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141화 (141/649)

141화. 정식 사냥꾼

“꼭 길드에 등록할 때 쓰는 증명사진 같네요?”

소민영은 사진을 보자마자 그 사진이 사냥꾼 등록용 사진임을 알아봤다. 그녀는 빠르게 유호중 임무를 찾아, 사진과 저격수의 몽타주를 비교했다.

“정말 닮았어요!”

고개를 든 소민영의 눈에 기쁨과 충격이 어려 있었다.

장목화는 나머지 팀원들의 사진 넉 장도 건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사람들도 제가 그 저격수와 함께 찾아야 했던 사람들이에요. 그중에서도 이 사람, 조금 전에 탐문 해보니까 유호중이 총에 맞아 죽었던 그 현장에 나타났더라고요. 레드실크 앨리에요.”

그녀가 가리킨 건 임보경의 사진이었다.

그때, 장목화가 목소리 음량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주위의 상당한 유적 사냥꾼들이 모두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들 장목화가 뭔가 유용한 단서를 찾아냈다는 사실을 간파한 듯했다.

그들의 눈에 질투와 부러움, 기대감이 떠올랐다. 이제 그들은 새로운 단서가 자신들을 더욱 정확한 방향으로 인도해주길, 그래서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기만 바랄 뿐이었다.

사진을 받아든 소민영은 지체할 시간 따위 없다는 듯 얼른 입을 열었다.

“곧장 상부에 보고할게요. 사냥꾼님과 동료분, 배지 좀 주시겠어요?”

소민영은 주위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사진을 뒤집었다. 혼란한 틈을 타서 한몫 잡으려는 이들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단서의 제출을 마친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녀가 고개를 들고 장목화를 바라보았다.

“해당 단서가 쓸모 있는지 없는지, 중복된 단서는 아닌지 심사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건 긴급 임무이니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아요. 조금 기다리면 곧 답을 들을 수 있을 거예요. 여러분이 받을 보수도 그때 정해질 거고요.”

장목화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괜찮아요. 기다리죠, 뭐.”

곧이어 자신과 성건우의 배지를 돌려받은 그녀가 웃으며 덧붙였다.

“사진도 꼭 돌려주셔야 해요. 그걸 가지고 탐문 하러 다녀야 하거든요.”

“물론이죠.”

소민영은 그 사진의 출처가 길드임을 확인했다. 원한다면 길드 내부 자료로 얼마든 인쇄할 수 있을 것이었다.

* * *

홀 가장자리로 돌아온 장목화와 성건우는 벤치에 앉아 새로운 단서가 발표되기를 기다렸다.

그로부터 10여 분이 지났을 무렵, 갑자기 누군가가 둘의 앞으로 걸어왔다.

짙은 검은색 트위드 코트, 검은 머리칼, 파란 눈동자, 그리고 상당히 높은 콧대의 소유자……. 바로 길드 직원이 무척 공손히 대하던 그 고급 사냥꾼이었다.

장목화와 성건우가 동시에 돌아보자 남자가 매우 묵직한 소리로 물었다.

“그 여자 방에서 뭘 찾았지?”

눈앞의 고급 사냥꾼을 마주한 장목화가 손을 들어 귀를 만지작거렸다.

“뭐? 뭐라고?”

그녀의 반응에 고급 사냥꾼이 미리 준비해둔 말도 목구멍에 턱 걸렸다.

성건우는 장목화 쪽으로 몸을 틀며 통역을 해주었다.

“그 여자 방에서 뭘 찾았냐는데요?”

장목화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우리가 찾은 단서는 이미 길드에 제출했어. 길드 심사가 끝나는 대로 발표될 거야. 그럼 바로 알게 되겠지.”

파란 눈의 고급 사냥꾼은 두 사람을 빤히 응시하다가, 아무 말도 없이 뒤돌아섰다.

“예의 없기는.”

성건우가 불쑥 중얼거리는 말에, 장목화가 상당히 협조적으로 물었다.

“예의가 어떻게 없는데?”

“다른 사람에게 질문할 때는 자기소개부터 하는 게 기본 아닌가요?”

성건우가 진지하게 답했다.

그는 아직 눈앞에 있는 고급 사냥꾼에게 한 대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듯했다. 아예 겁내는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그 말에 우뚝 멈춰선 고급 사냥꾼이 돌아선 그대로 묵직하게 말했다.

“우딕이다.”

“애쉬랜드어 발음이 상당히 좋은 편이네요.”

성건우는 이미 장목화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딱 봐도 혼혈같이 생겼잖아. 애쉬랜드어가 모국어일지도 모르지.”

장목화가 동조했다.

그들을 등진 채 몇 초간 침묵하던 우딕은 결국 자리를 떠나갔다.

그 고급 사냥꾼이 홀 가장자리 벤치 구역으로부터 멀리 떨어졌을 즈음, 장목화가 살짝 웃으며 이야기했다.

“훌륭한데, 비꼬는 솜씨가 아주 수준급이야. 하하. 너도 다른 사람한테 질문할 때 자기소개 같은 건 안 하잖아.”

“형제 사이에 자기소개 따위는 필요치 않죠.”

“⋯⋯.”

성건우는 여전히 진지했고, 장목화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내 그녀는 성건우와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은 척, 무료하다는 듯 다리를 흔들거리며 심사 결과가 나오길 기다렸다.

그러던 그때, 순간 고개를 번쩍 쳐든 장목화가 홀의 천장을 올려다봤다.

몇 초 후, 그녀가 의아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사람들 한 무리가 위층을 지나갔어⋯⋯. 그중 전기 신호 하나는 인간이랑 달라. 심지어 동물의 것도 아닌데⋯⋯. 로봇인가?”

성건우 역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전부 인간의 의식인데요.”

장목화는 고개를 홱 틀어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전부 인간이라고?”

“이 정도 거리에서는 사람들을 억지쟁이로 만들 수 있거든요.”

성건우가 동문서답을 했다.

하지만 어렵지 않게 그 말뜻을 이해한 장목화는 미간을 살짝 구겼다.

“인간의 의식에⋯⋯, 인간의 것이 아닌 전기 신호라⋯⋯.”

두 단서를 조합했을 때 도출되는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영생인! 승려 교단의 기계 승려!’

“우리가 아는 그 친구는 아니겠지? 그래, 그럴 리가 없지. 정법은 이런 환경에서는 미쳐버릴 테니까.”

장목화가 알아서 자문자답하며 결론을 냈다. 사냥꾼 길드의 직원 중에는 여성이 대부분이었다.

“올라가서 한 번 물어보세요.”

성건우의 말에, 그를 홱 노려보던 장목화가 그냥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꼭 기계 승려라는 법은 없어. 당시 영생인이 전부 다 교단에 귀의한 건 아니니까. 예외도 있다고.”

이제 위층에 나타난 무리는 두 사람의 감지 범위를 벗어난 상태였다. 정보가 부족한 관계로 장목화도 더는 이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없었다.

장목화는 다시 주위를 오가는 유적 사냥꾼들을 관찰하며 풍속을 알아내고 정리해보려 했다.

다시 10여 분이 지났을 무렵, 홀 곳곳의 스피커에서 전자음이 흘러나왔다.

“유호중 사건의 새로운 단서를 제출한 사냥꾼님은 11번 창구, 소민영 직원에게 보수를 받아 가십시오.”

장목화는 사냥꾼 배지를 챙기고 벌떡 일어나 빠르게 창구로 향했다.

“얼마나 나왔나요?”

장목화가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물었다.

소민영 역시 웃으며 답했다.

“100오레이입니다. 또한 사냥꾼님과 동료분 모두 신용 점수 100점을 쌓으셨어요. 축하합니다, 두 분은 이제 정식 사냥꾼이 되셨어요.”

장목화는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팀원 넷의 하루 식비는 4오레이 정도였다. 거기에 방값까지 더하면 하루에 생활하는 데 드는 비용은 거의 5오레이였다.

100오레이라면 3주는 거뜬히 버틸 수 있었다.

이윽고 소민영이 사냥꾼 배지를 받아 장목화와 성건우를 정식 사냥꾼으로 등록해주었다.

뒤이어, 두 사람은 소민영이 내준 명세서와 각자 사냥꾼 배지를 쥐고 1층 안쪽 자금 창구에서 두꺼운 지폐 다발을 수령했다.

오레이는 흑녹색 지폐였다. 가장 큰 단위는 10이었지만, 그들이 받은 다발은 오로지 5오레이와 1오레이 지폐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 * *

임무 구역으로 돌아간 장목화는 자신이 제출한 단서가 이미 공개된 것을 확인했다. 배윤수와 임보경의 이름도 떡하니 나와 있었다.

장목화가 한숨을 내쉬며 성건우에게 무슨 말인가 하려는데, 조금 전 보았던 그 고급 사냥꾼이 다시 가까이 다가왔다.

우딕이 두 사람 앞에 서서 물었다.

“그 여자 방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나?”

이번에 장목화는 딱히 못 들은 척하지 않았다. 우딕의 목소리가 상당히 좀 큰 편이었다. 그녀도 곧 웃으며 답했다.

“가치 있는 단서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지. 그게 유적 사냥꾼들 사이의 상식 아닌가?”

우딕이 뭐라 대꾸하기 전, 장목화가 여전히 웃으며 덧붙였다.

“난 이미 보상을 100오레이나 받았어. 앞으로는 이 정도의 가격에만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팔 생각이야.”

우딕은 침묵에 빠진 채 더는 입을 열지 못했다.

“아직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가 보네. 나중에 다시 찾아오라고.”

장목화는 그대로 우딕을 지나쳤고, 성건우도 팀장의 뒤를 따라 사냥꾼 길드를 빠져나왔다.

거리로 나온 후에야 뒤를 돌아본 장목화가 생각에 잠겨 중얼거렸다.

“새로운 단서가 발표되기 전부터 저 고급 사냥꾼은 임보경의 존재를 알고 있었어. 게다가 우리가 임보경의 방에 찾아갔었던 것까지 확신했지⋯⋯.

저 사람은 현지 사냥꾼 길드 고위층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어서 우리가 제출한 단서를 미리 알고 있었던 건가?

아냐, 만약 그랬다면 우리가 저격수의 동료에 대해서만 언급했을 뿐, 그 후의 조사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을 거야.

뭔가를 알고 있는 건가? 아니면 다른 흔적을 통해 저격수에게 여자 동료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걸까?”

한창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고개를 튼 장목화가 자신을 빤히 응시하고 있는 성건우를 발견했다.

“왜 그래?”

입을 떼자마자 장목화는 자신이 해선 안 될 질문을 했음을 깨달았다.

성건우는 한숨을 푹 내쉬며 답했다.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팀장님이 다 해버려서요.”

“다음에는 너한테도 말할 기회를 줄게.”

장목화는 형식적으로 대꾸한 뒤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근데 내가 임보경의 방 안에 그 전단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보고하지 않은 이유는 묻지 않네?”

성건우는 이상한 눈빛으로 장목화를 힐긋 바라보았다.

“전 여홍이가 아닌데요.”

잠시 할 말을 잃은 장목화가 중앙 광장 쪽으로 향하며 웃음을 지었다.

“⋯⋯친구 뒷담화는 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전 그저 걔 평소 모습을 사실대로 표현한 것뿐이에요.”

성건우의 답은 진지했다.

“휴, 나는 유전자 개량을 했는데도 175센티미터밖에 안 되고⋯⋯.”

성건우에게 장단을 맞춰주려 용여홍을 흉내 내던 장목화는 말을 채 끝맺지도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 * *

두 사람은 곧 사우스 스트리트로 돌아가 백새벽과 용여홍을 찾았다.

서로 눈빛을 주고받은 네 명은 노예 시장 맞은편 골목으로 우회해 아무도 없는 구석에서 합류했다.

장목화는 제일 먼저 사냥꾼 길드에서 받은 돈을 꺼내 보였다.

“100오레이야!”

“이제 돈이 생겼네요!”

용여홍도 굉장히 기뻐했다.

장목화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나랑 건우는 신용 점수 100점을 쌓아서 정식 사냥꾼으로 승급도 됐어.”

그러자 용여홍이 약간 낙담한 듯 중얼거렸다.

“그럼 이제 저만 신입이네요.”

“다음 단서는 너랑 새벽이가 제출하면 되지.”

얼른 팀원을 위로한 장목화가 자신이 어떤 단서를 제출했는지 있는 그대로 알려주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용여홍이 물었다.

“팀장님, 왜 전단지에 대해서는 보고하지 않으셨어요? 그 단서까지 공개된다면 유적 사냥꾼들은 금세 그 조직을 찾아낼 텐데요.”

“역시⋯⋯.”

성건우가 순간 묘한 말을 흘렸다.

장목화는 입술을 꾹 물고 웃음을 참았다. 용여홍은 평소처럼 멍한 표정으로 장목화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숨을 고른 뒤 입을 열었다.

“임보경이 일부러 그 전단지를 남긴 걸 수도 있잖아. 아직 확신할 수 있는 게 없어. 또 그걸 일부러 남긴 거라고 해도 조사에 혼선을 주기 위한 건지, 아니면 구조해달라는 의미로 단서를 남긴 건지도 알 수 없어. 만약 후자라면 이 단서가 대대적으로 퍼졌을 경우 임보경이 위험해져.”

“그렇군요⋯⋯.”

용여홍은 팀장의 치밀함에 재차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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