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저격 (2)
성건우는 장목화의 눈을 빤히 응시했다. 그의 눈동자가 짙게 변해 있었다.
“팀장님, 저 보세요. 우리 반고 바이오 부부 80%는 공동 결혼으로 맺어졌어요. 가정형편도, 관계도 좋은 부부가 적지 않죠. 그러니까⋯⋯.”
잠시 멍해져 있던 장목화가 불쑥 대꾸했다.
“회사에서 배정해준 상대야말로 진정한 배필이고 진정한 사랑이야. 첫눈에 반하는 사랑 이야기는 다 거짓이고!”
성건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러니까 그런 사기꾼을 만나면 꼭 그 개 대가리를 후려갈겨야 해요.”
“개 대가리라는 말은 대체 어디서 배운 거야?”
장목화가 잠시 성건우를 쏘아보았다.
반고 바이오의 일반 직원 중 개를 키울 여력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설령 있다고 해도 그들이 키우는 개는…… 안타깝지만 전부 식용이었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요. 거기서 연재되는 얘기 안 들어보셨어요?”
성건우가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장목화를 바라보았다.
“안 들어봤어. 나한텐 꼭 어린 시절조차 없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드네.”
장목화는 짧게 답한 뒤 한숨을 내쉬었다.
대화는 끝나고, 성건우와 장목화는 다시 엘리베이터 로비로 돌아갔다.
* * *
“여홍아, 나와. 이제 네 차례야.”
성건우가 말했다.
용여홍은 좀 불안한 듯 그를 따라나서며 조그맣게 물었다.
“대체 무슨 속셈…… 아니, 무슨 계획이야?”
성건우가 여유롭게 답했다.
“간단해. 넌 줄곧 예쁜 여자랑 결혼해서 예쁜 자식들도 낳고 매일 끼니때마다 고기 먹게 해주고 싶다고 했지? 혹시, 예쁜 남자도 괜찮나?”
순간 용여홍이 그에게서 멀찍하게 떨어져선 손사래를 쳤다.
“아니! 그게 무슨 망발이야? 난 여자 좋아한다고! 여자랑 살고 싶단 말이야!”
그 말에 성건우가 웃으며 멈춰 섰다. 조금 전 장목화와 갔던 곳엔 아직 채 이르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성건우는 소총을 두드리며 뒤돌아섰다.
“새벽아, 네 차례야.”
“뭐야, 이게 끝이냐?”
용여홍이 곁에서 멍한 얼굴로 물었다.
“너한텐 능력을 발휘할 필요도 없겠다. 지금 그 상태로도 충분해.”
성건우는 언제나처럼 진지했다.
“뭐⋯⋯.”
용여홍은 의아하다는 듯 중얼거리면서도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백새벽은 성건우를 힐긋 바라봤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성건우는 백새벽과 함께 조금 전 장목화와 얘기했던 곳으로 갔다.
“새벽아, 혹시 네가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나 물건 같은 거 말해 줄 수 있어? 너에 대해 더 잘 파악할수록 효과가 좋아지거든. 지나치게 상세할 필요는 없어. 간략하게 언급만 해줘도 돼.”
성건우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고민하던 백새벽은 목에 두른 스카프를 잡고서, 약간 낮고 거친 목소리로 답했다.
“나한테 로봇이 한 대 있었어. 내 곁에서 가장 힘겨웠던 십여 년을 함께했지. 그러다 결국에는 나를 구하기 위해 죽었어⋯⋯.”
어느새 성건우의 눈동자가 또 짙어져 있었다.
“나 봐. 그 로봇은 네가 성장하는 동안 함께해주고, 시종일관 널 보호해줬어. 심지어는 너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기도 했지. 그러니까⋯⋯.”
백새벽은 약간 촉촉한 눈으로 잠시 침묵 끝에 단호하게 말했다.
“진정한 짝은 오직 로봇뿐이야. 인간은 사랑할 가치가 없어.”
성건우가 손뼉을 치며 말을 받았다.
“그렇게 극단적일 필요는 없어. 좋아, 이제 돌아가도 돼.”
백새벽은 충동적인 생각을 억누르며 임무 위치로 돌아갔다.
이윽고 성건우는 메탈블랙 색상의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 손전등 불빛 아래, 엘리베이터 문에 성건우의 모습이 비쳤다. 그는 문에 비친 자신과 눈을 마주하며 이상하리만치 진지한 얼굴로 작게 중얼거렸다.
“애쉬랜드의 인류는 아직도 기아와 오염, 질병, 변이, 전란의 영향을 받으며 무심병의 그늘 아래 살아가고 있어. 이건 모든 사람이 반드시 직면해야 하는 일이야. 예외는 있을 수 없어, 그러니까⋯⋯.”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사랑은 전 인류를 구원하려는 나한텐 방해만 될 뿐이야.”
* * *
성건우는 장목화의 곁으로 돌아갔다.
“다 됐습니다.”
장목화는 조금 전 성건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듣지 못해서, 그에 관해선 별말 없이 곧장 외쳤다.
“전원 위치로!”
팀원들 모두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그렇게 1~2분 정도 지났을 무렵, 갑자기 엘리베이터 로비가 환해졌다. 연이어 건물 1층 전체에도 불이 들어왔다. 빌딩 전체에 전력이 공급된 것이다.
빛은 긴 어둠을 몰아내고 순식간에 모든 공간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 * *
한편, 도시 정보망 통제 센터와 멀지 않은 거리.
노란색 승복에 붉은 가사를 걸친 기계 승려 정법은 사방의 동정을 살피며 조금 전 들려온 폭발음의 근원지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거대한 정원이 딸린 빌딩이 층층이 밝혀졌다.
적막한 어둠뿐인 폐허 도시 속, 빛을 품은 빌딩은 꼭 영원을 거니는 꿈의 등대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돌아서 그 빌딩을 응시하던 정법은 그곳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 * *
불이 밝혀진 순간, 용여홍, 백새벽, 장목화는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다. 갑작스러운 빛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성건우는 눈을 부릅뜨려 노력했다. 강력한 빛으로 인한 자극 때문에 하마터면 눈물까지 흘릴 뻔했다.
“경계심이 상당하네.”
눈을 뜬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칭찬했다.
“저한텐 선글라스가 없으니까요.”
성건우는 드디어 눈을 한 번 깜빡이며 답했다.
장목화는 그가 대체 어떤 사고의 흐름으로 그런 답을 한 것인지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연신 감탄이 나왔다.
이내 그녀가 짧은 감상을 표했다.
“꼭 회사로 돌아온 것 같네.”
그녀의 말처럼 반고 바이오 역시 이 건물과 비슷했다. 이 같은 조명으로 내부를 밝혔으며, 이렇게 넓은 엘리베이터 로비도 있었다. 유일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홀의 경관이었다.
텅 빈 홀은 반고 바이오 활동 센터와 비슷할 정도로 드넓었다. 하지만 이곳 홀 바닥엔 사치스러워 보일 정도의 검은 벽돌이 깔려 있었으며, 너무 투명해 몽환적으로 보이는 샹들리에도 달려있었다.
“그렇죠?”
용여홍이 비상 통로 입구에서 말했다. 그는 혹시 이곳으로 올라올지 모를 차으뜸을 경계하느라 고개 한번 돌리지 않고 대꾸했다.
“회사보다 더 밝네요.”
성건우도 간단하게 이야기했다.
그 말에 장목화는 일단 웃음부터 터뜨렸다가 미간을 팩 구겼다.
“이런 폐허 도시에, 그것도 이렇게나 사방이 깜깜한 밤에 이 고층 빌딩 한 곳에만 불이 켜졌어. 너무 눈에 띄지 않을까?”
맞은편 엘리베이터 세 대를 주시하던 백새벽이 잠시 고민 끝에 입을 벌렸다. 그녀는 장목화의 뜻을 단박에 파악했다.
“팀장님, 정법이나 다른 유적 사냥꾼이 올까 봐 그러세요?”
장목화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인 유적 사냥꾼들은 걱정할 필요 없어. 네가 그랬잖아, 그 사람들은 이상 현상이 발생한 곳에서 알아서 멀어지려 한다고.
근데 정법은 다르지, 정법이 여기 있다는 것도 다 알잖아. 정법은 신체도 특수하고, 대담하게 굴어도 될 정도로 충분한 능력이 있어. 그러니까 분명히 여기로 끌려들 거야. 정법은 여자를 증오하기도 하지.
하이에나 강도단도 이 폐허에 진입해 있을 가능성이 커. 그들은 또 이상 현상이 발생한 현장 주위를 빙빙 돌며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겠지.”
성건우는 잠시 생각을 해보다가 말을 이어받았다.
“결국 그들과 차으뜸 중 누구 이름이 더 나쁜지에 따라 달라지겠네요.”
장목화가 소리 내어 웃었다. 그녀도 성건우와 오랜 시간 함께 하다 보니 드디어 나쁜 이름과 운 사이의 상관관계를 파악했다.
“누구 운이 더 나쁜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고? 넌 우리 구조팀에 대해 자신감이 대단한가 봐. 최악의 상황은 상상 안 해봤어? 그들이 동시에 나타나면? 우리끼리 등 맞대고 서서 그 적들 다 상대해야 하는데?”
장목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성건우가 불쑥 물었다.
“정법은 무엇을 기준으로 상대가 여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할까요?”
장목화가 무의식적으로 답했다.
“영생인이잖아. 코나 눈 같은 걸로 확인하거나 상대의 각종 요소를 종합해서 판단하겠지. 왜? 혹시 여장이라도 해서 정법을 유인하려는 건 아니지? 하하,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은데.”
“아니, 정법이 차으뜸을 마주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서요.”
성건우는 여전히 진지했다.
이 말에 뭔가 깨달음을 얻은 장목화가 낮게 중얼거렸다.
“정법은 여자를 증오하는 게 아니야. 변태적인 심리에 기반해 일어나는 색욕이 문제인 거야. 바로 그 약점을 건드리는 상대를 적대시 하는 거지. 정법에겐 더 이상 그 갈망을 해소할 방법이 없으니까.
그리고 차으뜸의 매혹 능력 범위는 무차별적인 것 같아. 이성뿐만 아니라 동성도 영향을 받아. 심지어 동물까지도.
만약 정법이 차으뜸을 만난다면, 분명 순간적으로 차으뜸에게 매료될 거야. 이미 오래전부터 뒤틀린 마음을 갖고 있던 정법이 보일 반응도 하나뿐이겠지. 정법은 호감과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표적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잔혹하게 고문할 거야.”
모두가 장목화의 혼잣말을 들었다. 백새벽은 티 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무표정하게 말을 받았다.
“이제는 정법과 차으뜸의 만남이 약간 기대되네요.”
“잔인하네.”
피식 웃던 장목화가 웃음기를 싹 거두고 정색을 했다.
“아무튼 차으뜸이 오기를 기다리면서도 사방을 살펴야 해. 절대 경계심을 늦추면 안 돼. 언제라도 위험한 게 난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자고.”
이내 장목화가 일어나 엘리베이터 로비 안쪽에 있는 창문을 열었다. 바깥엔 잡초로 가득한 정원이 보였다.
“만약 정법이 정문으로 들어온다면 내가 유탄발사기로 잠시 막을게. 너희들은 그 틈을 타 이 창문으로 빠져나가. 현재 우리 화력은 각성자인 기계 승려를 대적하기에는 부족해.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야. 그래도 목숨은 소중히 여겨야 하잖아.”
장목화가 다시 돌아와 벽에 기대 살짝 쪼그려 앉았다.
“좋아, 차으뜸은 곧 올라올 거야. 비상 통로에서 기계실까지 가는 것보다 지하 기계실에서 엘리베이터까지 가는 시간이 더 짧을 테니까.”
거기다 돌아오는 길은 더 익숙할 테니, 그보다 일찍 도착할 수도 있었다.
장목화는 말을 맺자마자 또 한 번 미간을 찌푸렸다.
“차으뜸의 절망 능력 영향 범위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 그게 한 번에 여럿한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건 기억나. 근데 매혹 능력에만 신경 쓰느라 다른 능력을 소홀히 하면 안 되잖아.”
성건우가 즉시 답했다.
“그런 능력도 벽이나 금속 문 같은 장애물을 통과하면 약해질 거예요.”
“하지만 약해진 능력에 영향받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잖아. 만약 새벽이가 있는 곳도 영향 범위에 속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차으뜸을 저격할 수 있겠어? 전부 절망에 빠져서 모든 걸 포기하고 죽기만 기다릴 텐데. 중요한 정보를 확인할 수 없으니까 이번 작전은 중지야.”
장목화는 빠르게 말을 쏟아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건물 옥상으로 갈까요?”
백새벽이 제안했다.
“상대는 군용 외골격 장치를 착용하고 있어. 저격에 자신 있어? 우리가 가진 무기 중에 상대를 저격할 수 있는 건 총 한 자루뿐이야.”
다시금 장목화의 말이 빠르게 이어졌다.
백새벽도 고집을 부리지 않고 어두운 낯빛으로 대답했다.
“자신 없습니다.”
“그러니까 당장 철수야. 돌아가 다시 기회를 엿보는 거야.”
장목화가 명령을 내렸다.
“예, 팀장님!”
팀원들도 귀한 시간을 아끼기 위해 쓸데없는 말은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