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따끈따끈한 신입
중앙 광장에 도착한 장목화와 성건우는 웨스트 스트리트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몇 걸음 내딛기도 전, 한 건물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사냥꾼 길드를 발견했다.
[사냥꾼 길드]
모조 지붕과 박공 아래, 얼룩덜룩한 흰색 벽과 조그만 전구 하나하나가 간판을 이루고 있었다. 애쉬랜드 문자와 레드리버 문자로 병기된 간판은 까만 밤이 오면 대비된 빛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 것 같았다.
길드 1층 방은 전부 트여있었다. 기둥과 허물 수 없는 벽만 남은 이곳은 매우 널찍한 홀이었다.
현재 문은 전부 활짝 열려 있어 누구나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는데, 각기 다른 문 옆의 벽과 기둥에 다 똑같이 쓰여있는 검은색 글씨가 있었다.
「운영 시간 : 오전 8시 30분 ~ 저녁 8시 30분.
주의 : 본 길드의 직원에게는 합법적인 총기 소지권이 있음.
경고 : 질서를 유지할 것.
⋯⋯」
장목화가 이 내용을 살피는 동안 사냥꾼 길드 안에서 한 무리가 나왔다. 그들 중 상당히 눈에 띄는 두 명이 있었다.
하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실버블랙 색 로봇으로, 몸체의 선이 유려하고 눈동자는 전구 두 개가 박힌 듯 붉은빛을 번득이고 있었다.
다른 한 명은 30대 정도의 남자로, 외관은 평범했으나 눈빛은 날카로웠다. 오른손이 상당히 길고 새카맸는데, 관절 위쪽 부위는 소매로 가려져 있어 볼 수가 없었다.
‘……기계 팔이야.’
장목화는 자신의 혼잣말이 좀 크다는 걸 알고 있어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한참 건물을 오가는 유적 사냥꾼들도 전부 부러움 가득한 눈빛으로 같은 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백새벽의 시선 역시 계속 그들을 따라 이동했다.
“지능 로봇도 있네⋯⋯, 대단해!”
용여홍이 감탄했다.
꼭 전투형이 아니더라도 지능 로봇은 야외에서 아주 큰 도움이 됐다. 그들은 배고픔을 느끼지도 않았고, 피곤해하지도, 독가스나 일반 총기, 악랄한 환경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거기다 매우 무거운 물건도 쉽게 옮겼다.
유일한 문제가 있다면 바로 에너지 공급 방법이었다. 안타깝게도 구세계 파괴 이후 안정적으로 지능 로봇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곳은 세 곳도 되지 않았다.
점차 오래된 로봇들이 망가지고 못 쓰게 되면서, 이런 동료가 포함된 집단은 상당한 부러움을 살 수밖에 없었다. 여태 수많은 인간이 갖가지 위험을 견디며 살아올 수 있었던 데에는 로봇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 구세계에서도 지능 로봇은 그다지 보편적으로 보급되지 않았던 존재였다.
장목화는 곧 지능 로봇이 포함된 무리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성건우를 향해 웃으며 물었다.
“만약 기계 팔을 장착할 기회가 생긴다면 넌 어떤 기능을 선택할래?”
성건우는 매우 진지하게 답했다.
“통조림 따개요.”
“⋯⋯정말 실용적이겠네.”
장목화가 이를 악문 채 대꾸했다.
* * *
장목화와 성건우 조는 드디어 사냥꾼 길드 홀에 들어섰다.
이곳 천장에 달린 형광등 하나하나가 흰빛을 뿜어대고 있었다. 누구 하나 전기를 절약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는 듯했다.
홀 중앙 둥근 단 주위엔 탁자 여러 개가 있고, 각각 탁자에는 액정 패널이 달린 기계가 놓여 있었다.
또 큼지막한 단 위에는 초대형 패널이 하나 걸려 있었다. 그 화면에는 갖가지 임무가 느릿하게 흐르는 중이었다.
화면 아래쪽으로는 창구들이 있었고, 각각의 창구에는 검은색 전자기기가 하나씩 부착되어 있었다.
장목화는 사냥꾼 길드 건물 안과 밖은 완전히 다른 세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쓰인 과학기술은 바깥과 비교하면 정말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났다.
이윽고 장목화가 성건우를 이끌고 빈 창구를 찾았다. 창구 안에는 깔끔하고 예쁜 미인이 앉아 있었다.
장목화는 웃음을 머금고 이야기했다.
“사냥꾼 등록하려고요.”
“서류 작성해주세요. 글을 쓸 줄 모르신다면 제가 도와드릴게요.”
직원이 종이 두 장을 건넸다. 그녀는 열의 가득한 태도는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딱히 불친절하지도 않았다.
작성할 서류 내용은 간단했다. 이름, 성별, 나이 등등만 기입하면 됐다. 장목화는 창구 밖에 놓인 펜을 들고 빈칸을 꼼꼼히 채워나갔다. 가명을 지어내는 건 좀 힘들었지만, 무리 없이 끝냈다. 그리고 장목화는 성건우의 서류도 대신 작성했다.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그냥 알아서 하는 게 편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서류를 제출한 뒤, 창구 앞에 붙은 검은 기계 앞에서 차례대로 사진을 찍고 지문을 등록했다.
사냥꾼 배지를 받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황동색 배지는 앞면엔 사람 얼굴과 칼 한 자루, 창 한 자루가 흐릿하게 새겨져 있었으며, 뒷면에는 칩이 박혀 있었다.
“두 분은 이제 신입 사냥꾼이에요. 힘써서 임무를 수행하신다면 곧 정식 사냥꾼이 되실 수 있을 거예요.”
직원이 배지를 나눠주며 천편일률적인 축하 인사를 덧붙였다.
장목화는 성건우에게 배지를 던지듯 건넨 뒤, 웃으며 이야기했다.
“가자, 어떤 임무가 있는지 보러.”
성건우는 배지를 엄숙하게 받아들고 곧장 가슴팍에 달았다.
장목화가 가슴팍에 배지를 다는 성건우를 바라보며 웃었다.
“겨우 신입 사냥꾼 배지 가지고 그럴 필요까지는 없잖아? 알아, 뭐 일종의 의식 같은 느낌이 나긴 하지.”
그녀는 성건우가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알아서 얘기를 끝냈다. 전에 성건우가 이런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알면서 왜 물어보세요?”
성건우는 장목화의 의도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눈치였다.
그런 그를 노려보던 장목화가 이내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위쪽에 걸린 대형 화면을 올려다봤다. 이를 보고, 조금 전 두 사람의 등록을 도와준 직원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저쪽에 있는 기계로도 어떤 임무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거든요. 선택을 마치고 빨간빛이 반짝이는 곳에 배지를 한 번 긁으세요. 그럼 임무가 접수됩니다.”
음성 안내도 있었지만, 그녀는 이 설명은 생략했다. 두 사람이 서류 작성을 알아서 마쳤다는 건 글을 읽고 쓸 줄 안다는 소리였다.
“⋯⋯확실히 최첨단이네.”
장목화는 순간 자신이 약간 촌스러워진 것 같다고 느꼈다. 반고 바이오 내부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와 비슷한 부서나 장소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그런 곳에 방문해 본 적이 없었다.
장목화가 중얼거린 말을 듣고, 직원은 더 자부심을 보였다.
“저희처럼 첨단화된 사냥꾼 길드는 애쉬랜드를 통틀어 열 군데도 안 돼요.”
장목화는 아무 말 없이 금속 와우만 만지작거렸다. 직원과 꽤 거리가 있는 데다, 그녀가 조금 전처럼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서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되묻고 싶었지만, 장목화는 괜히 부끄러운 마음에 와우만 만지고 있었다.
“애쉬랜드에서 이런 사냥꾼 길드는 열 군데가 채 안 될 거라네요.”
곁에서 성건우가 항상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통역해주었다. 그에게 도움받길 원하는 사람이 늘 있는 건 아니었다.
“어쩐지, 곧 사냥꾼 길드에 인수될 도시라는 소문이 있더라니⋯⋯.”
장목화는 농담과 진담이 반씩 섞인 말을 조용히 중얼거렸다.
잠시 후, 장목화는 성건우를 데리고 홀의 다른 테이블로 향했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액정 패널이 달린 얇은 은백색 기계를 하나씩 집어 들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종이 공책처럼 보이는 기계였다.
유적 사냥꾼 상당수도 각기 다른 곳에 서서 손가락으로 화면을 훑거나, 기계 상단의 붉은빛이 번득이는 곳에 배지를 갖다 대고 있었다.
장목화는 본래 컴퓨터도 잘 다뤘고, 평소에도 칩을 제어하고 있어 주위를 한번 둘러보자마자 기계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대강 파악했다. 그녀는 화면을 눌러 켠 뒤, 안내에 따라 임무 목록을 띄웠다.
그러다 장목화가 곁눈으로 성건우를 바라봤다. 그는 거울함 하나를 꺼내서, 장목화를 쳐다보며 뭔가를 매우 열정적으로 하고 있었다.
“뭐해?”
장목화가 경계심 잔뜩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저 스스로를 속여서 팀장님인 척하려고요. 그다음 팀장님 동작을 흉내 내서 기계 사용법을 익히는 거죠.”
성건우가 진지하게 설명했다. 이미 그는 좌우를 살피고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했다. 그런 다음, 당시 차으뜸과 탐욕을 자극했던 고등 무심자에 대적했을 때랑 같은 수를 쓸 생각이었다.
장목화는 애써 화를 억눌렀다.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잖아! 이렇게 간단한 일을 하는데 그런 야단법석을 떨어야겠어? 자, 내가 가르쳐 줄게!”
그래도 전자과 졸업생이라고 성건우는 장목화가 몇 마디 가르쳐주는 것을 듣고 단숨에 기계 조작법을 깨우쳤다.
그때, 백새벽과 용여홍도 사냥꾼 길드 홀로 들어섰다. 장목화, 성건우 조와 일부러 간격을 좀 두고 들어온 것이었다.
장목화는 원형 단 쪽을 힐긋 보다 시선을 거두고, 다시 액정 패널에 뜬 화면을 제대로 살피기 시작했다.
[임무 설명 : 노스 스트리트 조 씨 저택에서 단기 용병 20명 고용 중⋯⋯.]
[임무 설명 : 역사학자 해럴드가 팀원 모집 중. 곧 늪 1호 폐허로 갈 예정. 경험자 급구⋯⋯.]
[임무 설명 : 골동품 감정 필요⋯⋯.]
[임무 설명 : 무기와 식량 교환⋯⋯.]
[임무 설명 : 황원 초소로 점심 배달⋯⋯.]
장목화는 빠르게 현재 접수 가능한 임무를 살피다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아쉽네⋯⋯.”
“아쉽네⋯⋯.”
옆에서 성건우도 거의 동시에 같은 말을 뱉었다. 이번엔 딱히 장목화의 말투를 흉내 낸 건 아니었다.
장목화가 성건우를 돌아보며 웃었다.
“뭐가 안타까운데?”
“차으뜸에 관한 임무가 없다는 게요.”
성건우는 언제나 솔직했다.
그러자 장목화도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건 나도 안타까워. 그런 임무가 있었다면 우리가 가진 정보를 팔기만 해도 최소 밀가루 4톤은 얻었을 텐데. 그럼 당분간 식량 걱정은 안 해도 됐을 테고, 곧장 정식 사냥꾼으로 승급할 수도 있었을 거야.”
장목화는 지금 구조팀이 파악한 차으뜸 관련 정보 정도면, 팀원들이 각자 나눠서 보고해도 충분한 보수를 얻으리라 생각했다.
이에 관한 보수는 한 명당 일반 품질의 밀가루 1톤과 신용 점수 100점을 받을 수 있었다. 신입 사냥꾼에서 정식 사냥꾼으로 승급하는 데 필요한 점수가 딱 100점이었다. 어떤 의미로 보면 차으뜸은 정말 걸어 다니는 보물이었다.
결국 장목화와 성건우는 다시 또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쉽네⋯⋯.”
대충 임무들을 파악하고, 장목화가 성건우에게 말했다.
“가자, 지금 있는 것들 중엔 딱히 적당한 게 없어. 내일 다시 살펴보자.”
사실 그중 몇 개는 신입 사냥꾼에게 잘 어울리고, 위드 시티를 떠나지 않아도 될만한 임무였다. 하지만 장목화의 입장에선 일단 반고 바이오 정보요원과 연락이 닿아야만 다음 계획을 세우고 어떤 임무를 맡을지 정할 수 있었다.
지금 사냥꾼 길드를 찾은 것은 신분을 등록하고, 어떤 임무들이 있는지 한번 살펴보면서 현재 위드 시티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잎 하나가 떨어진 것을 보고도 가을이 온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사냥꾼 길드가 고도로 발달 된 위드 시티에 어떤 암류가 흐르고 있는지는 이곳에 발표되는 임무를 통해 살짝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장목화는 목록에 오른 임무들을 통해 노스 스트리트 정세가 약간 긴장되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었지만, 그 외에는 다 괜찮은 편이었다.
곧이어 장목화가 먼저 앞서고, 성건우는 장목화를 뒤따라 사냥꾼 길드의 출구로 향했다. 걸어가면서 성건우가 의혹이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늪 1호 유적은 뭐죠?”
“그 뒤쪽에 따라붙은 설명을 보니까 우리가 가봤던 거기가 분명해.”
장목화는 특정 장소에 번호를 붙인다는 게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사냥꾼 길드에서 나온 장목화가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웃었다.
“좀 돌아다녀 볼까? 나도 위드 시티는 처음이거든. 와볼 기회가 한 번 있기는 했는데 놓쳐버렸지.”
그 말에 성건우 역시 의욕을 보였다.
잠시 후, 그들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뒤쪽에서 따라오던 용여홍이 백새벽을 향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팀장님 지금 어디로 가는 거지? 그냥 무작정 걷는 느낌인데?”
백새벽은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돌아다니면서 이곳에 적응하려는 것 같아.”
용여홍도 그제야 장목화의 의도를 파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