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154화 (154/649)

154화. 임시 교사

“만약 내가 우딕을 마주치지 못했다면 그 효과는 영원한 거 아냐?”

다시 이어진 백새벽의 물음에, 성건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잠든 뒤에 아무런 꿈을 꾸지 않거나, 다른 꿈을 꾸게 되면 그 효과는 자연히 제거되게 돼 있어.”

장목화는 백새벽이 안심하는 것을 보고, 결론을 지었다.

“그렇다면 우딕에게는 강제로 잠들게 하는 능력과 꿈에 간섭하는 능력이 있나 보네. 음, 꿈속에서 받은 느낌은 어땠어?”

“종이별을 만지기 전까지는 내내 몽롱했어요. 일반적인 꿈과 거의 다를 것도 없었고요. 제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주위 환경은 달라진 게 없었어요. 이상한 건 하나도 느끼지 못했고요.”

백새벽이 솔직하게 답했다.

장목화는 생각에 잠긴 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가위 말의 실제적인 꿈과는 다르네.”

성건우도 열정적으로 동조했다.

“가위 말의 영향 아래 꾼 꿈은 현실과 다를 바 없이 말짱하게 깨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요.”

장목화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 꿈은 너무 사실적이었어. 그러니까 꿈속에서 받은 피해가 현실에도 그대로 반영됐지.

그래, 우딕이 꿈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은 가위 말의 능력과는 확실히 달라. 가위 말의 능력이 실제적인 꿈이라면, 우딕의 능력은 꿈 조종 정도밖에 안 되는 거야.

하지만 우딕의 꿈 조종 능력이 분명 가위 말에 비해 약한 건 맞는데, 우딕에겐 강제 입면 능력도 있으니 절대 얕잡아 볼 수는 없어.”

그러한 능력에 총까지 사용한다면 그는 거의 무적이라 볼 수 있었다.

이에 관한 이야기를 마치고, 장목화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현재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반 지성교의 사람을 찾는 방법이 무엇인지야.”

용여홍이 한 가지 의견을 제시했다.

“단전되면 한곳에 쪼그려 앉아 전단지를 뿌리고 다니는 사람을 기다릴까요?”

이내 그는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현재 상황으로 보면 위드 시티에 야간 순찰을 하는 이들이 많을 거예요. 그러니 함부로 나가서 돌아다닐 순 없겠죠. 그럼 도서관 주위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그들이라면 혼란한 틈을 타 도서관에 한 번 더 불을 지르려 할지도 모를 것 같은데.”

“지난 화재 사건 이후 도서관에 완전무장 한 도시 방위군이 배치됐어.”

장목화는 도서관에 출입해봐서 그곳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잠시 후, 성건우가 좀 난감하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자료가 조금 더 상세했다면 좋았을 텐데. 반 지성교의 성찬이 무엇인지만 알았어도 관련 점포나 시장을 조사해볼 수 있었을 거예요.”

“⋯⋯그것도 아이디어라면 아이디어인데.”

이 정신질환자 동료는 언제나 일반인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긴 해도, 또 그의 의견을 인정하지 않을 순 없었다.

“우딕에게 물어보거나 회사에 전보를 보내 문의하자. 그래, 무선 통신기를 하나 장만해야겠어. 항상 진병욱한테 의지할 순 없잖아.

우리만의 무선 통신기가 생기면 꼬리를 잡히더라도 그 사람까지 발각당하지는 않을 테고, 불필요한 절차도 대폭 줄일 수 있을 테니까. 중요한 순간에는 1분 1초가 아쉬워지는 법이잖아.”

그리고 장목화가 주위를 한번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이것 말고 고려해볼 만한 방향도 있어. 다들 생각해봐, 반 지성교는 지식을 파괴하려 해. 그럼 지식의 운반체인 책 말고 또 어떤 집단을 노릴까?”

“선생님!”

어릴 때부터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답게, 용여홍은 반사적으로 답변했다.

장목화도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위드 시티 내 정식 학교 교사는 전부 노스 스트리트에 살아서 안전한데, 다른 사람들을 잊으면 안 돼. 모든 황야유랑자 거점에 해자 마을과 같은 공립 학교가 있는 건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글이라도 가르치려 하는 사람들은 늘 있기 마련이니까.

그런 생각을 가진 가족들이 모여 각자 물자도 내놓고, 몇 달간 아이들을 가르칠 겸임 교사 한둘을 초빙해. 이후의 교육은 상황에 따라 결정되고.

너희들도 봤다시피 위드 시티 주민들의 생활 환경은 대부분의 황야유랑자 거점 내의 사람들보다 훨씬 나아. 인구도 적지 않고.

그렇다면 아이들을 노스 스트리트의 학교로 보내지도 못하고, 직접 가르칠 시간이 없거나 능력이 없는 가정들은 한데 모여 선생님을 초빙하려 하지 않겠어? 그리고 그런 교육을 전업으로 삼는 사람도 당연히 있지 않을까?”

백새벽이 얼른 말을 받았다.

“맞아요. 수많은 유적 사냥꾼들은 다 문맹이에요. 그래서 사냥꾼 길드에서 임무를 받는 것도 어려워하죠. 말로 듣고 물어서 임무를 받으려면 시간이 걸리고요. 그런 사람들도 돈과 시간 여유만 있으면 10명, 20명씩 모여 선생님을 모시고 글을 익혀요. 위드 시티에서는 그런 선생님을 임시 교사라고 부르죠.”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는 또 나뉘어서 이 임시 교사들을 찾아간 다음에 그 사람들이 최근 위협을 받지는 않았는지, 만일 위협을 받았다면 무슨 이유로 받은 건지 확인해보자.”

* * *

방을 나온 장목화, 성건우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가 남이 이모와 마주쳤다. 단아하고 우아한 그녀는 둘을 향해 여유로운 웃음을 보였다.

“둘 다 아주 침착하네.”

“이모도 그런 것 같은데요? 다른 사람들 일이랑 저희가 무슨 상관이겠어요? 전 단지 그 사람들이 위드 시티 하늘에 구멍을 뚫어버리면 어쩌나 걱정스러울 뿐인데요.”

장목화가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남이 이모도, 장목화도 말투와 호칭 모두 편하게 하고 있었다.

또한 이미 입을 맞춰놓은 터라 다들 약속이나 한 듯 빠르게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그런 뒤, 각자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려는데, 장목화가 갑자기 남이 이모를 불러 세웠다. 뭔가 생각이 난 게 있어서였다.

“아, 남이 이모, 혹시 근처에 알고 계시는 임시 교사는 없나요?”

남이 이모는 의혹 가득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임시 교사를 고용하려고?”

생김새로 보나, 옷차림으로 보나 두 사람은 문맹 같아 보이진 않았다.

“그 업계에 대해서 좀 알고 싶어서요. 그런 임무를 받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유적 사냥꾼이란, 받을 수 있는 임무라면 어떤 임무라도 놓치지 않고 싶어 하는 법이니까요.”

장목화는 본능적으로 그럴듯한 이유를 꾸며냈다.

그 순간, 곁에 있던 성건우가 입을 열었다.

“설명이 지나치게 기네요.”

장목화는 언제나처럼 그를 노려보았지만 심하게 짜증스럽지는 않았다. 어차피 남이 이모가 이 말을 믿지 않으리라는 것도 자명하기 때문이었다.

유진 같은 자를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손쉽게 잡아 온 이들이 어떻게 귀족 자제의 가정 교사도 아닌 고작 임시 교사 임무를 받으려 하겠는가? 내부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믿지 못할 이야기였다.

눈치가 빠른 남이 이모도 구체적인 이유를 캐묻는 대신 웃으며 말했다.

“이 건물에도 한 명 있어.”

“몇 호실에요?”

장목화의 물음에, 남이 이모가 틀어 올린 머리에서 몇 가닥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돌돌 말며 입을 열었다.

“여기 살진 않고, 매일 오후 2시에 와서 1시간 반 동안 수업해. 하하, 이 뜰을 중심으로 여러 건물의 아가씨들 한 10명 정도가 모여서 초빙한 거야.

어젯밤에 본 아가씨들도 전부 그 수업을 듣고 있어. 그 애들은 윤복 총포사에서도 어느 정도 배당을 받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금전적인 여유가 있는 편이거든. 원한다면 걔들한테 안내해달라고 할게. 여자 선생이야.”

남이 이모는 여자란 말을 정확히 구분하고자 레드리버어를 사용했다.

또한 딱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장목화는 남이 이모가 말하는 아가씨가 전업이든, 아르바이트든 몸을 팔아 돈을 버는 여성임을 알고 있었다.

이내 장목화가 허기가 진 듯 배를 쓰다듬는 성건우를 보고 말했다.

“좋아요. 그럼 저희는 일단 나가서 점심 먹고 올게요. 2시 전에 저희 방으로 찾아와달라고 전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장목화는 어젯밤 자신들이 남이 이모를 비롯한 그들의 복수를 도와줬던 건 다 잊은 듯, 이미 그 일은 너무나 오래되어 언급할 필요도 없다는 듯 마음을 다해 고맙다고 말했다.

* * *

오후 1시 50분.

누군가가 장목화, 성건우의 방문을 두드렸다.

사실 일찍이 인기척을 느낀 성건우와 장목화는 진즉에 문 앞에서 기다리던 중이었다. 이윽고 장목화가 자신들을 찾아온 아가씨를 웃으며 반겼다.

“마침 나가려던 참이었는데.”

이 아가씨는 어젯밤 유진을 죽인 그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굉장히 커다란 눈에 귀를 살짝 덮는 단발머리를 한 그녀는 전체적으로 이지적인 분위기였다. 거기다 인상은 상당히 어려 보여서 겉으로 봐선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수업까지는 아직 10분 남았어. 난 고상아, 우리 어젯밤에도 봤지?”

한담 후에 이어진 소개에, 장목화가 자조하듯 말을 받았다.

“난 이름까지 밝히진 못하겠네. 그럼 가명을 쓴 이유도 없어지니까. 그냥 큰 흰둥이라고 불러. 그리고 얘는 이름이 없어. 그냥 야, 하고 부르면 돼.”

이는 아까 전 남이 이모 앞에서 자신을 방해한 성건우에 대한 복수였다.

고상아는 대꾸를 하는 대신 곧장 돌아섰다.

“꼭대기 층이야. 거기가 햇빛이 잘 들거든.”

오후 1시 반에서 5시 반까지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고상아는 어젯밤에 봤던 것보다 훨씬 화려한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그 스카프에 잠시 시선을 뒀던 장목화는 두어 걸음 앞서가 그녀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함께 걸으며 직업적 습관인 양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운을 뗐다.

“어쩌다 돈을 모아서 임시 교사를 고용할 생각을 했어?”

고상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서서히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실수로 애를 갖게 됐어. 이미 생긴 애를 차마 지울 수가 없어서 결국 낳았지. 낳고 보니까, 나처럼 살게 하고 싶지는 않더라고. 글자라도 익히면 그 애는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

장목화도 동조했다.

“확실히 그렇지. 위드 시티의 정세는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있잖아. 글을 읽을 줄 안다는 건 분명한 이점이고. 애는 이미 교실에 가 있어?”

그녀는 임시 교사가 수업을 진행하는 장소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서, 그냥 제일 흔히 쓰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 말에 고상아가 웃었다.

“겨우 두 살인 애를 어떻게 보내겠어? 애는 남이 이모한테 맡겨뒀어.”

길은 계단으로 이어졌다. 위층으로 올라가며 장목화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럼 일단 스스로 배운 다음에 애한테도 가르치려는 거야?”

고상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난 아직 젊고 인기도 꽤 많아. 선택의 여지가 있고, 수입도 나름 안정적인데다 총포사에서 받는 배당금도 있어서 임시 교사를 고용할 수 있었어.

몇 년 후에, 우리 정안이가 커서 직접 수업을 들을 수 있을 때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겠어? 지금만도 못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잖아.

그래서 나라도 일단 먼저 배워둬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럼 적어도 내가 직접 우리 애를 가르칠 수 있는 거잖아.”

“맞아, 장래를 대비하지 않으면 코앞에 근심이 생긴다는 말도 있잖아.”

장목화가 대꾸했다.

짝짝짝.

뒤에서 쫓아오던 성건우도 손뼉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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