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145화 (145/649)

145화. 행동력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성건우가 불쑥 물었다.

“유진이라는 사람, 어떻게 생겼어?”

안 그래도 팀원들에게 유진을 조심시키려고 했던 백새벽은 망설임 없이 그의 생김새를 묘사했다.

“키는 170센티미터 정도이고, 머리를 박박 밀고 퍼스트 시티를 상징하는 늑대 문신을 새겼어. 육체에 기계적인 개조를 진행했지.

들리는 말에 의하면 개조의 핵심은 인조 심장 이식이라고 해. 덕분에 인간을 능가하는 위력과 여러 가지의 강력한 수단을 갖게 됐대. 어떤 위력과 수단인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비밀에 부쳐져 있어서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어.

또 그 사람은 열을 극도로 꺼려. 지금과 같은 날씨에도 반 팔에 반바지 차림이야. 어쩌면 그것도 기계 개조와 관련되어 있는지 몰라.”

생각에 잠긴 장목화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싼값에 개조한 탓에 기계 산열 부분에 문제가 생기기라도 한 걸까?”

성건우의 질문이 이어졌다.

“어디에 있는데? 동료는 몇 명이고?”

복잡했던 백새벽의 심경도 일련의 질문에 적잖이 옅어진 듯했다. 그녀는 이제 살짝 의심스럽다는 눈빛으로 성건우를 보고 있었다.

“나도 방금 막 만난 거라 잘 몰라. 근데 그 사람은 언제나 경호원을 적잖게 거느리고 다녀.”

성건우는 더 이상의 질문을 이어나가는 대신 침묵했다. 장목화는 그런 그를 힐긋 바라보다가 백새벽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우린 최근 흩어져서 다녔으니 나랑 건우가 네 동료란 건 모를 거야. 너희들은 당분간 외출할 때 좀 조심해야겠지만. 음, 지하 시장 사람들이 임보경을 모른다니 나랑 건우는 술집과 나이트클럽을 돌아다니면서 다른 단서가 없는지 살펴볼게. 춤에 대한 쟤 욕망도 해소해 줄 겸.”

고개를 끄덕이던 백새벽은 그다지 크지 않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유진도 이 도시에 머물고 있을 거예요. 그 사람은 예쁘장하게 생긴 젊은 여자들, 남자들을 납치해 퍼스트 시티 귀족들이나 광산 감독들에게⋯⋯.”

그녀의 말은 제대로 맺어지지 못하고 끝나 버렸다.

진지하게 경청하던 장목화가 자신의 금속 와우를 만지작거리며 대꾸했다.

“괜찮아, 우리는 반고 바이오 사람이잖아!”

살기가 등등한 목소리였다. 말을 마친 장목화는 더 이상 꾸물거리지 않고 성건우와 함께 방에서 나가 뜰로 내려갔다.

백새벽은 문밖으로 사라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다가 모든 힘을 잃은 듯 1층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내 뭔가를 찾으려는 듯 오른손으로 침대 위를 훑는데, 그녀의 눈앞에 회색 스카프가 들어왔다.

용여홍이 이미 바닥에 떨어진 스카프를 주워서 건넨 것이었다.

* * *

윤복 총포사 뒤뜰로 나온 장목화는 곧장 출구로 향하며 성건우를 힐끔 바라보았다. 곧이어 시원한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내가 데리고 나오지 않았으면 뭐라고 변명할 작정이었냐?”

“화장실에 간다고요.”

성건우는 미리 준비해둔 답을 했다.

장목화가 피식 웃었다.

“화장실 간다기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텐데?”

“변비에 걸렸다고 하면 되니까요.”

성건우의 답은 여전히 진지했다.

“⋯⋯.”

장목화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코와 입을 가렸다.

그로부터 2초 후, 옆쪽으로 시선을 돌린 그녀가 헛기침을 했다.

“아, 참. 우리 작은 흰둥이가 마지막에 뭐라고 한 거야? 조금밖에 못 들었는데 다시 물어보기가 좀 그렇더라고.”

성건우는 비웃는 대신 진지하게 백새벽의 말을 반복했다.

말을 듣는 내내, 장목화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곧이어 성건우의 말이 다 끝나자, 장목화가 입꼬리를 슬쩍 말아 올렸다.

“너 이제부터 하고 싶은 건 다 해도 돼. 내 요구 조건은 딱 두 개야.”

성건우의 미간이 점차 풀어졌다.

“알겠습니다.”

“알겠기는! 난 아직 내 요구 조건이 뭔지도 말하지 않았는데.”

호통을 치던 장목화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한숨을 토해내었다.

“첫째, 배윤수 팀의 실종 원인 조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 둘째, 확신이 없거나 정체가 들통날 것 같은 상황에서는 정보 수집 모드로 전환해. 기회는 앞으로도 많을 테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은밀하게, 그리고 신중하게 굴라는 주문이었다.

“알겠습니다.”

성건우는 전에 했던 답을 반복한 뒤 곧장 돌아서 지프차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는 트렁크를 열고 야구 모자 하나를 찾아냈다.

“그걸 쓴다고 뭘 숨길 수 있겠어? 음, 옷도 갈아입을래? 그래, 아예 다 바꿔 입는 거야.”

장목화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성건우를 따라 야구 모자를 썼다. 푹 눌러쓴 야구 모자는 장목화 얼굴의 절반을 가렸다. 비교적 어두운 곳에서는 충분한 위장 효과를 발휘할 것 같았다.

성건우 역시 모자를 푹 눌러쓴 뒤 답했다.

“의식 같은 겁니다.”

장목화는 못 말린다는 듯 눈동자를 위로 굴리며 그에게 신경을 꺼버렸다.

이내 뜰 밖으로 나가 사우스 스트리트로 접어든 그들은 곧장 와일드울프 앨리로 향했다.

* * *

시각은 아직 8시 반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술집과 찻집, 나이트클럽 같은 곳에서 흘러나온 빛과 아직 꺼지지 않은 가로등의 불빛이 행인들의 발밑에 각기 다른 그림자를 그리고 있었다.

머지않아 장목화와 성건우는 나이트클럽 ‘오늘’을 찾았다.

안으로 들어가니, 싸늘한 바깥과는 전혀 다른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음악 소리는 어찌나 큰지 머리가 다 울릴 정도였다.

끊임없이 바뀌면서 돌아가는 색색의 불빛 아래, 성건우는 마치 집으로 돌아온 것처럼 박자에 맞춰 몸을 가볍게 흔들기 시작했다.

장목화는 그 꼴을 보고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뒤틀었다.

하지만 성건우는 춤을 추는 사람들 틈바구니로 파고드는 대신, 바 테이블 쪽으로 다가가 적당한 자리에 멈춰 섰다. 그의 시선은 지하 시장으로 통하는 문을 슬쩍 스치고 지났다. 백새벽이 언급했던 바로 그 문이었다.

백새벽과 용여홍이 말하기론, 그들이 이곳을 떠났을 때만 해도 유진은 아직 그 안에 남아있었다고 했었다. 다만 지금은 두 사람이 떠난 그 이후로 시간이 많이 지난 터라 유진이 떠났을지는 알 수 없었다.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한 성건우가 큰 소리로 말했다.

“1시간 정도 기다리죠.”

1시간이 흐른 뒤에도 목표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계획을 바꿔야 했다.

‘꽤나 계획적이네.’

장목화는 성건우와 함께 방안을 세우며 좀 더 세세한 부분을 지도하고 싶었지만 곧 포기했다. 일단은 상대가 어떤 수작을 부릴지 지켜볼 작정이었다. 만약 성건우의 계획에 허점이 있다면 뒷수습 역시 팀장의 몫이었다.

강렬한 비트 속에서 장목화 역시 가볍게 몸을 흔들었다. 이런 곳에서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오히려 더 눈에 띄고 이상해 보였다.

그러는 와중 그녀는 가까이 다가와 함께 춤을 추려 하는 이들을 물리치는 한편 성건우에게 접근하는 이들을 저지했다.

야구 모자도 푹 눌러썼고, 요란하고도 어스름한 빛 때문에 생김새가 잘 보이지는 않지만 두 사람의 뛰어난 몸매까지 가려지지는 않은 탓이었다.

그렇게 10분 정도 지난 그때, 바 테이블 근처 나무 문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세 사람이 걸어 나왔다.

가장 앞선 이는 박박 민 머리에 검은색 티셔츠, 선명한 색의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의 뒤로 경호원 두 명이 따라 붙었다.

남자의 특징은 워낙 두드러져서, 장목화는 단번에 그가 유진임을 알아챘다.

목표를 확인한 그녀가 고개를 돌려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목표를 급하게 쫓아나가거나 곧장 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기는 짓은 하지 말고, 일단 진정부터 하라고 충고하는 의미였다.

하지만 뜻밖에도 성건우는 장목화가 걱정했던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음악에 푹 빠진 듯 좌우로 몸만 흔들고 있을 뿐이었다.

유진 일행이 나이트클럽 옆문 근처에 이르자 그 주위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이들 중 두 명이 일어나 그 뒤에 따라붙었다. 그와 동시에 댄스 플로어에서 몸을 흔들고 있던 이들 중에 두 명이 또 우뚝 멈춰 서더니 옆문으로 향했다.

그들 모두가 유진이 몰래 숨겨둔 경호원들이었다.

“지금이야.”

장목화가 곧장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시끄러운 음악에 완전히 묻혀 버렸으나, 성건우는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꼭 유진의 경호원 같은 모습이었다.

계속 유진 일행을 따라가던 그는 앞장선 사람이 멈추면 자신도 따라 멈췄고, 앞장선 사람이 걸으면 또 맞춰서 따라 걸었다. 미행하고 있단 걸 숨길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어 보였다. 성건우는 지금 유진 무리를 따르고 있음을 당당히 드러내고 있었다.

이에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가 싶던 맨 뒤쪽 경호원 두 명이 반응을 보였다. 한 명은 계속 나아갔지만, 한 명은 옆문 근처에 남아 성건우를 가로막았다.

그는 성건우가 근처에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어스름한 조명 속에서 외투를 살짝 젖혀 권총을 내어 보였다.

남자가 낮게 깐 목소리로 물었다.

“형씨, 지금 뭐 하는 거야?”

푹 눌러쓴 모자로 얼굴을 가린 성건우가 상대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뭐 하는 거냐고? 잘 봐. 너한테 무기가 있고, 나한테도 무기가 있어.”

성건우는 동시에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고, 그 안에 들어있던 권총을 반 정도 꺼내 보였다. 아이스모스였다.

이를 확인하고 경호원은 약간 긴장하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총을 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성건우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방금 넌 춤을 추고 있었지, 나도 춤을 추고 있었어. 그러니까⋯⋯.”

순간 멍한 표정을 드러낸 경호원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너도 보스의 비밀 경호원이냐?”

성건우가 진지하게 설명했다.

“난 초자연적인 능력에 대한 저항 전문이야. 평소엔 여기 없어. 보스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야? 내가 받은 소식으론 누가 보스를 몰래 죽이려 한다는데.”

순간 경호원이 흠칫 놀라며 말했다.

“주차장으로 갔어. 주둔지로 돌아갈 예정이거든.”

“골목 끝에 있는 그 주차장?”

위드 시티에 온 지 얼마 안 된 경우, 주차장이라는 말만 들은 상태에서는 당연히 이스트 스트리트를 찾아 나설 것이었다.

하지만 성건우는 이전에 장목화와 이곳저곳을 바쁘게 돌아다닌 덕분에 노스 스트리트를 제외한 위드 시티 나머지 구역을 훤히 다 알고 있었다. 거기에 수시로 수제 지도를 들여다보며 복습을 하기도 했다.

경호원은 사실대로 고했다.

“맞아. 나는 얼른 돌아가 보고부터 해야겠어.”

그에 성건우는 상대를 차근차근 잘 타일렀다.

“침착해.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적들 경계심만 높이게 된다고. 걱정할 것 없어, 내가 있잖아. 보스는 오늘 무슨 차를 탔지?”

노예 포획대에 차가 한 대뿐일 리는 없었다.

“검은색 지프. 방탄 처리된 그 차 말이야. 공두팔이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거야.”

경호원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다.

그러자 성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쫓아가. 가서 내가 손짓하면 바로 보스를 보호해.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로 해야 해! 이런 말을 했다간 날 정신병자로 오해할지도 모르잖아.”

“알겠어!”

곧장 돌아선 경호원은 황급히 유진 일행을 따라나섰다.

성건우는 어느새 옆쪽에 다가와 있던 장목화를 돌아보았다.

“주차장이랍니다.”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미친 듯 달리기 시작했다. 성건우가 따른 길은 유진 일행이 택한 그 길이 아니었다. 정반대인 와일드울프 앨리에서 웨스트 스트리트로 이어지는 출구 쪽이었다. 거기서도 그는 옆쪽 골목길을 우회했다.

곧이어 그곳에서 바로 방향을 튼 그가 주차장이 자리한 북쪽으로 향했다.

성건우는 마치 완전무장을 한 폭도 열 명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듯 엄청난 속력을 냈다. 정말 누군가와 달리기 시합이라도 하는 것처럼 무척 빨랐다.

사실 그는 확실히 누군가에 의해 쫓기고 있었다. 게다가 상대와의 거리는 점점 좁혀지는 중이었다.

추격의 주인공은 바로 장목화였다. 그녀의 속도는 성건우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게다가 지구력으로만 따지자면 그녀가 훨씬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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