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143화 (143/649)

143화. 말인(末人)

사냥꾼 길드에서 나와 웨스트 스트리트로 향하며, 우딕은 양손을 자연스레 늘어뜨린 채 여유롭게 말했다.

“임보경은 검은색 여행 가방을 끌고 옐로혼 앨리에서 나간 뒤 일단 사우스 스트리트로 갔다. 그리고 중앙 광장을 거쳐 웨스트 스트리트로 접어든 후 이 골목길로 들어갔지.”

말을 마친 우딕은 오른손을 뻗어 비스듬히 떨어진 맞은편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은 한 골목길 입구였다. 사냥꾼 길드에선 직선거리로 40미터 이상 떨어진 곳이었는데, 그 옆쪽에 화려하게 장식된 술집 두 곳이 자리해 있었다. 하나는 플라잉 버드, 다른 하나는 와일드 트리였다.

“플라잉 버드 술집⋯⋯.”

장목화가 낮게 그 이름을 읊조렸다.

우딕은 그것을 질문으로 받아들였는지 설명을 덧붙였다.

“이 골목길 이름은 원래 와일드 울프였는데 추후에 바뀌었어. 안쪽에는 저런 술집들이 즐비하고 위드 시티의 지하 시장이 숨겨져 있기도 해.

난 상당한 힘을 들인 끝에 목격자 몇몇을 찾아냈어. 그렇게 임보경의 행적을 밝혀냈지. 근데 그 행적은 여기에서 끊겼어.

와일드 울프 앨리 사람들은 그렇게 일찍 일어나는 편이 아니라 임보경을 목격하지 못한 모양이야. 지금으로서는 임보경이 이 골목길을 관통해 다른 곳으로 갔는지, 아니면 골목 안의 어느 술집에 들어갔는지 알 길이 없어.”

장목화는 잠시 고민하다가 주머니 안에서 그 전단지를 꺼내 들었다.

“그래, 이건 임보경이 묵던 방 침대 밑에서 찾아낸 거야.”

그녀는 전단지를 건네며 우딕의 표정 변화를 면밀하게 살폈다. 만약 우딕이 지식은 독약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그 조직과 관련돼 있다고 판단된다면, 곧장 성건우에게 그와 친구를 맺으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그때, 전단지 내용을 살피던 우딕의 미간이 점차 구겨지기 시작했다.

“이건⋯⋯.”

“뭔가 알고 있어?”

장목화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사냥꾼 길드에서 고급 사냥꾼에 이른 강자라면, 어떤 강점을 가졌든 각 방면의 식견이 넓을 터였다.

우딕은 장목화와 성건우를 두어 번 돌아보다가 입을 열었다.

“최근 몇 년 새 이곳에서 비교적 활발하게 활동하는 종교 조직과 상당히 닮아있는 이념과 구호야.”

“그 조직 이름이 뭔데?”

장목화는 뭐라도 알아낼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질문을 이어나갔다.

우딕의 표정은 약간 무거워져 있었다.

“반 지성교.”

‘반 지성교라…….’

순간 장목화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무의식중에 웃음이 터질뻔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전단을 보고 이 종교 조직 이름이 평범하리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오자가 없다고 할지언정 분명 황당무계한 이름을 붙여뒀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토록 적나라하게 반 지성교라고 이름 지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낮은 지능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운 듯한 모양이었다.

장목화는 다시 한번 웃음을 꾹 참고서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이름을 왜 그렇게 지은 거야?”

“다른 이들의 지능을 낮추는 방법으로 본인들이 똑똑해지고자 했겠죠.”

이는 우딕이 아니라 성건우가 한 대답이었다.

우딕은 성건우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성건우가 농담을 하는 건지, 아니면 반 지성교에 가입할 만한 사람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 듯한 눈치였다.

이내 우딕이 느릿하게 숨을 토해낸 뒤 간단히 설명했다.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반 지성교도 당시 인간들이 각종 금기를 연구하면서 치명적인 재난을 초래해서 구세계가 파괴됐다고 생각해.

근데 반 지성교는 거기서 한 발 더 나가서, 인간이 지나치게 똑똑하고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장악하고 있다고 여겨.

만약 구세계 인간들이 사고를 하지 않았다면, 지식을 넓혀나가지 않았다면, 책을 읽지 않고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금기를 연구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을 테고, 종말도 없었으리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지.

그들은 또한 무심병의 출현과 무심자의 존재가 재난임과 동시에 달지기들의 계시라고 믿어. 인류가 무심자 수준으로 도태되어야만 신세계가 강림해 그 문을 열어줄 거라는 거지.

그래서 반 지성교는 ‘사고는 함정이고 지식은 독’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거야. 모든 책을 태워버리고 교육을 제공하는 모든 장소를 제거해서, 인간이 오직 부모의 경험에서 비롯된 가르침만 받을 수 있게 하려는 거지.

미래 탐구와 같은 일로 말할 것 같으면, 달지기의 지도에 순응하고 소수의 신이 선택한 자들의 명령에만 따르면 된다는 거야. 그들에게 사고는 일종의 죄악이랑 다를 게 없어.”

그 말에 성건우가 의욕 넘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들은 전부 속아 넘어가기 쉬운 자들이겠네.”

이어, 장목화가 조소와 한숨이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애쉬랜드에 사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수많은 걱정을 안은 채 살아가잖아. 사실 사고를 포기하는 건 행복한 일인지도 몰라. 근데 반 지성교가 믿는 달지기는 누구야?”

우딕은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말인(末人), 3월을 관장하는 달지기야.”

“말인⋯⋯. 구세계 철학자 서적 중에 그런 단어가 있었던 것 같은데. 비천하고, 몽매하고, 평범하고, 노예근성으로 가득한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였어.” (*주1: 니체, 초인(超人)에 상반되는 개념)

장목화가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우딕은 약간 의아하다는 듯 말없이 장목화를 바라보았다. 그는 말인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여태까지는 한 달지기의 칭호인 만큼 그저 신비로운 느낌으로 가득한 단어라고 여기고 있었을 뿐이었다.

몇 초간 침묵하던 우딕이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이만하면 된 것 같군. 앞으로도 정보를 교환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

그러자 장목화도 정신을 차리고는 미소를 지었다.

“왜 이렇게 많은 질문을 받아준 거야? 우리가 준 건 단서 하나뿐인데.”

“너희가 준 그 정보의 가치가 내가 준 것보다 더 높으니까.”

우딕이 솔직하게 말했다.

장목화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더는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이때 성건우가 불쑥 입을 열었다.

“부모님 중에 어느 쪽이 애쉬랜드 분이셔?”

뜬금없는 질문에 우딕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왜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딱히 비밀도 아니니 순순히 답해줬다.

“아버지.”

“아버님 성은?”

성건우는 흥미롭다는 듯 질문을 이어나갔다.

여전히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우딕은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

우딕은 이러한 상황에 언제나처럼 경계심을 높였다. 그는 여태까지 수많은 각성자를 맞닥뜨린 경험이 있어, 때로는 평범해 보이는 언행 속에도 위험이 잠재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풉⋯⋯! 그럼 네 이름은⋯⋯.”

장목화가 웃음을 터뜨렸다. 성은 우, 이름은 딕. 그 둘을 연결해서 부르면 꼭 레드리버인 이름처럼 들렸다.

“역시.”

성건우는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오른손을 말아쥐고 왼 손바닥을 쳤다.

“⋯⋯.”

우딕은 잠시 미친 사람 보듯 장목화와 성건우를 몇 번이나 번갈아 보다가, 말없이 돌아서서 사냥꾼 길드 건물 쪽으로 향했다.

떠나는 그를 쳐다보던 장목화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물었다.

“저 사람을 친구로 삼지는 않았네.”

성건우가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많은 질문에 답을 해줬으니까요.”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능력을 사용하는 데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어야지. 네가 플린 단장과 친구가 된 건 그 사람의 사적 비밀을 캐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과 조금 더 수월하게 합작하고 우리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였잖아.

우딕은 해줄 수 있는 얘기는 모두 해줬어. 그 사람이 정말 각성자인지, 각성자라면 가지고 있는 세 가지 능력은 뭔지, 그 능력을 얻기 위해 치른 대가는 또 뭔지 파악하기 전까진, 상대가 별다른 적의를 드러내지 않는 이상 능력을 발휘하지 않는 게 좋아. 무고한 자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은 최대한 지양해야지.”

장목화는 이 틈을 타 성건우를 가르치면서 그가 정확한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는 팀장의 책임이기도 했다.

성건우는 단 세 글자로 답했다.

“양범석.”

장목화는 순간 그 이름의 등장에 부끄러움이 밀려들었지만, 곧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난 말로 가정만 했지, 실제로 때린 적은 없잖아!”

왼손을 드는 장목화를 보고 성건우가 와일드울프 앨리로 시선을 돌렸다.

“저 술집들은 언제쯤 문을 열까요?”

“가게마다 돌아다니면서 임보경의 행적을 확인하려고? 그 김에 각각의 술집에서 춤도 추고?”

장목화의 예민한 반응에 성건우는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술집에서 춤도 출 수 있나요?”

“연기하지 마. 어젯밤에 술집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다 들었잖아.”

장목화는 성건우가 연기하고 있단 걸 단번에 간파했다.

물론 회사의 기본 교육 커리큘럼에 술집에서 술 마시는 것 말고 따로 할 수 있는 일은 이러하다고 명시돼있진 않았다. 하지만 밤마다 웨스트 스트리트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새벽 2, 3시가 되어야 겨우 조용해졌으니,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의 연상은 가능했다.

성건우가 뭐라고 대꾸하기 전, 장목화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일은 작은 흰둥이한테 맡기자. 이곳의 지하 시장에 대해서 걔만큼 익숙한 사람이 없잖아.”

“예.”

성건우도 이 일에 백새벽이 가장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상당히 아쉬워하면서도 순순히 답했다.

“가자. 더 이상 길드에서 기다릴 필요는 없겠어. 당분간 새로운 단서가 더 나오지는 않을 테니까.”

장목화는 솔선하여 중앙 광장으로 향했다. 위드 시티의 민간 풍습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그녀가 자체적으로 해보고 싶은 별도의 숙제였다.

걸음을 내딛던 와중, 장목화가 불쑥 웃음을 터뜨렸다.

“야, 그러고 보니까 우리 팀에 너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이름이 색과 관련돼 있네? 난 흰색, 새벽이도 흰색, 여홍이는 빨간색. 너만 예외야.”

“전 떠오르는 햇빛의 색인데요.”

곧장 이어진 성건우의 대꾸에, 장목화도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네. 우(旴) 자에는 해가 떠오른다는 뜻도 있으니까.”

* * *

시간은 흐르고 저녁이 찾아왔을 때, 와일드울프 앨리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 목에 회색 스카프를 두른 백새벽과 그녀와 조를 이룬 용여홍이었다.

오전과 달리 골목길은 훨씬 왁자했고,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때문에 더 강렬한 생동감이 느껴졌다.

본래 유적 사냥꾼들은 내일 아침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삶을 살기에 남는 돈이나 물자가 생길 때마다 술집을 찾았다. 술과 여자, 혹은 남자의 따뜻한 품에서 잠시나마 잔혹한 삶을 잊는 것이다.

그 품에선 내일은 또 어떤 임무를 받을지, 어디서 모험해야 할지, 계속 살아갈 수는 있을지 따위에 대해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유난히 강력한 세력을 자랑하는 사냥꾼 길드 역시 이곳 위드 시티의 술집과 나이트클럽 사업을 번창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였다.

애쉬랜드의 수많은 유랑자 거점이 식량 부족으로 허덕이는 와중에도 이곳에는 술을 빚을 식량과 과일이 남아있었다. 동시에 위드 시티의 시정부에서도 이러한 사업에 매우 협조적으로 굴었다. 심지어는 생활 구역과 구분하여 겨울에도 이곳에 끊임없이 전기를 공급해줄 정도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