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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야여화-71화 (71/649)

71화. 정보

안여향이 이런 질문을 하리라 예상했던 장목화는 고개를 돌려 성건우를 노려보면서, 그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 후 입술을 살짝 깨문 그녀가 안여향에게 말했다.

“우리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길가에서 잠들어 있었어.

막 깨우려고 했는데, 그의 얼굴이 돌연 일그러지고 몸도 몇 번 경련하는가 싶더니 그대로 축 처졌지.

그, 그는 그렇게 죽어버렸어.”

이 대목에서 자신의 설명이 너무나 얼토당토않다는 생각에 불안해진 장목화가 얼른 덧붙였다.

“내 말이 믿겨?

아니, 내 말은, 우리를 믿어야 한다는 거야.”

솔직히 말해서 만약 그 상황을 직접 겪고 보지 못했더라면 장목화 자신 역시 이를 믿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렇게 기이한 능력을 가진 변이 괴물은 애쉬랜드에서도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안전부로 전출된 지 3년이 채 안 된 장목화가 땅 위로 나온 횟수는 적지도, 그렇다고 많지도 않았으나, 그동안 그녀가 맞닥뜨린 변이 생물은 대부분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에 속했다.

안여향의 냉담한 얼굴은 목화의 설명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변화를 보였다. 점차 복잡해지던 표정은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장목화는 상대의 미묘한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읽어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강렬하고, 짙고, 억제할 수 없는 슬픔만은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안여향을 여러 번 만나본 것은 아니었지만 이전의 만남을 통해 상대가 굉장히 내향적이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향이라는 것을 파악한 바 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안여향은 스스로의 표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안여향은 두 번 정도 심호흡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믿어.

우리도 이 폐허 도시에 진입한 뒤 비슷한 일을 겪었거든.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것이 아닌 이상, 그런 이야기를 꾸며낼 수는 없을 거야.”

그녀의 목소리는 뭔가를 애써 억누르고 있는 것처럼 묵직하고 거칠었다.

그녀의 곁에 있는 남자 역시 슬픔과 두려움이 혼재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애도의 말을 건네는 대신 화제를 전환했다.

“대체 무슨 일을 겪었던 거야?”

손을 들어 눈가를 훔쳐낸 안여향이 다시금 냉담해진 얼굴로 말했다.

“우리는 차를 타고 거대 늪 깊은 곳에서부터 한 줄기 길을 따라 이 도시 폐허에 진입했어.

이곳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탐색할 생각은 없었어. 그저 폐허 가장자리를 한 번 살피면서 가치 있는 물건만 챙겨 돌아갈 작정이었지.

하지만 우리가 물자 한 더미를 챙긴 그때, 우리 팀원 중 한 명이 갑자기 잠들어 버린 거야. 두꺼운 옷들이 든 상자 하나를 옮기던 와중에 기절하듯이.

우린 그가 갑자기 무슨 병에 걸린 것 같다고 생각해서, 곧장 깨우려 들지 않았어.

그러다 그가 그저 잠들어 있을 뿐이라는 것을 확인했을 무렵, 그의 얼굴이 돌연 뒤틀리기 시작했어. 마치 끔찍한 일을 겪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야.

그, 그러다가, 죽어버렸어.”

‘강제 수면은 한 번에 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하려 했던 장목화는 안여향의 눈을 보고 그 충동을 애써 억눌렀다.

안여향의 말이 이어졌다.

“광수의 죽음에 우리는 너무나 놀라고 말았어.

무심자나 괴물과의 정면 전투는 전혀 두렵지 않았지만 이유도, 대비할 방법도, 다음 목표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습격에는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었지.

그래서 우리는 철수하기로 결정했어. 이미 충분한 수확도 얻은 상태였거든.

그런데 그 순간 꼭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전방의 모퉁이에 굉장히 진귀한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동시에 꼭 그것을 손에 넣어야 한다는 강렬한 열망이 느껴졌지.

그쪽으로 다가간 우리가 본 것은 한 무심자였어.

여자였고, 나이는 17, 8살에서 25, 6살 정도 사이로 보였어. 너희들도 알겠지만, 무심자의 나이는 단순히 겉모습만 봐서는 단정할 수가 없잖아.

그녀는 우리가 물자를 수집하다 맞닥뜨린 두 무심자보다 옷차림도 훨씬 단정했고, 옷도 그렇게 더럽지 않았고, 얼굴도 나름 깨끗한 편이었어. 하지만 눈만은 여전히 혼탁하고 잔뜩 충혈되어 있었지.

음, 그녀는 쪼글쪼글해진 흰색 다운 재킷을 입고 있었어.

그때 그 진귀한,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하는 물건이 그 무심자에게 있으리라고 생각한 우리는 더욱 빠르게 접근하며 사격 준비를 했어.

그런데 그 주위에서 대량의 무심자가 나타났을 줄 누가 알았겠어. 그들은 근처에서 매복하고 있었던 것 같아.

함정이었던 거야.”

이때 장목화는 안여향과 곁에 있는 남자에게서 짙은 두려움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 다음에는?”

장목화는 판단과 추측을 하는 대신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안여향이 심호흡을 한 뒤 말을 이었다.

“매복하고 있던 무심자가 나타났을 때 뭔가에 홀려 있었던 우리는 곧장 깨어났어. 더는 그 특이한 무심자에게 반드시 찾아내야 할 만큼 진귀한 물건이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지.

다행인 건 그 무심자들에게는 총만 있었을 뿐이고, 그 총 가운데 일부는 총알이 없기 때문인지 사격용이 아니라 둔기처럼 쓰이고 있었다는 거야.

때맞춰 몸을 숨긴 우리는 첫 번째 사격이 진행되는 동안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그 후로는 격렬한 교전이 발발했어.

원래대로였다면 우리는 여러 명의 무심자를 죽인 후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을 거야. 하지만 하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어. 어디 있었는지 모를 붉은색 가사를 걸친 기계 승려 하나가 달려들어 모든 여자 무심자를 공격했지.

난 그가 나에게도 충만한 악의를 품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

장목화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물었다.

“정법?”

‘설마 그 기계 승려가 본인의 몸을 고친 뒤 새로 발견된 이 도시 폐허의 소란에 참여한 건가?’

“그를 알아?”

안여향이 놀란 듯 되물었다.

“만나본 적이 있어.”

장목화가 간단하게 답했다.

그들의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차으뜸은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이를 통해 유용한 정보를 얻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안여향은 계속 질문을 이어나가는 대신 본론으로 돌아왔다.

“그 기계 승려의 참전으로 우리는 도망칠 기회를 얻었어. 수혁은 자발적으로 적을 저지하며 우리가 떠날 수 있도록 엄호해 주었지.

우리는 합류할 장소와 시간을 정한 뒤 그렇게 헤어졌어. 그런데, 하하, 언제나 시간을 철석같이 지키던 그가 이번에는 한참 늦을 모양이야⋯⋯.”

이때 앞으로 몇 걸음 다가온 성건우가 진지하게 말했다.

“시계를 잃어버려서 그런지도 몰라.”

멍한 표정을 드러낸 안여향은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가 보물처럼 아끼던 시계는 매복 기습을 당했을 때 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그곳에 떨어졌거든.”

웃음을 이어나가던 안여향은 손을 들어 눈가를 닦아내었다.

몇 초 후, 그녀가 전보다 약간 더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는 아직 컴컴해지지 않았을 때였어. 우리는 일단 숨을 곳을 찾아 모든 기척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렸어. 그리고 그 후에야 우회로를 따라 약속 장소로 이동하기 시작했지. 그런데 그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너희들을 만난 거야.”

“이전의 총성, 너희들이 낸 거 아니야?”

한숨을 내쉬며 묻던 장목화가 이내 스스로를 탓하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지난 이틀 동안은 어째서인지 내내 정신을 빼놓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야.

차으뜸이 실제적인 꿈을 만들어내는 가위말을 언급해서 그런지, 내 생각은 변이 괴물에만 그렇게 꽂혀 있었던 것 같아.

여향 일행이 겪은 일로 볼 때, 이 도시 폐허 안에는 상당한 숫자의 변이된 무심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 매우 특수하고 기이한 능력을 가진 그들은 외부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그런 무심자야.

강제적으로 잠들게 하는 것은 괴물의 능력이 아니라 변이된 무심자의 능력인지도 몰라.”

그녀의 말은 백새벽과 용여홍을 비롯한 팀원들을 향한 것이기도 했지만 이런 변이 생물을 조심해야 한다는, 안여향을 향한 충고이기도 했다.

백새벽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퍼스트시티와 그 종속 세력들은 그런 무심자를 고등 무심자라고 부르죠.”

용여홍은 순간 밀려드는 두려움을 느꼈다.

이야기를 듣던 안여향이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내가 해야 할 말은 다 했어. 아마 너희들에게도 상당한 도움이 되는 이야기였을 거야.

이제 수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줄래?”

장목화는 몸을 돌려 그들이 지나쳐 온 거리를 가리켰다.

“이쪽으로 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으면 거리 오른편에 유일하게 문이 닫힌 가게가 있을 거야. 오수혁은 그곳에 있어.

하지만 이 거리는 굉장히 위험해. 무심자가 우글우글하거든. 그러니까 빙 둘러 가는 게 좋아.”

“고마워.”

안여향과 곁에 있는 사내가 동시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때 앞으로 몇 걸음 더 걸어온 성건우가 가지런히 접힌 종이를 건넸다.

“그가 가지고 있던 거야.”

장목화도 오수혁의 유적 사냥꾼 배지를 꺼내 들었다.

“이건 그의 사냥꾼 배지고.”

손을 뻗어 그 물건들을 받아든 안여향은 본능적으로 접힌 종이를 펼치더니, 그다지 미약하지는 않은 달빛 아래 내용을 살폈다.

「여향에게 소고기 통조림 하나 빌림.

강하에게 압축 비스킷 큰 봉지 하나에 맞먹는 두 차례의 보수 빌림.

절름발이 장씨에게 기름 반 그릇 빌림.

올랑그에게 권총 한 자루와 총알 열 발 빌림.

광수에게 고기 한 끼 빌림.

여향에게 꽃 한 송이 빌림.」

안여향의 입꼬리가 아래로 축 처졌다. 하지만 그녀는 애써 입을 꾹 다물었다.

이내 표정이 이상해진 그녀의 눈과 그 주위에서 무언가가 달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장목화를 포함한 다른 이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녀가 마음을 추스를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한참 뒤, 안여향이 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고마워. 다른 물건들은 돌려주지 않아도 돼.”

말은 마친 그녀는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강하, 수혁을 찾으러 가자.”

“그래.”

남자의 목소리도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안여향은 더 이상 꾸물거리지도, 작별을 고하지도 않은 채 저쪽으로 뛰어갔다. 우회로를 통해 위험을 피할 작정인 듯했다.

“여향에게서 얻은 가장 중요한 정보는, 강제적으로 잠들게 하는 능력은 한 번에 한 사람에게만 발휘될 수 있다는 거야.”

장목화는 떠난 이들로부터 시선을 거둔 뒤 팀원들에게 알렸다.

이때 헬멧과 검은색 금속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차으뜸이 불쑥 물었다.

“정법이 누구야?”

“기계 승려이자 각성자.”

장목화와 용여홍을 포함한 이들은 앞다퉈 정법과 관련된 정보를 차으뜸에게 전한 뒤 이렇게 덧붙였다.

“그는 색욕 증강을 대가로 의식을 업로드 해 기계 생물이 되었어. 하지만 그 몸으로는 증강된 색욕을 만족시킬 수 없었고, 그로 인해 정신적인 왜곡이 일어나 여자를 매우 증오하게 되었지.”

“여자를 증오하게 되었다⋯⋯.”

작게 되뇌던 차으뜸은 더 이상의 질문을 이어나가는 대신 전방을 가리켰다.

“마저 가자고. 코너를 돌면 바로 목적지야.”

구조팀원은 재차 무기를 쥔 채 가볍게 뛰기 시작했다.

* * *

다른 거리에 진입한 안여향이 돌연 속도를 늦추더니 의아하다는 듯 관자놀이를 만지작거렸다.

“왜 그래?”

곁에 있는 사내가 물었다.

안여향은 가라앉은 표정으로 답했다.

“좀 이상하지 않아? 방금 우리는 경계심을 유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외골격 장치를 착용하고 있던 사람의 옆으로 다가가기까지 했어.

그 순간 난 수혁조차 잊고 그저 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었지.”

안여향의 곁에 있는 사내의 미간에도 점차 주름이 생겨났다.

“맞아. 여향 너도 알겠지만, 난 여자를 좋아해. 그런데 아까는, 만약 그 사람이라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 이것도 너무 이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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