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대책 (1)
성건우는 복기를 이어나갔다.
“그다음으로 기사에게 능력을 발휘했죠. 주차장에 등불도 없었고 상대와 일부러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기도 했으니 그 사람 역시 제 생김새를 확인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근데 추리 광대 능력이 노출될 가능성은 있어요. 제가 그 사람에게 경호원 중에 수많은 배신자가 숨어있다고 말했거든요. 보스가 빠져나간 주차장에 기사가 남아있는 것을 발견한 뒤엔, 잔뜩 흥분해서 경호원들한테 마구 발포하며 새로운 총격전을 벌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장목화가 칭찬했다.
“아주 잘 했어. 능력이 드러나는 거야 상관없지. 그 능력이 너와 연관되지만 않으면 되니까. 근데 그 기사, 굉장히 날렵하게 숨던데. 그래서 난 그 사람을 겨눌 수도, 쏠 수도 없었어.
차에 숨어있었을 때 유진의 경호원 중에 각성자가 있거나 유진 본인이 각성자일 수도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걱정 안 됐어? 특수한 능력으로 차에 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르잖아.”
당시에는 너무 급박한 상황이었던데다가 성건우가 꽤 자신 있어 보였기 때문에 장목화도 따로 묻지는 않았었다.
성건우는 매우 침착했다.
“각성자라면 누구나 나름의 위장을 통해 다른 각성자에게 감지되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연구 정신에 입각한 장목화는 곧바로 질문을 이어갔다.
“모습이 발각되거나 발소리를 들키면?”
“위장은 효력을 잃게 되죠. 상대가 오감을 통해 존재를 확인할 수 있게 된 순간 위장은 모든 힘을 잃게 됩니다.”
성건우가 사실대로 답했다.
“신기하네⋯⋯.”
짧게 감상을 표한 그녀는 유진 일당 중 전기 신호를 감지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쩔 뻔했냐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애쉬랜드에서 안정적으로 유전자를 개량하고 그에 상응하는 원액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은 반고 바이오와 화이트 기사단 두 세력밖에 없었다. 그 둘 중에서도 반고 바이오의 유전자 개조 시술은 높은 성공률을 보장했다.
또한 전기 신호를 감지할 수 있도록 하는 유전자 개조 기술은 반고 바이오의 비밀 프로젝트로, 아직 충분히 발전되지 않았더라도 분명 독자적이었다.
다만 장목화도 이를 완전히 장담할 수는 없었다. 제8 연구원처럼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곳에도 그와 비슷한 기술이 있을 진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복기를 이어나가던 성건우는 유진이 차에 오르자마자 자신을 쏴 죽이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건너뛰고 말을 이었다.
“차에는 흔적이 남았을지도 모르지만, 팀장님이 폭발로 날려버렸죠. 돌아오는 길에도 팀장님은 저와 줄곧 거리를 유지했고요. 혹여나 마주칠지 모르는 사람에게 우리 셋이 일행이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요.
또 감시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 위장을 해제했으니, 아무리 목격자라도 저희와 이 사건을 연관 짓지는 못할 겁니다.”
얌전히 듣고 있던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쯤이면 됐어. 가장 큰 문제는 네가 유진을 직접 쏴 죽이지 않고 생포하려고 한 탓에 수많은 변수가 생겼다는 거야. 이게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지. 다행히 별다른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고 상황도 대충 해결되긴 했지만.”
그리고 그녀가 문득 의심스럽다는 듯한 눈빛으로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혹시 생포하는 것 외에 다른 목적도 있었던 거야?”
잠시 침묵하던 성건우가 답했다.
“그자를 놀라게 하고 싶었습니다.”
“⋯⋯.”
어디서부터 욕을 해야 할지 몰라서, 장목화는 그만 말문이 턱 막혔다.
바로 그때였다. 바깥에서 돌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벌떡 일어난 장목화는 곧장 테이블 쪽으로 다가가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직 전기가 끊기지 않은 때라 거리 가로등이 밝혀져 있었다. 덕분에 장목화는 기관단총을 든 올리브색 제복 차림의 도시 방위군 두세 명이 바로 앞 골목길에 들어와 행인들에게 질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성문 쪽 불빛도 훤했다. 꽤 많은 이들이 모여있는 듯한 그곳도 소란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유진의 노예 포획대가 전부 도시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건가? 자신들의 손으로 범인을 잡아 보스의 복수를 하겠다고?”
현재 상황에 근거해 판단을 내리던 장목화가 홀연 미소를 지었다.
“벌집을 건드린 모양이네.”
골목길 안 도시 방위군은 귀가 중인 행인 몇몇과 아직 문을 연 가게 사장들을 탐문 하더니 결국 다른 곳으로 떠났다. 아무 수확도 없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성문 쪽에서는 여전히 큰 기척이 들려왔다. 사그라들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똑똑똑-
이때, 누군가 장목화와 성건우의 방문을 두드렸다.
장목화는 문을 향해 돌아서서 덤덤하게 물었다.
“누구세요?”
“저예요.”
용여홍이었다.
성건우는 그제야 그쪽으로 다가가 문을 열어주었다.
문밖에 두 사람이 서 있다는 것은 감지할 수 있었으나 상대의 정체까지 파악할 수는 없어서, 장목화와 성건우도 굳이 질문을 한 것이었다.
또한 조금 전까지 골목길 쪽에 집중하고 있었던 터라, 방문자가 맞은편 방에서 온 것인지까지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기도 했다.
곧이어 안으로 들어온 용여홍이 약간 겁먹은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까지 조사하러 오지 않을까요?”
용여홍은 백새벽이 완전히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 난 뒤에야 신중히, 또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위드 시티 사람들이 어떻게 바로 우리라고 특정 짓겠어?”
장목화의 목소리에는 강한 자신감이 어려 있었다.
이에 용여홍의 마음도 적잖이 안심되었다.
장목화는 백새벽을 한번 살펴보았다. 눈자위가 살짝 붉게 부어있기는 하지만 상태는 꽤 좋아 보였다. 장목화도 비로소 살짝 웃다가 말을 덧붙였다.
“설령 정말로 발각된다 해도 상관없어. 우리는 이미 철수 계획도 다 세워뒀잖아? 남이 이모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만 데리고 가면 돼. 그들이 다른 곳에라도 새로운 가게를 열 수 있게.”
일단 뜰에 진입한 뒤, 차를 몰고 이스트 스트리트 끝으로 달리는 것이 그들의 철수 계획이었다. 그곳에는 평소 닫혀 있는 성문이 하나 있었고, 그 문을 지키는 방위군의 숫자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다.
구조팀은 사신 바주카포를 이용해 그 문을 억지로 날려버리곤, 어두운 밤을 타고 밖으로 빠져나갈 작정이었다.
이런 건 애쉬랜드에선 그다지 드문 일도 아니었다. 힘이 센 자가 곧 법이라는 진리를 신봉하는 여러 유적 사냥꾼은 급한 상황에서는 어떤 수라도 썼다. 성문을 부수고 달아나봤자 앞으로 위드 시티에 방문하지 못하게 될 뿐이었다. 자신을 노리는 수배령이나 임무가 공포되었는지만 신경을 쓰면 되었다.
실력이 막강하기만 하면 오히려 임무를 받고 몰려든 유적 사냥꾼들을 해치울 수도 있었다. 또한 이들처럼 대형 세력을 등에 업은 외부인이라 현지에 친구가 없는 경우에는 더 거리낌 없이 도시를 파괴할 수 있었다.
위드 시티의 규칙은 사실 이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하기 위해선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그러지 않는다면 무슨 말썽을 일으키기도 전에 현장에서 박살이 나버릴 것이었다.
용여홍도 철수 작전을 생각하니, 마음이 전보다 더 편안해졌다.
이때 장목화가 화제를 전환했다.
“하지만 우리 작은 흰둥이한테는 문제가 좀 있어. 유진은 너랑 만난 지 1시간도 채 안 돼서 기습을 받았어. 누군가는 분명히 널 의심할 거야.”
주차장에서 죽은 경호원은 지하 시장에서 유진을 보호하던 두 사람 중 한 명이 아니라 댄스 플로어에서 대기하던 자였다.
이 말을 듣고, 성건우가 주먹쥔 오른손으로 왼 손바닥을 쳤다. 그의 얼굴에는 아쉽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왜 그래? 또 무슨 생각하는 거야?”
장목화가 물었다.
“유진을 통제한 후에 곧장 차를 돌려서 남은 경호원들까지 다 죽여버렸어야 한다는 생각이요.”
성건우는 거침 없이 답을 했다. 전부 죽여서 목격자를 제거해버렸다면 이 사건을 백새벽과 연관 지을 사람은 없었으리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순간 말을 잃은 장목화는 몇 초간 침묵 끝에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랬다면 더 큰 문제가 일어났을 거야. 시간이 지연될수록 현장을 떠나기 더 어려워졌을 테니까.
게다가 그 경호원들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어. 네게 각성자 능력이 있다 한들 그들 모두를 처리할 수는 없었을 거야. 심지어 너마저 위험해졌을지도 몰라. 개중 한둘이 도망이라도 쳤다면 네 정체는 그대로 노출되었을 거고.”
장목화의 말이 끝났을 무렵, 성문 쪽 소란이 점차 잦아들기 시작했다.
이내 장목화가 백새벽에게 물었다.
“유진한테는 적이 많지?”
“네, 이권 다툼을 이유로 그자를 죽일 동기를 가진 이들도 아주 많고요. 위드 시티만 두고 봐도 그 사람을 적대시하는 사람과 세력이 상당히 많아요.”
백새벽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곧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럼 됐어. 유진의 노예 포획대 규모는 어떻게 돼? 화력은?”
그 질문에 돌연 성건우의 눈이 반짝거렸다.
백새벽은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퍼스트 시티의 노예 포획대는 두 종류로 나뉘어요. 하나는 군대와 연관된 반 정규 조직이고, 다른 하나는 연줄을 통해 노예 포획증을 발급받은 뒤 알아서 형성한 조직이죠. 유진의 노예 포획대는 후자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포획대에 속한 이들의 수는 5, 60명 정도예요. 가지고 있는 차도 여러 대고, 총기와 대포를 보유하고 있기도 하죠. 평범한 황야유랑자 거점 하나 정도는 충분히 파괴할 수 있을 정도예요.”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던 백새벽이 다시 말을 이었다.
“유진은 퍼스트 시티 원로원에 속한 한 장로의 심복이에요. 그자가 이끄는 포획대는 어쩌면 제식 무기를 가지고 있을지도 몰라요.”
“어쩐지⋯⋯. 유진의 포획대가 감히 위드 시티에 쳐들어오려 한 데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네.”
장목화가 말을 받았다.
물론 성문의 상황을 직접 확인한 건 아니었으니 어쨌든 이건 그녀의 추측에 불과했다.
느릿하게 숨을 토해내던 장목화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지금 고민되는 건 우리 작은 흰둥이야. 앞으로 이틀간 새벽이를 밖에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가 문제야.
내보낸다면 분명 누군가 새벽이를 조사하려 하겠지. 새벽이는 사건 현장에 나타난 적이 없는 데다 혐의도 불분명하지만, 그 절차는 반드시 이뤄질 거야.
게다가 지금 여긴 회사가 아니잖아. 회사 아닌 곳에서 사건을 조사하는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어쩌면 새벽이를 따라 이 건물을 둘러보려 할 수도 있어. 자칫 잘못했다가는 모든 게 들통날지도 몰라.
그렇다고 이틀간 여기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면, 유진이 습격을 받음과 동시에 자취를 감춘 새벽이가 더 큰 의심을 받게 되지 않을까?”
잠시 고민하던 백새벽이 솔직하게 말했다.
“저도 지금으로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괜찮아. 내가 좀 더 생각해보고 내일 아침에 결정하도록 할게. 만약 그때까지도 결정을 못 내리겠다면 다 같이 토론하지, 뭐.”
일단 백새벽을 위로한 장목화가 주위를 한번 둘러보며 웃었다.
그 순간,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방 안의 불이 일제히 꺼져버리더니 골목길 가로등도 어둠에 잠겼다. 단전 시간이 된 것이었다.
바깥에서 들려오던 시끄러운 소리도 적잖게 줄어든 상태였다. 장목화도 더 이상 걱정하지 말고 이만 자라며 용여홍과 백새벽을 방으로 돌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