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전투력 (1)
몇 초간 침묵하던 장목화가 다시 무전기를 들었다.
“도시 정보망 통제 센터 빌딩에는 저격수가 없을 거야. 하이에나 녀석들은 그 구역에 진입할 엄두까진 내지 못했을 테니까. 그러니 입구로 가서 벽에 찰싹 달라붙는다면 이동할 수 있어. 거기가 그들의 사각지대야.
그렇게 이동해서 좋은 위치를 잡은 후에 장갑차가 오면, 새벽이 네가 먼저 기관총 사수를 쏴서 일시적으로 그를 통제해.
만약 그 장갑차에 있는 화기 통제 시스템이 온전해서 중형기관총을 차 안에서 조종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내가 그 사좌(射座)를 향해 번개 창을 날릴게. 이러든 저러든 목적은 건우를 그 근처에 접근하게 하는 거야.
건우 넌 때가 되면 장갑차 바닥에 들러붙어. 그곳과 차 안에 있는 사람 사이 거리는 1미터도 채 안 되니까 충분히 네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야. 게다가 그 자리에서는 저격수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장목화는 자신의 전기 뱀장어 형 생체 공학 의수를 이용한 공격을 일명 번개 창이라고 불렀다.
- 알겠습니다!
성건우는 자신도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다는 듯 답했다.
뒤이어 백새벽도 응답했다.
- 네.
2초 후, 가만히 듣고 있던 용여홍이 입을 열었다.
- 저는요?
- 넌 날 응원해.
성건우가 진지하게 답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장목화가 다시 덧붙였다.
“여홍이 넌 사주 경계를 맡아. 장갑차만 오는 게 아니라면 어떡해? 내가 이따가 너한테 유탄발사기를 넘길게.”
용여홍은 곧장 목청을 높였다.
- 예, 팀장님!
몇 마디 더 하려던 장목화는 순간 뭔가를 느낀 듯 고개를 홱 틀었다.
“왔다! 오른쪽 거리, 한 대뿐이야.”
빠르게 정보를 알린 그녀가 방에서 금속 가위 하나를 찾아냈다.
* * *
네 사람은 곧장 입구로 돌아가 벽에 착 달라붙었다. 각자 다른 위치로 향하면서, 서로 무기 일부를 교환하며 다가올 전투에 대비했다.
곧 거리 모퉁이에서 장갑차 한 대가 나타났다.
한쪽에 거대한 바퀴 세 개가 달린 차였다. 카키색으로 칠해진 차는 옆쪽엔 문이, 정면에는 짙은 색 방탄유리가 장착돼있었다.
장갑차는 일반적인 차보다 두 배 이상 컸다. 또 차 꼭대기엔 짙은 검은색 중형기관총 한 정과 안테나처럼 세워진 무언가도 보였다.
강철, 단단함, 힘, 진압, 난공불락……. 용여홍이 이 차를 보자마자 순간적으로 떠올린 단어들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듣기 좋은 소리 한 줄기가 점점 가까워지며 무언가가 눈앞의 거리로 꺾어 들어왔다. 거대한 금속 깡통 하나를 실은 큼직한 파란색 차였다.
라이트와 음악을 켠 차는 거리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그런데 핸들을 돌리는 동작이 어딘가 뻣뻣했으며, 운전자의 눈빛도 뭔가 멍해 보였다. 운전석에서 핸들을 움직이는 운전자는 무심자였다.
주황색과 흰색이 뒤섞인 오래된 솜옷을 입은 그 무심자는 칠이 다 벗겨진 검은 헤드폰을 쓰고 있었다.
전방의 거리를 밝힌 살수차는 매우 빠르게 전진했다. 하마터면 측면에서 꺾어 들어오려 했던 장갑차와 부딪힐 뻔할 정도였다.
끽-
무심자 기사가 그 자리에서 조건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장갑차 운전자 역시 이런 상황은 처음인지, 당황하며 차를 세웠다.
이 광경을 목격한 장목화가 눈을 밝게 빛내며 소리쳤다.
“기회다!”
경쾌하고 간드러지는 살수차의 음악 속에서 장목화는 한발을 앞으로 디뎠다. 그녀가 곧 왼팔을 뒤로 당기자, 그녀의 손에 있던 금속 가위가 파직, 소리를 내며 은백색 뱀들로 뒤덮였다.
하이에나 강도단은 도시 정보망 통제 센터의 점유지가 워낙 넓고 기이했던 탓에 감히 그 안으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으며, 그 빌딩의 꼭대기를 차지하지도 못했다. 그저 저격수 세 명을 주위 빌딩에 배치했을 뿐이었다.
장목화가 도시 정보망 통제 센터 옆문 맞은편 거리에서 벽에 딱 달라붙어 이동하고 있지만, 저격수 둘은 그녀를 발견하지도 못했다.
정문 구역을 책임지던 저격수는 장목화를 발견하긴 했으나, 거리가 너무 먼 데다 각도도 좋지 못해서 그녀를 명중시키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설령 그가 유전자를 개량한 선택받은 자라고 한들, 천부적인 사격 실력이 있어야지만 상대를 맞히는 일을 어느 정도 자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살수차는 여전히 저격 노선 일부를 막고 있었다.
이로 인해 장목화는 앞으로 한 발 뛰어나올 때도, 왼팔을 뒤로 당기는 동안에도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았다.
장목화가 뒤로 당긴 팔을 앞으로 홱, 휘두르며 쥐고 있던 가위를 내던졌다. 셀 수도 없이 수많은 은백색 뱀에 휩싸여 있던 가위는 밝은 노선을 그리며 어딘가로 날아갔다.
그녀가 던진 가위는 장갑차 꼭대기에 자리한 안테나로 보이는 것에 정확히 떨어졌다.
파직, 파직!
격렬한 소리와 함께 퍼져나가던 광포한 전류가 순간 안테나를 따라 장갑차 안으로 흘러들면서 전자 시스템을 매섭게 휩쓸었다.
차 안 장치 일부는 과부하 보호 장치로 인해 효력을 잃고, 일부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심지어는 펑, 하고 터져버린 것도 있었다.
장갑차에 탑승해 있던 이들은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가장 가까운 가게 안, 내내 장목화의 공격이 효력을 발휘하길 기다리던 성건우가 곧장 두 팔을 움직이며 달려 나갔다. 돌격 소총을 챙기지 않은 그의 움직임은 전보다 훨씬 더 빠르고 민첩했다.
한 발, 두 발, 앞쪽으로 맹렬히 몸을 날린 성건우가 이내 다이빙을 하듯 장갑차 바닥으로 파고들었다.
그가 안정적으로 차 섀시에 달라붙었을 때, 조금 전 가로질렀던 길을 따라 두 번의 총성이 연이어 울렸다.
성건우는 한 손을 뻗어 차 밑바닥에 대곤, 다른 손을 살짝 흔들며 웃었다.
“안됐지만 너무 늦었어.”
혼잣말을 하는 사이 그의 눈동자가 빠르게 짙어졌다.
그로부터 몇 초가 흐르고, 누군가가 장갑차 꼭대기 덧문을 밀어 열고 그 위에 서서 직접 중형기관총을 통제하려 했다. 그는 지나치게 충동적으로 굴더니 알아서 장갑차의 보호에서 벗어나 버렸다.
탕!
전방의 상황을 제대로 살피기도 전, 그의 머리에서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머리통도 급속도로 부풀어 오르다가 불꽃처럼 터져나갔다.
그건 한 가게 입구에 있던 백새벽이 노리던 일이기도 했다. 그녀는 입구에 쪼그려 앉아 내내 그 중형기관총을 노리고 있었다.
뒤이어 차 문이 열리더니 한 남자가 장갑차에서 뛰어내렸다. 유탄 여러 개를 메고 유탄발사기를 쥔 남자는 자신의 힘으로 목표를 처리하려 했다.
두꺼운 장갑차 속에 숨는 것은 겁쟁이나 할 법한 짓 아니던가. 진정한 용사라면 총을 메고 나아가 사방의 적을 죽이면서 빠르게 복수를 끝내야 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두 번의 총성과 함께 그 용사의 목이 반 이상 찢겨 나갔다. 남자의 목에서 새어나온 피가 허공으로 솟구치고, 나머지 총알 하나는 그가 메고 있던 유탄 한 발에 박혔다.
콰르릉!
폭발음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그와 더불어 사방으론 새카맣게 탄 남자의 살점이 비처럼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남자가 쥐고 있던 유탄발사기 역시 같은 운명을 맞았다. 붉게 피어오르는 화염 속, 유탄발사기는 산산조각이 난 채로 흩어지고 있었다.
이 틈을 타 성건우는 몸을 굴려 조금 전 나온 남자의 두 다리를 훌쩍 뛰어넘었다. 그 후, 주위의 화염 사이를 지나 장갑차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한 강도가 남아있었다. 머리를 박박 민 상대는 매우 흉악한 인상이었다.
이때, 남자가 두 팔을 쳐들며 자동 소총으로 성건우를 쏘려 했다. 그런데 어째선지 그 동작을 수행할 수가 없었다. 생각에 상응하게 움직이는 걸 잊은 것만 같았다. 성건우를 보는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난⋯⋯.”
대머리 남자가 애원하려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보다 성건우가 한발 더 빨랐다. 성건우는 앞으로 나가 남자의 입에 아이스모스 권총을 쑤셔 넣었다.
“이야기는 다음 생에 하자고.”
짙어진 눈동자로 말을 마친 그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대머리 강도의 뒤통수를 뚫고 나온 피범벅이 된 총알은 장갑차 내벽을 때린 뒤 다른 곳으로 튕겨졌다.
곧장 권총을 거둔 성건우는 힘없이 조금씩 쓰러져 내리는 대머리 강도를 바라보다가, 순간 시체에서 흘러나온 똥과 오줌 냄새를 맡았다. 황급히 대머리 강도의 양어깨를 붙잡은 성건우가 그대로 남자를 바깥에 던져버렸다.
연이어 울려 퍼지는 총성 속, 이미 죽은 대머리 강도는 마지막으로 저격까지 당했다.
그렇게 장갑차의 운전석을 차지한 성건우가 무전기를 들었다.
“됐습니다.”
보고를 끝내고, 그는 바로 장갑차를 몰았다. 다행히 이 장갑차는 전기차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조금 전 장목화의 공격을 받았을 때 이미 차는 통제 불능한 상태가 됐을지도 몰랐다.
연이어 총성이 울리고, 장갑차는 계속 발사되는 저격 총을 맞으면서도 끄떡도 없다는 듯 육중한 몸을 유려하게 움직였다.
* * *
곧장 거리를 가로지른 장갑차가 한 열린 가게 앞에서 멈춰섰다.
이런 방식과 다른 이의 시야가 닿지 않는 각도 때문에, 높은 곳에 자리한 저격수들은 구조팀에게 아무런 힘도 쓸 수가 없었다.
이내 용여홍과 백새벽이 열린 장갑차 문을 통해 재빠르게 그 안으로 들어가자, 장목화도 그제야 민첩하게 장갑차에 올라탔다.
여전히 그곳에 멈춰 선 살수차는 발랄한 음악과 함께 끊임없이 옆으로 물을 뿌리며 붉은 혈흔을 씻어내고 있었다.
장목화는 그 옆쪽 살수차를 바라보며 큰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앞으로 나갈 순 없겠네. 뒤로 돌아가거나 계속 살수차를 우회해야겠어.”
“나머지 하이에나 강도단은 어디 있을까요?”
용여홍이 물었다.
그는 이제 장갑차에 중형기관총 한 정까지 훔친 터라 자신감이 가득했다. 이것이면 충분히 반격에 나설 수 있었다. 드디어 검은 쥐 마을 주민들을 학살한 강도단의 죗값을 물 수도 있었다.
이내 장목화가 주위 전기 신호를 한번 감지해본 뒤 입을 열었다.
“이 장갑차가 왔던 곳으로부터 이쪽으로 접근 중인 전기 신호가 있어.”
“하이에나 녀석들에게는 바주카포도 있어요. 어쩌면 대전차탄이 있을지도 모르고요.”
백새벽도 경고했다.
하이에나 강도단에게는 열압력탄도 있으니, 장갑차에 피해를 줄 유탄이나 총기, 총알 같은 것도 충분히 가지고 있을 수 있었다.
“그, 그럼 됐어.”
용여홍도 즉각 동요했다.
피식 웃던 장목화가 차 문 옆쪽에 앉아 성건우에게 말했다.
“우회해서 앞으로 가자. 지프 세워놓은 곳까지.”
그들의 보급품도 그곳에 있었다.
성건우는 특별한 말 없이 목적지를 향해 장갑차를 몰았다.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장갑차는 수많은 폐차와 목제 테이블을 넘어뜨리고 밀어내며, 비교적 넓고 확 트인 길 하나를 만들어냈다.
그 사이 저격수들은 이들을 아예 포기한 듯 더는 사격도 하지 않았다. 세 저격수에겐 대전차(對戰車) 총기나 총알이 없는 듯했다.
장갑차는 본래 그들의 것이었다. 저격수들도 자신들 소유였던 장갑차에 대적해야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일반적인 총알로는 두껍고 묵직한 장갑차의 창문 하나 뚫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