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124화 (124/649)

124화. 미사

“……허억!”

성건우가 눈을 번쩍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기척에 따라서 깨어난 장목화는 습관적으로 손을 들고 눈을 비볐다. 그렇게 잠시 생각하던 그녀가 물었다.

“두 번째 섬을 발견한 거야?”

장목화도 지난 보름간 그가 두 번째 섬을 발견하지 못했단 걸 알고 있었다.

“네.”

성건우는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 답했다. 심지어 자발적으로 자신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려 주기도 했다.

고민하던 장목화가 반문했다.

“네가 생각하기에 당시 네 상태는 어땠는데?”

“심각한 병을 앓게 된 것 같았어요.”

성건우의 말투는 단호하고 확실했다.

장목화는 잠시 생각하다가 정색하고 말했다.

“있잖아, 어머님께서 편찮으셨을 때 넌 어린 나이에 수시로 병원에 출입했었잖아. 혹시 그때 느낀 병에 대한 두려움이 트라우마로 남은 거 아닐까?”

그녀는 혹시나 성건우를 자극하게 될까 봐 그의 어머니가 병으로 사망한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언급하지 않았다.

몇 초간 침묵 끝에 성건우가 입을 열었다.

“엄마가 응급실에 실려 가는 걸 봤어요. 밖에서 오랫동안 기다렸었죠.”

장목화는 조용히 한숨을 내쉰 뒤 물었다.

“혹시 그때 무슨 병을 앓거나 하지는 않았어? 좀 심각한 병 말이야.”

“그런 적 없어요.”

성건우가 고개를 저었다.

“소만큼이나 튼튼했던 모양이네.”

장목화는 진짜 소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성건우는 무슨 뜻인지 묻지도 않고, 혼자 생각에 잠긴 채 중얼거렸다.

“원래 심각한 병에 걸려서 그 병을 이겨내야 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장목화가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 그런 거 아니야! 그런 건 통제할 수 없는 일이잖아. 네가 끝내 병을 이겨내지 못할 가능성도 있고. 음, 며칠 더 고민해볼 테니까 너도 한 번 잘 생각해봐. 무턱대고 아무 시도부터 하지 말고! 건우야, 우린 곧 위드 시티에 도착해. 알지? 위력 손실은 치명적이야.”

그녀는 일단 성건우가 더 이상한 생각을 하지 못하게 틈도 주지 않고 말을 쏟아냈다. 그리고 마지막엔 공인된 정신질환자로 고집이 엄청난 성건우가 자신의 제안을 얌전히 따르지 않을 것 같아 책임감도 강조했다.

“네.”

성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장목화의 목소리도 좀 부드러워졌다.

“좀 더 자. 이제 진짜 잠 좀 자면서 기력 보충 좀 해.”

* * *

다음 날 정오.

구조팀은 약속대로 고향 상인단장 플린의 캠핑카로 향했다.

오늘 캠핑카 바깥에는 벤치가 가지런히 정렬해 있었다.

주황색 가운을 걸치고 있는 플린은 어제보다 표정이 더 엄숙했다. 그러다 의형제와 그의 동료들을 발견한 그가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네왔다.

“어, 자네들 왔나?”

장목화는 그와 몇 마디 한담을 나눈 뒤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미사를 한낮에 하는 이유는 달지기 이름이 쌍태양이라서 그런 건가요?”

플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쌍태양은 가장 뜨거운 7월만 관장하는 것이 아니라 한낮도 관장하시거든.”

“그렇군요.”

답을 얻은 장목화는 이상하리만치 만족한 눈치였다.

이때 성건우가 불쑥 물었다.

“이 교파에는 각성자가 있습니까?”

플린은 저도 모르게 헛기침을 했다.

“그 일에 대해서는 우리끼리, 개인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어떨까?”

성건우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지금도 주변에 아무도 없는데요?”

결국 그에게 설득을 당한 플린이 입을 열었다.

“있어, 내가 본 건 서너 명이었어.”

“단장님은요?”

성건우의 질문에는 거침이 없었다.

플린은 빠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당연히 아니지. 난 대가를 치를 엄두도 못 냈어.”

이내 그가 쯧쯧,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우리 교파 각성자 한 명이 치른 대가는 심각한 탈모였어. 하하, 이 나이 정도 되면 머리카락 한 올이 보물보다 더 귀해. 근데 그걸 어떻게 포기해?”

플린은 자랑스럽다는 듯 자신의 짧은 은발을 만지작거렸다.

이에 장목화가 웃으며 말했다.

“사실 그런 대가면 괜찮은 편이네요. 의심받지는 않을 테니까요.”

플린이 동조했다.

“그렇지. 그래서 알려 주는 거야. 그런 대가가 아니면 비밀에 부쳐야 했을 테니까. 또 다른 각성자는 우리 상인단에 속해 있었는데 이미 세상을 떠났어. 그 사람은 각성자 능력을 얻은 대신 이상성욕을 갖게 됐지.

자네들도 알겠지만, 우리 상인단 사람들은 자동차를 아주 좋아해. 하지만 대부분은 차를 소중한 재산, 혹은 말하지 못하는 가족으로 여기면서 우리끼리 이런 풍습을 가지고 농담하기도 한단 말이야. 근데 그자는⋯⋯. 그자가 살아있는 동안 우린 저마다 차 배기관을 보호하기 바빴어.”

그의 말은 구조팀원들에게 강한 충격을 안겼다.

그때, 플린이 고개를 들고 태양의 위치를 확인한 뒤 웃으며 말했다.

“이만 미사를 시작해야겠네. 이야기는 이따가 마저 나누자고.”

그리고 그가 두 손가락을 뻗어 양쪽 눈자위 아래쪽을 눌렀다.

“그대들 두 눈이 오래도록 밝기를.”

어느새 캠핑카 전방의 주황색 벤치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다.

빠르게 캠핑카에 오른 플린은 입구에 서서 옆쪽의 창문을 가리켰다.

“첫 번째 단계, 경례.”

그제야 용여홍은 캠핑카 차창에 붙은 금색 태양 두 개를 보았다. 꼭 빛을 뿜어내는 한 쌍의 눈 같은 모습이었다.

이윽고 벤치에 앉아 있던 신도들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두 손가락으로 눈자위 아래쪽을 누르며 엄숙한 목소리로 외쳤다.

“신은 해와 달!”

첫 번째 단계가 끝나자, 플린은 모두에게 자리에 앉으라는 손짓을 취한 뒤 옆에서 미사를 지켜보고 있는 손님들을 위해 이야기했다.

“달지기는 해와 달이자 신성한 눈을 대표하지. 신께서는 우리에게 충분히 예리한 눈과 강건한 육체만 있다면 애쉬랜드에서 신세계를 찾고 그곳에 들어갈 수 있다고 알려 주셨어.

두 번째 단계, 정식 의식. 이는 구세계가 파괴되기 전부터 존재했던 의식이자 오랜 세월 인간들이 달지기를 숭상했다는 증거야. 환난을 겪고도 여태까지 이어져 왔지. 자, 신도들, 준비! 눈을 감고! 성가를 틀도록!”

그의 지시에 따라 음악이 울려 퍼지더니, 한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1번 동작, 천응혈을 문지르세요.

미사에 참석한 신성한 눈 신도들은 여자의 목소리에 맞춰 양손을 들고 엄지로 눈썹뼈 아래를 누르곤, 나머지 손가락은 펼쳐 이마에 얹었다.

- 하나, 둘, 셋, 넷⋯⋯.

맑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치는 구호에 맞춰, 다들 엄숙한 표정으로 움직였다.

“⋯⋯.”

용여홍은 입을 반쯤 벌린 채 이 광경을 지켜봤다. 뭔가 이상했다. 그의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이는 반고 바이오 초등학교에서 매일 하는 눈 건강 체조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동작의 디테일과 명칭의 길이 정도에 불과했다.

마침내 정신을 차린 용여홍은 장목화와 성건우를 돌아보았다.

입을 꾹 다문 장목화의 얼굴 근육과 뒤로 묶은 머리가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반면, 성건우는 어느새 눈을 감은 채 엄숙한 태도로 신성한 눈 신도들의 동작을 따라 하고 있었다.

용여홍이 그들에게 뭔가를 속삭이려던 그때, 순간 장목화가 고개를 홱 돌렸다. 그녀는 오른손을 들고 입에 지퍼를 채우는 동작을 해 보였다.

용여홍도 당연히 그 의미를 알기에 하려던 말을 그대로 삼켜버렸다.

백새벽 역시 다소 좀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 2번 동작, 정명혈을 누르세요.

3번 동작, 사백혈을 누르세요.

4번 동작, 눈자위를 문지르세요.

묵직하고 장중한 분위기 속, 신성한 눈의 미사는 천천히 끝을 향해 갔다.

이윽고 한창 캠핑카 입구에 서서 미사를 진행하던 플린이 서서히 눈을 뜬 뒤, 시조를 읊듯 공허한 목소리로 말했다.

“눈, 지극히 신성한 것. 눈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곧 너희들의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다!”

신도들은 재차 두 손가락으로 눈자위 아래쪽을 누르며 크게 호응했다.

“그대들 두 눈이 오래도록 밝기를!”

플린 역시 그 동작을 취하며, 달지기 쌍태양을 찬미했다.

“신은 해와 달!”

이 단계를 마무리 짓자, 그가 다시 우렁찬 소리로 선포했다.

“다음, 성찬 수령!”

말을 마친 플린은 캠핑카 입구에서 폴짝 뛰어내리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몇몇 신도들이 그의 캠핑카 안으로 들어가더니 주방 끝에서 주황색 플라스틱 쟁반을 하나씩 들고나왔다. 쟁반 위에는 접시가, 그 접시에는 익힌 당근이 몇 조각 놓여 있었다.

플린은 구조팀원들을 돌아보며 선포를 하는 듯한 말투로 설명했다.

“이건 달지기의 은혜라네. 자네들 눈을 밝게 만들어 주지.”

“그대들 두 눈이 오래도록 밝기를.”

성건우는 진심 어린 목소리로 호응하면서도 동작을 취하지는 않았다.

플린은 상당히 관대하게 손님들에게도 성찬과 수저를 챙겨주었다.

감사 인사를 하며 성찬을 받아든 용여홍은 적당한 속도로 익힌 당근을 먹었다. 익힌 당근은 조미료가 뿌려져 있지 않아 맛이 밋밋했지만 에너지 바, 압축 비스킷, 군용 통조림에 물릴 대로 물린 그에겐 나름 맛있게 느껴졌다.

성찬을 끝으로 미사는 정식으로 마무리되었다.

플린은 다시 구조팀 앞으로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우리처럼 수시로 오랫동안 운전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눈은 매우 중요해. 이는 내가 신성한 눈을 받아들인 제일 큰 이유이기도 하지. 자네들도 보면 알겠지만 난 여태까지 노안이 오지 않았어.”

“그러네요.”

장목화도 무근자가 신성한 눈에 대한 신앙을 받아들인 이유를 이해했다. 이는 그들의 생활 환경과 풍습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이때 성건우가 물었다.

“안경이 없으세요?”

플린은 이를 의형제의 관심으로 여기는 듯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있어. 세력들 대부분이 아직도 안경 제작 설비와 기술을 유지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구세계에서처럼 개개인 눈에 맞춰진 안경은 극히 드물지. 게다가 안경은 어쨌든 외재적인 사물이잖아.

황야 등을 가로질러 다니다 보면 수일, 심지어는 열흘 넘게 인간 거점에 방문하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해. 설령 인간 거점에 방문하더라도 그곳에서 안경을 구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고.

그런 상황에 안경이 망가져 버리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시력을 잃는 신세가 되는 것 아니겠어? 그럼 운전은 어떡해. 예비용 안경을 미리 준비해두더라도. 시력이 또 떨어진다면 그건 그대로 무용지물이 될 텐데.

어때? 우리 신성한 눈에 가입하고 싶지 않아?”

설명을 다 마친 플린이 빙그레 웃었다.

‘만약 반고 바이오 가족과 친구들이 내가 이런 교파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난 남은 평생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말 거야⋯⋯.’

속으로 중얼거리던 장목화는 대답 대신 성건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성건우는 곧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제 생각에 저희와 신성한 눈 사이의 연은 없는 것 같네요.”

“안타깝군⋯⋯. 그럼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 난 옷만 얼른 갈아입고 따라갈 테니까. 함께 도색 방안을 한번 토론해보자고.”

아쉬워하던 플린이 구조팀의 지프차가 있는 쪽을 보며 말했다.

“네.”

장목화가 곧장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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