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131화 (131/649)

131화. 믿을 수 있는

그렇게 구조팀은 오후 3시가 될 때까지 돌아다니다, 윤복 총포사로 복귀했다. 계단을 오른 그들은 다 함께 한 방으로 들어갔다.

장목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술 배낭에서 큰 종이 한 장을 꺼내 기억을 더듬어가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스 스트리트를 제외한 위드 시티의 나머지 구역이 종이 위에 그대로 구현되었다.

「도랑이 있음.」

「엄폐물 많음.」

「부근이 비교적 혼잡함.」

「전선 배치가 형편없음. 고장 나기 쉬움.」

지도 곳곳에 주석까지 단 장목화가 백새벽에게 종이와 펜을 건넸다.

“더 보충해야 할까? 다행히 위드 시티도 그렇게 크지는 않네.”

“음…….”

종이랑 펜을 받아든 백새벽이 그림과 글자를 더 채워 넣었다.

이 기회를 틈타 장목화가 성건우, 용여홍에게 말했다.

“잘 보고 머릿속에 새겨둬. 앞으로 우리는 따로따로 흩어져서 움직일 가능성이 커. 그러다 뜻밖의 사고가 발생하거나 한다면 적어도 어디에 숨어야 할지, 지형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정도는 알아둬야 하잖아.”

“예, 팀장님!”

일찍이 설득당한 용여홍은 곧장 답했지만, 성건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숨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뜻밖의 사고인데요.”

장목화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 전, 그가 즉각 혼잣말하듯 덧붙였다.

“하지만 지형도를 잘 기억해 놓으면, 뜻밖의 사고가 나도 어딘가에 숨거나 지형을 이용할 수는 있겠죠.”

“안다니 다행이다.”

장목화가 대꾸했다.

백새벽이 지도 보완을 마치자, 팀원들은 완성된 지도를 살피며 중요 지점을 기억해 두었다.

“오늘 저녁 정보요원을 기다릴 때 우리는 조 대로 나뉘어서 몰래 이곳을 감시할 거야. 뜻밖의 사고를 방지해야지. 어디에 숨는 게 좋을까?”

장목화가 사우스 스트리트 노예 시장 맞은편 골목길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팀의 저격수 백새벽은 적극적으로 사우스 스트리트 노예 시장을 짚었다.

“여기요. 왼편 건물 꼭대기에 숨으면 맞은편 골목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어요.”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에, 그러니까 정말 만약에 회사 정보요원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다면 그자의 배후에 있는 자도 이곳을 선택하려 할 거야. 우린 최대한 그들과 부딪히지 말아야 해. 그러니 그다음으로 좋은 곳을 택하는 게 나아. 여차하면 나랑 건우가 위치를 조절해 너희들 시야랑 탄도를 보장할 수 있으니까.”

한 차례 토론 끝에 구조팀의 은닉 장소는 사우스 스트리트 노예 시장 오른편 건물 꼭대기로 결정되었다. 때가 되면 백새벽과 용여홍은 그곳에 숨고 장목화와 성건우는 회사 정보요원을 만나러 갈 계획이었다.

* * *

겨울의 밤은 언제나 일찍 찾아오는 편이었다. 어둠은 점차 위드 시티를 뒤덮고, 노랗고 흰 등불들은 하나둘 긴 잠에서 깨어났다.

현재 시각은 7시 40분, 장목화가 옷에 달린 모자를 쓰며 몸을 일으켰다.

“출동.”

전기가 완전히 끊기는 시각은 저녁 8시 30분이니, 아직까진 시간이 남아있었다.

거리에 늘어선 가로등도 여전히 빛을 발산하며 행인들의 시야를 밝혀주었다.

하지만 반고 바이오 내부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사우스 스트리트에 있는 가로등 대부분이 망가져 버려서, 그중에서 멀쩡한 건 수십 미터 반경에 자리한 것들 중 하나 정도 될까 말까였다. 가로등 아랫길은 미약한 빛으로만 뒤덮여서 사실 제대로 보이는 건 없었다.

저녁 식사를 하기 전, 백새벽은 용여홍을 데리고 이곳을 거닐며 앞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몇 가지 방안을 세웠다.

그녀의 걸음은 마치 거대한 무언가를 안은 채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처럼 침착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그러나 용여홍은 언제나 그랬듯 약간 긴장하고 있었다. 그래도 처음 외출했을 당시 수많은 일을 겪은 덕분에, 이젠 이런 상황에도 어느 정도 면역이 되었다. 그도 이젠 처음처럼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로 불안해하진 않았다.

용여홍은 묵묵히 백새벽의 곁에 붙어서, 수시로 행인들의 시선을 차단했다. 품에 안은 오렌지 소총을 가리려는 의도였다.

사우스 스트리트 노예 시장 입구엔 초소가 있었다. 그 안에는 경비원 두 명이 똑같이 생긴 제식 돌격 소총을 들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태도가 그렇게 열성적이진 않았다. 때로는 앉거나 서서 주위를 대충 둘러보고만 있었다.

백새벽은 그들을 지나치며 적당한 속도로 중앙 광장을 향해 걸어갔다.

곧 백새벽과 용여홍은 가로등 사각지대에 진입했다. 이곳에서 두 사람은 그저 어둑한 거리에 드리운 흐릿한 그림자처럼 보였다.

이 자리에서 백새벽이 갑자기 홱 돌아섰다. 그녀는 근처 건물의 뜰 입구로 다가가더니 단 몇 초 만에 철책 대문을 민첩하게 올랐다.

용여홍은 그녀의 모습에 넋을 놓았다. 백새벽은 철책 대문 위로 몸을 날리는 와중에도 품에 안은 소총을 안정적으로 잡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감탄할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용여홍도 이를 잘 알기에, 곧장 백새벽을 따라 철책 대문을 타고 넘었다. 그가 움직일 때도 큰 기척이 들리진 않았다.

* * *

그렇게 백새벽과 용여홍은 사우스 스트리트 노예 시장 옆 건물에 진입했다.

어둑한 전구의 불빛 아래, 두 사람은 서늘한 계단을 타고 1층에서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백새벽은 계단을 오르며, 미리 준비해둔 철사를 꺼내 열쇠 구멍에 꽂아 넣고 몇 번 비틀었다. 그러자 옥상으로 통하는 문도 손쉽게 열렸다.

외관만 봐서는 상당히 고전적인 건축물처럼 보였지만, 대부분은 장식에 불과했다. 이 건물은 구조도 그렇고 아주 정석적으로 지어져 있었다.

백새벽과 용여홍은 옥상에 올라와 문을 닫고, 다시 어스름한 달빛 아래 사우스 스트리트 노예 시장 쪽으로 이동했다.

고요한 밤, 탁 트인 곳에 이른 둘은 웨스트 스트리트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 음악 소리, 고함까지 각양각색의 잡다한 소리를 들었다.

그때, 사우스 스트리트 노예 시장 쪽을 보던 용여홍이 고개를 살짝 돌렸다.

“이쪽에서도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은데?”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웨스트 스트리트에서 들려오던 시끄러운 소리가 잠시 그치더니, 사우스 스트리트 노예 시장의 동정이 확 두드러졌다.

정확히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했지만, 분명히 한데 뭉친 소리가 있었다. 어둑한 밤하늘 아래, 수많은 이들이 흐느끼는 소리가 잔잔히 퍼져나갔다. 그 가운데 목이 찢어질 듯한 기침과 연한 신음도 섞여 있었다.

“노예들이 울고 있나 봐.”

백새벽이 무표정한 얼굴로 아래쪽 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동안 침묵하던 용여홍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무 불쌍해. 우린 넷뿐이라 구해줄 수가 없어서 안타깝네.”

고개를 돌려 맞은편 골목을 보던 백새벽은 잠시 후에야 입을 열었다.

“이런 계절에 충분한 물자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차라리 저들을 구하지 않는 편이 나아.”

그녀의 말을 곰곰이 되새기던 용여홍은 머지않아 그 말에 숨은 뜻을 깨달았다. 그런 도리가 성립한다는 사실에 더 큰 슬픔이 밀려왔다.

그 사이 백새벽은 위치를 잡고 오렌지 소총을 설치한 뒤 조준경을 통해 맞은편 골목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용여홍도 지시에 따라 망원경을 들고 사우스 스트리트 노예 시장 기준으로 반대편에 자리한 건물 옥상과 방을 살폈다.

몇 차례나 반복적으로 건물을 살핀 후, 용여홍이 결론을 내렸다.

“아무것도 없어.”

“3분에 한 번씩 살펴.”

백새벽이 강조했다.

“예⋯⋯.”

순간 무의식적으로 대답하던 용여홍이 말끝을 흐렸다. 습관처럼 팀장님이라고 답하려다 멈칫한 것이다. 이번에는 과연 뒤에 무슨 말을 더 붙여야 하는 걸까. 평소대로 백새벽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적절치 않아 보였다.

백새벽은 초지일관 목표 구역 감시에만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이에 용여홍도 조용히 맞은편 아래쪽을 살피다, 식사 후 산책하듯 이 골목으로 꺾어 들어오는 장목화와 성건우를 발견했다.

* * *

“앞쪽에 망가진 가로등 옆에서 기다리자.”

장목화는 검은색 솜옷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가장자리가 갈색 털로 장식된 모자였다. 이로 인해 그녀의 얼굴은 훨씬 더 작아 보였다.

성건우는 허튼 말 같은 건 하지 않도록 입을 꾹 다문 채, 장목화를 따라 망가진 가로등 뒤쪽으로 향했다.

가로등 빛으론 그늘에 숨어든 그를 밝힐 수 없었다. 골목 양쪽 건물 안에서 흘러나오는 빛으로 인해, 윤곽만 어렴풋하게 드러날 뿐이었다.

장목화와 성건우는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고, 각자 골목 끝을 살피며 오가는 행인들에 집중했다. 그러다 누군가가 이쪽으로 다가올 때면 데이트 중인 커플처럼 서로를 바라보았다.

반고 바이오에도 소등 시간 이후에 차가운 복도 구석에서 밀회를 즐기는 연인들이 있었다. 장목화와 성건우는 당연히 지상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게다가 위드 시티처럼 상대적으로 생활 환경이 좋은 곳이라면 더욱 그랬다. 백새벽 역시 이 점에 대해 부인하지 않았다.

* * *

시간은 착실히 흘러, 거의 8시가 되었다.

그로부터 대략 일이 분 정도 더 흘렀을 무렵, 사우스 스트리트 입구로부터 이쪽 골목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한 인영이 보였다.

짙은 남색 솜옷을 입고 북슬북슬한 털이 달린 가죽 모자에 검은 스카프를 두른 몸은 약간 굽어있었다. 고개까지 살짝 숙인 남자는 차가운 바람 속에 휘청거리는 노인처럼 보였다.

장목화와 성건우가 있는 곳을 지나치던 그 순간, 그는 갑자기 미끄러지며 비틀거리기 시작하더니 뭔가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황급히 쪼그려 앉은 그는 골목 양쪽 건물에서 흘러나오는 빛에 기대 잃어버린 물건을 찾았다.

장목화와 성건우는 이미 그 물건을 또렷하게 확인한 상태였다. 노인이 떨어뜨린 건 붉은 바탕에 아무런 글자도 새겨지지 않은 배지였다.

“이걸 떨어뜨리신 건가요?”

장목화가 웃으며 허리를 굽힌 후, 붉은 바탕에 금색 글자가 새겨진 자신의 명찰을 남자의 앞쪽으로 들이밀었다.

그것을 보고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맞습니다.”

어스름한 등불 아래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남자는 노인이 아니었다. 나이는 30대 정도로, 눈썹은 짙지도, 성기지도 않았고, 이목구비는 추하지도, 또렷하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기억될 만한 특징이라곤 없는 사람이었다.

답한 남자는 얼른 자신의 배지를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목화는 그가 바로 회사에서 위드 시티에 파견한 정보요원임을 확인하곤, 미소 띤 얼굴로 한담을 하듯 물었다.

“혹시 미리 이곳에 와서 주위를 관찰하셨나요?”

정보요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옷을 거꾸로 입거나, 모자를 벗거나, 스카프를 다르게 매거나, 걸음걸이만 살짝 바꿔도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이죠. 기술이 좀 필요하긴 하지만.”

장목화는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요, 그렇게 이곳을 네 번이나 지나쳤잖아요. 그렇죠?”

정보요원은 화들짝 놀란 듯 장목화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자신이 부근에 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는 거야 놀랍지 않았지만, 정확히 몇 번이나 이곳을 지나쳤는지까지 알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장목화는 웃음을 머금은 채 상대의 두 발을 바라보았다.

“다음번에는 신발을 갈아신는 것도 기억하셔야겠어요.”

정보요원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한 표정을 드러냈다.

이내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분명 여분의 신발을 가지고 다니긴 불편하니 더럽히는 수밖에 없겠네요. 그러고 싶지는 않으시죠?”

애쉬랜드를 통틀어, 우쭐거리는 귀족 영감들을 제외하곤 자신의 물건을 기꺼이 더럽히려 할 사람은 없었다.

반고 바이오 일반 직원들도 평소 물자 부족 현상을 몸소 느끼며 살아갔다. 다만 그 상황이 대부분의 황야유랑자 거점보다 나을 뿐이었다.

“그렇죠.”

정보요원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더 이상의 말을 늘어놓는 대신 좌우를 살폈다.

“여긴 대화를 나누기 편한 곳이 아닙니다. 다른 곳으로 안내하죠.”

장목화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정보요원은 이를 보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저를 못 믿으시는 겁니까?”

이때 성건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제가 왜 그쪽을 못 믿겠습니까? 보세요. 우리는 모두 회사 직원이에요. 우리 가족은 모두 회사 내부에 있죠. 그러니까⋯⋯.”

정보요원은 금세 온화해진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그렇죠. 우리는 모두 믿을만한 사람입니다. 제가 이곳 위드 시티에 파견된 지도 거의 2년이 다 돼가네요. 앞으로 1년만 더 있으면 돌아갈 수 있어요. 제 딸이 하하, 아직도 절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제가 반고 바이오를 떠났을 당시 우리 아이는 겨우 다섯 살이었거든요.”

그의 태도는 눈에 띄게 친절해졌다.

“불길한 말씀을 하시네요. 말을 아끼세요.”

성건우가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멍한 표정을 드러낸 정보요원은 무의식적으로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차분한 성건우의 얼굴엔 오직 진심만 어려 있었다.

“그렇긴 하죠.”

정보요원은 곧 친구의 관심과 애정을 받아들였다. 뒤이어 그가 골목의 반대편 끝을 가리켰다.

“그래도 장소를 옮기는 게 좋죠. 여긴 오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정보요원은 접선 장소에 본능적인 경계심과 요구 조건을 가진 듯했다.

추리 광대라는 보험이 있는 이상, 아무리 믿음직스럽지 못한 상대라도 완벽하게 믿을 수 있었다. 장목화도 더는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좋습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무전기를 꺼내 버튼을 눌렀다.

“철수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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