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157화 (157/649)

157화. 단서 엮기

홀 안에서 우딕을 찾지 못하면 누구에게 그를 찾는다는 말을 남겨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 장목화는 마침 그를 발견했다. 우딕은 누구를 기다리는지 그녀와 성건우가 즐겨 찾는 벤치 구역에 앉아있었다.

그를 향해 다가간 장목화가 웃으며 말했다.

“새로운 단서를 얻었어.”

“나도 그래.”

트위드 코트 차림의 우딕이 그녀를 맞이하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장목화가 물었다.

덧붙여 성건우가 열정적으로 제안했다.

“그러려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야지. 한눈에 발견할 수 있도록.”

우딕은 그를 깔끔히 무시한 채 본론으로 들어갔다.

“배윤수랑 임보경을 만났다는 사냥꾼 길드 고위층이 누군지 물어봤어.”

‘물어봤다고? 꿈을 통해 찾아냈겠지.’

장목화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면서도 겉으론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누군데?”

“최은, 사냥꾼 관련 사무를 담당하는 부회장이야. 만날 수 있게 해줄게.”

우딕이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가리켰다.

그에 장목화는 트렌치코트를 입은 남자에 관한 얘기는 잠시 접어두고, 성건우에게 눈짓을 했다. 준비하라는 뜻이었다.

* * *

2층으로 올라간 세 사람은 한 방으로 들어섰다. 테이블과 의자만 몇 개 놓인 작은 방이었다. 이곳에 위드 시티 사냥꾼 길드 부회장, 최은이 있었다.

호리호리한 체형의 남자는 코가 매우 큰 편이고, 머리숱은 적었지만 흰 머리는 하나도 없었다.

성건우는 상대를 한동안 자세히 살피다가 불쑥 물었다.

“염색하셨어요?”

최은은 입을 뗐지만,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 그대로 멈춰 있었다. 그렇게 몇 초 후에야 당당히 자신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며 답했다.

“아니요.”

“그렇구나.”

성건우는 약간 아쉽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장목화도 그의 의중이 어렴풋이 짐작되었다. 아마도 성건우의 의형제, 플린에게 염색을 제안할 명분을 놓쳤기 때문이 아닐까.

그때, 우딕이 낭비할 시간 따위 없다는 듯 곧장 이 기이한 침묵을 깼다.

“조금 전 최 회장님께서 한 달 반 전쯤 배윤수 일행을 만났다고 하셨다.”

최은은 우딕을 상당히 신뢰하는 모양이었다. 곁에 한 명의 경호원도 대동하지 않은 그가 테이블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

“앉지.”

장목화과 성건우가 자리에 앉자,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문을 열었다.

“이 일을 언급하고 싶지는 않았어. 그럴 가치도 없고, 불필요한 문제만 일으키게 될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웬걸, 우딕이 그 사실을 알아냈더군요.

대략 한 달하고도 보름 전쯤이었죠. 오전이었어요. 우리 조수가, 웬 사람이 큰 임무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싶다며 날 찾아왔대. 당시 별일도 없었고, 조수가 그들에게 든든한 뒷배가 있어 보인다기에 곧장 그 제안에 응했었죠.

그렇게 내 사무실에서 당신들이 말하는 배윤수와 임보경을 비롯한 그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들은 사실 큰 임무 때문에 날 찾아온 게 아니라 머신헤븐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찾아왔다고 하더군.”

“머신헤븐?”

장목화는 의혹 가득한 얼굴로 상대의 말을 반복했다.

머신헤븐은 지능 로봇 생산기술과 수많은 공장을 관장하고 있는 대형 세력으로, 구산(舊山) 산맥 남쪽 끝, 바다 근처에 자리해 있었다.

상대적으로 비밀스러운 편인 그곳은 주로 로봇 군대만으로 외부와 거래했으며, 여태 그들의 실제 통제 구역에 진입한 세력은 없었다.

그리고 반고 바이오가 자리한 곳은 구산 산맥 서북쪽 끝이었다.

이내 최은 역시 의혹 어린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래. 나도 그들이 왜 머신헤븐에 대해 알려고 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답을 해준다면 적잖은 보수를 지불할 용의도 있다고 했어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난 머신헤븐과 아무런 접점이 없지. 홀 안에 놓인 것이 전부 머신헤븐의 제품이기는 해도, 그 일을 담당하는 건 길드 총회장과 현지 길드 회장뿐이에요. 그래서 난 그들한테 적당한 연줄을 찾아 노스 스트리트로 가서 회장님을 만나보라고 제안할 수밖에 없었지.”

현지 사냥꾼 길드 회장은 성주 허양원이었다.

“어쩐지⋯⋯.”

장목화도 비로소 배윤수 구조팀이 노스 스트리트로 향한 이유를 알았다. 그들은 성주의 저택으로 가서 위드 시티의 성주이자 사냥꾼 길드 회장인 허양원을 만나려던 것이었다.

최은은 앞에 놓인 하얀 찻잔을 들어 차 한 모금을 마신 후, 다시 말을 이었다.

“그 후로는 그 사람들을 본 적이 없지만, 후에 노스 스트리트를 떠났을 거란 건 확신할 수 있어요. 혹여나 이 일로 인해 회장님께 불필요한 문제가 생길까 걱정스러워서 조수와 관련 직원들에게 이 소식을 밖으로 유출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우딕이 대체 어떻게 그걸 알아냈는지, 원.”

최은은 우딕이 갑자기 그 비밀을 알아냈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이때 우딕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장목화와 성건우에게 최은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신호를 보내주었다.

장목화는 최은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만하면 된 것 같네요. 실례했습니다, 최 회장님.”

“괜찮아요. 이 조사로 유호중의 죽음이 확실히 밝혀질 수 있다면 오히려 내가 감사하지.”

최은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가는 세 사람을 배웅했다.

* * *

계단 앞에 이른 장목화가 웃으며 제안했다.

“정보 한 번 더 교환할까?”

“좋지.”

우딕이 승낙하자, 장목화는 곧장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가 반 지성교에게 위협받은 임시 교사 한 명을 찾아냈어.”

그녀는 전후의 과정은 생략한 채 정광용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다. 덧붙여, 도서관 폭발 이후 모여든 인파 속 정광용이 묘사했던 이와 매우 비슷한 트렌치코트 차림의 남자를 보았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우딕의 표정이 점점 무거워졌다.

“그 스타일⋯⋯. 전에 퍼스트 시티에서 활동했던 신부와 진짜 비슷한데.”

바로 흥분한 표정을 드러내는 성건우를 보고, 장목화는 그를 힘껏 째려보며 안정시킨 뒤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차례야.”

우딕은 눈앞에 자리한 계단을 바라보며 한동안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위드 시티에 온 건 우연이 아니야. 누군가의 부탁을 받아서지. 또한 내가 유호중의 죽음을 쫓는 건 마침 그 임무가 발표되었기 때문도, 그 사람이 정보상이었기 때문도 아니야.”

이내 우딕이 계단으로 내려가며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은 몰래 성주를 위해 일하던 자였어.”

이 순간, 장목화는 그동안 찾은 모든 단서가 한데 엮이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사건의 진상은 점점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정답에 가까워지기까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여태 장목화는 지금껏 발생한 사건 사이에 필요한 연계가 빠져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겉보기엔 아무 관계도 없는, 전혀 다른 요소처럼 보이던 배윤수 구조팀과 반 지성교는 기이하게도 분명히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빠진 그 부분을, 그러니까 중앙에서 양쪽을 잇는 요소를 찾아냈다.

위드 시티의 성주, 현지 사냥꾼 길드의 회장 허양원이었다.

천천히 걸으며 생각하던 장목화가 앞에 가는 우딕에게 물었다.

“넌 성주의 초대를 받아서 온 거야?”

우딕은 답하지 않았다.

장목화는 그런 상대에게 빤히 들리도록 혼잣말을 했다.

“성주와 만나고 싶다. 그럼 더 많은 것들을 알아낼 수 있을 텐데.”

우딕은 여전히 아무런 답도 하지 않은 채 길드의 홀로 나아갔다.

* * *

위드 시티 성문.

백새벽은 지프를 몰고 용여홍과 함께 천천히 밖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임시 교사들을 찾던 와중, 한 가지 주의할만한 일을 발견했다.

어제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 아이들을 가르쳤어야 할 임시 교사 하나가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황도명이라는 이름의 그 임시 교사는 열흘에 한 번 휴가를 받아 쉬었다.

그에게 아이를 맡긴 몇몇 학부모가 말하길, 황도명이 그 아이들을 가르친 지는 벌써 1년이 다 돼간다고 했다.

그는 책임감이 강한 편이라 여태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 또한 학비도 저렴하게 받았으며, 아이의 가정형편이 일시적으로 어려워지면 나중에 학비를 받겠다고도 한 아주 선량한 사람이라고 했다.

학부모들은 이틀 정도 더 기다려 보다가 그래도 황도명이 나타나지 않으면 사냥꾼 길드에 의뢰하려 했다고 한다. 줄 수 있는 보수는 많지 않지만 적어도 신용 점수를 노리는 유적 사냥꾼이라면 이 의뢰를 맡으려 하리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위드 시티에서는 원래대로라면 시청이나 도시 방위군이 해야 할 일 일부가 이미 사냥꾼 길드로 이전되어 의뢰 형식으로 발표 및 처리되고 있었다.

그렇게 마침 조사차 찾아온 유적 사냥꾼 백새벽, 용여홍을 만난 학부모들은 아예 두 사람에게 황도명을 찾는 일을 부탁하겠다며 사냥꾼 길드에서 직접 접수까지 했다.

약속된 보수는 2오레이, 신용 점수는 10점이었다.

이후, 백새벽과 용여홍은 학부모들이 제공한 단서에 기반해 황도명의 숙소부터 빠르게 찾아냈다. 그곳의 문지기는 황도명이 정식 휴가 전날 밤 도시 밖의 집으로 간다고 떠난 뒤 여태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황도명의 부모는 도시 밖에 자리한 한 장원의 하인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곳에서 자라난 황도명은 인자한 장원 주인 덕분에 글을 익히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훗날, 주인의 아들을 모시며 한동안 유적 사냥꾼으로 지냈던 그는 공훈을 세워 자유 시민으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다른 이를 때리고 죽이는 것도, 황야로 나가 모험을 하는 것도 원치 않았던 그가 택한 건 임시 교사 일이었다.

백새벽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날이 저물기 전, 성 밖의 그 장원으로 가서 직접 물어봐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 * *

언제나 막히는 성문 앞에서 몇 분간 머물러 있던 국방색 지프는 마침내 위드 시티 밖으로 나왔다.

보조석에 앉은 용여홍은 무의식적으로 밖을 내다보며 눈앞의 광경에 넋을 잃었다. 도시 밖에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도로 양옆에 쪼그려 앉아있거나 철퍼덕 주저앉은 이들로 이루어진 줄이 끝없게 펼쳐져 있었다.

성문으로부터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 줄을 선 이들은 땅굴을 파거나 임시로 간이 천막을 지어놓은 상태였다. 이곳이 또 하나의 황야유랑자 거점이라도 되는 모양이었다.

다들 하얗게 질린 얼굴과 뻣뻣한 표정으로 앞만 바라보며 차가운 바람에 오들오들 떨고 있었는데, 다른 이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이따금 터져 나오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긴 정적을 깨곤 했으나, 그 소리도 그저 이 무력한 분위기만 더 심화시킬 뿐이었다.

그래도 간간이 얼굴에 희색이 피어나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완전무장 한 채 줄 사이를 이리저리 오가던 경호원들에게 선택받은 이들이었다.

그런 행운아들이 떠나고 남은 이들은 동시에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지만, 다시 또 그 예의 뻣뻣한 표정으로 되돌아오길 반복했다.

“다들 전염병이라도 앓고 있나?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용여홍이 혼잣말하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도 위드 시티로 오던 날 이곳에 모여있던 황야유랑자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런 전염병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받기만 하면 전부 도시 안으로 들어가 기회를 찾을 수 있었다.

백새벽이 차 속도를 조금 더 올리며 답했다.

“너무 많아서 그래. 저 사람들을 전부 도시로 들여보내는 건, 도시에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을 여러 개 설치하는 것과 다르지 않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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