
두 사람의 대화를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렇다고 타인에게 간섭하는 편도 아닌 터라, 안여향은 그냥 장목화의 말대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이 틈을 타 이용해 맞은편 방으로 건너간 성건우는 안여향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백새벽과 용여홍에게도 전해주었다.
하지만 그 방에 머무르진 않고,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스툴에 앉은 채 테이블에 엎드렸다.
* * *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퍼뜩 깨어난 안여향은 자신의 목이 밧줄에 감겨 있는 걸 발견했다. 밧줄의 양 끝을 움켜쥔 건 자신의 손이었다.
벙커 침대 상단에 연결된 밧줄은 그녀의 숨통을 조이기 충분했다.
그런 안여향을 깨운 건 성건우였다.
달빛 아래, 그의 눈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2층 침대에 누워있던 장목화도 언제 깨어난 건지, 어느새 엎드려 아래쪽 침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여향은 목에 걸린 밧줄을 풀고,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
“……이거 내가 스스로 한 거야?”
“그게 바로 내가 해결해야 한다고 했던 작은 문제야.”
장목화가 웃으며 설명했다.
정광용의 경험에 근거했을 때, 최면으로 인한 자살 기도는 한 번만 이루어졌다. 물론 꼭 잠들어 있을 때만 그 효력이 발휘되리라는 법은 없었다.
안여향은 자신이 보고 들었던 것들을 떠올려보았다.
“최면?”
“그런 셈이지.”
장목화는 많은 설명을 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성건우에게 추리 광대 능력을 이용해 최면 효과를 거두게 하지 않은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일단은 신부 능력의 특징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섣불리 최면 효과를 거두려고 했다가는, 그로 인해 생겨난 허점 때문에 도리어 안여향을 해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꼭 필요한 게 아닌 이상, 성건우의 각성자 능력은 최대한 숨기고 싶기도 했다.
“이걸로 해제된 거야?”
안여향이 신중하게 물었다.
“이론상으로는 그래. 넌 더 자. 우리는 계속해서 관찰할게.”
장목화가 답했다.
보통은 이러한 상황에서 불편함을 느끼게 마련이었다. 다른 사람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잠을 자는 게 편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안여향은 아무런 문제도 없이 빠르게 잠들어 버렸다.
* * *
안여향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날이 밝아 있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8시 반이 거의 다 됐을 무렵, 그들은 밖으로 나섰다.
한쪽은 도시 방위군으로, 한쪽은 우딕을 만나기 위해 사냥꾼 길드로 갔다.
장목화와 성건우는 홀 안에 들어서자마자 가장자리 대기 구역에 앉은 우딕을 볼 수 있었다.
“좋은 아침.”
성건우는 매우 상쾌하게 인사했다. 겉으로 보기엔 밤새 한숨도 제대로 못 잔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에 호응한 우딕은 계단을 가리켰다.
“성주가 너희랑 만나겠대.”
“좋아.”
장목화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녀가 바라던 바였기 때문이었다.
우딕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간 두 사람은 10미터 정도 걸어갔을 무렵, 동시에 서로 눈을 맞췄다. 장목화가 먼저 고개를 틀어 성건우를 쳐다보자, 몇 초 후 성건우가 장목화를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복도 끝까지 앞서간 우딕은 무장한 경비 네 명이 지키는 방 앞에 섰다.
낮은 소리로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두 사람은 가지고 있는 총기를 다 제출한 후에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방은 상당히 컸고, 채광이 좋아서 더욱 환해 보였다.
안에는 넓은 사무 책상과 책장 두 개가 있었으며, 곳곳에도 완전무장 한 경호원들이 배치돼 있었다.
책상 앞에 앉은 사람은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듯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조금 나이 들어 보이는 검은색 상의를 입고, 머리도 뒤로 말끔히 빗어넘긴 모습에서 조금이라도 더 성숙해 보이려 애쓴 흔적이 엿보였다.
또한 남자는 레드리버 혈통을 약간 타고난 듯 키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보통 정도였으며, 이목구비가 비교적 뚜렷했다.
우딕이 곧 두 걸음 앞으로 나섰다.
“허 성주님, 그 사람들이 왔습니다.”
허양원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책상 맞은편에 놓인 의자를 가리켰다.
“앉지.”
그의 뒤쪽으론 덩치가 상당히 큰 사람이 서 있었다. 하지만 후드가 달린 가운을 입고 있어 생김새는 하나도 살필 수 없었다.
장목화는 인사한 뒤 성건우와 함께 안내받은 자리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두 사람의 얼굴을 훑어보던 허양원이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배윤수 일행과 한패인가?”
“저희는 그들의 실종 원인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허 성주님, 당시 그들이 성주님을 찾아 무엇을 묻던가요?”
장목화는 상대의 질문을 살짝 피하며 질문했다.
허양원이 웃으며 답했다.
“머신헤븐과 관련한 질문들이었지. 어디서 머신헤븐에 메인 브레인이 있다는 말을 들은 모양이야. 구세계 파괴전에 운용됐던 그 메인 브레인.”
메인 브레인. 장목화는 그 방면의 내용을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이기에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도시의 뇌를 가리키는 메인 브레인이란, 구세계 스마트 시티의 중요 목표였다. 전에 그들이 늪 1호 유적에서 보았던 도시 정보망 통제 센터도 말하자면 메인 브레인의 프로토타입이었다.
완전한 스마트 시티에서는 메인 브레인이 모든 네트워크, 무인 자동차, 공공 지능 로봇을 관리했다. 메인 브레인은 복잡한 알고리즘을 통해 관련 자원을 분배하고, 정확한 노선을 계획하면서 도시의 모든 문제를 뿌리 뽑았다.
이때, 장목화는 곁눈으로 오른손을 들어 입가를 훔치는 성건우를 보았다.
“⋯⋯.”
한동안 말을 잃은 그녀는 몇 초 후에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구세계 파괴전에 이미 투입돼 운용된 메인 브레인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그 말대로라면 구세계 파괴를 겪은 메인 브레인에는 굉장히 중요한 상황이 기록되어 있을 가능성이 컸다. 장목화는 이 점에 기반해 배윤수 구조팀이 왜 위드 시티의 성주 허양원을 만나고자 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허양원은 장목화의 생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지 않나? 어쨌든 구세계는 이미 파괴됐잖아? 나도 잘 모르겠다고 답했어. 우리랑 머신헤븐은 단순한 합작 관계야. 그들은 우리에게 각종 전자 설비와 여러 용도의 로봇을 제공하고, 우리는 석유 제품과 고성능 배터리, 그리고 원자력 발전소에 필요한 각종 자원을 팔지.”
석유 제품과 고성능 배터리, 원자력 발전 재료 등은 위드 시티에서 생산되지 않았다. 다만 이곳은 믿을만한 중간 거래상이었다.
“그럼 머신헤븐의 사람들과 거래를 할 때 뭔가 주의할만한 부분을 발견하거나 하지는 않으셨나요?”
장목화의 이 질문은 직업적인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허양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웃었다.
“그들은 굉장히 원칙주의적이야. 뇌물이라고는 일절 받지 않지. 이곳에 오는 이들은 전부 지능 로봇이거든. 그쪽에 관심이 있다면, 그리고 나를 도와 이 일을 해결해준다면 그들이 거래를 위해 위드 시티에 올 때 소개해주도록 하지. 질문이 있다면 그들에게 직접 하는 편이 낫지 않겠나?”
몇 초간 고민하던 장목화는 정색을 하고 물었다.
“허 성주님, 혹시 누군가 성주님을 암살하려 하고 있나요?”
허양원은 놀란 듯 눈썹을 살짝 추켜 올렸다.
“우딕이 알려 주던가?”
“전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딕이 곧장 부인했다.
“그럼 어떻게 안 거지?”
허양원이 다시 장목화와 성건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장목화가 웃었다.
“찍었습니다. 반 지성교의 신부가 저질렀던 짓에 기반해서요. 그자는 퍼스트시티 원로원의 한 장로를 죽이면서 수배되기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잠시 넋을 놓았던 허양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해서, 방금 두 사람을 봤을 때만 해도 썩 믿음직스럽지는 못하다고 생각했어. 겉만 번지르르한 개살구라고 여겼지. 가져서는 안 될 편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하게 되더군. 하지만 더 이상 얕잡아 봐서는 안 될 것 같아.”
그가 말을 마치자, 성건우가 진지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성주님 같은 고위급 인물이라면 거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정 방면에서 성주님보다 뛰어난 사람을 마주한 상황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상대를 깎아내리기 마련이죠.
예쁘게 생기면 머리는 나쁠 거라고, 강하면 야만스러울 거란 생각이 드는 건 그런 마음에서 비롯되는 거죠. 심리상 우월감을 유지하기 위해서요.”
허양원이 들어 올렸던 두 손을 한데 모으며 답했다.
“일리 있는 이야기야. 그쪽은 심리 분석에 아주 능한 모양이군.”
“수시로 정신과 의사와 왕래하고 있거든요.”
성건우의 말투에서는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치료도 왕래라면 왕래지. 저렇게 발칙한 말을 하고도 쫓겨나지 않아서 참 다행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