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냄새
도중에 일행은 옆통수를 박박 민 젊은 남자 한 명과 마주쳤다.
장목화는 그를 막아선 뒤, 미소 띤 얼굴로 물었다.
“그쪽 리더는 어디 계시죠?”
동시에 그녀는 상대의 몸에서 풍기는 또렷한 기름 냄새를 맡았다.
찬 바람이 부는 겨울밤이지만, 젊은 남자는 붉은색 긴 팔 티셔츠와 통이 상당히 넓은 바지만 입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꼭 조금 전까지 매우 격렬한 운동이라도 했던 것 같았다.
“단장님이에요.”
젊은 남자가 강조하듯 말했다.
“알겠어요, 단장님.”
성건우는 언제나 남의 충고를 잘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그의 반응에 젊은 남자도 약간 놀란 듯했다.
“내 말은, 우리 리더를 단장님이라고 부른다고. 아니, 성이 단이고 이름이 장님이라는 게 아니라, 우리 상인단의 단장이라는 뜻이에요.”
“그래, 그쪽 단장님은 어디 계신가요?”
성건우가 또 허튼소리를 하기 전에 장목화가 먼저 나섰다.
젊은 남자는 곧 가장 안쪽에 있는 캠핑카를 가리켰다.
“물건을 판매하는 저곳에.”
그리고 그가 장목화를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더니 씨익 웃으며 물었다.
“같이 춤출래요?”
“됐어요.”
장목화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거절했다.
계속 시끄럽고 요란한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어, 대화를 나누기 위해선 거의 고함을 지르듯 목청을 높여야만 했다. 하지만 장목화에겐 이런 환경이 오히려 더 편했다.
단칼에 거절을 당한 젊은 남자는 더 이상 귀찮게 굴지 않고 음악에 몸을 맡긴 듯 몸을 꿀렁거리며 길을 비켜주었다. 그러곤 점점 멀어지는 장목화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오른손을 들고 손목 안쪽 냄새를 킁킁 맡아보았다.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하다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런 타입의 휘발유 냄새는 싫어하나?”
* * *
구조팀도 머지않아 단장이 있다는 캠핑카에 거의 다다랐다.
그때, 옆쪽 그늘 속에서 돌연 한 노부인이 튀어나왔다. 그녀는 갈색 쓰레받기 하나를 손에 쥐고 있었는데, 그 안엔 수많은 병과 둥근 용기들이 들어있었다. 얼굴에 주름이 선명하게 자리 잡은 노부인은 전체적으로 몸이 마른 편이었다.
“휘발유? 아니면, 경유?”
구조팀은 뜻밖의 상황에 다소 놀랐지만, 이곳엔 늘 놀라운 반응을 선보이는 한 남자가 있었다. 성건우는 아주 자연스레 노부인에게 호응했다.
“맛있나요?”
“⋯⋯.”
노부인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가 한참 후에야 큰 소리로 말했다.
“먹을 순 없지만, 몸에 살짝만 뿌리면 이 야영지에서 제일 인기가 많아질 거라고! 자, 이 오렌지 컴퍼니의 15호 휘발유! 가장 순수한 타입이야. 거기다 냄새 조합도 아주 훌륭해서 조금만 뿌려도 오늘 밤 아가씨들이 너를 쓰러뜨리고 싶어서 안달이 날걸?”
그녀가 아무것도 들지 않은 손으로 작은 병 하나를 가리켰다.
이 말을 듣고, 장목화는 생각에 잠겨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곳 사람들, 연료가 필요한 차에서 살다 보니 연료의 냄새까지 좋아하게 된 건가? 어쩌면 이 사람들한테는 꽃향기보다 휘발유 냄새나 경유 냄새가 훨씬 유혹적으로 느껴지는지도 몰라.”
“뭐? 뭐라고?”
노부인의 청력은 그다지 좋지 못한 듯했다. 게다가 음악 소리도 여전히 크고 시끄러웠다.
장목화는 조용히 웃으며 크게 대답했다.
“필요 없어요!”
노부인이 약간 실망한 듯 그늘 안쪽으로 다시 돌아가자, 네 사람은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가장 안쪽의 캠핑카에 올랐다.
* * *
캠핑카 안쪽 공간은 탁자도, 의자도 여러 개씩 놓을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넓었다. 바깥을 정면으로 마주한 곳에는 성건우 명치께 높이의 유백색 카운터가 놓여 있고, 카운터 앞에는 높은 스툴 몇 개가 놓여 있었다. 그 뒤쪽으로는 각종 병이 줄지어 놓인 나무 장식장이 보였다.
그 장식장과 카운터 사이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나이는 사오십 대 정도, 키는 180센티미터가량인데다 머리는 매우 짧으며 입가엔 흰 수염이 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입고 있는 검은색 가죽 코트엔 광이 살짝 돌기도 했다.
이 남자가 바로 무근자 상인단 단장으로 추정되는 사람이었다.
남자는 곧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술 한잔할래요?”
“술이 있어요?”
장목화가 스툴을 당겨와 앉으며 반문했다.
용여홍도 의아할 따름이었다.
‘반고 바이오처럼 나름 식량이 충분한 곳에서도 술은 관제품이야. 매해 제한적으로 생산되는 데다가 한 사람당 배급받을 수 있는 양도 극소량에 불과한데, 굶주림이 일상인 애쉬랜드에서 술을 팔다니!’
남자가 웃으며 답했다.
“야생에서 난 열매로 만든 술이죠. 나도 그게 무슨 열매인지는 모르겠지만, 매해 여름 이 부근에서 나는 그 열매는 시고 떫어서 그냥 먹을 수가 없어요. 그렇다고 겨울까지 보관할 수도 없지. 하지만 술로 만들면 그 풍미가 놀라울 정도로 훌륭해지더군요.”
이내 다른 팀원까지 다 착석하자, 장목화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차를 집으로 삼고 운전을 평생의 직업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술을 안 마실 줄 알았는데요.”
남자는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매해 겨울에 몰아서 마시는 거지. 우리 할아버지 시절에는 구세계가 파괴되어 다들 고향에 돌아갈 수 없게 돼서 정신 상태가 좋지 못했거든. 오직 술에 의지해 정신을 마비시키는 수밖엔 없었지.
당연하게도 사고는 빈번하게 일어났고, 그 바람에 차도 여러 대 잃었어요. 그래서 우리 아버지 시절에 와서는 첫 번째 상인단 규칙이 제정됐었지. 다들 몸에 그 규칙을 새기고 다녀야 해요.”
이내 그가 뒤돌아 상의를 당겨 등을 드러냈다. 고동색 피부엔 흑청색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술을 마시려면 운전하지 말고, 운전하려면 술을 마시지 마라.]
논리로 보나, 분위기로 보나, 전에 했던 말을 듣고 떠올린 생각으로 보나 눈앞의 광경은 극히 정상적이었지만, 구조팀은 왠지 모를 이상함을 느꼈다.
술을 마시려면 운전하지 말고, 운전하려면 술을 마시지 말라는 말은 저런 식으로 나타내선 안 될 것 같았다.
짝짝짝!
때를 놓치지 않고, 성건우가 손뼉을 치며 물었다.
“등 뒤에 새기면 못 보잖아요. 어떻게 수시로 자신을 일깨운단 거죠?”
얼굴이 살짝 굳은 남자는 옷매무새를 다시 정리하면서도 한동안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여태 각지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일을 경험한 사람이기에,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 미소를 보였다.
“그럼 어디에 새겨야 한다고 생각하지?”
“양쪽 손등에요. 한 손에 한 줄씩. 그럼 매번 술을 마시고 싶을 때마다 반드시 보게 될 수밖에 없잖아요.”
성건우는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것처럼 답을 내놓았다.
남자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것도 좋은 방법이네. 이제 그것도 선택지에 추가하죠.”
그 답이 그저 빈말이라는 것을 눈치챈 장목화가 웃으며 화제를 바꿨다.
“근데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플린.”
간단히 답한 남자는 네 사람의 이름을 묻는 대신 전의 질문을 반복했다.
“술 한잔할래요? 여기서만 나는 야생 열매로 만든 술이라 다른 곳에선 맛볼 수도 없어요. 우린 거의 매해 여름에 일부러 시간을 내서 여기 들르곤 합니다. 바로 이 열매를 채집해서 술을 만들려고.”
플린이 짧고 하얀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소리 내 웃었다.
잠시 좌우를 두리번거리던 장목화가 변함없이 미소 띤 얼굴로 물었다.
“뭐로 교환할 수 있을까요?”
플린이 실소를 터뜨렸다.
“우리에겐 없지만, 그 쪽들한텐 있는 거겠지. 애쉬랜드에서 유일한 답만 고집했다가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마련이고.”
밖에서는 여전히 리드미컬한 음악이 들려오고 있었으며, 장목화는 평소보다 더 편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잠시 그렇게 눈동자를 굴리던 그녀가 갑자기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오른편에 있는 용여홍을 두드렸다.
“저희에게만 있는 거라면⋯⋯. 혹시 이 친구는 어때요? 운전도 할 수 있고, 성격도 온순하고, 키도 적당하죠? 그리 작지도 않고. 격투 실력도 뭐 그런대로 봐줄 만해요. 수리 기술만 좀 가르친다면 아주 훌륭한 사윗감이죠.”
“팀장님⋯⋯.”
용여홍은 돌연 화제에 오른 탓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건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이야기였다.
그러자 플린이 호탕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그것만은 정중히 사양하죠. 우리 딸한텐 이미 남자가 줄을 섰거든. 얼굴도 자기 엄마 닮아 예쁘고, 운전 솜씨도 나랑 견줄 만큼 최고라서 말입니다. 수리 기술은 아직 좀 부족한데, 기초가 워낙 탄탄하고 나이도 어리니 괜찮지. 어릴 때부터 내 옆에 와서 차 수리하는 걸 지켜보는 걸 좋아해서, 참견도 곧잘 했고요. 하하.
언제부턴가는 몸에서 풍기는 휘발유, 경유, 윤활유 냄새가 씻어도 지워지질 않아. 우리 상인단 안에서만 해도 그 애를 좋아하는 녀석이 몇 명인지 모를 정도지요.”
용여홍은 머릿속으로 플린의 딸을 그려보며 저도 모르게 몸을 살짝 웅크렸다. 그는 이 캠핑카에 올랐을 때부터 플린과 옆쪽에 있는 몇몇 손님들에게서 풍기는 옅은 연료 냄새를 맡았다.
용여홍은 다시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걱정하는 마음에 장목화를 힐끗 돌아보며 원망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팀장님, 왜 건우는 추천 안 하세요?”
장목화가 피식 웃었다.
“쟤는 그 어떤 기대도 충족시키지 못해서 하루 만에 쫓겨날까 걱정되니까. 그럼 우린 마셨던 술을 그대로 토해내야 할 거야.”
성건우가 뭐라고 대꾸하려 하자, 장목화가 바로 플린에게 시선을 돌렸다.
“군용 통조림은 어떠세요? 소고기 조림 통조림인데.”
“몇 그램짜리?”
플린이 익숙하게 물었다.
“500 그램이요.”
장목화가 답했다.
플린이 곧 미소를 보였다.
“그럼 어떤 종류로 마실래요? 하나는 야생 과일을 직접 숙성해 만든 술이야. 도수가 낮아서 안 취하고. 포도주랑 거의 비슷해요. 포도주는 알죠?”
“예.”
구조팀원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반고 바이오에서는 새해 명절마다 각자 할당량에 따라 술을 조금 살 수 있었다. 그리고 백새벽은 몇 년간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는 유랑생활을 하면서 이따금 술을 마시기도 했다.
플린의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그럼 이 도수 낮은 술 네 잔에 통조림 하나로 가격을 정하죠.
그리고 이건 야생 과일주를 반복해서 증류해 만든 술로 도수가 아주 높아요. 한 잔만 마셔도 취해. 이 술은 네 잔에 통조림 세 개로 하죠.
이 중에 어떤 걸 마시든 일단 기록만 해뒀다가, 나중에 야영지에서 나갈 때 값을 치르면 됩니다.”
“그럼 도수가 낮은 야생 과일주로 할게요.”
장목화는 당연히 이렇게 낯선 곳에서 팀원들을 취하게 할 수 없었다.
팀원들 역시 팀장의 말에 아무런 이의도 표하지 않았다.
“좋습니다!”
플린은 유백색 카운터 위에 거꾸로 걸려 있던 유리잔 네 개를 늘어놓았다.
이때 구조팀 옆, 차창 쪽 탁자에 앉은 머리 큰 남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역시 숙녀분들 옆에 애송이 둘 붙어 있는 오합지졸이었군. 물만도 못한 야생 과일주를 마시다니!”
그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 있던 성건우가 바로 고개를 틀었다. 그러자 남자는 즉각 팔을 굽혀 보였다. 검은 옷 위로 울룩불룩한 근육이 드러나고, 남자는 성건우의 시선을 흔들림 없이 마주했다.
성건우 역시 같은 자세를 유지한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장목화는 가만히 용여홍과 백새벽을 바라보다가, 그들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잘됐네. 건우가 다시 다른 사람과 기 싸움을 하기 시작했어.’
먼저 눈을 피하거나 먼저 입을 여는 사람이 지는 이 게임은, 당연하게도 성건우 혼자서 시작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