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111화 (111/649)

111화. 준비

결국 상부의 결정을 받아들인 장목화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팀원들의 가족들은요?”

용여홍을 위한 질문이었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사건의 원흉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너랑 성건우뿐이잖아. 거의 관계도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화풀이하려 하진 않을 거야. 그보단 당시 체포를 담당한 이들이 더 위험하지.

우리도 계속 그들을 살펴보고 있을 거다. 만에 하나 비이성적인 보복을 감행한다면 우리는 더 빨리 그들의 뿌리를 파헤칠 수 있을 테고.”

제니가 간략히 설명했다. 장목화도 더 이상의 질문을 하진 않았다.

곧 제니가 서류 하나를 건네며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이건 그 구조팀 자료야. 며칠 동안 잘 살펴본 뒤 임무 계획표를 제출해. 막상 임무를 수행할 때는 계획과 영 달라지긴 하지만, 그래도 밟아야 할 절차는 밟아야 하는 법이니까.”

서류를 받아든 장목화는 웃음을 짜내며 답했다.

“군용 외골격 장치나 인공지능 갑옷을 신청해도 되겠습니까?”

“어떨 것 같니?”

제니는 웃으며 반문했다.

순간 장목화는 풀이 죽은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에, 제니가 다시 말을 보탰다.

“만약 너희들이 군용 외골격 장치나 인공지능 갑옷을 손에 넣는다면, 그걸 너희 팀에 남겨줄 수는 있어.”

“알겠습니다!”

장목화의 얼굴에 즉각 환한 웃음이 피어났다.

“…….”

제니는 이제야 조금 전 장목화가 그냥 풀 죽은 연기를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 * *

장목화는 서류 두 장을 가지고 647층에 자리한 14호로 돌아갔다.

가보니 용여홍, 백새벽도 그곳에 도착해 있었다.

장목화는 곧 의도적으로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팀원들을 응시했다.

“두 가지 사항이 있어.”

마찬가지로 진지한 표정을 드러낸 백새벽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여홍은 즉각 등줄기 근육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이때, 성건우가 산통을 깼다.

“팀장님, 웃음 참으시고 있네요.”

순간 힘이 풀린 장목화가 결국 웃으며 투덜거렸다.

“내가 언제!”

“그냥 찍어봤습니다.”

성건우는 여전히 진지하게 답했다.

숨을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쉬던 장목화가 백새벽을 돌아보며 말했다.

“해자 마을 제안에 대한 답변이 결정됐어.”

백새벽은 장목화의 환한 얼굴을 보고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얼른 물었다.

“어떻게 하기로 했나요?”

장목화는 제니 부부장의 답변을 그대로 전달한 뒤 이렇게 덧붙였다.

“그곳과의 협상 임무는 우리가 맡게 됐어. 사흘 뒤 출발이야.”

백새벽 역시 일단 종속 관계를 맺고 그 후에 수용을 고려하는 방식에 이의를 표하지 않았다. 그리고 참 드물게도 그녀가 자발적으로 입을 열었다.

“만약 그 임무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제가 알아서 신청했을 겁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안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잘됐네요.”

용여홍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또한 해자 마을 아이들이 낭랑하게 책을 읽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그때, 성건우가 뜬금없이 물었다.

“이번에는 거래에 활용할 통조림을 더 많이 신청해도 됩니까?”

“네 몫을 떼어서 거래에 더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런다면 그 후의 여정이 좀 힘들 거야. 이미 겨울이라 구할 수 있는 식량이 매우 한정되어 있으니까.”

장목화가 장단점을 조목조목 읊어주었다.

그 말에, 백새벽이 뭔가를 예리하게 짚어냈다.

“그 후의 여정이라뇨?”

단순히 해자 마을에 다녀오는 데에는 하루 이틀 정도면 충분했다. 심지어는 그보다 더 일찍 다녀올 수도 있어서, 별도의 식량이란 게 필요가 없었다.

장목화는 용여홍을 힐긋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두 번째 임무도 있거든. 우리 위드 시티에도 다녀와야 해.”

용여홍이 저도 모르게 물었다.

“얼마나 걸리는데요?”

그는 최근에 소개받은 여자와 꽤 잘 지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확실히 교제를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적게는 한 달 조금 넘게, 길게는 서너 달.”

장목화는 상냥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모호하게 답했다.

“한 달 넘게⋯⋯. 서너 달⋯⋯.”

용여홍은 멍하니 장목화의 답을 반복했다.

장목화는 그를 몇 번 살피다 입을 열었다.

“무섭진 않은가 보네? 그래도 힘든 부분이 있으면 자세히 이야기해봐. 해결 방법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대답은 용여홍이 아닌 성건우가 대신했다.

“여홍이는 최근에 기계식 손목시계, 사탕, 유리병에 든 음료 등등 뭐든 마구 사대며 풍족하게 살고 있었거든요. 그러니 회사를 떠나고 싶겠어요?”

“아니거든?”

반사적으로 반박하는 용여홍을 보고, 성건우가 곧장 캐물었다.

“그래, 그럼 네 부모님을 위해 방 빌리는 데 공헌 점수 썼지? 그거 말고 몇 점이나 남았어?”

뼈를 때리는 질문에 용여홍은 끝내 아무 답도 하지 못했다.

보상 이후 그의 씀씀이는 분명 커졌다. 하나에 60점씩 하는 평범한 디저트도 종종 사 먹고, 가끔은 하나에 720점이나 하는 고가품을 살 때도 있었다. 사탕, 호박씨, 유리병에 든 음료 등은 거의 수시로 사 먹은 것들이었다.

이로 인해 용여홍은 동생들에겐 영웅이, 친구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이 돼 있었다. 교제하고픈 이성과 만남을 이어가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용여홍은 당연히 현재 보상 점수가 얼마나 남았는지 답하기 곤란했다. 결국 자진해서 지금 상황을 밝히는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최근에 누구를 소개해주셨거든요. 몇 번 만나면서 서로 좋은 감정을 쌓고 있어요. 근데 지금 당장 나가서 한두 달 후에나 돌아올 수 있다면 그 친구랑 관계가 그대로 끝나버릴 것 같아서요.”

장목화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너랑 그 사람은 지금 기껏해야 친구도 아닌 지인 정도에 불과할 테니까. 갑자기 두세 달 동안 만나지 못한다면 어떻게 널 기다리겠어.”

“팀장님, 해결 방법이 없을까요?”

용여홍은 마지막 희망 한 줄기를 품고서 촉촉한 눈을 빛냈다.

그 역시도 상부에서 지시한 임무를 거절할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팀장이 몇 가지 실용적인 기술이라도 전수해주기를, 그래서 그 기술로 최대한 빨리 그녀와의 관계를 확정할 수 있기를 바랐다.

어쨌든 장목화도 그 또래의 여자이니 같은 20대 초반 여자의 마음을 잘 파악하고 있을 터였다. 게다가 그녀는 머리도 아주 좋은 편이었다.

장목화는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

“없어. 설령 그 여자랑 사귀게 됐더라도 서로 감정이 깊지도 않다면 두세 달 후에 돌아왔을 때 네가 받을 상처는 더 클 거야.”

“휴⋯⋯.”

용여홍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모습에, 장목화가 위로를 건넸다.

“이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니야.”

“예?”

용여홍은 순간 다시 기대감에 부풀었다.

한껏 더 진지해진 그를 보고, 장목화가 건조하게 웃었다.

“다음에 더 좋은 여자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잖아.”

“팀장님, 위드 시티에는 왜 가야 하는 거죠?”

갑자기 백새벽이 끼어들었다. 그녀는 용여홍이 힘들어할 틈조차 주지 않고 곧바로 질문부터 던졌다.

답변은 장목화가 아닌 성건우에게서 나왔다.

“승려 교단의 유리 정토를 보러.”

순간 용여홍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뭐?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장목화는 약간 짜증이 어린 목소리로 대꾸하며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위드 시티에서 실종된 구조팀 이야기부터 자신들이 맡을 임무까지 전했다.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승려 황원을 지나쳐야 할 뿐만 아니라, 한 구조팀이 완전히 실종된 이유를 찾아야 한다니⋯⋯.”

용여홍은 기계 승려 정법에 대해 깊은 두려움을 안고 있었다. 다음번에 또 그를 만났을 때 자신이 인연인이 될까 걱정되기 때문이었다.

기계 승려들은 모두 하나같이 괴이하고 광기에 차 있었다. 만약 다음에 만난 기계 승려가 이름이 좋지 않다고 다짜고짜 사람을 죽이려 드는 유형이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일단 그 승려 황원에 승려 교단의 유리 정토가 숨겨져 있다는 소문이 도는 건, 그만큼 그곳에 수많은 기계 승려들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승려 황원이란 이름에 또 하나 반응을 보인 이가 있었다. 성건우는 승려 황원이란 얘기를 듣자마자 생각이 또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튀었다.

“정법 선사가 차으뜸에게 좋은 말씀을 전했을지 모르겠네⋯⋯.”

장목화가 피식 웃었다.

“그렇게 죄가 많은 사람은 꼭 기계 승려가 돼야 하는데. 상상해봐. 독수리, 하이에나, 야수들이 금속 로봇 하나를 에워싸고 사력을 다해 접근하고, 달라붙으려 하는 거. 하지만 그 로봇은 그런 상황에 개의치 않고 바위에 앉아 전자 합성음으로 열심히 경문을 외고 설법을 늘어놓는 거지. 쯧쯧⋯⋯.”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장목화가 빙그레 웃으며 용여홍을 돌아봤다.

“걱정하지 마. 우린 승려 황원을 빙 우회해 위드 시티에 진입할 거야. 여정이야 훨씬 길어져도 그편이 안전하니까.

또 위드 시티에 도착하면 회사 정보요원과 합류해 일정한 자원과 협조를 지원받을 예정이야. 그러니 사실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거긴 건우의 능력을 발휘하기에 최적의 장소야. 건우 능력은 총격전에선 한계가 있지만, 평화롭고 인간들이 수시로 접촉하는 환경에서는 거의 무적에 가깝잖아.”

말을 마친 장목화가 성건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곳에 도착하면 친구를 많이 만들라고!”

팀장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던 백새벽은 무의식적으로 성건우가 위드 시티에 들어가 미친 듯이 친구들을 사귀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그녀는 어느새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혹시 위드 시티에 성건우 형제회라도 탄생하는 건 아니겠지……?’

백새벽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형형한 눈빛을 번득이며 온몸이 근질거린다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팀장님, 오늘 당장 출발하시죠!”

의욕 넘치는 성건우를 보고, 장목화가 한번 아래위로 그를 흘겨봤다.

“꿈도 꾸지 마라. 넌 앞으로 사흘 안에 조사에 협조해야 해.”

“조사?”

용여홍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장목화는 곧 생명 제례 교단과 관련한 사건을 알려주며 성건우의 공헌을 치하했다.

“심도환 아저씨가 무심병에 걸린 게 그런 이유였다니⋯⋯.”

용여홍은 그제야 자신이 사치스러운 삶을 사는 동안 수면 아래에선 암류가 끓어오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다 그가 성건우를 홱 돌아보았다.

“그 사교 조직에는 언제 가입한 거야?”

“7월에.”

성건우가 솔직하게 답했다.

“넌 거기 왜 자진해서 가입한 건데?”

용여홍은 아무래도 이해가 안 된다는 눈치였다.

이내 성건우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재미있잖아? 동시에 신고를 위한 단서를 얻을 수도 있었고.”

“그럼 왜 그렇게 여러 차례나 참석했어? 좀 더 일찍 신고했더라면 아무런 일도 없었을 수 있잖아.”

용여홍은 분명 뭔가가 더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성건우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너무 맛있었거든……. 성찬이 진짜 무지무지 맛있었어.”

그러나 이젠 그 무료 성찬도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

용여홍은 순간 할 말을 잃고 얼이 빠져 버렸다.

그 와중에 장목화는 성건우를 위로하고 있었다.

“위드 시티에도 교단이 꽤 있을 거야. 공개적인 교단이든, 비밀 교단이든. 거기 도착하면 넌 얼마든 교단에 가입할 수 있어. 수많은 교단의 성찬을 모두 맛봐! 내가 생각하기에 너한테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닐 것 같은데?”

“팀장님! 아무래도 오늘 출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성건우는 다시 진심 어린 얼굴로 제안했다.

하지만 장목화는 그를 가뿐히 무시하고, 백새벽을 돌아보았다.

“새벽아, 넌 일단 자료를 다 살펴보고 나 좀 도와줘. 위드 시티로 향할 노선 몇 개를 정할 거거든? 그것 좀 도와줘.”

뒤이어 그녀는 용여홍을 바라보았다.

“여홍이 넌 앞으로 남은 며칠 동안은 최선을 다해 놀고, 가족들도 잘 보살펴. 몸도, 마음도 준비 단단히 해두고.”

“예, 팀장님!”

용여홍과 백새벽이 동시에 큰 소리로 답했다.

장목화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해, 아주 힘이 넘치네. 우리의 특별 훈련도 계속 이어질 거야. 회사를 떠난 뒤에는 환경이 전만큼 좋지 않을 테니까. 음, 순서도 한 번 바꿀 거고, 뛰어난 기량을 보인다면 더는 참가하지 않아도 돼. 새벽이처럼.”

동시에 장목화가 성건우를 바라보자, 그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장목화는 뭔가를 고민하듯 눈동자를 살짝 굴렸다.

“나도 준비를 좀 해야겠어⋯⋯.”

용여홍은 무슨 준비를 할 것이냐고 물으려 했지만, 장목화는 곧바로 손뼉을 치며 마무리했다.

“좋아, 이제 자료를 보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