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101화 (101/649)

101화. 에버나이트 교단

“그러게.”

성건우가 용여홍에 대한 평가에 동조하자, 조여름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우리 남편은 저게 뭐가 이상하냐고 그래. 활동 센터는 이렇게 시끄러운데 말이야. 차라리 구석진 거리에서 산책하는 게 훨씬 낫지.”

성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봤자 여홍이한테는 소용없을걸. 쟤는 아마 여자를 만나자마자 노래부터 불러제꼈을 거야.”

“⋯⋯.”

조여름은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

다행히 성건우도 이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조여름 곁에 선 남자를 바라보며 화제를 돌렸다.

“남편?”

성건우는 조여름이 배정받았다는 상대를 기억하고 있었다. 남자는 황야유랑자 출신으로 현재는 D4급 직원이었다.

그렇게 조여름은 남편이 기거하던 622층으로 이주해서, 평소엔 이곳에서 그녀를 쉽게 마주칠 순 없었다.

“응, 이름은 장이경이야.”

조여름은 곧장 소개에 나섰다.

“이쪽은 내 동창, 성건우. 지상으로 올라갔다 온 지 얼마 안 됐대.”

장이경은 습관이 된 듯 익숙하게 조여름을 자신의 뒤로 보내며, 한발 앞으로 나와 오른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성건우도 손을 맞잡아 악수한 뒤, 연이어 조여름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왔어?”

“심도환 아저씨한테 일이 났다며? 부모님을 뵈려고 왔지.”

조여름이 한숨을 내쉬었다.

성건우는 잠시간 고민을 하다 불쑥 말을 꺼냈다.

“잠깐 네 남편 좀 빌리자.”

“뭐?”

조여름이 멍한 얼굴로 되묻자 성건우는 다시금 예의 바르게 설명했다.

“묻고 싶은 게 좀 있어서.”

조여름은 그제야 웃으며 답했다.

“가봐, 너무 오래 붙잡아 두지는 말고.”

성건우는 장이경과 함께 활동 센터 내의 아무도 없는 구석으로 이동했다. 자리를 권유하고, 성건우 본인도 자리에 앉아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달지기와 각성자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장이경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지상으로 올라갔다더니, 상당한 일들을 알고 계신 모양이네요. 예, 황야에서 꽤 오랜 시간을 굴렀으니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요.”

성건우는 생각을 정리한 후 질문을 이어나갔다.

“그럼 혹시 다른 사람 심장에 영향을 미치는 각성자를 본 적도 있습니까?”

장이경의 표정은 점차 진지해졌다.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제가 아니라 제 친구이긴 합니다만. 위드 시티에 있었을 때였습니다. 제 친구 녀석이 에버나이트 교단의 교도와 팔씨름 내기를 하게 됐었죠. 거의 승리를 거두려던 그때, 녀석의 심장이 돌연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하마터면 안정을 찾지 못했을 뻔했을 정도로요.”

고민하던 성건우가 물었다.

“에버나이트 교단에서 믿는 건 어느 달지기입니까?”

장이경은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사명입니다.”

잠시 침묵하던 성건우가 화제를 전환했다.

“에버나이트 교단에 대해 잘 아십니까?”

장이경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는 종교 집단과 얽히는 걸 싫어합니다. 그들은 지나치게 미쳐있거나 굉장히 위험한 녀석들이라는 느낌이 들거든요.

다만 에버나이트 교단이 매일 밤 아주 위험해진단 말을 들은 적은 있습니다. 다들 사명의 비호를 받아야만 날이 밝을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 기도를 올리고, 깊은 밤엔 집회하는 걸 좋아한다고 합니다. 자기들끼리는 대미사를 광란의 무도회라고 부른다던데요.”

잠시 숨을 고른 장이경이 아무래도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말을 이었다.

“광란의 무도회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미사를 그런 식으로 부른다니,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육아 강좌와 기계 설교를 들으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성건우는 그러한 것들에 이미 습관이 된 듯했다.

이내 장이경은 육아 강좌와 기계 설교가 무엇이냐고 묻는 대신, 친구 몇 명과 대화하고 있는 조여름을 돌아본 후 다시 성건우를 쳐다보았다.

“더 묻고 싶은 거 있습니까?”

“사명 말고 또 어떤 달지기들을 알고 계십니까?”

성건우는 이 기회에 모든 걸 알아내려는 듯 상대를 물고 늘어졌다.

장이경은 곰곰이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많지 않습니다. 12월의 사명, 1월의 보리. 위드 시티에 있었을 당시 퍼스트 시티에서 온 사람이 말하길, 그곳 귀족들은 암암리에 9월을 관장하는 만다라를 믿는다고 하더군요.”

퍼스트 시티에 관해선 팀장 장목화도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녀의 설명을 회상하며 성건우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대꾸했다.

“퍼스트 시티에는 모든 달지기에 대한 신앙이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좋은 곳은 아니죠. 대부분에게는요.”

장이경이 고개를 끄덕인 후, 조여름 쪽을 가리켰다.

“더 이상 질문 없으시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하지만 성건우는 그 틈도 놓치지 않았다.

“저한테 왜 이런 질문들을 하는지, 이유는 묻지 않으십니까?”

장이경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느릿하게 답했다.

“많은 것을 알수록 위험해지니까요.”

그는 더 이상 꾸물거리지 않고 돌아서 조여름에게로 향했다.

성건우는 계속 자리에 남아 꼼짝도 하지 않으며,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만 가만히 쳐다보았다. 주위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완전히 동떨어진 듯 보이지만, 그의 얼굴에선 불편한 기색 같은 건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 * *

다음 날도 성건우는 구조팀이 자리한 647층 14호에 10분 일찍 도착했다.

장목화 역시 그보다 먼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제 외부 출신 직원 한 명을 만났습니다.”

성건우는 그녀 앞으로 다가가며 대뜸 이렇게 말했다.

“음?”

하지만 장목화도 그냥 이어질 말을 기다리겠다는 듯 호응했다.

성건우가 곧 의자를 끌어다 앉아선 못다 한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은 달지기와 각성자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성건우는 장이경이 해준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다.

장목화는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역시 심장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각성자 능력은 사명의 영역에 속해 있네. 특정한 달지기를 믿고 있는 상황에서 각성했을 때, 그 관련 영역 능력을 얻게 되는 걸까? 그럼 확실한 신앙을 갖지 않은 상황에서 각성했다면 무엇을 근거로 능력이 결정되는 거지?

음, 이두형이 그랬지? 각자가 치른 대가는 어렴풋하게나마 각기 다른 영역을 비춘다고. 그렇다면 그 대가를 근거로 구분이 되는 건가?”

여기까지 말을 잇던 장목화가 물었다.

“그럼 차으뜸은 어떤 대가를 치렀을까? 이두형과 갈루란은?”

성건우가 답했다.

“모든 대가가 다 또렷하게 확인되는 건 아닙니다. 정법이 직접 밝히지 않았더라면 그의 대가가 증강된 색욕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저도 당시 평생 혼자 사는 걸 대가로 능력을 얻으려 했는데 소용은 없었어요. 그 대가는 쓸모가 없었거든요.”

장목화는 흠칫 놀란 듯 되물었다.

“대가를 지불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었어? 꼭 규칙에 부합하는 대가여야만 하는 거야?”

“모르겠습니다.”

성건우는 매우 솔직했다.

잠깐 고민하던 장목화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단독 사례로 확인할 수 있는 건 없어. 네가 여러 차례 시도를 통해 정확한 대가를 찾아낸 거라면 모를까.”

“세 번이었어요. 두 번째 시도 때는 친구 없이 혼자 사는 걸 대가로 치르려고 했는데 이 역시 통하지 않았죠.”

성건우의 답은 여전히 솔직했다.

장목화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더 많은 각성자를 만나고, 그들의 실패와 성공 사례를 파악해야지만 규칙을 파악할 수 있을 거야.”

“말하지 않으려 할 텐데요.”

성건우의 지적에, 장목화가 웃으며 받아쳤다.

“만약 그들의 대가가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것, 혹은 반드시 답을 해야만 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말이야, 회사에 돌아온 후부터 계속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차으뜸의 매혹은 능력이 아니라 대가에 가까운 것 같아.”

생각에 빠진 장목화를 보고, 성건우는 눈동자를 살짝 굴리며 대답했다.

“여태까지 제가 만난 모든 각성자 중에 그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는 다 각성자 능력을 통제할 수 있었어요.”

다시 말해, 설령 각성자 능력이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일으키더라도 일단 각성자들은 최소한 그것을 사용할지 말지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차으뜸은 가위 말에게 쫓겼고, 어쩌면 그로 인해 차를 잃어버렸을지도 몰랐다. 그러다 꾀를 부려 가위 말을 강가로 유인하고 다리를 폭발시킨 뒤에야 겨우 그 추격에서 벗어났을 터였다.

정상적인 각성자라면 가위 말에게 쫓기기 전에 매혹 능력을 중단했어야 옳았다. 물론 성건우는 각성자 능력 중 ‘무차별적인 패시브 매혹 능력’이 포함됐을 가능성도 놓치지 않았다. 장목화도 그의 말에 동조했다.

“그래. 그러니 차으뜸의 매혹은 그 사람이 치른 대가일 가능성이 커.”

그녀는 이 대목에서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막 각성자가 됐을 때, 그러니까 비교적 약했을 때 감당 불가능한 매혹 능력으로 어떤 일들을 겪었을지 궁금하네. 쯧⋯⋯.”

“끔찍하네요.”

성건우는 그럴듯한 상황들을 상상하는 대신 곧장 결론을 내려버렸다.

“기원의 바다에 진입해 하나하나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전까진, 차으뜸의 매혹은 그렇게 넓은 범위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을 겁니다. 효과도 그렇게 강하지 않았을 거고요.”

순간 장목화가 음흉하게 웃었다.

“야, 너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모기 같은 거 있잖아. 난 차으뜸이 그런 것들한테 인기 많았겠다고 얘기한 건데? 그런 사람이랑 있으면 모기 물릴 걱정은 안 해도 됐을 텐데. 너희가 배운 생리학은 우리 때보다 훨씬 더 급진적이었나 봐?”

그녀는 성건우에게 변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바로 말을 이었다.

“일반적으로 매력 증강을 대가로 지불하려 할 사람은 없어. 보편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건 대가라고 할 수도 없지. 그러니 차으뜸은 아마 매력을 대가로 능력을 얻으려 했을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사람이고 동물이고 할 것 없이 모든 존재를 홀리게 돼버린 거지.

음, 내 경험에 따르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람을 덮치고 싶다는 충동이 더 강해졌어. 하루 이틀 정도만 더 있었어도, 심지어는 몇 시간만 더 있었어도 우린 다 동시에 그 사람을 가지려 했을지도 몰라. 그거야말로 진정한 대가라고 할 수 있지. 아주 끔찍한⋯⋯.”

“팀장님이 배운 생리학도 그렇게 뒤처지지만은 않은 것 같은데요.”

성건우가 진지하게 대꾸했다.

장목화는 곧장 귀를 만지작거리며 정색을 했다.

“뭐? 지금 뭐라고 했어? 아무튼! 우리는 전에도 얘기했잖아.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차으뜸이 적의나 악의를 보였다면 그 대상은 매혹돼있던 상태에서 풀려났을 거고, 그의 동료들 역시 자극을 받아 어느 정도의 영향에서 벗어났을 거라고. 동물과 무심자만 제외되어 있을 뿐이지⋯⋯. 이렇게 보니까 매혹에 따르는 제한도 적지 않은 것 같네.”

이 대목에서 잠깐 뜸을 들이던 그녀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차으뜸의 세 번째 각성자 능력은 아직 드러나지도 않은 셈이야. 그때 우리가 신중하게 군 건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어.”

이들이 현재 알고 있는 차으뜸의 각성자 능력은 타인을 절망시키는 것, 타인을 뭔가에 집중시키는 것이었다. 전자는 범위형 능력이고, 후자는 한 번에 한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능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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