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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야여화-70화 (70/649)

70화. 교전

짙은 어둠 속, 대열의 왼편에 자리한 용여홍은 앞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벌벌 떨었다.

사실 605호를 떠났을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겁을 먹지는 않았다. 그때는 아직 위험하다고 할만한 적이나 괴물을 맞닥뜨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따금씩 발견된 무심자는 심지어 어떤 움직임을 취하기도 전에 팀에 의해 가볍게 처리될 만한 존재처럼 보였다.

이에 용여홍은 자신 역시 원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앞으로 나설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사실 권총 두 자루와 돌격 소총 한 자루를 가지고 있는 데다가 유전자 개량자이기까지 한 용여홍라면, 설령 무심자가 그와 같은 무기를 갖추고 있다 한들 긴장감만 극복한다면 두세 명 정도는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었다.

물론 화기를 사용한 전투에서 방심하는 건 어른이라도 아이에게 패배할 수 있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용여홍은 무심자의 습격을 받게 되었을 때 일대일의 상황에서 반드시 상대를 꺾을 수 있으리라고 자신하지는 못했다. 그저 그 정도의 적에게는 큰 심리적 압박을 느끼지 않을 뿐이었다.

하지만 일찍이 직접 대화를 나눠보기도 했던 오수혁이 꿈을 꾸다가 괴이한 죽음을 맞는 광경을 직접 목격하고 심지어 그 범인의 흔적조차 찾지 못한 이때, 용여홍의 긴장감과 초조함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장목화가 이전에 알려준 바에 따르면 전쟁에서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주요인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인 적이 아니라, 눈앞에서 총탄에 맞아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전우라고 했다.

이는 강렬한 슬픔과 고통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로 하여금 다음은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을 품게 했다. 그리고 이러한 긴장감은 악몽과 초조함, 정신 쇠약, 그리고 집중력 결핍 등의 결과를 낳았다.

이 순간 용여홍은 자신에게 벌써 그런 증상이 나타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또한 범인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 역시 그의 두려움을 심화시켰다.

고요한 폐허 도시 안, 용여홍의 귀에 들리는 것이라고는 자신을 포함한 일행 다섯 명의 발걸음 소리밖에 없었다. 그 소리를 제외한다면 어떠한 기척도 없었다. 사방의 어둠 깊은 곳이나 양쪽에 자리한 건물 안에는 사냥감을 향해 펼쳐진 그물망이 설치되어 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바로 그때였다. 용여홍의 귀에 팀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심해!”

이번 야영 훈련으로 이미 적잖이 위험을 경험한 용여홍은 장목화를 깊이 신뢰하고 있었다. 이에 그는 그 말을 듣자마자 조건반사적으로 먼지를 뒤집어쓴 옆쪽의 빨간색 폐차로 몸을 던졌다.

그와 거의 동시에 폴짝 뛰어오른 장목화가 허공에서 몸을 돌리는 한편 연합202 권총을 쥔 오른손을 쳐들었다.

탕!

거리 왼편에 붙은 건물 3층의 유리창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깨졌고, 그 옆에 있던 인영도 비틀거리다 뒤로 풀썩 떨어졌다.

미약한 달빛과 별빛 아래 비친 상대는 이가 길고 구부러져 있었으며 눈동자가 혼탁했다. 딱 봐도 정상인이 아니었다.

쨍그랑!

뒤이어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해당 건물의 각 층 유리창이 하나하나 깨졌다.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수많은 인영이었다.

흩어진 구름층 사이로 쏟아진 달빛이 그 모든 것을 밝혔다.

그들은 머리가 새집처럼 덥수룩하고 얼굴은 비쩍 말랐으며, 몸에 두껍고 긴 난 털이 자라나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은 그렇게 남루하지 않았지만 어수선하게 몇 겹씩 겹쳐져 있었다. 그저 방한에만 신경을 쓴 듯한 차림새였다.

등이 살짝 굽어 있는 그들 중 어떤 이들은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어떤 이들은 서늘한 빛을 번득이는 식칼을 들고 있었다. 또 일부는 속칭 피톤이라고 불리는 리볼버 권총을 쥐고 있었으며, 일부는 어둠에 녹아든 듯 위아래로 검은 옷을 입고 있어 제대로 발견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들은 모두 무심자였다.

그중 한 명은 키는 크지만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등이 살짝 굽어있었으며, 얼굴은 굵고 거친 수염으로 뒤덮여 있었다.

산탄총을 쥔 그가 빠르게 공이를 당기더니 장목화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구에서 뿜어져 나온 셀 수 없이 많은 총알은 목표가 자리해 있던 구역을 뒤덮었다. 하지만 일찍이 그곳에서 벗어난 장목화는 몸을 한 번 굴리면서 어느 버려진 차 뒤쪽에 몸을 숨겼다.

다른 한쪽에서는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차으뜸이 곧장 뛰어올랐다.

한 손으로 은색 소총을 쥔 그는 정조준 시스템의 도움 아래 방아쇠를 당기면서 은백색의 전기 뱀장어를 방불케 하는 총알 한 발을 쐈다.

그가 휴대하고 다니던 그 총은 다름 아닌 가우스 소총이었다.

탕!

산탄총을 들고 있던 무심자의 이마에 붉은 구멍이 생겨났다.

그대로 눈동자가 회까닥 뒤집힌 그가 곧 뒤로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유탄발사기가 장착된 금속 팔을 들어 올린 차으뜸은 무심자들이 가장 밀집된 창을 조준하여 방아쇠를 당겼다.

거리 왼편, 장목화의 경고를 듣고 이쪽으로 몸을 날렸던 성건우가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 2층에서 뛰어내린 하나의 인영이 그의 뒤쪽에 착지했다.

마찬가지로 몸이 살짝 굽은 그는 몸에 잘 맞지 않는, 아주 낡고 기름진 파란색 작업복을 입고 있었으며, 손에는 은백색으로 번득이는 대형 스패너를 쥐고 있었다.

착지하자마자 오른팔을 휘두른 그는 그 스패너로 성건우의 머리를 가격하려 했다. 하지만 그를 등지고 있는 성건우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던 그때, 무심자의 오른팔은 그대로 굳어버린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본능만 남은 무심자에게선 오른팔을 휘두르려 했던 본능마저 사라진 듯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돌격 소총의 총구만 돌린 성건우가 어깨 위의 공간을 이용해 상대를 쐈다.

탕!

그의 뒤에 있던 무심자의 머리는 피와 뇌수를 사방으로 튀기며 그대로 터져버렸다.

이때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용여홍 역시 머리 위에서 뛰어내리는 무심자 한 명을 발견했다.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진 용여홍은 본능에 따라 기습자에게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을 겨눴다.

탕탕탕!

그는 미친 듯이 총을 쏘면서 탄창 하나를 거의 다 비워버렸다. 이 돌격 소총의 이름이 왜 베르세크르인지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려는 것 같았다.

빌딩에서 떨어져 내리던 무심자는 땅에 착지하기도 전에 벌집이 되어 버렸고, 수많은 상처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왔다.

탄창이 다 비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용여홍은 황급히 탄창을 교환하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용여홍은 곁눈질을 하면서 어느새 자신의 왼편에 착지한 또 다른 무심자를 확인했다. 상대의 손에는 피톤 리볼버가 쥐어져 있었다.

그 무심자와 성건우 사이의 거리는 7, 8미터였으며, 그와 같은 쪽에 자리한 용여홍과의 거리는 2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용여홍의 눈은 살짝 커져 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숨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도 없어 보였다.

무심자는 이미 그를 겨누고 있었다. 이제는 방아쇠만 당기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무심자는 더 이상 손가락을 움직이지 못했다. 유전자 상의 결함으로 그 동작을 취할 수 없게 된 듯했다.

탕!

그 후 총에 맞은 그의 머리가 폭발하며 붉고 흰 액체를 튀겼다. 그중 일부는 용여홍의 얼굴과 몸에 떨어지기도 했다.

무의식적으로 그쪽을 바라본 용여홍은 웃으며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성건우를, 그리고 거리 맞은편에서 이쪽으로 향했던 소총의 총구를 거두는 백새벽을 볼 수 있었다.

이에 그가 숨을 돌리기도 전, 쾅, 하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차으뜸이 쏜 유탄이 떨어진 곳에서 붉은 화염이 솟구쳐오르자, 주위의 유리창들이 모조리 깨져버렸다.

아직 공격에 나서지 못한 무심자들은 충격을 받은 듯 건물 안쪽으로 물러나면서 짙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일단 이곳에서 빠져나가자!”

이를 확인한 장목화가 몸을 숨기고 있던 곳에서 황급히 뛰쳐나오며 큰소리로 외쳤다.

이곳에는 각종 전기 신호가 너무나 많아서, 그녀로서는 얼마나 많은 무심자와 괴물이 숨어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게다가 광야에 비해 그녀의 감지를 방해하는 장애물도 너무나 많았다. 그 때문에 그녀는 거리 근처의 방을 떠난 무심자에 대한 감응도 잃은 상태였다.

팀장을 상당히 신뢰하는 성건우와 용여홍, 백새벽은 곧장 은폐물에서 튀어나와 거리 끝으로 달렸다.

일찍이 방향을 튼 차으뜸의 행동을 통해 그 역시 장목화의 의견에 동의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 * *

그렇게 그들은 거리 끝으로 돌진해 전방의 사거리에 도착한 후에야 포위에서 벗어났으리라 생각하고 속도를 늦췄다.

용여홍은 이 틈을 타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의 탄창을 교환하며, 이미 비어버린 탄창에 총알을 채워 넣었다.

“무심자가 너무 많지?”

고개를 돌려 방금 전의 그 거리를 돌아본 장목화가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

그녀를 따라 뒤를 돌아본 다른 이들 역시 어둠 속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전부 후세대 무심자예요. 이곳에 진입했다가 무심증에 감염된 유적 사냥꾼이나 황야유랑자는 아닌 것 같아요.”

백새벽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후세대 무심자는 무기를 사용하는 능력이 훨씬 강했으며, 눈동자는 혼탁하기만 할 뿐 이성적이지 않은 광기로 번득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또한 그들은 자발적으로 무기를 교체하고 옷을 덧입었다. 그 때문에 옷차림이 남루하지는 않았지만 온갖 스타일이 혼재되어 있었다.

“곧 목적지에 도착해.”

차으뜸은 전방을 바라보며 장목화를 비롯한 이들을 재차 재촉했다.

이야기를 마친 구조팀은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차으뜸을 따라 어둠 속을 계속 걸었다.

그들이 백 미터 정도를 나아갔을 무렵, 옆쪽 골목에서 돌연 두 사람이 튀어나왔다.

한 명은 검은 머리의 20대 여자로, 눈동자는 갈색이었다. 국방색 카무플라주 패턴의 옷을 입고 있는 그녀는 그런대로 예쁜 편이었지만 어딘가 냉랭한 느낌을 풍겼다.

다른 한 명은 30살 정도의 사내로, 그 머리 색과 눈동자 색은 여자와 같았다. 머리에 구멍이 뚫린 털실 모자를 쓴 그의 손에는 자동 소총이 들려 있었다.

장목화와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차으뜸의 뒤를 이어 나머지 구조팀원들이 반응을 보인 그때, 한발 먼저 나선 장목화가 전방을 훑어보다가 큰소리로 외쳤다.

“여향?”

그녀는 눈앞의 여인이 오수혁의 동료 여향임을 알아봤다.

안여향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일행을 발견했다.

경계부터 하면서 몸을 숨길 은폐물을 찾던 그녀는 곧 부드러워진 눈빛을 드러내면서 저도 모르게 차으뜸을 바라보았다.

그녀 곁의 사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마치 오랜 시간 동안 존경하던 인물을 만나기라도 한 것 같았다.

얼른 이쪽으로 다가온 그들이 차으뜸의 곁에 이르렀다.

하지만 헬멧을 쓰고 있는 관계로 표정을 확인할 수 없는 차으뜸은 시종일관 그들을 무시했다.

안여향은 그제야 목화를 돌아보았다.

“너희는⋯⋯.”

그들이 최근 만난 이들 중 외골격 장치를 가지고 있던 팀은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팀에 대한 인상 역시 뇌리에 꽤 깊이 박혀 있었다.

장목화는 성건우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래, 우리야.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우린 방금 전 오수혁을 만났어.”

오수혁이라는 이름을 들은 안여향은 흠칫 놀라는 듯하더니 곧 표정을 구겼다.

보이지 않는 화살이 되어 마음 어딘가에 꽂힌 그 이름이 그녀를 아름다운 꿈속에서 끄집어내기라도 한 것 같았다.

잠시 힘들어하던 그녀가 다급하게 물었다.

“그, 그는 어디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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