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92화 (92/649)

92화. 그리기

이내 장목화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도 매끼 이렇게 대접할 수는 없어. 어쩌다 한 번이지. 난 D6급이잖아. 기본적으로 받는 공헌 점수가 몇 점인지는 너희들도 잘 알 거 아니야.”

용여홍은 진지하게 계산을 해보았다.

“등급이 한 단계씩 높아질수록 500점씩 늘어나죠. D1은 1800점, D2는 2300점⋯⋯. D6은 4300점이네요. 각종 혜택까지 더하면 팀장님은 외근을 나가지 않더라도 최소한 한 달에 4500점을 받으시겠어요.

하지만 매 끼니 먹고 싶은 만큼 먹고, 고기랑 채소를 많이 먹는다면 한 달에 못해도 2000점은 써야 할 거예요. 이것도 식대를 보조받는 상황이니까 이 정도지, 보조 식대가 없다면 최소 3000점이죠.

식비를 빼고도 에너지, 물, 의복 등 따로 필요한 비용들이 있으니까 남는 돈은 그렇게 많지 않네요. 아이도 키우려 한다면 그것도⋯⋯.”

용여홍은 생각하면 할수록 그만한 공헌 점수로는 살기 빠듯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현재 매일 고기반찬을 먹을 수 있는 데다가 아이도 없었다. 그야말로 이미 충분히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이었다.

평소 용여홍은 결혼해 아이 둘쯤은 낳길 원했다. 그렇게 가족끼리 매주 세 끼 내내 고기를 먹는다면 외려 삶이 더 퇴보하게 될 것 같았다.

그때, 장목화가 용여홍을 제지했다.

“그만! 말만 들어도 머리가 다 아프다! 그리고 너 말이야, 왜 네 아내 공헌 점수는 계산에서 빼? 결혼했으면 부부가 함께 가정을 꾸려나갈 거 아냐.”

그녀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난 매달 공헌 점수가 남아. 우리 오빠는 일찍이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고, 이후로 난 부모님이랑 함께 살거든. 부모님이 매달 받는 공헌 점수는 나보다 훨씬 높고, 혜택이나 보조금도 마찬가지야.

점심은 보조받은 식대로 해결하고, 저녁은 부모님과 함께 먹고. 거기다 옷은 회사에서 지원해주고. 그야말로 완벽하잖아!”

장목화는 곧 주위를 한번 둘러보며 빙그레 웃었다.

“너희들도 이번에 공헌 점수가 상당할 거야. 새벽이 너는 정직원으로 전환되면 D1 직원의 대우를 누릴 수 있을 테고, 여홍이랑 건우 너희는 D2로 승급해 매달 공헌 점수가 500점 더 늘어날 거야. 거기에 외근수당도 있거든.

이번에는 거의 한 달 정도 밖에 나가 있었으니 한 사람당 8~900점 정도 떨어질 거야. 역시 가장 큰 혜택은 우리가 얻은 수확물로 환산 받을 보상 점수지. 구체적으로 몇 점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팀원들은 저도 모르게 그렇게 어마어마한 공헌 점수를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 달콤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난 더 넓은 방으로 옮겨달라고 신청해야겠어⋯⋯.”

용여홍은 비좁은 집과 어른들 사이에 끼어서 잠드는 동생들을 떠올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반고 바이오 내부에선 방은 보통 급에 따라 배급되었다. 만약 해당 등급 이상의 더 넓은 방을 신청하려고 한다면 일정한 비용을 지불해야 했고, 거기엔 매달 별도의 임대료도 빠져나갔다.

물론 직원들에게도 교묘한 방법은 있었다. 회사를 통하지 않고 알아서 방을 교환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어느 노년층 직원이 자녀를 모두 출가시켰다면 더 이상 넓은 집은 필요 없을 터, 그럼 좁은 집에서 사는 사람과 집을 바꾸는 것이다. 그럼 매달 나가는 임대료를 아낄 수 있었다.

하지만 방을 교환한 그 직원이 혹시라도 세상을 떠났을 시 회사에선 등록된 자료를 가지고 방을 회수하러 오게 돼 있었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다.

용여홍도 이제 장목화와 오랜 시간을 함께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혼잣말도 전보다 훨씬 크게 했다. 장목화는 그의 말을 듣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야.”

뒤이어 그녀는 백새벽을 돌아봤다.

“새벽아, 넌 그 공헌 점수를 다 모아뒀다가 직원 등급이 충분히 높아지면 유전자 개량을 신청할 거지?”

상당한 양의 공헌 점수를 지불하거나 위험한 실험에 지원한 직원은 낮은 등급에서도 유전자 개량을 신청할 수 있었다. 이는 D2, 심지어 D1 등급에서도 신청 가능한 방법이었다.

“네.”

백새벽은 저도 모르게 목에 두른 낡은 회색 스카프를 잡고서 답했다.

장목화는 다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다시 한번 일러두는데, 유전자 개량 기술은 아직 충분히 발달된 단계에 이르지 못해서 갖가지 위험이 따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시도하지 않는 게 나아. 그래⋯⋯ 나도 알아. 너한테도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난 그냥 그 장단점을 잘 저울질 해보길 바랄 뿐이야.”

백새벽이 무슨 답을 하기 전, 장목화가 먼저 긴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얼른 먹어, 얼른! 음식 다 식겠다.”

그녀는 동시에 젓가락을 뻗어 통닭 날개를 깔끔하게 뜯어갔다.

노르스름하게 익은 껍질 아래, 스르륵 녹아드는 듯한 기름과 갖은 조미료 냄새가 사람을 미치게 했다. 장목화는 금세 요리에 심취했다.

성건우, 용여홍, 백새벽도 바로 식사를 시작했다.

이젠 네 사람 모두가 거의 쉬지도 않고 음식을 먹는 데만 집중했다.

게 눈 감추듯 식사를 마쳤을 무렵, 장목화는 맑은국을 들이마시며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몹시 만족스럽다는 얼굴이었다.

“밖에서 돌아오자마자 먹는 한 끼는 진짜 삶을 아름답게 해주는 것 같아.”

“그래서 더욱 인류를 구원해야 하는 겁니다.”

성건우가 그릇을 놓고 입가를 닦으며 호응했다.

“대사 좀 바꿔볼 생각은 없어?”

장목화가 그를 살짝 흘겨보았다.

고개를 끄덕이던 성건우가 불쑥 물었다.

“그럼 수종이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수종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온 순간, 닭을 뜯고 있던 백새벽과 용여홍은 동시에 움직임을 멈췄다.

이들에겐 아주 기묘하고 무시무시한 이름이라, 어느새 모종의 금기라도 된 듯한 느낌이었다. 지난 며칠간 다들 수종이란 인물은 거의 잊어버린 듯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한 적이 없었다.

몇 초간 침묵이 흐르던 그때, 장목화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 생각에 걔는 무심자, 고등 무심자 중에서도 고등 무심자인 것 같아. 심지어는 무심자의 왕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어쩌면 당시 내가 무의식적으로 차으뜸의 다른 각성자 능력과 그 효력 범위를 소홀히 여긴 건, 그 애가 우리 옆에서 진짜 총격전을 보고 싶어 했기 때문인지도 몰라⋯⋯.”

“인간의 지능과 기억력을 회복한 무심자? 아니에요, 무심자가 어떻게 인간과 같은 지능을⋯⋯.”

용여홍은 소름이 쫙, 돋는 것을 느끼며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장목화는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수종이에게는 그만한 지능뿐만 아니라 변이된 생물이나 고등 무심자처럼 무시무시한 능력이 있었을 수도 있어.”

“초인간?”

백새벽 역시 묵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때, 성건우가 손을 들었다.

“그럼 신체 성장을 대가로 지능을 회복한 걸까요?”

장목화는 그의 말에 숨은 의미를 파악했다.

“수종이에게 심각한 결함이 있으니, 초인간은 아닐 거라 말하고 싶은 거야?”

성건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답했다.

“그 아이는 제 친구입니다.”

“그래서, 네 친구에 대해 나쁜 말 하지 말라고?”

장목화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그의 생각을 해석하느라 애썼다.

이내 성건우는 말이 없어졌다.

“하하.”

웃음을 터뜨리던 용여홍이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물었다.

“야, 난 네 친구도 아니냐? 나한텐 시도 때도 없이 나쁜 말만 하잖아.”

성건우가 그를 힐긋 바라보았다.

“난 그냥 네가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것일 뿐이야. 하, 나는 유전자 개량을 했는데도 키가 175cm밖에 안 되고, 그렇게 잘생긴 것도 아니고⋯⋯.”

“야! 야!”

용여홍이 황급히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

장목화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너희는 이만 돌아가서 쉬어. 휴⋯⋯. 추가 근무를 해야 하는 건 나뿐이니까. 난 보고서 작성해서 상부에 제출해야 하거든.”

“도와드릴까요?”

백새벽의 물음에, 장목화가 소리 내 웃었다.

“걱정하지 마, 써야 할 게 뭔지, 쓰지 말아야 할 게 뭔지 다 기억하니까.”

생각을 들킨 백새벽은 밀려드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곧이어 성건우, 용여홍은 장목화, 백새벽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 495층으로 돌아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 * *

엘리베이터가 아래로 내려가는 동안, 용여홍은 금속 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살피다 돌연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구조팀을 떠날 수 있을까⋯⋯.”

성건우가 뭐라고 대꾸하기도 전, 그는 아무래도 헷갈린다는 듯 계속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사실 난 이제야 구조팀에서 일한다는 것의 의미를 깨달았거든. 회사 내부에서 아내랑 두 아이와 함께 세 끼마다 고기를 먹는 삶? 확실히 아름답지. 난 여전히 그런 삶을 동경해. 하지만 나이가 들어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좀 공허해지지 않을까?”

성건우는 앞만 보며 용여홍에게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에 침묵에 빠진 용여홍은 엘리베이터가 495층에 도착했을 때야 웃으며 말했다.

“운명에 맡겨야지, 뭐.”

성건우가 마침내 그를 살짝 돌아보았다. 아니, 흘겨보았다.

“그럼 일단 가서 이름부터 바꿔.”

말하는 사이, 두 친구는 갈림길에서 헤어져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성건우는 B 구역 196호 앞에 도착했다.

열쇠를 꺼낸 그때, 그는 문 아래에 있는 뭔가를 발견했다. 누군가 흰색 분필로 간략하게 그려놓은 갓난아기 그림이었다.

그림은 꼭 아이들 낙서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그림은 반고 바이오 내부에선 그리 낯선 존재도, 이상하게 여길만한 것도 아니었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곧장 지워버리면 그만일 그림이었다.

그러나 성건우는 이 그림과 그것이 그려진 위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내일 새벽 5시 30분, 이전과 같은 장소에서 생명 제례 교단의 모임이 있으리라는 뜻이었다.

이내 성건우는 손을 들고 입가를 훔쳤다.

* * *

성건우가 황동색 열쇠로 문을 열었다.

복도 천장에 달린 가로등 불빛 아래, 익숙한 침대와 세면대, 팽창 나사와 붉게 칠한 나무 책상, 이와 세트인 등받이 의자가 보였다.

그가 떠났을 당시와 똑같은 광경이었다.

지하 빌딩의 훌륭한 통풍 시스템과 독특한 지리적 환경 덕분에 심지어 방에 묵직하게 가라앉은 공기 냄새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실 쌓인 먼지도 크게 두드러지진 않았다.

천천히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은 성건우는 수도꼭지를 틀고 세면대 가장자리에 널어놓은 낡은 걸레를 적셨다. 그런 뒤 허리를 굽히거나 쪼그려 앉아가면서 방 안의 닦을 수 있는 곳은 모조리 다 한번 훔쳐냈다.

한바탕 청소를 마치고 나니 시간이 딱 7시였다.

안전부에서 이미 샤워와 환복을 마친 성건우는 곧장 열쇠를 들고 밖으로 나가 이 층의 활동 센터로 향했다.

* * *

활동 센터로 이동하는 도중 성건우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속속들이 돌아오는 직원들을 만났다. 그중엔 그가 아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다들 서로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인사를 대신했다.

곧이어 성건우는 C 구역 활동 센터에 이르렀다.

입구엔 쪼그려 앉거나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젊은 남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심도환이 보였다.

성건우를 생명 제례 교단에 인도한 이 중년 남자의 표정엔 기쁨 반, 놀라움도 반 섞여 있었다.

“건우야! 외근 마치고 돌아온 거냐?”

성건우가 웃으며 답했다.

“예, 쓰레기 줍기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심도환은 성건우의 이해할 수 없는 답을 무시한 채 그냥 화제를 돌렸다.

“⋯⋯진현오 어르신께 들었다. 요 며칠 새 네가 통 보이지 않기에 무슨 일이 났다 했더니, 안전부에 들어가 외근을 나가 있다고 알려주더구나.”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성건우가 대꾸했다.

심도환도 이젠 성건우의 사고를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걸 느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혼잣말을 하며 웃었다.

“모두 널 기다렸어. 나중에 보자.”

성건우는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쉽게도 여러분들을 위한 선물을 챙겨오지는 못했네요. 뭐, 그럼 공연이라도 보여드릴까요?”

“아, 아니! 됐다.”

성건우는 좀처럼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다. 이내 심도환은 은근하게 내일 새벽 집회가 있다는 걸 알려준 뒤, 황급히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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