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123화 (123/649)

123화. 선교사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장목화가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이 캠핑카엔 더 이상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단장님, 혹시 최근에 특정한 이들의 행방이나 흔적을 찾아봐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은 없던가요?”

장목화의 질문에, 그릇을 씻고 있던 플린이 고개를 들고 낮게 웃었다.

“특정한 이들? 뭐, 자네 같은 사람들?”

장목화는 속셈이 까발려져도 전혀 개의치 않다는 듯 웃었다.

“네. 저희 같은 사람은 친구를 절대 팔아넘기지 않을 거라 믿거든요.”

“친구라도 그럴 수 있지. 돈만 된다면. 하지만 형제는 그러지 않아.”

플린이 정색을 하며 오른팔을 들었다. 성건우는 그의 축축한 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이파이브를 했다.

나름의 의식을 마친 플린은 그제야 장목화를 바라보았다.

“아직 그런 일은 없었어. 사람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긴 했지만, 그들이 찾는 사람들은 자네들과는 전혀 달라. 또한 그들은 우리처럼 뿌리 없는 자들이 곳곳을 돌아다니며 대부분은 유적 사냥꾼을 겸하고 있다는 걸 알아. 만약 누군가를 찾으려 했다면 온 상인단의 도움을 받으려 했을 테니, 내가 모르고 있을 리는 없어.”

장목화는 빙그레 웃으며 질문을 이어갔다.

“다행이네요. 그럼 최근에 좀 기이한 종교 조직을 만난 적은 없으세요?”

플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있어.”

장목화는 순간 백새벽과 시선을 주고받은 뒤 다시금 물었다.

“어떤 교파였나요? 이름은요?”

“교파 이름은 신성한 눈. 그들이 숭배하는 건 7월을 관장하는 달지기, 쌍태양이야. 지금도 야영지 안에서 선교하고 있어.”

플린은 숨김없이 답했다.

‘7월의 달지기⋯⋯ 쌍태양⋯⋯.’

장목화가 재차 의혹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그들이 선교하도록 내버려 두시려고요?”

플린은 진지한 얼굴로 대꾸했다.

“그건 내가 막을 일이 아니야. 그리고 난 이미 그 사람들을 위해 사람들을 모으고, 공간을 제공하고, 음식까지 준비해줬는데?”

그 말에 구조팀의 표정이 이상해지자, 플린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그 교파의 주제(*主祭: 제사를 주관하는 자)니까! 상인단 내에서 달지기와 가장 가까운 게 바로 나야.”

흠칫 놀랐던 장목화가 금세 웃으며 말했다.

“네, 그런 일까지 하실 줄 알고 있었어요.”

“맞아요.”

성건우도 동조했다.

그러나 백새벽은 아무래도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이 상인단 사람들은 어떤 달지기도 믿지 않는다고 들었는데요?”

플린은 웃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그럴 리가. 우린 모든 달지기를 믿어! 각지를 돌아다니며 크고 작은 각종 세력과 거래해야 하는 상인단이면, 어딜 가든 거기에 맞는 노래를 부를 수 있어야 해. 지나치게 극단적이면 안 되지. 그래선 친구를 사귈 수 없으니까. 그러니 누가 선교하려 하면 우린 많든, 적든 일단 그 신앙을 받아들여.

만약 신성한 눈이 나한테 겸직을 허락했다면 난 지금쯤 열 개가 넘는 교파에 속해 있었을 거야. 여명 샛별의 꿈 수호자이자, 영광의 저울의 주교이자, 수정 의식교의 육식자(六識者)였겠지. 사업 상대가 신앙을 갖고 있다면 나는 바로 그 사람이랑 같은 신을 믿는 형제가 될 수 있어.”

이 놀라운 이야기에 용여홍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했다. 이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믿을 수가 없었다.

‘너무 제멋대로인 거 아냐?’

이때, 성건우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어느 교파 성찬이 제일 맛있어요?”

“음, 영광의 저울? 거기에서 주는 구운 닭 날개는 정말 일품이야. 하지만 이건 뭐,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이니까.”

플린의 입가에 난 흰 수염이 쉴 새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플린이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면, 성건우는 또 금세 열렬히 호응하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이 모습을 보며, 장목화는 성건우가 딱히 각성자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플린과 좋은 친구가 되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성찬에 관한 얘기를 조금 더 이어가던 도중, 플린이 화제를 전환했다.

“수많은 교파 중 신성한 눈의 교리가 우리에게 가장 맞는 데다 또 내 마음을 움직이더라고. 그래서 난 힘겹게나마 그 교파에 가입했어. 휴, 그때부터는 자유가 사라졌지. 우린 내일 정오에 미사를 진행할 예정이야. 혹시 관심이 있거든 와서 지켜봐. 미사 장소는 바로 여기니까.”

성건우는 즉각 열의를 보였지만, 장목화는 망설이고 있었다. 이를 보고 플린이 다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믿음을 강요하지는 않아. 모든 건 자발적인 마음에 달려 있으니까. 우리 상인단 사람 중 적어도 3분의 2는 아직 쌍태양을 믿지 않아. 물론 자네들이 믿는 척만 한다고 해도 난 알 수가 없고.”

“알겠어요.”

장목화가 답했다.

그 후로도 한참 더 이야기를 나눈 뒤 구조팀은 작별을 고했다. 그런데 캠핑카 문 앞에서 장목화가 갑자기 뒤돌아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단장님, 그러고 보니 아직 이 상인단 이름도 모르고 있었네요.”

창밖으로 번쩍이는 알록달록한 빛이 플린을 휘감자, 그 안에서 그는 잠시 침묵하며 서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플린이 입을 열었다.

“고향이야.”

* * *

캠핑카에서 나온 장목화는 다시 안쪽을 돌아보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고향이라⋯⋯.”

- 난 바라보고 있어…….

때마침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노랫말 때문에 장목화의 목소리가 다 묻혀버렸다.

다음 순간, 장목화는 성건우의 어깨를 잡아당기면서 큰 소리로 웃었다.

“너, 아까 분명히 춤췄다? 원래 할 일 마치고 저녁 식사를 마치면 좀 놀 수 있게 해주려고 했거든. 근데 넌 이미 그 기회를 써버린 거야. 거기다 그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도 않고, 단 일이 분 정도만 추고 끝내버린 거지.”

성건우는 실망감과 더불어 아쉬운 기색을 조금도 숨기지 못했다. 그 표정에 장목화의 기분은 더욱 좋아졌다. 그녀는 곧 용여홍과 백새벽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희도 놀고 싶어?”

“누구랑 잘 거 아니면 굳이 춤까지 추고 싶진 않아요. 너무 시끄러워서.”

백새벽이 솔직하게 답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의욕이 가득해 보였던 용여홍은 혼자만 남은 상황에 저도 모르게 겁을 먹고 약간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좀 피곤하네요.”

그것도 사실이었다. 이들의 여정은 무려 보름이나 이어졌다. 번갈아 운전하며 충분히 휴식했다고 해도 정신적인 피로도는 이미 한계치에 이르러 있었다.

“그럼 그냥 돌아가자.”

장목화도 더는 권하지 않고 앞장서서 이 구역을 빠져나갔다.

“팀장님, 팀장님은 춤 안 추고 싶으세요?”

그녀를 뒤따르던 성건우가 물었다. 시끄러운 음악 탓에 그의 목소리도 한층 커져 있었다.

“난 아주 신중한 사람이야. 어떻게 저렇게 시끄럽고 지저분하게 놀 수 있겠어? 나는 이보다 더 나은 스트레스 해소 방법도 알고 있어.

위드 시티에 도착해서 자리를 잡는 동안 격투 훈련을 진행할 거야. 최상의 상태로 끌어 올려놔야만 그 후에 진행될 조사에서도 잠재된 위험을 피할 수 있을 테니까.”

장목화는 자화자찬을 겸한 다음, 팀원들을 돌아보며 음흉하게 웃었다.

이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용여홍은 온몸에 통증이 밀려드는 것 같았다.

* * *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구조팀은 지프차를 세워둔 곳으로 돌아왔다.

현재 야영지 안의 상당한 이들이 의도적으로 이쪽을 지나치며 그들의 차를 몇 번씩 훑어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장목화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차를 정말 사랑하나 보네⋯⋯.”

장목화는 주위의 상인단 사람들을 쫓아내는 데 급급해하기보단 지프차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잠시 생각하던 그녀가 먼저 운을 뗐다.

“신성한 눈 교파의 주제인 플린이 과연 각성자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 사람도 암암리에 각성자 능력을 발휘해 우리에게 영향을 미쳤을까?”

순간 용여홍은 소름이 쭈뼛 돋아, 얼른 자신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그 사이 백새벽이 답을 이었다.

“아까 자세히 관찰했는데 플린은 그냥 보통 사람 같았어요.”

플린을 살핀 결과, 각성자 능력 발휘를 위해 대가를 치르지도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각성자가 아닐 가능성이 컸다.

“대가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이었을 수도 있지.”

장목화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을 반쯤 감은 채로 대답했다.

곧이어 성건우가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뭔가 이상한 부분은 없는 것 같은데요.”

이내 장목화가 눈을 번쩍 뜨며 확신에 찬 답을 내놓았다.

“나도 그래. 그럼 일단 플린은 각성자가 아니라고 볼 수 있겠네.”

계속 대화하다 보니 지프차 주위 구경꾼들도 흩어졌고, 멀리서 들려오던 격렬한 음악 소리도 가라앉았다. 장목화는 그제야 백새벽과 용여홍에게 말했다.

“오늘 밤엔 너희 둘이 먼저 불침번 좀 서줘. 규칙은 전이랑 같아.”

“예, 팀장님!”

용여홍은 이러한 상황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곧이어 성건우는 아무 말도 없이 지프에 올라 뒷좌석에 길게 눕더니, 양쪽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 * *

미약한 빛이 번득이는 끝없는 기원의 바다.

다시 이곳을 찾은 성건우는 양팔을 휘적거리며 앞으로 유영하기 시작했다. 수영 기술은 최근 이 심령의 세계 속에서 스스로 터득한 것이었다.

반고 바이오에는 수영 수업이 없었다. 지하 빌딩에선 쓸모가 없는 능력이기 때문이었다.

수종이가 있던 그 도시를 떠난 뒤 하비스트 타운으로 가는 동안 그린리버에서 헤엄쳐본 게 그의 첫 수영이었는데, 이는 훈련의 일환이기도 했다.

당시 그가 느낀 점은 물이 무지하게 차갑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그는 맹목적으로 헤엄치고 있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은 곧 정신적인 고통이 되었다. 그나마 체력이 부족할 때마다 알아서 물러날 수 있다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인 점이었다. 그 덕분에 익사는 피할 수 있었다.

지겨운 반복은 정말 힘겨웠지만, 성건우는 외려 강한 집념을 보였다. 언제까지고 계속 헤엄칠 작정인 듯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성건우의 눈앞에 갑자기 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거대한 섬이었다. 수면 위에 고요히 뜬 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돌 뿐이었다.

그런데 성건우는 잔뜩 흥분해 양팔에 힘을 주고서 양발로 물을 쳐냈다.

머지않아 그 섬에 도착한 그는 생각도 하지 않고 그 위로 기어올랐다.

다음 순간, 섬을 이루고 있는 기암괴석 사이에서 인영들이 하나하나 자라났다. 인영들은 흰색 침대보를 뒤집어쓰고 있어 그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얼굴 역시 망토 그늘에 새카맣게 가려져 있었다.

곧장 격투 자세를 취한 성건우는 양손 동작 불능 능력을 시도했다.

그런데 한 인영을 마주하고, 흰색 침대보 같은 망토와 접촉한 순간 온몸에서 힘이 죽 빠져나가 버렸다. 이마는 달아오르기 시작했으며 심장도 빠르게 뛰었다. 그리고 숨결은 풀무질을 당하기라도 한 듯 뜨거워지고 있었다.

정말 각양각색의 통증과 고통이 순간적으로 일어나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겨워졌다. 성건우는 결국 그 흰 인영 하나하나에 뒤덮여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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