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133화 (133/649)

133화. 방향 확정

장목화는 성건우를 데리고 위드 시티의 4분의 1을 우회한 끝에야 윤복 총포사가 자리한 골목길로 돌아갔다.

빌려놓은 방으로 돌아가니, 백새벽과 용여홍도 이미 돌아와 있었다. 두 사람은 종이 한 뭉치를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그게 뭐야?”

장목화가 물었다.

“전단지요.”

백새벽이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건넸다.

장목화와 성건우는 동시에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사고는 함정이고 지식은 독약이다. 더는 어떠한 책도 건드리지 마라. 구세계의 전절을 밟아서는 안 된다.」

이 ‘전절’이라는 단어에는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동그라미 밖으로 뻗어 나온 선 끝에 ‘전철’이라는 수정된 글자가 있었다.

장목화는 조용히 실소했다.

“⋯⋯이 녀석들, 자신들 이념을 아주 완벽하게 따르고 있네.”

“이게 바로 지행합일(*知行合一: 알고 행하지 않으면 진짜 아는 것이 아님)이라는 거군요.”

용여홍이 동조했다. 어쩐지 전단지를 볼 때마다 자꾸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장목화는 곧 전단지에서 시선을 떼고 성건우를 돌아보았다. 그는 내내 아무런 말도 없이 앉아 있었다.

“무슨 생각하는 거야?”

“저 사람들이 먹는 성찬은 뭘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성건우의 표정은 매우 엄숙했다.

장목화도 이젠 놀란 기색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웃으며 대꾸할 뿐이었다.

“어쩌면 종교 조직이 아닐 수도 있잖아. 게다가 이렇게 멍청한 조직이라면 성찬의 질도 그렇게 좋지는 않을 것 같은데.”

“휴⋯⋯.”

성건우는 퍽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장목화는 다시 전단지를 탁자에 돌려놓았다. 그녀를 보고, 잠시 생각하던 백새벽이 입을 열었다.

“퍼스트 시티에도 이와 비슷한 조직이 있어요. 뇌는 쓸모없다, 무지는 축복, 사고를 포기하는 건 세계를 구원하는 길이다, 등등의 구호를 제창해요.”

“그런 걸 믿고 따르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용여홍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실제 사례를 눈앞에 두고 있어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에 비하면 양육 지식을 가르치고 자연적인 번식을 권장하는 생명 제례 교단은 차원이 달랐다.

장목화는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구세계의 파괴와 오랜 시간 동안의 전쟁, 끊임없이 반복되는 기근과 질병 때문에 애쉬랜드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해. 이러한 믿음은 적어도 미래에 아직 희망이 남아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고.”

용여홍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은 있지만, 그 말들을 어떻게 조합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이 믿는 건 어떤 달지기일까요? 아니면 그들에게 신앙 같은 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걸까요?”

백새벽이 물었다.

“나도 이런 조직과 접촉해본 적은 없어. 이런 조직엔 들어가지 않는 편이 좋을 거야. 그들에게 전염돼 지능이 낮아지기라도 하면 꽤 골치 아파질 테니까.”

고개를 내젓던 장목화가 웃으며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제가 그들의 유일한, 공동의 뇌가 될 수도 있죠.”

성건우가 진지하게 대꾸했다.

“야심만만이네!”

흥미롭게 감탄하던 장목화가 손에 든 자료를 팀원들에게 나눠줬다.

“자, 자세히 봐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시간이야.”

이들은 지식은 독이니 책을 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조직과 어떠한 충돌도 빚지 않은 상황이니, 그런 이야기에 크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자료를 다 돌려본 후, 장목화는 진병욱이 해줬던 이야기를 그대로 한번 반복했다. 그런 다음, 덧붙여 물었다.

“어디에서부터 단서를 찾아야 할까?”

백새벽은 자료를 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이들이 받아들인 임무는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이에요. 특별한 데라고는 없죠. 지금 당장 심층적으로 파고들어야 할 부분은 없는 것 같아요.”

“맞아요, 맞아요. 참, 팀장님, 새벽이는 중급 사냥꾼이더라고요!”

용여홍이 백새벽 의견에 동조하며 새로운 사실을 밝혔다.

오늘 오후, 용여홍은 사냥꾼 등록을 할 때 이 사실을 발견했다.

본래 사냥꾼 길드에 막 가입한 사람은 신입 사냥꾼으로 불렸다. 이 상태에서 신용 점수 100점을 채우면 정식 사냥꾼으로 승급할 수 있고, 그 후에 1,000점을 더 쌓아야만 중급 사냥꾼이 될 수 있었다.

이는 차으뜸의 정보 수집과 같은 대형 임무 한두 건을 해결한다고 쌓을 수 있는 점수가 아니었다. 모든 중급 사냥꾼은 수십 건에서 100건가량의 임무를 다 완수한, 그야말로 상당한 경험을 쌓은 베테랑이었다.

이내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을 느끼고, 백새벽이 간단하게 설명했다.

“사냥꾼 등록을 한 게 7, 8년 전이니까요.”

“그때 넌 18, 9살이었잖아? 나도 참, 널 자꾸 나보다 어리다고 생각하네.”

반문하던 장목화가 자조하듯 웃었다.

“키 차이 때문일 수도 있죠.”

곧바로 이어진 성건우의 말에, 장목화가 언제나처럼 그를 노려보았다.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는 좀 삼가자, 어?”

뒤이어 그녀가 백새벽에게 물었다.

“사냥꾼 등록을 할 때 본명을 썼어?”

백새벽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랬다가는 많은 부분에서 불편해지고, 정체가 들통나기도 쉬워지니까요. 사냥꾼 길드의 직원이 매수당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고요.”

장목화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어렸을 때부터 아주 똑똑했구나! 음, 앞으로 돈을 벌기 위한 임무를 수행하려 할 때는 네가 나서줘야겠어. 중급 사냥꾼이 받을 수 있는 임무가 꽤 많잖아.”

그녀와 성건우, 용여홍은 모두 신입 사냥꾼에다 신용 점수도 0점이라서, 충분한 신용 점수가 쌓여야 받을 수 있는 임무를 접수할 수 없었다.

“알겠어요.”

백새벽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윽고 장목화가 성건우와 용여홍을 돌아보았다.

“너희들은 어떤 단서가 가치 있다고 생각해?”

이는 토론과 교육을 겸하는 한편, 브레인스토밍을 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성건우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배윤수와 임보경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아직 위드 시티에 출몰한다는 마지막 다섯 번째 단서요. 그들만 찾으면 문제는 순차적으로 해결될 겁니다.”

“그럼 그들을 어떻게 찾아내야 할까?”

장목화가 웃으며 질문을 이어나갔다.

성건우는 일찍이 그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했었다는 듯 거침없이 답했다.

“사진을 복사할 수 있는 곳에 가서 복사한 다음, 그 사진들을 온 도시에 뿌리면서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야죠.”

전자과 졸업생인 그는 정작 컴퓨터를 만져본 적은 별로 없지만, 복사와 인쇄 등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그의 답에 장목화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아주 직접적인 방법이네. 분명 효과는 있겠지만 이 방법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어. 첫째, 들여야 하는 비용이 큰데 우리한테는 그 비용을 치를 만한 능력이 없다는 거. 둘째, 그렇게 하면 오히려 상대의 경계심을 드높이면서 아직 살아있을지 모르는 배윤수와 임보경을 위험에 빠뜨리게 될 수도 있어.

게다가 이렇게 요란한 방식은 위드 시티 고위층의 시선을 끌어서 나쁜 결과를 일으킬지도 몰라.

생각해봐. 우리보다 위드 시티에 대해 더 잘 아는 진병욱도 이렇게 대대적인 방식을 쓰지는 않았잖아. 분명히 뭔가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 거지.

음……. 비용과 동정 문제는 사실 해결하기 쉬워. 사냥꾼 길드에 사람을 찾아달라는 임무를 의뢰하고, 식량으로 그 보수를 대신하면 되잖아. 아주 평범하고 보편적인 방법이니 누구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할 거야.

또 사진을 인쇄하거나 복사할 필요도 없어. 그냥 스캔 떠서 사냥꾼 길드에 업로드만 하면 되니까. 그럼 이 임무를 접수하려 하는 사람들만 그 사진을 보게 되겠지.

근데 이건 그렇게 효율이 좋은 방법이라곤 할 수 없어. 상대의 경계심을 잠재울 수도 없고. 물론 초가삼간을 태워서라도 빈대를 잡고자 하는 각오라면 상대의 경계심을 높이는 것도 어찌 보면 방법이겠지. 우리 기척에 놀라서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그 흔적이 드러나긴 더욱 쉬워질 테니까.”

장목화는 간간이 한숨 섞인 웃음을 뱉으며 말을 끝냈다.

용여홍은 기나긴 팀장의 분석에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자연스레 감탄이 새어 나올 정도로 대단한 분석력이었다.

‘와, 팀장의 뇌는 나랑은 좀 다르게 생긴 건가?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나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지?’

그러다 용여홍은 자신을 보는 장목화의 시선을 느끼고 얼른 의견을 냈다.

“팀장님은 어떤 단서부터 파고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장목화가 실소했다.

“스스로 좀 생각해 볼 수는 없는 거야?”

“저는 건우랑 의견이 같아요.”

용여홍은 자신도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라며 제 결백을 밝혔다.

“과연 그럴까? 쟤 생각은 일반인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을 텐데.”

장목화가 웃으며 대꾸했다.

결국 용여홍이 다시 덧붙여 이야기했다.

“플라잉 버드 술집으로 가서 구조팀과 충돌했다는 그 사람부터 찾아보죠.”

“그것도 하나의 단서이기는 하지.”

장목화는 일단 긍정부터 한 뒤 고개를 저었다.

“근데 그건 진병욱이 추적할 거야. 그는 이 바닥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니 우리보다 더 수월하게 조사할 수 있어. 수확이 있기를 바라자고.

음⋯⋯. 노스 거리는 범위가 너무 넓어서 함부로 달려들기 그렇지. 게다가 현재의 우리로서는 단기 용병 임무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그곳에 아예 진입조차 할 수 없고⋯⋯.

그럼 이제 남은 건 하나뿐이네. 상대적으로 또렷한 단서. 그들이 만났다는 위드 시티 사냥꾼 길드의 고위층.”

장목화가 하나하나 배제하고, 마지막 남긴 단서를 말하며 웃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게 누구인지도 모르는데요.”

용여홍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반박했다. 이 역시 진병욱의 심층적인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었다.

장목화는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그래, 우리는 그게 누군지 모르지. 근데 분석할 수는 있어. 구조팀이 위드 시티에 온 건 구세계를 경험한 노인을 찾기 위해서였어. 그런데 왜 갑자기 사냥꾼 길드의 고위층을 만났을까? 그가 그런 노인일까? 아니면 그의 가족 중에 그런 노인이 있는 걸까?

내일은 사냥꾼 길드에 가서 고위층 중에 어떤 이들이 있는지 살피고 하나하나 조건을 비교해보자. 만약 조건에 만족하는 이가 없다면 진병욱에게 그 고위층들의 가족에 대한 자료를 요구하면서 고위층 회원의 윗세대 중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는 거야. 목표를 확정한 후에는⋯⋯.”

이 대목에서 장목화가 더 환하게 웃으며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네가 나서야겠지. 그 노인을 양부모님이나 양할머니, 할아버지로 삼아.”

용여홍은 생명 제례 교단 사건의 세세한 부분까진 알지 못해서, 눈을 휘둥그레 뜨며 입을 쩍 벌렸다.

반면 성건우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반짝이는 눈으로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 사이 백새벽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지금은 신력 46년 연말이고 신력이 시작되기 전 혼란의 시대는 20년 정도 이어졌으니, 일흔이 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구세계의 파괴를 경험했다고 말하기 어렵겠지⋯⋯.”

일흔 살이 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구세계 파괴 당시 세상에 존재했다 한들, 지나치게 어렸던 탓에 당시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또한 현재 애쉬랜드의 생존 환경상 일흔 살을 넘길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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