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125화 (125/649)

125화. 위드 시티 (1)

지프차로 돌아가는 사이, 잠시 뒤돌아보던 용여홍이 성건우에게 물었다.

“야, 신성한 눈 교파 가입 거절한 거. 성찬이 별로 맛없어서냐?”

“그게 바로 인연이 없다는 뜻일지도 모르지.”

성건우가 솔직하게 답했다.

“하하, 그럴 줄 알았어.”

용여홍은 웃음이 나왔다. 당근을 성찬으로 여기기엔 너무도 소박하고 평범했다. 그 역시 성건우를 절대 만족시키지 못했으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럼 신성한 눈의 미사가 진행될 때 그런 반응을 보인 이유는 뭔데?”

이는 백새벽의 질문이었다. 그녀도 팀에 어느 정도 적응했는지, 분위기가 적당해지면 거리낌 없이 질문했다.

백새벽의 질문에, 장목화는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 낮게 웃기 시작했다. 그녀는 웃느라 정신이 없어서 걸음을 제대로 옮기지도 못했다.

한참 후에야 겨우 숨을 돌린 장목화가 입을 열었다.

“저 미사라는 게 너무 익숙하잖아. 회사 내 모든 학생이 다 그럴걸?”

아직도 어리둥절한 표정의 백새벽을 보고 그녀가 예를 하나 들어주었다.

“해자 마을의 아침 체조, 기억하지? 조금 전 미사는 회사 초등학생들이 배우는 아침 체조 같은 거였어. 하하, 분명 구세계의 잔재일 거야. 달지기와는 조금의 관계도 없지. 그런데 저들은 눈과 관련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걸 성가로 여기고 있잖아. 하하, 너무 웃겨⋯⋯.”

장목화의 웃음소리에 용여홍도 더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백새벽도 이제는 대강 상황을 파악했다. 신성한 눈이 해자 마을의 아침 체조를 미사로 여기는 광경을 상상하니, 그녀의 입가에도 저절로 옅은 웃음이 번졌다.

그때, 성건우가 불쑥 물었다.

“회사의 고위층 관료 전원이 신성한 눈을 알고 있고, 그래서 일부러 그걸 눈 보호 체조로 선택한 거라면요?”

“그럴 리가⋯⋯.”

용여홍은 일단 반박에 나섰지만, 목소리는 갈수록 작아졌다. 상상만 해도 무시무시한 가능성이기 때문이었다.

이내 장목화는 눈을 부릅뜨고 성건우를 노려보았다.

“헛소리하고 있네! 만약 그게 정말이면 우린 일찍이 신성한 눈의 교도가 돼 있었겠지.”

* * *

대화를 나누며, 구조팀은 다시 지프차 옆쪽에 다다랐다.

장목화는 무심히 녹회색 지프를 보다가 점차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팀장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그녀를 잠시 지켜보던 용여홍이 물었다.

장목화는 계속 고민에 잠긴 채 답했다.

“심각한 탈모와 이상성욕이라는 대가를 토대로 쌍태양 영역에 속한 각성자 능력을 짐작해볼 수 있을지 생각해봤어. 이두형이 그랬잖아. 대가는 모호하게나마 그 능력을 비춘다고.”

성건우가 곧장 추측에 나섰다.

“적의 머리카락을 빠지게 하고, 변태스럽게 만드는 능력이었을까요?”

“⋯⋯그런 능력은 정신적인 타격에 속해야 할 것 같은데.”

용여홍이 한번 상상해본 뒤 중얼거렸다.

장목화는 다시 또 성건우를 노려보았다.

“난 공통점을 찾으려는 거야. 하지만 플린이 말했던 두 번째 각성자도 신성한 눈의 교도였으리라는 확신은 못 해. 만약 그 사람이 신성한 눈의 교도였다면, 쌍태양 영역 각성자의 공통점은 호르몬과 관련돼 있다는 거야.”

황야유랑자 중에서도 비교적 기본 교육을 잘 받은 편인 백새벽은 호르몬이 무엇인지 대략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고민해보다가 입을 열었다.

“범위가 너무 넓어요.”

장목화가 말을 이었다.

“맞아.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주어진 자료가 너무 적어서 이 정도 추측밖에 못 해. 음, 그리고 쌍태양의 교리는 눈에 집중돼 있어. 그러니 그 능력 역시 시각 영역을 포함하고 있을 거야. 하하, 만약 신성한 눈의 각성자가 은신과 비슷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겠네.”

그녀는 그런 각성자를 어떻게 방비해야 하는지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때, 어제 입은 검은색 가죽 코트 차림의 플린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허리춤에도 여전히 총집이 달려 있었으며, 그 안에는 리볼버 피톤이 채워져 있었다.

인사를 나눈 뒤, 지프를 이리저리 살피던 플린이 약간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카무플라주 패턴을 넣으면 어떨까? 지프차 중에는 그런 종류가 많으니까 다른 이들의 시선을 끌지도 않을 거야.”

장목화는 전문가의 의견을 상당히 존중했다.

“괜찮겠네요.”

“자네들, 위드 시티에 어떻게 갈지는 생각해봤어? 우리한테 전문 트레일러가 있어. 거기엔 지프도 거뜬히 실을 수 있지.”

플린이 물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요. 위드 시티에 사업을 하러 가는 척 차량 행렬만 좀 보내주세요. 적당한 규모로요. 그럼 그 안에 섞여 들어갈게요. 마침 그럴 계획이 있으셨다면 더 좋을 텐데요.”

장목화의 말에, 플린이 소리 내 웃었다.

“이런 우연이 있나! 마침 위드 시티에 차량 행렬을 하나 보낼 생각이었거든. 식량을 좀 더 많이 구해올 수 있을까 해서 말이야.”

“비축된 식량이 부족하세요?”

장목화는 그러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플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 날씨가 워낙 좋지 않아서, 수많은 지역의 식량 생산량이 줄었어. 비축을 많이 해두면 해둘수록 생명을 살릴 수 있지, 좋은 값에 팔 수도 있고.”

이유를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 점차 웃음이 피어났다.

장목화는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럼 저희는 단장님의 차량 행렬을 쫓아갈게요. 그래서 통조림은 총 몇 개나 드리면 될까요? 아니면 압축 비스킷이나 에너지 바가 더 좋으세요?”

“어젯밤 술값과 밥값에⋯⋯, 오늘 도색 비용과 내일 차량 호위까지 더하면⋯⋯. 열 개면 되겠네. 혹시 가지고 있는 통조림이 열 개가 안 된다면 나머지는 압축 비스킷과 에너지 바로 줘도 좋아.”

플린이 빠르게 계산을 마쳤다.

장목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까스로 값을 치를 수 있겠네요.”

플린의 웃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럼 내일 오전에 출발하는 걸로 하지. 정오 전엔 도착할 거야.”

“그렇게 빨리요?”

장목화도 계속 우회로를 탈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최소한 하루는 더 가야 하리라고 예측했었다.

플린이 웃으며 답했다.

“얼마 전에 위드 시티에서 터비드리버 다리를 고쳐놨거든. 더 이상 다른 곳으로 둘러 가지 않아도 돼.”

터비드리버는 승려 황원으로 유입된 그린리버의 이름이었다.

“좋아요, 그럼 그렇게 하시죠.”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다음날 오전 9시.

오늘은 백새벽이 차를 몰았다. 이미 위장을 마친 지프는 상인단 차량 대여섯 대를 따라 위드 시티로 향하고 있었다.

서둘러 일을 처리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더 사실적으로 보이게 하려고 그랬는지 지프는 도색을 마쳤지만 좀 조화롭지 않아 보였다. 그냥 대체적으로 카무플라주 패턴이 그려져 있음을 겨우 알아볼 정도였다.

사실 애쉬랜드 위를 달리는 지프 대부분이 이런 식이었다. 어딘가 망가지더라도 고치지 못하거나, 고치는 데 별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지프엔 구조팀 네 명과 무근자 야영지 단장, 플린이 탑승해 있었다. 플린이 굳이 이 차에 탑승한 건 위드 시티에 도착하는 대로 의형제 성건우와 헤어져야 하는 게 아쉬워, 조금이라도 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함이었다.

덕분에 지프차 뒷좌석은 성인 남자 세 명으로 꽉 찼다. 그나마 차량 내부 공간이 넓은 편인 게 다행이었다.

지프는 야영지를 빠져나와 한 바퀴를 돌았다. 이 순간, 용여홍은 비로소 이 구역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을 보았다. 바로 정수장이었다.

주변 나무들이 시선을 가려 주고 있어, 환경이 꽤 괜찮은 편이었다. 보아하니 그간 유지 보수도 잘 되어 온 듯했다.

이 정수장을 통과하자 폐허 도시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고층 빌딩이 다 쓰러져 있었다. 그곳엔 회백색, 혹은 짙은 갈색 진흙 덩이들과 고집스럽게 버티고 선 다 부식된 철근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 누렇게 바랜 담쟁이덩굴 잎과 각종 식물에 뒤덮여 일부만 드러나 있었다. 그 모습은 꼭 죽어가는 수많은 이들이 뭐라도 움켜쥐려는 듯 뻗은 손처럼 보이기도 했다.

늪 깊은 곳의 그 폐허 도시와도 달랐다. 이곳은 더 이상 구세계의 모습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심지어 유적 사냥꾼들도 이곳을 포기한 듯했다. 남아 있는 물건들은 수집하기 어렵거나 가져갈 가치가 없는 것들 뿐이었다.

용여홍의 심경도 복잡해졌다. 만약 폐허 도시에 가본 경험이 없었다면 이 광경에 기껏해야 한숨만 쉬었겠지만, 구세계의 모습을 목격한 바가 있으니 상당히 복잡하고 무거운 슬픔으로 마음이 가라앉았다.

“휴⋯⋯.”

조수석에 앉은 장목화도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성건우, 용여홍 가운데에 앉아 있던 플린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우리 할아버님께서 살아계실 때 여기가 무슨 관광도시였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 그러지 않았다면 이렇게 멀리까지 캠핑카를 끌고 나오지도 않았을 거라고.”

“노래를 듣고 싶네요.”

성건우는 플린의 말에 호응하는 대신, 생뚱맞은 말을 꺼냈다.

그러나 장목화는 이해한다는 듯 물었다.

“과거의 고통 어쩌고 하는 그 노래?”

성건우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장목화는 손을 내저었다.

“됐어, 됐어. 괜히 감상에만 젖게 될 거야. 지금도 이 길에서 운전하는 거 힘든데, 괜히 새벽이 방해하지 말자.”

완전히 버려진 폐허 도시는 무너진 건물의 잔해와 움푹 꺼진 지면으로 인해 묻혀 있거나 끊어져 있기도 해서 이동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차량도 끊임없이 노선을 바꾸며 아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다행히 백새벽도, 플린도, 앞쪽의 무근자들까지 이곳을 잘 알고 있었기에 길을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유적 사냥꾼들이 길을 막고 있던 자동차들을 가지고 가줘서 참 고맙네요. 안 그랬으면 이 도시를 둘러 가느라 상당히 지체됐을 거예요.”

백새벽의 말을 듣고, 플린이 흰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웃었다.

“우리 공로이기도 하지. 우리 상인단도 여기서 차를 상당히 많이 찾아냈거든. 지금은 다 할아버지가 되어 있지만 말이야.”

한담을 나누며 한 시간 정도 더 이동했을 무렵, 지프차는 도시에서 가장 심각하게 파괴된 구역을 천천히 통과했다. 그러자 길도 점차 나아졌다. 심지어 회백색 기둥들로 떠받쳐진 허공의 길도 보였다.

이상하리만치 텅 비어있는 그 길은 파손된 흔적도 그다지 두드러져 보이지 않았다. 그저 시든 잡초들만 가득 자라나 있을 뿐이었다.

* * *

그로부터 또 얼마나 지났을까, 차량 행렬은 터비드리버 근처에 도착했다.

이곳 강물은 모래가 많이 섞인 듯 누렇고 탁했다. 겨울이라 그런지 곳곳이 진흙으로 덮인 강바닥이 밖으로 드러나 있기도 했다.

차량 행렬에서 비스듬히 떨어진 전방에 다리도 보였다. 크고 두터운 돌로 떠받쳐진 중형 다리는 강의 양쪽 둑을 연결하고 있었다.

새롭게 고쳐놓았다는 다리를 통과해 10분 정도 더 나아가던 그때, 구조팀원들 시야에 대략 10미터 높이 정도 되는 회백색 성벽이 들어왔다.

“저기가 바로 위드 시티야.”

플린이 소개했다.

“성벽이 있네요?”

용여홍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교과서에선 구세계 도시는 고대와 달리 높고 두꺼운 성벽을 세우지 않았다고 했었다. 기껏해야 학교 등에만 관리의 편의를 위해, 높지 않은 담장을 둘렀을 뿐이라고 나와 있었다. 만약 구세계가 파괴된 후에 세워진 성벽이라면 그것을 세우는 데에는 어마어마한 품과 자원이 들었을 것이다.

플린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건 아까 본 그 폐허 도시의 부속품이야. 구세계가 파괴되기 전에 여기가 무슨 고성이었다지?”

“관광 명소였던 건가요? 오래된 느낌을 주기 위해 성벽을 보존하고 보수해왔던 모양이죠?”

장목화가 지식에 근거해 추측했다.

“맞아, 듣자 하니 맨 처음에는 수많은 생존자가 전의 그 폐허에 거점을 설립하려 했었다고 하더라고. 근데 그곳은 지나치게 피해를 입어서 거점을 만들기가 쉽지 않아. 반면 이곳은 성벽도 있고, 자체적인 정수장도 있고, 수력발전소와도 가까워.

하하, 대포를 막지도 못하고, 폭탄을 막을 수도 없는 성벽이지만 적어도 야생 동물이나 괴물, 무심자들을 막을 순 있으니 이 안에서는 충분한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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