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104화 (104/649)

104화. 안정적인 발전

손을 거둔 성건우가 재차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시야를 채운 건 깊은 어둠뿐이었다. 까만 세상 속에선 경계가 어디인지도, 익숙한 물건들이 어디에 있는지, 주위에 무언가가 숨어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본래 생활 구역은 방들이 매우 밀집돼있어 방음이란 게 없었다. 아무리 깊은 밤이라도 대화 소리, 약간의 기척 같은 건 무조건 들렸다. 때론 아기 울음소리, 어른들이 싸우는 소리, 누군가의 코 고는 소리도 들릴 정도였으므로 성건우는 여태 거의 잠들기 전까지 적막이란 걸 느껴본 적이 없었다.

반면 이곳은 근무지였다. 대낮은 굉장히 시끌벅적할지 몰라도 7시만 지나면 전 층을 통틀어 남아있는 사람이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거기다 소등 시간이 지나면 사람 자체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성건우는 지금 그야말로 엄청난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실로 응고가 돼버린 듯한 무겁고도 묵직한 적막이었다.

끼익-

순간 조그만 소리 하나가 울려 퍼졌다.

사실 성건우가 이 고요에서 벗어나고자 일부러 의자를 움직인 것이었다.

그러나 계속 이렇게 움직일 수는 없어서, 소리는 빠르게 잦아들었다.

성건우는 꼭 짙은 어둠에 삼켜져 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자리에 앉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계속 주위를 분간하려 애썼다.

너무 깊은 어둠 속에선 스스로의 존재도 확신하기 어려웠다. 이대로 더 시간이 지나면 짙은 암흑 속에서 헤어나올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성건우는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과거의 고통과 슬픔은 잊을 수가 없는데⋯⋯. 일어나라! 굶주림과 추위에 고통받는 노예들이여! 일어나라, 전 세계의 고통받는 자들이여!”

노래는 점점 열정적으로 변했다. 성건우는 눈앞의 극단적인 어둠과 극단적인 적막을 깨부수려는 듯 더더욱 목청을 높였다.

“헉…….”

결국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듯 노래를 완창한 그가 숨을 살짝 헐떡였다.

하지만 노래가 끝나자 이 방도, 온 층도 다시 고요해졌다. 짙은 어둠도 그대로였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성건우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계속 이어졌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황을 바꿀 순 없었다. 어둠은 도무지 부서지질 않았다.

그로부터 또 한참 뒤, 돌연 그가 입술을 떼고 있는 힘껏 소리쳤다.

“누구 없어? 누구 없냐고!”

하지만 돌아오는 건 메아리뿐이었다.

“헉……, 헉…….”

저도 모르는 사이 성건우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보고 싶은 것 같았다.

그때였다. 그가 갑자기 고개를 홱, 틀어 방문이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작은 발걸음 소리가 점점 빠르게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곧 방 안에 한 줄기 노르스름한 빛기둥이 깔렸다.

빛기둥은 이내 방향을 틀어 그 끝에 자리한 얼굴 하나를 하얗게 비췄다.

“무섭지?”

동시에 여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손전등 불빛 끝엔 장목화의 얼굴이 걸려 있었다.

“유치해요.”

성건우의 반응에, 장목화가 짜증 섞인 웃음을 흘리며 대꾸했다.

“네가 걱정돼서, 분위기 좀 풀어보려고 그러는 거잖아!”

그리고 그녀가 입술을 비죽이며 덧붙였다.

“네 노래 실력 정말로 끔찍하더라.”

“옆방에 계속 숨어있었습니까?”

성건우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니, 옆 옆방에. 안 그랬으면 각성자인 너한테 들켰겠지.”

웃으며 다가온 장목화가 성건우 곁으로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그리고는 손전등을 이리저리 흔들며 잠시 요란하게 춤을 추는 빛기둥을 바라보았다.

몇 초 후, 그녀가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입을 열었다.

“이 특별 훈련은 사실 널 위해 마련한 거야. 네가 어둠이랑 극단적인 적막을 두려워하는 거, 아버님 실종 이후, 어머님께서 장기적으로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생긴 거지? 그때 넌 겨우 열세네 살이었잖아.

어느 날, 깊은 밤에 깨어났는데 집엔 아무도 없고 주위엔 아무 소리도 들리질 않았겠지. 그래서 용기를 내보려고 노래라도 불렀었어?”

성건우는 침묵한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장목화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한 걸음, 한 걸음 접근하면서 조금씩 적응해야 해. 처음부터 너무 과한 자극을 받으면 두려움만 더 깊어지니까.

그러니까 처음 몇 번 동안은 내가 같이 있어 줄게. 몇 마디 대화는 나눌 수 있겠지만 손전등은 켜지 않을 거야.

네가 이런 상황에 적응하고 나면 그다음엔 이야기도 하지 않고, 더 멀리 떨어진 곳에 앉을게.

그 단계마저 지나고, 너한테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았다는 게 확인되면 옆 옆방으로 가서 기다릴 거야. 그럼 넌 어떤 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 상황에도 누군가가 근처에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겠지?

그리고 언젠가는 몰래 집으로 돌아갈게. 너한테는 알리지 않고.”

손전등 빛 속에, 얌전히 얘기를 듣던 성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장목화는 이내 웃으며 손전등을 껐다.

방 안은 다시 깊은 어둠에 잠겼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가 아닌, 둘의 숨결이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거의 굳어버린 듯한 어둠 속에서, 성건우와 장목화는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새 먼저 입을 여는 사람이 지는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마침내 장목화가 먼저 이 묵직한 적막을 깨고 나왔다. 그녀는 자조하듯 웃으며 운을 뗐다.

“야, 너랑 나 무슨 시합이라도 하는 거냐?”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손으로 입을 막은 채 하품을 했다.

“난 소파에서 잠이나 한숨 잘래. 넌 뭐 심장 박동 수 체크 하면서 신체 부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느껴보든가. 아니면 전에 본 구술사, 머릿속으로 한번 짚어보면서 간략히 정리하고 어떤 영감을 얻을 수 있을지 확인해 봐.

그것도 싫으면 우정현과 심도환의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살피면서 허점이나 중요한 지점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좋고, 일어나서 좀 걷는 것도 괜찮지. 보이기만 한다면 춤을 춰도 상관없어.”

당부를 마친 장목화는 성큼성큼 이동했다. 그녀는 빛 한 점 없는 어둠 속에서도 여러 장애물을 가볍게 피한 뒤 소파까지 순조롭게 이르렀다.

그에 성건우가 상당히 아쉽다는 듯 말했다.

“아무 데도 안 걸리시네요.”

장목화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딱 마침 그런 말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까 손전등 켰을 때 주위를 한번 관찰하고 사물 위치를 대부분 다 정확하게 기억해뒀거든.

동시에 난 내가 움직일 때의 전기 신호도 감지할 수 있어. 그래서 방향을 조정하고 예정된 목적지에 정확하게 이를 수 있지.

잊지 마, 어디에 있든 빠르게 주위 배치랑 지형을 파악해야 해. 그게 중요한 순간에 네 목숨을 구할 테니까.”

그녀는 아무런 실수도 하지 않고 어둠 속을 헤친 자신에게 상당한 자부심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팀원 교육을 마친 뒤, 장목화는 소파에 앉아 다리를 웅크렸다.

“나 잔다. 무서우면 나 깨워. 노래로 깨우진 말고!”

그녀가 피식 웃으며 말을 끝냈다.

성건우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애써 참았다.

이후, 장목화는 잠시 잠든 척하며 기다려보았다. 성건우는 이제 전처럼 힘들어하진 않는 것 같았다. 장목화도 그제야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결국 정말로 잠들어 버렸다.

* * *

갑자기 장목화의 시야로 환한 빛이 찾아들었다.

그녀는 홱, 몸을 일으키곤 덮고 있던 두꺼운 솜 코트를 걷으며 일어났다. 빛은 등불에서 나오고 있었다. 누군가 갑자기 등불을 켠 것이었다.

이내 장목화가 약간 몽롱한 얼굴로 좌우를 둘러보았다.

“몇 시야?”

“6시 30분입니다.”

목소리는 원래 성건우가 있던 곳 근처에서 들려왔다.

장목화는 자연스럽게 그쪽을 돌아봤다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성건우가 벽에 등을 붙이고 물구나무를 서고 있었다.

“야, 너 지금 뭐 해?”

장목화는 최근 성건우의 기행에 어떻게 호응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 파악하고 그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알아서 막을 수 있을 정도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그가 왜 저러는 건지 이유도 알 수 없었다.

성건우는 변함없는 자세를 유지한 채 침착하게 답했다.

“사고방식을 바꾸려고요.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보고 있었어요.”

“⋯⋯그 각도는 분명 좀 다르긴 하지. 그래, 무슨 수확이라도 있어?”

장목화는 실제 마음과는 달리 그냥 일단 칭찬부터 해줬다.

“없습니다.”

성건우가 허리와 복부에 힘을 주고, 동시에 바닥을 받친 손을 홱 밀어내며 똑바로 일어나 섰다.

장목화는 조용히 숨을 두 번 정도 고르다 아예 화제를 바꿔버렸다.

“어젯밤은 어땠어?”

“화장실을 못 가겠던데요.”

성건우의 솔직한 답에, 장목화는 약간 안심한 듯 웃었다.

“가도 돼. 이 층의 공용 화장실에는 센서 등이 달려 있거든.”

“이동하는 동안 주변에 있는 각종 물건을 쓰러뜨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가장 컸어요.”

성건우가 진지하게 설명했다.

‘무슨 상관이야? 다치지만 않으면…….’

이렇게 대답하려던 장목화는 순간 생각을 바꾸고 웃으며 물었다.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날 깨울까 봐?”

“그건 매너 없는 짓이니까요.”

성건우는 마음을 들킨 것에 대한 놀라움 따윈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장목화도 그런 그를 칭찬했다.

“훌륭한데.”

이내 그녀는 허리와 손발을 쭉쭉 펴 기지개를 켜며 웃었다.

“적응을 꽤 잘하는 것 같네. 오늘 오전에도 계속해서 구술사를 살필 거야. 하지만 오후에는 들어가서 쉬어. 훈련엔 안 와도 돼. 앞으론 네 차례에만 여기서 당직을 서면 돼.

너무 급하게 굴 필요 없어. 한 걸음, 한 걸음씩 차근차근 나아가는 거야. 장담하는데,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다 안정되면 네 그 두려움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을 거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어.”

이 대목에서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말을 이었다.

“전에 어떤 구세계의 책을 한 권 본 적 있어. 거기 이렇게 쓰여있더라.

‘나를 죽이지 못하는 시련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 (*주1: 니체의 명언)

성건우는 그 말을 마음에 새기겠다는 듯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장목화가 문 쪽으로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난 일단 씻어야겠어. 오늘 밤에는 푹 쉬어야지! 아니지, 만약 새벽이도 너랑 비슷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면? 여홍이가 너보다 어둠과 적막을 더 두려워한다면? 휴, 오늘도 내일도 꼼짝없이 여기서 밤을 지내야겠네.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안 되니까⋯⋯. 팀장은 정말 쉽지 않은 직책이라니까!”

얌전히 장목화의 불평을 듣고 있던 성건우가 말했다.

“제가 팀장님 대신 두 사람을 봐줄게요.”

장목화는 미간을 팩 찌푸리더니 경계심 어린 목소리로 반문했다.

“걔들 놀라게 하려는 거 아니고?”

“담력 훈련인데 어떻게 그걸 빼놓을 수 있겠습니까?”

성건우의 답은 당당하고 거침없었다.

눈동자를 살짝 굴리던 장목화가 피식 웃었다.

“고려는 해볼게. 근데 초반엔 안 돼. 기절해버리기라도 하면 어떡해? 물론 기절할 사람이 꼭 그 상대방이라고는 안 했다? 너 안 놀랄 자신 있어?”

성건우는 일언반구도 없이 부리나케 밖으로 나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