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106화 (106/649)

106화. 보고의 기술

오명훈은 성건우의 중얼거림에도 개의치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9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우정현의 목소리가 들렸어. 그걸로 그가 벽 바로 너머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정확한 위치를 파악했지. 그 사람 죽이는 데엔 딱 몇 초밖에 안 들었어. 아주 간단했거든.

이후로 거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고 난 그 틈을 타서 벽에서 떨어졌어. 그리고 점심때까지 빌린 책을 읽다가 식당에서 밥을 먹었지.”

오명훈의 진술은 아주 상세했다. 그는 이번 작전의 성공이 아주 뿌듯한 듯, 내내 당시 상황을 공유할 누군가를 기다려오기라도 한 것 같았다.

얌전히 이야기를 듣던 성건우가 웃으며 말했다.

“교단에서는 그게 신의 징벌이라고 주장하던데.”

오명훈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이게 신의 징벌이 아니면 뭐지? 신령과 같은 수단으로 벌인 짓이니 신의 정벌이라 하기도 부족함 없지. 게다가 신령의 총아가 직접 한 일이잖아.”

성건우는 잠시 생각하다 진지하게 물었다.

“신령의 총아가 직접 춘 춤은 곧 신의 춤이 되는 걸까?”

“그게 무슨 소리야?”

오명훈이 미간을 찌푸렸다.

성건우는 설명하는 대신 화제를 전환했다.

“우리 같은 사람이 얼마나 더 있어?”

오명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잘 몰라. 각 성사의 수하에는 소수의 각성자들이 있어. 하지만 그들이 서로의 존재를 다 알고 있는 건 아냐.”

“각 성사?”

성건우는 예리하게 중점을 파악했다.

그러자 오명훈은 외려 더 의아하다는 듯 성건우를 쳐다보았다.

“모르냐? 회사 내부에 성사 여러 명이 있어.”

살짝 뜸을 들이던 그가 다시 또 덧붙였다.

“우리는 함께 성사의 위치를 노리는 유력한 도전자이기도 하고. 근데 말이야, 네가 따르는 성사는 누구지?”

순간 오명훈이 성건우를 빤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성건우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시종일관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그 성사.”

오명훈은 비로소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성사. 그는 여러 성사 중에서도 가장 비밀스러운 존재야. 나도 그를 직접 만나본 적은 없어. 어쩐지 네가 아는 게 많지 않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한 명령을 받을 때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지 않나?”

“적어도 난 그래. 근데 너한테 우정현을 죽이라고 한 건 어느 성사야?”

성건우는 이제 상대가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곧장 질문을 던졌다.

이내 오명훈의 표정이 좀 묘해졌다.

“모든 성사에게는 구세계에서 쓰이던 단어를 따다 붙인 칭호가 존재해. 내가 따르는 성사의 칭호는 두칠(*斗七: 죽은 지 7일째 되는 날)이야.”

“두칠⋯⋯.”

성건우는 약간 그 기이한 칭호를 되뇌다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어디에서 기인한 칭호야?”

오명훈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살짝 입을 비죽였다.

“구세계의 탄생, 혹은 장례 의식의 한 부분이래. 우리 주님 사명이 관장하는 영역이기도 하고.”

성건우는 흥미롭다는 듯 캐물었다.

“두칠 말고 또 뭐가 있는데? 아직 주인이 없는 칭호는 없어? 내가 성사가 됐을 때 고를 수 있는 거 말이야.”

“자신감이 대단하군. 훌륭해. 그게 바로 신인류가 가져야 할 패기지.”

오명훈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성건우를 인정했다. 그러고는 본인도 일찍이 그에 대해 생각해본 듯 나무로 조각된 것 같은 눈을 번득였다.

“지금 내가 아는 것 중에는 만월, 백일, 입관, 경야(經夜), 출상, 오칠, 망곡 등이 있어. 그중 비어있는 건 입관, 망곡, 백일, 출상이고. 이 네 개 중에서 하나 택할 수 있을 거야. 다른 성사의 칭호를 빼앗아 오는 방법도 있고.”

이후로 성건우는 오명훈이 알려준 여러 칭호 중 어느 것이 가장 좋을지 진지하게 토론하다가 물었다.

“두칠 성사는 어느 부서에 속해 있어?”

오명훈은 거의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눈으로 몇 초간 성건우를 응시하다가 낮게 웃었다.

“그런 건 경야 성사에게 물어야지. 나는 그런 월권행위를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어.”

경야 성사⋯⋯. 성건우는 속으로 그 이름을 반복하며 기억에 새겼다. 그가 아마도 여러 성사 중 가장 비밀스러운 그 성사인 듯했다.

“그래,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성건우도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그러다 천장에서 내리쬐는 하얀 불빛을 한번 올려다보며, 대수롭지 않은 척 흘려 물었다.

“근데 심도환은 어떻게 죽은 거냐? 누가 그를 무심병에 감염시킨 거지? 아니, 무심병에 걸린 것처럼 보이게 한 게 누구냐고 물어야 하나?”

“심도환이 누군데?”

오명훈이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음⋯⋯. 아냐, 됐어.”

성건우는 그냥 웃어넘겼다.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오명훈이 입을 열었다.

“난 여태까지 다른 사람을 무심자로 만드는 각성자 능력을 본 적은 없어. 그 병에 걸린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능력도.”

성건우는 고개를 끄덕인 후, 몇 가지를 더 물어본 다음 빠르게 인사를 했다.

“그래, 난 이만 갈게.”

그는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여기서 더 많은 걸 물어볼수록 상대에게 더 많이 노출되고, 추리 광대 효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가 있었다.

이렇게 짧은 거리에 있는 오명훈이 심장 마비 능력을 발휘한다면 성건우는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미 가장 중요한 정보를 얻었기에, 더는 꾸물거릴 이유도 없었다.

“다시 보자.”

검은색 트위드 상의를 입은 오명훈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

성건우도 환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오명훈과 헤어진 후, 성건우는 즉각 엘리베이터에 올라 카드를 긁고 647층 버튼을 눌렀다.

* * *

지금은 아직 8시도 되지 않은 시각이었다. 거리에 가로등도 아직 환해서 밤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구조팀의 담력 훈련도 이제 겨우 두 번 진행되었다. 이 때문에 팀장 장목화도 여전히 자학하듯 옆 옆방에 숨어있다가, 뭔가 이상한 기척이 느껴지면 재빨리 나타나 팀원을 안정시키는 데 주력했다.

현재는 아직 시간이 일러서, 장목화는 아주 여유롭게 소파에 누워 미리 가져온 자료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난 참 걱정도 팔자라니까.”

막 방으로 들어온 성건우를 보고, 장목화가 큰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곤 편하게 뻗은 다리를 접고 똑바로 앉으며 물었다.

“어때? 무슨 수확이라도 있었어?”

사실 장목화가 여태 647층에 남아있던 이유가 있었다. 그녀도 성건우가 오늘 저녁 오명훈을 만나 그와 친구가 되려 한다는 계획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장목화는 지금껏 이곳에 남아 성건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건우가 중요한 긴급 정보를 가져오면 즉각 보고받기 위함이었다. 기회라는 건 본디 조금만 방심해도 놓쳐버리기 마련이었다.

“자기가 우정현을 죽였다고 인정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부터 먼저 밝힌 성건우는 그제야 장목화 맞은편 의자에 앉아 오명훈과 했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보고했다.

장목화는 내내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를 듣다가, 두칠 성사란 칭호에 그만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하! 너희 교단, 하하! 작명 센스 진짜 대박이다! 나도 구세계 책에서 당시 장례식에 관한 설명을 본 적이 있어. 그런데 그런 절차 중 하나를 자신의 칭호로 삼다니. 하하하! 너무 웃겨, 하하! 진짜 좀 우습지 않냐?”

한참을 웃던 장목화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다시 진지하게 말했다.

“오명훈은 장례 절차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네. 난 네가 아주 좋아할 만한 칭호를 하나 알고 있어. 창령(唱靈), 장례식에서 경문을 읽는 절차야.”

성건우는 진지하게 경청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팀장님, 이건 심각한 일입니다.”

순간 장목화는 자신과 상대의 역할이 바뀐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습관적으로 자신의 귀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뭐? 뭐라고? 그래, 이 일엔 두 사람의 목숨이 연루돼있지. 그러니까 우리도 반드시 집중해야지.”

성건우는 다시 심각하게 표정을 굳혔다.

“칭호 선택이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요.”

“⋯⋯.”

한번 숨을 깊게 들이마신 장목화는 성건우를 위아래로 몇 번이나 훑어내렸다. 어딜 때려야 좋을지 탐색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몇 초 후, 탁한 숨을 토해낸 그녀가 정색하며 말했다.

“오명훈이 이미 인정했다면 우리 추측은 사실로 확인된 셈이야. 게다가 그자는 배후 성사의 실제 정체를 드러내려 하지도 않았잖아. 그러니 우린 최대한 빨리 상부에 이 일을 알려야 해. 계속해서 조사를 진행하는 건 너무 위험한 짓이야. 들킬 가능성이 크다고. 그럴 필요는 없어.”

성건우도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이내 장목화는 몸을 살짝 뒤로 기울인 뒤, 오른손을 주먹 쥐어 코와 입 사이에 갖다 댔다. 그녀는 지금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제 문제는 이걸 어떻게, 누구에게 보고하느냐는 건데. 난 무심자로 변하고 싶지 않거든.”

생명 제례 교단을 신고하려다가 무심자로 변한 심도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입가로 자조적인 웃음이 새어 나왔다.

“상대는 어두운 안개 속에 숨어있잖아. 우리로서는 그가 누군지 알 수가 없어. 주위의 누가 그들의 구성원인지도.”

“전 압니다.”

성건우가 단호하게 답했다.

장목화는 말문이 막혀 한동안 아무 말도 없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내 말은, 현재 안전부의 고위층, 혹은 이사회의 이사 중에서도 생명 제례의 교도가 있을지 모른다는 뜻이야. 우리 보고가 그들의 손에 들어간다면 아주 골치 아프게 될 거라고.”

잠시 고민하는가 싶던 성건우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저한테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방법?”

장목화도 성건우를 막진 않았다. 그녀도 이미 기괴한 답을 들을 준비가 돼 있었다. 혹은 어쩌면 성건우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을지도 몰랐다. 누가 뭐래도 성건우가 보통 사람들과 전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한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역시 성건우는 의욕 가득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방송국에 잠입한 뒤 허정민을 통제해서 정각 뉴스 시간에 이 소식을 전달하게 하는 겁니다. 그럼 모두가 이 이야기를 듣게 될 테고, 생명 제례의 교도가 아닌 고위층은 즉각 행동에 나서겠죠.”

장목화도 잠시 진지하게 고민했다.

“와, 그 방법 제법 그럴듯한데? 좋아, 진짜로 훌륭해. 생명 제례 교단에서 아직 회사를 다 통제하지 못했고, 대대적으로 전도를 할 만큼의 엄두를 못 내는 걸 보면, 그들도 아직 소수파에 불과한 거야. 고위층에 몇몇 교도가 포함돼 있을 순 있겠지만 많지는 않겠지.

우리가 이 소식을 공개적으로 퍼뜨려서 고위층 대다수에게 알리기만 한다면 그들은 심각한 혼란에 빠지게 될 거야. 심지어는 꼬리 자르기라도 해서 살길을 찾으려 할지도 모르지.”

성건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

장목화는 거의 짜증을 내듯 황급히 외쳤다.

“야, 잠깐, 잠깐! 난 그 아이디어가 훌륭하다고 했지, 지금 당장 행동으로 옮기라고 허락한 적 없어!”

“방송국 잠입은 가뿐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성건우는 이 작전의 실행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했다.

장목화는 잠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못 말린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 뒤 그녀가 손가락 하나를 들고 친절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나도 잘 알아. 너한테는 추리 광대 능력도 있으니까. 다른 방법이 없을 때는 그 각성자 능력을 발휘해서 그곳 사람들을 친구로 삼을 수도 있겠지.

문제는 그렇게 했을 때의 결과야. 그렇게 하면 확실히 생명 제례와 관련된 사건은 해결할 수 있어. 하지만 방송을 통해 모두에게 이 사건을 알려버리면, 회사는 말단급 교도에 대해서도 무거운 처벌을 내릴 수밖에 없을 거야.

너 그 사람들 보호하고 싶다며. 앞으로 그 사람들이 주위 직원들한테 어떤 눈총을 받고 살아갈지 상상 안 돼? 이것도 크게 봤을 때 얘기지, 조금 더 지엽적으로 들어가면?

회사가 방송국에서 있었던 일을 조사 안 하겠어? 때가 되면 그들은 네가 각성자라는 걸 딱히 어렵지도 않게 알아낼 거야. 그거 숨기고 싶다며. 네가 각성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걸 여태 숨겨준 나도 처벌을 받거나 팀원 상태 하나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팀장이란 불명예를 안게 되겠지.”

몇 초간 침묵하던 성건우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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