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91화 (91/649)

91화. 테스트

장목화는 다시 귀밑머리를 정리하다가, 전보다 더 엄숙한 얼굴을 했다.

“너희들 칭찬은 참 감사하다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지. 만약 시작을 제대로 했다면 그 수많은 사건을 피할 수 있었을 거야.

생각해봐, 정법이 철강공장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머물렀을까? 차으뜸은 그 부러진 다리에서 몇 시간이나 기다렸겠어? 몇 시간만 늦거나 빨랐어도 우리는 그들과 마주치지 않았을 거야.

또 우리가 그 강도들을 맞닥뜨렸을 때 곧장 공격에 나서서 그들을 전멸시켰다면 외골격 장치를 착용하고 우리를 쫓아올 기회는 없었겠지. 그럼 우리 지프차가 망가지지도 않았을 테고.

지프차가 멀쩡했다면 굳이 해자 마을로 돌아갈 필요도 없었을 테니 우리는 그날 저녁 무렵 철강공장에 도착했다가 다음 날 오전에 떠날 수도 있었어.

인연을 찾던 기계 승려 정법과도 사실 만날 이유가 없었어. 마찬가지로 오수혁 일행도 만나지 않았을 거고.

새롭게 발견된 폐허 도시에 관한 정보를 얻었을 때쯤 우린 이미 강을 건넜겠지. 그럼 그 근처 황야유랑자 거점을 찾아 무선 통신기로 해당 정보를 회사에 보냈을 테니까 차으뜸에게 가로막혔을 리도 없었을 거고.”

팀원들은 생각에 잠겨 아무 말이 없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장목화가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만약 너희가 결정 내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런 강도단을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할래? 잠재적인 위험을 남겨두더라도 아무 접촉도 하지 않고 우회해서 그 자리를 피할래, 아니면 직접 공격에 나서서 위험의 뿌리를 뽑을래?”

질문에 가장 먼저 답한 것은 성건우였다.

“팀장님, 아무래도 제 숭고한 이상에 대해 뭔가 오해하고 계신 것 같네요.제가 무고한 사람들을 멋대로 공격할 그런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짧은 접촉만으로는 상대에게 죄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기 어렵죠.”

장목화는 살짝 놀란 듯 멍한 표정을 짓다 실소를 터뜨렸다.

“어! 그래 보여! 시끄럽다고, 거슬린다며 방아쇠를 당긴 게 누구였더라?”

“전 그들의 적대심을 감지한 겁니다. 무엇보다 팀장님이 동의하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요.”

성건우는 여전히 진지하게 대꾸했다.

“좋아.”

장목화는 고개를 틀어 용여홍과 백새벽을 돌아보았다.

“너희는? 너희는 어떻게 할 거야?”

용여홍은 숨을 한번 들이마시며 입을 열었다.

“씁……. 저도 직접적인 공격 명령을 내리지는 못할 것 같은데요. 그럼 그 강도들과 다른 게 뭡니까?”

잠시 고민하던 백새벽도 답했다.

“네, 사람과 야수는 달라요. 저한테 먹을 게 없어서 당장 죽을 것 같은 상황이 아닌 이상 도적질을 할 수는 없어요.”

장목화는 진지한 얼굴로 팀원들을 한번 둘러보았다. 잠시 후, 장목화의 입꼬리가 점차 말려 올라갔다.

“첫 번째 심리 테스트 통과한 걸 축하해.”

“……?”

용여홍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멍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장목화가 웃으며 설명했다.

“난 우리 팀원들 기본적인 도덕성과 인간 됨됨이를 테스트해보고 싶었어. 물론 이런 시험만으론 너희들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어떤 행동을 할지 판단할 순 없지만, 적어도 일반적인 상황에선 내 등을 맡길 수 있을 것 같아.”

성건우가 말을 받았다.

“자고로 함께 훌라춤을 춰줄 수 있어야 진정한 동료라고 할 수 있죠.”

장목화도 이제 성건우의 말쯤은 가볍게 무시했다. 그 후로도 계속해서 복기를 이어나가던 그녀가 대화 끝 무렵에 이르러 다시금 화제를 돌렸다.

“여태까진 그 폐허 도시에 대해 분석할 시간이 없었네. 이제 짬이 났으니 본격적으로 거기 한번 얘기해볼까? 갈루란 도사가 말한 달지기가 남긴 기운이랑 그 도시에서 일어난 갖가지 이상 현상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을까?”

백새벽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도 가끔 그 문제를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 도시 실험실에서 이뤄진 신령의 영역을 건드리는 금기의 연구가 있었고, 그게 한 해를 대표하는 달지기 장생을 분노케 해서 신벌이 강림한 것 아닐까요? 어쩌면 그건 구세계 파괴의 서막을 연 사건인지도 몰라요. 파괴의 시작점이었던 이 도시 주위 시골 마을에서도 생존자는 없어서 완전히 잊힌 폐허가 최근에야 발견된 거고요.”

백새벽은 애쉬랜드 위에 널리 퍼진 달지기가 구세계를 파괴했다는 가설을 이번 발견과 연관 지어 이야기했다.

“그럴 수 있어. 그럴 가능성이야 얼마든지 있지.”

장목화도 직접적인 부인은 하지 않았다.

이때, 성건우가 반문했다.

“그럼 장생은 왜 실험실 안에서 포효하는 그 생물을 제거하지는 않은 걸까? 왜 그 도시에 그렇게나 많은 고등 무심자와 변이된 생물을 남겨둔 거지? 신벌이라기에는 너무 불완전하지 않나?”

그리고 잠시 말을 고르던 그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만약 그게 정말 신벌의 결과면 장생보다 내가 다 부끄러울 것 같은데.”

백새벽도 말문이 막혔다. 사실 이 질문에 정확한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정답이 있었다면 진즉부터 추측이 아닌 답을 내놓지 않았겠는가.

이후, 장목화가 농담을 했다.

“달지기 장생은 너 같은 사람이 자기 대신 부끄러워한다면, 그걸 더 부끄러워할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난 그것보다 더 대담한 추측을 선호하는데.”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던 그녀는 몸을 살짝 숙이며 목소리도 한껏 낮췄다.

“그 실험실 금지된 연구가 달지기들을 탄생시킨 거라면? 구세계 인류가 신을 만들려고 시도했다가 자신들이 만들어낸 신에 의해 파괴된 거라면?”

정말 대담한 추측이 낮은 소리로 울려 퍼졌다.

용여홍은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두려움이 밀려들고 있었다. 꼭 신성모독적인 행위에 함께 가담하기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인간의 실험실에서 달지기들이 만들어졌다고……?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달지기들이 인류 사회를 파괴했다니…….’

잠시 후, 성건우가 의문을 표했다.

“그럼 그 달지기는 왜 실험실에 포효하는 괴물을 남겨둔 걸까요? 그게 신들의 동생이라도 되는 겁니까? 그리고 신들은 왜 그 실험실을 파괴해서 자신들 탄생에 관한 비밀을 숨기지 않았을까요? 제8 연구원이 특파원 차으뜸을 그 도시로 보내 실험실을 폭파한 이유는 뭐죠?”

장목화가 성건우를 째려보았다.

“난 그냥 추측하는 거라고, 추측! 게다가 우린 지금 차으뜸이 맡은 임무가 그 실험실을 폭파하는 거였는지, 아닌지도 확신할 수 없어. 만약 그 사람 임무가 그냥 실험실을 찾는 거였다면? 폭발이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엄청나게 많아. 자폭 장치가 있었을 수도 있고.”

여기까지 말을 이은 뒤, 장목화도 그제야 표정이 누그러졌다.

“지금 확신할 수 있는 건 만약 차으뜸이 없었다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 도시는 발견되지 않았으리란 거야. 아……. 언제쯤 제8 연구원을 찾아낼 수 있을까? 그곳은 분명 구세계 비밀을 꽤 많이 파악하고 있을 텐데!”

그 후로도 한동안 말을 이어가던 장목화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이만하면 된 것 같네. 내가 앞으로의 일정을 알려줄게. 우린 이틀 동안 휴가를 보낸 뒤에 전과 같은 일과를 보내게 될 거야. 대신, 매일 있던 각종 훈련은 반으로 줄어들어. 오전에는 자료를 연구하고, 단서를 정리하고, 정식적인 조사에 돌입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해.

내년 봄이 되면 다시 밖으로 나가 첫 번째 조사 장소, 혹은 조사 대상이 존재하는 구역으로 향할 텐데 그전에 난 겨울 야외 훈련을 한번 진행할 생각이야. 혹시 모를 위험을 피해야 하니 장소는 회사 근처가 될 거고.”

혹시 모를 위험을 언급하는 장목화는 아직 걱정이 많아 보였다.

이내 백새벽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 그 폐허 도시만큼 조사 장소에 적합한 곳은 없는 것 같아요.”

장목화도 동조했다.

“앞으로 몇 개월 동안 회사에서 그곳으로부터 뭔가 가치 있는 단서를 찾아내느냐 마느냐에 달려있어. 난 그다지 기대는 안 해.”

가장 중요한 실험실이 완전히 폭발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용여홍은 호기심을 느낀 건지, 아님 걱정이 된 건지 질문을 건네왔다.

“팀장님, 회사에서 개입하면 그 도시의 고등 무심자는 어떻게 되나요?”

장목화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뭘 어쩌겠어? 내쫓기거나 살해당하거나 실험 대상으로 전락하겠지. 애쉬랜드에서 동정심 같은 건 필요치도 않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감정이니까.”

용여홍은 몇 초간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회사 직원 중 상당한 사람들이 죽거나 다칠 텐데요. 다들 저희 동료고, 어쩌면 아는 사이일지도 모르는데⋯⋯.”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장목화는 웃음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성건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게 바로 애쉬랜드야. 그래서 우리가 신세계를 찾으려 하는 거지.”

“그래서 우리가 전 인류를 구원해야 하는 거고요.”

성건우도 적절하게 말을 받았다.

이 틈을 타 대화를 마무리 지은 장목화가 밖을 가리켰다.

“곧 저녁 시간이네. 오늘은 내가 살게. 첫 번째 임무를 원만히 수행하고 온 것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백새벽과 성건우, 용여홍도 동시에 일어났다.

용여홍은 이제 허기가 밀려드는 듯했다.

“아, 솔직히 회사 식당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몰라요.”

이번 야외 훈련을 진행하면서 야생 동물을 잡아먹기는 했지만, 모두 살이 굉장히 퍽퍽하거나 지나치게 맛이 없었다. 적당한 조미료도, 이렇다 할 요리 방법도 없는 상황에선 그저 배를 불리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나도 그래.”

장목화도 솔직하게 답했다.

성건우는 말없이 손을 들고 입가를 훔쳤다.

* * *

구조팀 옆 조그만 식당 안.

장목화가 쟁반을 가지고 돌아와 고기반찬을 하나씩 내려놓았다.

부드럽고 차진 감자, 큼직한 소고기가 든 진한 수프도 있고, 노르스름하게 익은 구운 통닭에선 코를 찌를듯한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그 외에 동과로 만든 갈비탕, 대파와 어우러진 양고기 요리도 있었다.

“와, 너무 풍성하네요.”

용여홍은 냄새를 깊게 들이마시며 진심 어린 탄사를 내뱉었다. 꼭 특별한 날을 맞은 것만 같았다.

장목화는 그를 힐긋 보며 말했다.

“하비스트 타운에서 밥 먹을 때도 기뻐했잖아. 이런 고기반찬으로는 더 이상 너를 감동시킬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용여홍이 억울한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럴 리가요! 근데 하비스트 타운에서 먹은 햄과 절인 고기가 참 훌륭하긴 했죠⋯⋯.”

그는 금세 또 그곳 음식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하비스트 타운은 반고 바이오의 종속 세력이 되면서 소금을 충분히 얻었다. 그래서 사냥철이나 수확 시기에 먹고 남은 고기는 소금을 이용해 보존하고 있었다. 겨울엔 야생 동물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때, 곁에 앉아있던 성건우가 무심하게 말했다.

“이제 물린다고 하지 않았냐?”

용여홍은 금세 굳은 표정으로 외쳤다.

“그때는 그랬지! 그때는!”

얘기하는 사이, 백새벽도 쟁반을 들고 왔다. 쟁반엔 밥 4인분이 있었다.

그녀도 곧 테이블 위에 가득 차려진 갖가지 고기반찬과 그에 버금갈 정도로 많은 채소 반찬을 발견하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

“팀장님, 너무 과하게 쓰신 거 아니에요?”

장목화는 통닭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특별히 제공되는 고기반찬이라 1점이야. 나머지도 다 합쳐봤자 150점밖에 안 하고.”

용여홍이 물었다.

“합쳐봤자 150점 밖이라뇨? 전 매일 이렇게 먹으려면 한 달에 6일밖에 못 먹어요. 아니지, 6일도 안 된다. 아침밥 먹을 공헌 점수는 계산도 안 했네.”

“매끼 이렇게 많은 양을 먹을 수만 있다면 내가 대신 돈 내줄게.”

성건우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하루 만에 배가 터져 죽겠지.”

용여홍은 또 순간 혹했지만, 이득 될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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