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112화 (112/649)

112화. 능력 효력 범위

다음 날 저녁 9시.

캄캄해진 구조팀 방엔 성건우와 장목화가 함께 있었다.

장목화는 맞은편에 있겠지만, 윤곽도 보이지 않는 성건우를 향해 물었다.

“어때? 조금 전 조사에서 잘못 대답하거나 하지는 않았어?”

“안 그랬습니다.”

성건우는 자신감 어린 말투로 답했다.

하지만 장목화는 아무래도 걱정된다는 듯 캐물었다.

“그 사람들이 뭐래?”

“저한테 말을 아주 잘 한다고 하던데요.”

성건우가 답했다.

“그리고?”

장목화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성건우는 계속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답을 이어갔다.

“제 정신 상태를 칭찬했어요.”

“그건 아무래도 칭찬이 아닌 것 같은데⋯⋯.”

장목화가 의심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성건우는 다시 기억을 떠올리며 그대로 설명했다.

“그들 요구대로 제 주치의 소견서를 보여줬어요. 그랬더니 그 사람들이 괜찮다며, 좀 더 상황을 파악해야 할 때가 오면 다시 찾아오겠다고 했어요.”

장목화는 당시 상황을 상상해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별문제 없었다면 다행이고.”

이내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 옆방에 간다. 이번엔 몰래 집으로 갈 수도 있고, 안 갈 수도 있어.”

장목화가 빙그레 웃음을 머금고 이야기했다.

“알겠습니다.”

성건우도 그녀를 막지 않았다.

곧이어 장목화는 어둠 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문으로 향했다. 그러다 잠시 돌아선 그녀가 조금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있지, 난 원래 사람은 자기 자신만 의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근데 가끔은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아, 하하.”

그녀는 멋쩍은 웃음으로 잠시 뜸을 들였다.

공간엔 다시 침묵이 흐르고, 사람은 물론 자신의 뻗은 손조차 보이지 않는 암흑만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때, 다시 장목화의 음성이 이어졌다.

“사실 오직 자기만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어릴 땐 부모님께, 장성한 후엔 친척이나 배우자, 친구, 아이한테 의지해서 살지.

우리 넷은 같은 고비를 넘겨온 동료야. 대부분 상황에선 서로를 믿고 보호하면서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너도 다른 사람이 기댈 수 있는 곳이 돼 주면서 동료도 보호해주잖아. 어린 새들도 언젠가 부모를 떠나 동료들과 함께 드넓은 하늘을 날아다니고.”

보이지 않는 암흑 속, 성건우는 장목화의 말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때, 장목화가 자조하듯 웃었다.

“하하, 어쩌다 보니 너무 문학적으로 얘기하게 됐는데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너한텐 동료가 있고, 어떤 상황에서든 혼자가 아니라고.”

또 한 번 어두운 방에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그런데 장목화가 잠시 틈도 주지 않고 빠르게 침묵을 깨고 나왔다.

“잠깐만. 넌 아무런 말도 하지 마라. 분위기 깰까 봐 무섭다, 정말. 나 이제 진짜 간다. 무서우면 나 불러. 근데 난 없을 수도 있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점점 멀어지며 복도 쪽으로 사라졌다.

14호 구조팀 방은 다시금 딱딱한 적막에 휩싸였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어렴풋한 성건우 본인의 숨소리뿐이었다.

성건우는 이미 여러 차례 이런 상황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땐 장목화가 옆 옆방에 있더라도 몰래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말을 한 적은 없었다.

주변 상황은 여전했다. 여느 날처럼 여전히 이곳은 자신의 손가락 하나 볼 수 없는 암흑 속이었다. 하지만 분명 그때와 달라진 점이 있었다.

성건우도 이젠 어둠에 적잖이 적응된 듯 조금도 두려운 마음이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뒤, 기억하고 있는 책상 모퉁이를 빙 우회해 비교적 넓은 소파 쪽에 이르렀다.

이후 느릿하게 자세를 낮춘 그가 서늘한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실체를 갖춘 듯한 어둠 속에서 성건우는 계속 이런 자세를 유지한 채, 오른손을 들어 양쪽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곧 고개가 아래로 쳐지고, 그는 앉은 상태에서 잠들었다.

성건우의 몸은 더는 평형을 유지할 수 없어 조금씩 옆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파에 몸이 기대어지고, 머리는 팔걸이에 받쳐졌다.

* * *

성건우는 다시 비약한 빛이 흐르는 허상의 바다로 갔다. 그의 눈앞엔 언제나처럼 짙은 갈색 흙과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섬이 보였다.

그가 이를 버티지 못하고 겁에 질려 깨어나 버린다면, 다음번 이곳에 들어올 땐 이 섬이 아닌 옆쪽 기원의 바다 안에 자리해 있게 될 것이었다.

성건우도 지금과 같은 환경에 이미 익숙해진 터라, 얼른 고개를 숙이고 허상의 수면에 흐릿하게 비친 자신을 바라보았다.

이내 그가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섬은 매우 어둡고 14호 방도 매우 어두워. 섬에는 나 외에 다른 소리도 없고, 14호 방에도 나 외의 다른 소리는 없지. 그러니까.”

잠시 머뭇거리던 성건우가 다시금 스스로에게 답했다.

“그러니까 섬은 곧 14호 방이야.”

그가 짙어진 눈동자를 드러낸 채 섬의 가장자리를 잡고 몸을 훌쩍 날렸다.

* * *

예상했던 것처럼 순간적으로 그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여전히 자신의 것 외에 다른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성건우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서늘한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잠들기 전과 똑같은 자세였다.

이젠 주위 어둠과 적막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성건우의 오른쪽엔 1인용 소파가, 또한 비스듬히 떨어진 전방엔 티 테이블, 등받이 의자, 벤치, 스툴이 놓여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옆 옆방엔 언제라도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동료 장목화가 있었다.

이런 생각들을 떠올리자, 성건우의 마음도 순식간에 평안해졌다.

그는 천천히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었다. 어둠에 파묻혀 있던 이전 그 두 밤처럼 최근에 있었던 일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교단에선 어떤 성찬이 제공될지 상상해 보기도 했다. 실제로 성건우는 수시로 오른손을 들고 입가를 훔치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가 문득 눈썹을 꿈틀거렸다. 승려 교단이라면……. 성찬은 당연히 기름이나 배터리 아니겠는가!

성건우는 너무도 안타까운 마음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성건우는 벌써 몇 차례나 자리에서 일어나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거나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애써 스스로를 다스렸다.

옆 옆방엔 당연히 장목화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지 않던가.

그가 계속해서 스스로를 다잡는 동안,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덕분에 성건우도 점차 이런 어둠과 적막도 별것 아니며, 자신을 삼켜버리지는 못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심지어 그는 되찾은 여유에 작은 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피곤해진 성건우는 어쩔 수 없이 눈을 감은 채 힘을 아꼈다. 그렇게 그는 정말로 잠들어 버렸다.

* * *

잠시 후, 한 줄기 밝은 빛이 성건우의 시야를 붉게 물들였다.

눈을 번쩍 뜬 성건우는 주위 어둠이 빠르게 물러나는 것을 보았다.

철썩철썩-

허상의 바다에서 울리는 작은 소리도 들려오고, 섬을 뒤덮은 짙은 색 흙과 기암괴석들 역시 모조리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 성건우는 눈을 자극하는 빛에 무의식적으로 오른손을 들어 앞을 가렸다. 그렇게 한참 눈을 깜빡거리다 빛을 발산하고 있는 등과 흰색, 회색이 어우러진 천장을 확인했다.

성건우는 비로소 자신이 1인용 소파 팔걸이에 기대 널브러진 듯한 자세로 잠들어 있었음을 깨달았다.

14호 방의 불이 켜져서 전제 조건이 변경되자, 성건우의 추리 광대 능력이 효력을 잃은 것이었다.

성건우는 얼른 손목을 들어 시계를 확인했다.

시침과 분침은 6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가로등에 전원이 공급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뭔가를 느끼려는 듯 다시 눈을 감던 성건우는 다시 팔걸이를 짚고 몸을 꼿꼿이 세운 뒤 문 쪽을 돌아보았다.

몇 초 후, 작은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입구에 주름진 옷을 입은 장목화가 나타났다.

그녀는 눈을 비비다 바닥에 앉은 성건우를 보곤 웃음을 보였다.

“뭐해?”

“안팎의 자세를 통일시키고 있었어요.”

성건우는 보통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답했다.

역시 멍한 표정을 짓던 장목화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기원의 바닷속 공포랑 다시 마주쳐본 거야? 극복했어?”

성건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 두려움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겠지만 이미 사라져 버렸으니까요.”

장목화는 잔뜩 흥분해 말을 쏟아냈다.

“그럼 네 능력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는데?”

그러다 그녀가 아차 싶었는지, 곧장 말을 덧붙였다.

“아, 답하기 어려운 거라면 알려주지 않아도 돼.”

하지만 성건우는 솔직하게 말했다.

“이번에는 효력 범위에만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전보다 조금 더 커지기는 했지만 그렇게 큰 변화는 아니고요. 팀장님이 12~13미터 밖에 있을 때부터 전 팀장님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었어요. 팀장님이 양손으로 한 가지 동작을 하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었고요.”

“양손 동작 불능⋯⋯. 지금껏 그 능력 효력 범위는 얼마나 됐어?”

장목화가 물었다.

“10미터였습니다.”

성건우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다.

“한 30퍼센트 정도 강화된 거네⋯⋯. 고작 첫 번째 공포를 극복했을 뿐인데. 이제 더 많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진정한 자신을 찾아낸다면 네 능력은 두 배, 아니, 서너 배로 강해질 거야. 네 감지 범위가 곧 능력의 효력 범위였구나.”

장목화가 웃으며 말을 끝맺었다.

“효력 범위가 가장 넓은 능력을 말하는 거라면 그렇죠.”

성건우가 장목화의 표현 중에 부정확한 부분을 지적했다.

장목화는 금세 궁금하다는 얼굴을 했다.

“다른 능력 효력 범위는 10미터 밑이야?”

“추리 광대는 원래 3미터고, 억지쟁이는 원래 5미터였어요.”

성건우가 진지하게 답했다.

순간 약간 민망해진 장목화가 얼른 입을 열었다.

“잠깐, 잠깐. 그건 네 비밀이잖아. 그렇게 상세하게 알려주면 안 되지.”

성건우는 그녀를 빤히 보며, 묵직하고도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넷은 같은 고비를 넘겨온 동료잖아요. 대부분 상황에선 서로를 믿고 보호하면서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 생…….”

“그만! 무슨 녹음기냐?”

장목화가 소리 높여 성건우의 말을 끊었다.

이건 어젯밤 그녀가 성건우의 두려움을 달래주려 건넨 위로였다. 장목화는 더는 그에게 이상한 생각할 틈도 주고 싶지 않다는 듯 빠르게 말을 쏟았다.

“두려움도 극복했는데 왜 아직도 일어나지 않고 그러고 있어?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게 더 편해?”

성건우는 여전히 진지했다.

“다리가 저려서요.”

장목화도 순간 웃음이 터졌다.

“부축이라도 해줘?”

“괜찮습니다.”

성건우는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장목화는 괜한 고집 피우지 말라고 말하려다, 순간 그대로 굳어버렸다.

성건우가 양손으로 땅을 짚고 몸을 홱 뒤집어 물구나무를 선 것이다. 그는 그대로 양손을 발로 삼아 가뿐하게 문 쪽으로 나아갔다.

“⋯⋯.”

장목화는 정말 할 말을 잃어버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