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102화 (102/649)

102화. 병력

그때, 용여홍과 백새벽이 속속들이 들어왔다.

두 사람을 보고 장목화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치며 환하게 웃었다.

“상부에서 답변이 왔어!”

포상 이야기에 용여홍, 백새벽, 성건우 모두 눈을 반짝 빛냈다. 장목화는 미리 앞서 성건우를 자제시켰다.

“잠깐! 너? 노래 금지, 춤 금지?”

성건우는 못내 아쉽다는 표정을 드러냈다.

그 사이 목을 푼 장목화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포상과 보상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하나는 너희들 직원 등급이 한 단계씩 높아지게 됐다는 거야. 난 이제 D7급으로 명실상부한 팀장이 됐고, 원래 D2로 승급 예정이던 건우와 여홍이는 곧장 D3급 직원이 됐어. D1급 정식 직원으로 전환될 예정이던 새벽이는 D2로 올라가게 됐고.”

“D3? 그럼 매달 1,000점 더 높은 공헌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거예요?”

용여홍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부터 그의 월급은 2800점이었다. 게다가 내년에 결혼하면 지금보다 더 좋은 방을 분배받을 수도 있었다.

“유전자 개조를 받으려면 몇 급이 되어야 하죠? 공헌 점수를 지불할 용의가 있다면요?”

백새벽 역시 희색을 드러내다가 얼른 표정을 다잡았다.

장목화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내가 대신 물어봤는데 너 같은 상황에서는 D4에만 올라도 신청할 수 있대. 만약 네가 위험한 프로젝트에 지원한다면 지금이라도 가능하고. 하지만 난 그건 추천하지 않아. 무엇을 원하든, 어떤 마음이든, 무엇보다 목숨이 가장 중요하니까. 알지?”

백새벽도 그렇게 대책 없이 굴 생각은 없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윽고 장목화가 성건우를 돌아보았다.

“넌 안 기뻐?”

“기쁩니다.”

성건우는 또 엄숙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에 장목화가 살짝 고개를 돌리고 중얼거렸다.

“됐다, 안 물어보고 말지.”

장목화는 다시 팀원들을 보며 마저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한 사람당 보상 10만 점을 받게 됐다는 거야.”

“10만 점이라고요?”

용여홍은 평생 그렇게 많은 공헌 점수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장목화가 소리 내 웃었다.

“그렇게 많은 것도 아냐. 우린 장갑차 한 대와 중형기관총 한 정을 훔쳐 아니, 가져왔고. 검은 늪 철갑 뱀 가죽과 차 두 대 분량의 물자도 챙겨왔잖아. 위드 시티 같은 데에서선 40만 점보다 몇 배는 더 높은 가격에 팔 수 있는 물건들이야.

하지만 잘 생각해봐. 우리가 쓴 무기는 회사에서 제공해준 거고, 우리가 타던 지프도 회사 소유야. 그동안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잘 곳을 제공한 것도 회사지? 그러니 이 정도 보상도 아주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어.

게다가 직원 등급 승급이라는 포상도 있었잖아? 그건 단순히 공헌 점수로 환산할 수 없는 거야.”

“그럼요, 그럼요.”

용여홍도 전혀 아쉽지 않았다. 부모님과 동생들의 거처를 큰 집으로 옮기려고 한다 해도 3만 점이면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백새벽은 가장 크고 강한 쪽이 가장 많은 전리품을 차지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지라, 역시 이러한 처사에 아무런 불만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성건우는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이곳에 아무도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는 사람은 없었다.

잠시 후, 장목화가 책상 서랍을 열고 서류 봉투 세 개를 꺼냈다.

“서류에 각자 이름이 쓰여 있을 거야. 심사를 거친 끝에 너희들에게 돌려줘도 되겠다고 결정된 수확물이야. 하하! 손목시계는 전부 돌려줬어. 다 디지털보다 적어도 5, 6만 점 정도는 더 나가는 기계식 손목시계야. 망가진 부분도 회사에서 이미 다 깔끔하게 고쳤어.

아, 참. 전자카드 갱신하는 거 잊지 마. 공헌 점수가 네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르면 나한테 바로 얘기하고. 또 외근 수당 900점도 직접 분배될 거야.”

성건우는 자신의 이름이 쓰인 서류 봉투를 받아들고, 장목화의 설명을 들으며 안에 담긴 물건들을 쏟아냈다.

검은 선글라스, 짙은 색 기계식 손목시계, 노란색 꽃잎이 박힌 투명한 유리구슬, 검은 쥐 마을에서 찾아낸 녹음기, 그리고 스피커까지. 스피커는 손바닥만 했지만, 자칫하면 서류 봉투를 거의 찢을 뻔했을 정도였다.

이내 백새벽은 서류 봉투 내용물을 살피는 대신, 장목화를 돌아보았다.

“팀장님, 해자 마을 건은 어떻게 처리됐나요?”

백새벽의 질문에 장목화는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조급할 것 없어. 그건 다음번 이사회 회의에서나 결정될 거야. 하지만 제니 부부장님 말씀이 이사들은 이 사안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대. 현재는 어떤 대우를 해줄 것인지에 대해서만 논쟁 중이라고 하더라고.”

“네.”

백새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후, 잠시 고민하는가 싶던 장목화가 책상에 있던 종이 한 장을 들었다.

“건우가 철강공장에서 가져온 이 종이에 대한 실험실 보고도 나왔어. 이 중에 두 장은 앞쪽 몇 장에 기록된 내용이 눌린 자국으로 남아 있었대. 그 내용을 복원하고 대조하니 누군가의 병력이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했어. 뭐, 물론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파악할 순 없었지만, 주요 부분을 말하자면.

이름 방민서, 성별은 여자, 나이는 52세, 기혼, 주소는 가족 구역 2구역 4동 302호. 환자의 진술 및 행동 능력은 정상, 정신 상태도 정상.

현 병력, 최근 일주일간 매일 아들의 인영이 최소한 한 번씩은 보임. 환자의 아들은 몇 년 전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됐으며 현재는 지원자로 북쪽 모처에서 실험적인 치료를 받는 중⋯⋯.”

복원한 내용을 모두 읽은 장목화가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어때? 무슨 생각이 들어?”

“큰 문제 없는 정신 질환자의 병력 같네요.”

백새벽은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병력이라는 것이 어떤 개념인지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듯했다.

용여홍도 그 뒤를 이었다.

“그 철강공장 병원이 정신병도 치료할 수 있었던 곳이었나요?”

그가 보기에 그곳은 반고 바이오 내 각 층에 자리한 의무실보다 약간 더 컸을 뿐이었다. 게다가 반고 바이오 내부에 존재하는 3대 대형 병원 중에서도 정신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곳은 한 곳밖에 없었다.

장목화는 반고 바이오 내부 상황에 근거해 나름의 해석에 나섰다.

“환자는 자신이 정신 질환자란 걸 인지하지 못했을지도 몰라. 그냥 눈에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진찰받으러 갔겠지.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낼지 말지는 의사가 선택할 문제니, 본인이 직접 고민할 필요는 없었을 거고.”

그때, 얌전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성건우가 불쑥 끼어들었다.

“만약 환자에게 정신적인 문제도 없고, 눈에 생긴 병도 없었지만 매일 아들의 인영을 적어도 한 번 이상 봤던 거라면요?”

순간 용여홍이 숨을 들이마셨다.

“……힉! 야! 이상한 얘기 좀 하지 마. 저 사람 아들은 식물인간이라잖아! 백번 양보해서 아들이 완치됐다고 쳐. 그럼 왜 엄마한테 곧장 찾아가지 않고 엄마 주변을 맴돌며 나타났다 사라지기만 반복하겠어?”

성건우의 추측에 용여홍은 몸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꼭 지옥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는 것만 같았다.

‘바람⋯⋯?’

이내 용여홍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선풍기는 언제 켠 거야?”

그는 그제야 성건우가 팀장 책상에 있던 무소음 선풍기를 켜 자신 쪽으로 돌려놓은 것을 발견했다.

본래 반고 바이오 지하 빌딩 내부는 낮 동안은 종종 더워지곤 했다.

“한창 얘기하고 있을 때, 분위기 좀 잡아보려고.”

성건우가 씩 웃으며 답했다.

장목화는 바로 선풍기 전원을 거칠게 꺼버렸다.

“쓸데없이 에너지 낭비하지 마! 이 병력 하나만 가지고 파악할 수 있는 건 없어. 하지만 구세계에서 남은 정보면 뭐든 우리 팀 파일에 넣어둬야 해. 언제 쓸모가 생기거나 다른 단서와 연관 지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

연이어 그녀가 손뼉을 치며 말을 이었다.

“좋아, 오늘 살펴볼 자료는 예전 구조팀에서 수집한 구술사야.”

“구술사?”

백새벽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대충은 이해했지만, 그래도 그 단어 자체는 낯선 느낌이 있었다.

장목화는 성건우를 힐긋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구술사는 당사자가 진술한, 당사자가 겪거나 들은 역사야. 과거 구조팀은 초기엔 주로 이런 진술들을 수집하는 데 집중했거든. 후기에 뭘 했고, 어떤 수확이 있었는지는 그들의 실종과 함께 역사의 바닷속에 침몰해버렸지만.

음, 전보에 따르면 그들에게 제때 보고하지 못한 중요한 구술사가 많이 남아있었던 모양이야. 우리가 손에 넣은 이 구술사는 주로 당시 회사 내부에 살아 남아있던, 구세계에서 생존한 노인들이 한 진술에 기반을 두고 있어.

전부 아주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지. 이 진술을 한 노인들은 지금은 대부분 다 세상을 떠났거든.

이 자료들을 반복적으로 살피며 유용한 단서와 정보를 취한 후엔 2차 구술사를 가져올게. 그건 근처 구역의 전두하 촌장 같은 구세계 생존자들의 진술이야. 3차 구술사는 없어서 그다음부터는 우리가 알아서 하는 수밖에 없어.

아무튼 이제 우린 이 자료 속에서 다음 목표를 찾아야 해. 아니면 보존된 전보에 근거해서 전 구조팀이 걸었던 노선을 그대로 한번 따라가 보든가.”

이야기를 듣던 성건우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를 본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말 안 해도 돼. 알고 있으니까. 넌 두 번째를 택하고 싶겠지.”

하지만 성건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두 가지 선택지에는 사실 차이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순간 장목화의 얼굴에 멍한 표정이 떠올랐다.

“예전 구조팀이 선택한 노선도 이 구술사에서 찾아낸 단서에 근거했을 거란 얘기를 하고 싶은 거야?”

재차 고개를 저은 성건우는 뜬금없이 여자 목소리를 흉내 내며 말했다.

“아뇨. 운명이 우리에게 내준 길은 단 하나뿐이니까요.”

장목화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 용여홍을 바라보았다.

“이것도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나온 대사냐?”

용여홍은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네!”

장목화는 그냥 성건우를 무시하고, 백새벽에게 웃으며 말했다.

“아까 알려준다는 걸 깜빡했네. 넌 이제 622층으로 이사 올 수 있어. 구체적으로 어떤 방을 분배받게 될지는 나중에 다른 사람이 안내할 거야. 하하, 너도 오늘부터는 라디오를 들을 수 있겠네.”

“네.”

백새벽은 살짝 들뜬 표정을 드러냈지만, 얼른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장목화는 이제 마무리하며 모기를 쫓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자, 이제 다 가서 자료나 봐. 성건우, 음악 틀지 마!”

“제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성건우가 소리높여 대꾸했다.

“그럼 걔랑 잘 좀 협상해보든가.”

장목화의 목소리에는 짜증스러운 기색이 어려 있었다.

돌연 성건우의 눈이 반짝거렸다. 장목화의 제안이 그의 심금을 울린 듯했다. 얼른 자리에 앉은 그가 손바닥만 한 스피커에다 대고 잔소리를 했다.

“내가 너를 어떻게 고쳤는데, 내 말을 잘 들어야지!”

용여홍은 성건우를 몇 초간 응시하다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제야 네가 의사한테 증명받았다는 이야기가 믿음이 간다⋯⋯.”

“어? 뭐라고? 크게 얘기해!”

장목화는 즉각 그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소리쳤다.

백새벽은 아무것도 못 본 척 자료에만 몰두했다.

“아니에요.”

용여홍 역시 얼른 고개를 내저은 뒤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 이게 대체 뭐 하는 팀이냐고⋯⋯.”

지금 이 순간, 그의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대체 언제쯤 전출 명령을 받게 될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