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애쉬랜드의 생태 (2)
지프가 한참을 더 달렸을 무렵, 바깥을 빤히 응시하던 백새벽이 미간을 팩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많은 동물이 이주한 흔적이 있네요.”
용여홍도 누런 잿빛의 황야 위에 남은 수많은 발자국을 보았다. 발자국들은 남과 북을 잇는 대로를 형성하고 있는 듯했다.
“올해는 날씨도 비정상적이고 수많은 괴물도 이동했잖아. 동물들도 마찬가지였겠지. 황야유랑자들도 역시나 이번 겨울을 나긴 힘들겠네.”
장목화는 보고 들었던 소식과 뉴스를 떠올리며 안타깝다는 얼굴을 했다.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기괴한 새 한 무리가 상공을 가로질렀다. 까마귀보다 훨씬 더 큼직한 그것들은, 온몸이 검은 깃털로 뒤덮여 있으며 두개골은 밖으로 노출돼 잔뜩 오염된 상태였다.
점점 더 고도를 낮추던 새 떼는 곧 멀지 않은 늪에 착지했다.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존재하지도 않는 듯 고요한 움직임이었다.
그 광경을 보고 백새벽이 작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죽음을 알리는 새네⋯⋯. 저쪽에 시체들이 많은가 봐.”
“죽음을 알리는 새? 저것도 일종의 까마귀야?”
용여홍이 물었다.
그는 교과서에서 구세계 여러 지역에서는 까마귀를 불길의 징조로 여기며 죽음을 알리는 새라고 불렀다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시선을 거둔 백새벽이 구체적인 설명을 해줬다.
“변이된 생물이야. 우리는 저 새들을 죽음을 알리는 새, 혹은 백골 까마귀라고 불렀어. 쟤들은 오직 시체만 먹어. 저 새들이 몰려 있는 곳에는 죽은 존재가 있다는 뜻이야.”
운전하던 장목화도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덧붙였다.
“저 변이 까마귀는 아주 신기하게도 두개골이 노출된 상황에서도 매우 잘 살아. 살아있는 생물에 대해선 공격성을 보이지 않는데, 그래도 쟤들을 마주치면 조심해야 해.
쟤들 주둥이에 꼭 파리처럼 긴 관 하나가 삐죽 나와 있는데, 그 관을 통해 내뱉어지는 소화액이 아주 위험해. 삽시간에 시체를 즙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소화액이야. 그래서 먹이도 쉽게 먹는 거고.
시체를 녹일 정도의 소화액이라면 산 사람의 몸에 뿌려졌을 때도 그에 못지않은 효과를 낼 거야.”
순간 그 광경이 상상된 용여홍이 헉,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나 성건우는 잔뜩 신이 난 듯 입을 열었다.
“그럼 문제! 저런 까마귀 고기의 육질은 어떨까? 구우면 어떤 맛이려나?”
장목화는 고개를 살짝 돌려 그를 노려보았다.
“저 까마귀는 변이된 존재야! 거기에 시체만 먹고! 시체가 있는 곳만을 찾아다니는데, 그 몸속에 얼마나 많은 병균이랑 독성이 있겠어?”
그 순간, 백새벽이 불쑥 끼어들었다.
“육질, 상당히 부드러워요.”
장목화가 한 손은 핸들에 얹고 다른 손으로 귀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먹어봤어?”
“네, 지금처럼 겨울이었을 때라 먹을 게 많지 않았어요. 그래도 인간을 먹느니 백골 까마귀를 먹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아서⋯⋯. 육질은 의외로 꽤 괜찮았어요. 그 알도 제가 여태 먹었던 모든 알 중 가장 맛있었고요⋯⋯.”
백새벽의 묘사에 성건우와 용여홍은 동시에 손을 들어 입가를 훔쳤다.
용여홍은 군침을 닦아낸 후에야 자신의 행동을 깨닫고 일순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그러자 성건우가 진지한 얼굴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내가 추리 광대 능력으로 널 통제해서 나랑 똑같은 행동을 취한 거야.”
“진짜?”
용여홍은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물론 뻥이지.”
성건우가 웃었다.
장목화는 이제 그냥 뒷좌석에 앉은 두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고, 백새벽에게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그녀 역시도 호기심이 어린 눈빛을 하고 있었다.
“중독되거나 병에 걸리지는 않았어?”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는 독성은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괜찮았어요. 하지만 당시 거의 20명 정도 됐던 일행 중 절반 이상이 병들어 죽고 말았어요. 그들 시체는 더 많은 백골 까마귀를 길러냈고요⋯⋯.”
백새벽은 무의식적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러다가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며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를 조소를 흘렸다.
“애쉬랜드에선 때때로 최악의 두 가지 중 하나만 택해야 할 때가 있으니까.”
장목화가 작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 * *
팀원들의 대화를 싣고 착실하게 황야를 달리던 지프차는 밤이 세상을 덮기 전 늪에 진입했다. 그러고는 이리저리 방향을 틀어 해자 마을에 다다랐다.
구조팀과 해자 마을은 피차 안면도 있고, 거래도 한 사이라 서로를 꽤 믿을 만한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백새벽이 모습을 드러내자 경비들은 곧장 구조팀을 마을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녹회색 지프차는 이전 그 자리, 담 모퉁이 목재 헛간에 주차했다.
장목화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익숙한 한 사람을 발견했다. 그녀가 웃으며 친근하게 상대를 불렀다.
“발바리.”
촌스러운 바람막이 차림을 한 마을 경비대원 발바리가 얼굴을 확 붉히며 말을 더듬었다.
“제, 제 이름은 정채진입니다⋯⋯.”
그때, 백새벽이 발바리에게 더 이상의 이야기를 할 기회도 주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전 촌장님은?”
순간 정채진의 표정이 울적해졌다.
“촌장님은…… 몸져누우셨어요. 어, 얼마 못 버틸 것 같습니다.”
정채진의 말을 듣자 백새벽의 심장이 저 아래로 쿵, 떨어졌다. 순간 머릿속이 웅웅 울렸다. 급기야 그녀는 몸도 살짝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몇 초 후, 겨우 정신을 차린 백새벽이 황급히 물었다.
“무슨 병에 걸리셨는데?”
정채진은 울상이 된 얼굴로 답했다.
“의사가 말하길, 촌장님이 앓고 계시던 고질병이랍니다. 폐에도 문제가 있고 기관지도 좋지 않다면서, 겨울을 나기가 힘들 거라더군요.”
순간 백새벽의 눈빛이 흔들렸다. 뺨을 스치는 밤바람에도 서늘하고 날카로운 힘이 실려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얼른 고개를 돌려 장목화를 바라보았다. 항상 담담하던 사람답지 않게 감정을 하나도 추스르지 못한 얼굴이었다.
“팀장님⋯⋯.”
장목화도 백새벽의 간절한 마음을 알아차리곤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내 장목화가 정채진을 돌아봤다.
“전 촌장님이 계신 곳으로 안내를 부탁해도 될까? 우리에게 약이 좀 있거든. 촌장님한테 들지도 몰라.”
사실 정채진에게 즉답할 권한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적인 상황도 아니고, 여기서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었다. 가망이 없을지라도 또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면 희망이 생길지 몰랐다. 그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장목화는 곧장 지프차 뒤쪽으로 가서 붉은 십자가 표시가 부착된 유백색 상자를 하나 꺼내 들었다. 구조팀의 구급상자였다.
구조팀은 현재 야외 훈련이 아닌 정식 임무 중이라 상용 약품, 알콜 솜, 모기 퇴치제만 가지고 있었던 이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쿵!
장목화는 트렁크를 닫고 정채진을 향해 돌아섰다.
“가자.”
빼어난 미인인 장목화는 미모만큼이나 실력도 상당했다. 그녀의 모습에 덩달아 자신감을 얻은 정채진이 곧장 앞서서 길을 안내했다.
* * *
다섯 사람은 일단 흙집과 벽돌집, 천막 등이 어지럽게 뒤섞인 구역을 가로질렀다. 게양대 부근으로 이동하는 동안, 다섯 명은 그 집에 사는 이들의 경계심, 무관심, 부러움, 호기심, 혹은 불분명한 의미가 담긴 눈빛들을 한 몸에 받았다.
주변이 마침내 고요해지자 백새벽이 속도를 높여 정채진의 곁으로 갔다.
“전 촌장님이 쓰러진 건 언제지?”
어둑한 하늘 아래, 정채진은 빠르게 걸음을 옮기며 기억을 더듬었다.
“열흘은 더 됐죠. 전에도 촌장님은 겨울만 되면 한두 차례 병을 앓으셨지만, 그동안 큰일은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이렇게 심각해질 줄은…….
의사가 약도 처방해주고, 주사도 놔줬지만 소용없었어요. 지난 며칠은 깨어있는 시간보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요. 의사가 어쩌면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정채진은 170센티미터 정도로, 황야유랑자 중에는 꽤 큰 편이었다. 그런 청년이 말을 다 끝맺지도 못하고 훌쩍거리고 있었다.
그는 곧 왼팔로 눈가를 쓱 훔쳐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사실 의사는 며칠 전부터 촌장님이 돌아가실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여태 살아계신 건 삶에 대한 의지가 아주 아주 강하기 때문이라고…….”
또다시 코를 훌쩍이는 정채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백새벽 역시도 촉촉이 젖은 눈으로 입술을 꼭 깨물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일행은 해자 마을 가장 안쪽에 이르렀다.
곧이어 방향을 튼 이들은 왼쪽의 건물로 들어갔다.
복도엔 빛이 부족했다. 장목화는 이 분위기를 한번 환기해보고자 의도적으로 화제를 전환했다.
“여기 의사도 있어?”
황야유랑자 거점에서 의사를 데리고 있는 건, 말하자면 무척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러자 정채진이 상세하게 답변해주었다.
“언제나 있었어요. 촌장님께선 이 마을엔 처음부터 의사가 여러 명 있었고, 나중에 아이들 교육이 시작된 후부터는 가장 성적이 좋은 몇 명을 골라 의학 공부를 하게 했다고 했어요. 우리 마을의 전통인 셈이죠.
하지만 저희한텐 약이 없어요. 촌장님은 예전엔 폐허 도시에서 약을 찾아올 수 있다고 하셨어요. 물론 그 약들이 너무 오래된 것들이라 효과가 좋진 않아도, 없는 것보단 낫다고요.”
그의 목소리엔 슬픔이 조금 묻어있었다.
“지금은 거래로 얻는 수밖에 없어요. 대형 세력만 약을 생산할 수 있으니까요. 음, 의사들은 폐허 도시에서 찾은 책들에 근거해 황야에서 찾아낸 식물과 동물의 여러 부위를 이용해 약을 달이기도 했어요. 더러는 효과가 꽤 좋아요.”
* * *
다섯 명은 이제 2층 끝 방 앞에 이르렀다.
문 앞에는 경비대원 두 명이 서 있었다.
“이분들에게 약이 있대!”
정채진은 아무런 소개도 하지 않고 본론부터 말했다.
“백새벽⋯⋯.”
경비대원 하나가 백새벽을 알아보고 얼른 문을 열어주었다.
“들어가, 들어가 봐. 촌장님께서 지난 며칠간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도 가끔 널 부르곤 하셨어.”
눈가가 붉어진 백새벽은 얼른 방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장목화는 성건우에게 스스로 잘 통제하라는 눈짓을 보내며 백새벽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장목화는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천장에 매달린 노란색 전구와 눈이 마주쳤다. 대롱대롱 몸을 늘어뜨린 전구는 나름대로 방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방의 가장 안쪽 창가 근처엔 무척 낡은 암적색 나무 침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전두하는 그 위에 누워 두꺼운 이불과 국방색 코트를 덮고 있었다.
꼭 감은 눈, 비쩍 말라 뼈와 가죽만 남은 듯한 얼굴, 잔뜩 헝클어진 희고 성긴 머리, 가래 끓는 소리만 가득한 숨소리…….
전두하는 온 힘을 다해 숨을 쉬며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것만 같았다. 숨소리가 당장 끊어진다 해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었다.
전두하의 옆쪽엔 온기를 뿜는 검은색 화로와 함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촌장의 병세가 악화되었기 때문인지, 마을에서 발언권을 가진 이들은 일찍이 이곳으로 다 모인 모양이었다. 주로 30대 남자 위주였고, 젊은 청년과 5~60세 정도 되는 장년들도 몇 명 섞여 있었다. 여자들도 있었지만 단 세 명뿐이었고, 그중 둘은 노인, 한 명은 중년이었다.
이들로 인해 방이 거의 꽉 차 보였다.
“대장님, 이들에게 약이 있답니다.”
정채진이 35~6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에게 얼른 상황을 고했다.
해자 마을 경비대 대장인 그는 전두하에게 차기 촌장으로 지목된 인물이었다. 평범해 보이는 얼굴엔 짙은 수심이 가득했으며, 피부를 보니 매우 거칠었다. 차림새도 조금은 촌스러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