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조심스레 실증을 찾아서
장목화가 말을 이었다.
“각도를 바꿔서 생각해 보자. 저격수는 어떻게 유호중이 레드실크 앨리에서 걸어 나올 거란 걸 알고 있었을까? 만약 일찍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더라면 왜 이렇게 급하게 나타났을까?”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자문자답하듯 입을 열었다.
“저격수에게 동료가 있었나? 그들은 유호중이 이 구역에서 나타날 거란 건 알았지만, 더 심층적인 정보는 파악하지 못한 거야.
저격수의 동료들은 맞은편 골목들에 흩어진 채 목표를 찾다가, 유호중의 흔적을 발견하자마자 무전기 같은 걸로 저격수에게 연락한 거지. 저격수는 그 연락을 받은 후에야 옥상 어딘가에서 이곳으로 황급히 달려온 거고.”
이때, 거리 쪽에 붙은 옥상 벽을 따라 서성이던 백새벽이 용여홍과 대화하듯 입을 열었다.
“저 반대편에서는 옐로혼 앨리를 감시할 수 있지만, 레드실크 앨리를 살피기는 진짜 어려워.”
옐로혼 앨리는 레드실크 앨리와 인접한 골목이었다.
그 말을 듣고 장목화는 순간 깨달음을 얻었다.
“저격수는 처음에는 옐로혼 앨리를 감시하고 있었어. 그러다 그의 동료가 레드실크 앨리에서 정확한 정보를 얻자마자 저격 위치를 바꾼 거야.”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옥상 맨 우측 구석으로 향한 성건우는 그곳에 쪼그려 앉아 바닥과 벽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누군가 밟고 비빈 자국이 남아있네요. 비교적 최근에 남은 흔적이에요.”
유적 사냥꾼들 상당수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러는 멍한 표정이었고, 더러는 모종의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성건우에게 말했다.
“별로 볼 것도 없네. 내려가자.”
성건우도 별다른 말 없이 장목화를 따라 사우스 스트리트로 돌아갔다.
* * *
장목화는 아래로 내려와서야 미소를 지어 보였다.
“레드실크 앨리로 들어가서 저격수 동료가 남긴 단서를 찾아보자고.”
레드실크 앨리의 폭은 2미터가 조금 넘을 뿐이었다. 길가에는 수리점이나 헌 옷 상점 등의 점포가 붙어 있었다.
유적 사냥꾼 몇몇이 유호중의 사진을 쥐고 그 점포들에 차례대로 들어가 탐문을 하고 있었다. 유호중이 죽기 전 누군가와 접촉하는 것을 봤느냐고 묻고 있었는데, 상인들은 모두 하나같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때, 장목화와 1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선 용여홍이 백새벽에게 물었다.
“어떻게 찾지?”
순간 장목화가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며 성건우에게 말했다.
“당연한 거 아냐? 사진을 이용해야지.”
하지만 그녀가 꺼낸 건 유호중도, 저격수로 의심되는 배윤수의 사진도 아니었다. 장목화는 실종된 구조팀의 또 다른 팀원, 임보경의 사진을 꺼냈다.
용여홍은 장목화의 손에서 임보경의 사진을 확인하고, 일순 깨달음을 얻었다. 저격수가 배윤수로 의심된다면 동료는 임보경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진병욱이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구조팀 실종 이후 그 두 사람으로 의심되는 이들을 본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난 왜 이 두 사건을 연결할 생각을 못 했을까?’
용여홍은 저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이마를 쳤다. 문제 상황에서 쉬이 긴장하는 성격 탓에 굳어져 버리는 머리가 원망스러웠다.
반면, 성건우는 장목화가 임보경의 사진을 꺼낸 것을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가 결국 이럴 거면서 왜 여태까지 버틴 거냐는 말투로 물었다.
“어디부터 시작할까요?”
장목화는 미간을 살짝 구겼다.
“그래, 넌 어제부터 배윤수와 임보경의 사진을 들고 탐문 하자고 했지. 근데 지금 상황은 어제랑 달라. 이건 냅다 그물을 던지는 식의 질문이 아니라서, 어느 정도 범위 안으로 통제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이런 탐문이 적들의 경계심을 자극하진 않을 거야. 비슷한 방식이라도 때에 따라 영향은 달라져.”
오늘은 배윤수를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해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없었다. 온 도시 안의 유적 사냥꾼들이 전부 그를 찾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직 존재가 드러나지 않은 임보경의 경우에는 조심해야 했다.
장목화는 다시 레드실크 앨리 안의 여러 점포를 살피다가 입을 뗐다.
“시간 좀 재 줘.”
그리고 옐로혼 앨리 입구 쪽으로 걸어간 그녀가 크게 외쳤다.
“준비!”
성건우는 초침이 12를 가리키길 기다렸다가, 오른손을 들고 맹렬히 휘둘렀다. 잔뜩 신이 난 듯한 모습이었다.
“시작!”
장목화는 그 구호에 맞춰 상체를 살짝 숙이고 양팔을 힘껏 휘두르면서 달렸다. 치타처럼 날랜 모습이었다.
용여홍은 놀란 얼굴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팀장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때, 이미 레드실크 앨리 입구에 이른 장목화가 성건우 곁에 멈춰 섰다.
이러한 기척은 당연하게도 주위 유적 사냥꾼과 행인들의 주의를 끌었다. 하지만 그들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멍한 표정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었다.
“몇 초야?”
장목화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성건우는 손목시계에서 시선을 돌리며 답했다.
“4초 정도요.”
그의 시계는 디지털시계가 아니라 스톱워치 기능이 없어서 정확한 답을 할 수는 없었다.
“당시 저격수는 총을 갖고 있었어. 옥상에는 장애물도 상당했으니 4초 안에 움직이기는 힘들었겠지. 5~6초 정도 들었을 거라고 치고⋯⋯.”
장목화는 말하는 동시에 유호중이 총에 맞아 쓰러진 곳으로 향했다가. 그곳에서 다시 레드실크 앨리 입구로 걸어서 돌아왔다.
“또 저격수에게는 조준할 시간도 필요해.”
레드실크 앨리 입구에 서서 자신의 디지털 손목시계에 시선을 고정한 그녀는 유호중의 보폭과 속도를 떠올리며 레드실크 앨리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1, 2, 3, 4, 5, 6⋯⋯.”
성건우도 매우 협조적으로 시간을 재 주었다.
6초가 지난 순간, 장목화는 제자리에 멈춰 섰다.
용여홍은 그제야 팀장의 의도를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었다.
장목화는 지금 사건의 일부 과정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유호중이 저격수 동료에게 발견된 대략적인 지점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이내 장목화가 멈춰선 그 자리에서 성건우를 불렀다.
곁에서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유적 사냥꾼들은 속속들이 시선을 거뒀다. 이젠 소수의 몇몇만 남아 그녀를 주시할 뿐이었다.
이들도 장목화가 사건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일찍이 베테랑 사냥꾼들이 시도했으나 유용한 단서를 찾아내는 데에는 실패한 방법이었다.
비로소 자신이 유적 사냥꾼들의 관심에서 벗어났음을 확인한 장목화가 성건우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저격수의 동료가 유호중을 발견하자마자 무전기로 알렸을 리는 없어. 그랬다면 유호중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미리 노선을 틀었을 테니까.”
동시에 그녀는 앞으로 조금 더 나아갔다.
“하지만 이 정도 위치에서 등을 돌린 채 목소리를 작게 한다면 유호중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을 거야.”
그 자리에서 멈춘 장목화가 근처 점포를 가리켰다.
“그러니 이 가게들을 탐문 해봐.”
지금 그녀의 시선은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용여홍에게로 향해 있었다.
“……?”
용여홍이 소리 없이 자신을 가리켰다.
장목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성건우에게 말했다.
“훈련을 더 받아야겠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팀장 쪽으로 다가간 용여홍은 그녀에게 임보경의 사진을 몰래 건네받은 다음, 바로 옆에 있는 전자기기 수리점에 들어갔다.
* * *
“계십니까⋯⋯.”
용여홍이 약간 긴장한 목소리로 인사부터 했다.
수리점 사장은 27~8살로 보이는 남자였는데, 청결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다. 곧이어 그가 고개도 들지 않고 대꾸했다.
“못 봤어요, 정말로 못 봤다니까! 매일 아침 수십 명이 이 가게 앞을 지나간다고요. 그런데 제가 그 사람을 어떻게 기억합니까? 유호중이고 나발이고, 난 들어본 적도 없다니까요!”
‘음, 벌써 여러 유적 사냥꾼에게 시달렸나 보군.’
용여홍은 사장의 상황을 단박에 파악했지만, 개인 임무를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로 돌아가게 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사진을 들이밀었다.
“유호중에 관해 물으려는 게 아니에요. 사장님, 저는 남자입니다. 사장님도 남자고요⋯⋯.”
밀려드는 긴장감에 용여홍은 아무 말이나 지껄이듯 말을 이었다.
그때,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든 사장이 임보경의 사진을 힐긋 들여다보았다. 동시에 그의 얼굴빛이 변했다.
“당신도 이 여자에게 빠진 겁니까? 이 사진은 어디에서 난 거죠? 사진기를 가지고 있기라도 한 겁니까? 구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용여홍은 깜짝 놀라 몇 초 후에야 입을 열었다.
“이 여자를 본 적이 있으세요?”
‘이 남자가 정말 임보경을 본 모양이야! 팀장님은 진짜 대단해!’
* * *
한편, 가게 밖에선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마주 선 성건우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쟤는 언제 추리 광대 능력을 배운 거지?”
“흉내를 낸 게 어떻게 우연히 딱 들어맞았네.”
장목화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단번에 유용한 단서를 찾아내다니, 오늘은 비교적 순조롭게 흘러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가게 안에서 사장이 사진을 감상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오늘 아침에요. 얼마 안 됐어요. 문을 막 여니까 저 나무 옆에 서 있더라고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몸을 떠는 모습이 어찌나 안쓰럽던지. 가족이 있는 몸이 아니었다면 여기 들어와 쉬라고 했을 겁니다.”
쓸모 있는 정보를 얻었다는 기쁨에 흥분한 용여홍이 재차 되물었다.
“이 여자가 확실하죠?”
“방금 본 사람인데 못 알아볼 리가요. 이 점이 딱 기억이 나는데요.”
사장이 사진 속 임보경의 왼쪽 눈썹을 가리키며 답했다.
용여홍도 안심하고 질문을 이어나갔다.
“그다음은요? 어디로 갔죠?”
“저쪽에서 누가 총을 쐈잖아요. 그 소리에 놀랐는지 그대로 돌아가던데요. 아마 저 뜰 안쪽에 사는 모양이에요.”
사장이 자신의 오른편을 가리켰다.
연신 감사 인사를 하던 용여홍은 충만한 성취감을 안고 가게를 나왔다.
* * *
용여홍은 주위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장목화와 성건우의 곁으로 돌아갔다. 그는 팀장에게 사진을 돌려줌과 동시에 탐문 결과를 빠르게 전달했다.
진술을 다 마치고, 용여홍이 뿌듯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팀장님, 어떻게 저기서 임보경의 단서를 얻을 거라 확신하신 거예요?”
장목화가 조용히 웃다가 골목길 바깥에 있는 유적 사냥꾼들을 힐긋 바라보며 빠르게 설명했다.
“확신한 건 아니고. 답을 얻지 못했다면 내 추측이 잘못됐다는 뜻이니 현장에 남은 흔적을 결합해 다른 방향으로 다시 조사했어야겠지.
구세계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어. 대담하게 가정하고, 조심스럽게 실증을 찾으라. 이런 사건에서 단서를 찾으려 할 때 실수를 두려워하면 안 돼.
실수 하나하나로 가능성도 하나하나 배제해 나가다 보면 점차 진상에 가까워질 수도 있잖아. 하지만 전쟁에서 그럴 수는 없어. 전쟁은 다음 기회를 보장할 수가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용여홍은 또 하나 배웠다는 듯 고분고분 답한 뒤, 백새벽에게 돌아갔다.
그 사이 임보경이 들어갔다는 뜰 안을 바라보던 장목화가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네 차례야.”
목표는 뜰 입구의 문지기였다.
5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는 국방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거기에 남색 상의와 검은색 긴 바지를 입고 갈색 신발을 신고 있었는데,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옷차림 때문에 한결 더 뚱뚱해 보였다.
성건우는 곧장 그에게 다가가기 전, 한 가지 더 질문했다.
“능력을 써도 되나요?”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써도 돼. 저곳의 모든 사람은 임보경을 비롯한 이들의 실종과 관련되어 있을 수도 있으니 방심하면 안 되잖아.”
성건우는 가만히 숨을 한번 토해냈다. 입가를 떠난 숨은 허공 속 하얀 연기로 흩어지고 있었다.
이내 그가 건물 몇 개에 에워싸인 뜰로 힘차게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