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깊은 밤 중의 도시
극단적인 적막 속, 성건우를 비롯한 이들은 손전등을 켜지도 않은 가볍게 뛰어 길을 통과한 뒤 맞은편의 거리에 진입했다.
그 사이 이들은 자신 역시 깊은 어둠에 삼켜져 버릴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주위의 버려진 차와 길가의 가로수는 암흑 속에 숨은 괴물처럼 어리어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조팀은 자연스럽게 평소 훈련 때와 같은 대형을 갖춘 채 적당히 거리를 벌렸다.
장목화는 차으뜸의 뒤에 바짝 붙어있었고 용여홍은 그 뒤쪽 오른편에, 백새벽은 왼편에 자리해 있었으며 맨 뒤에는 성건우가 자리해 있었다.
이들은 처음부터 내내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면서, 지나치게 빠른 속도 때문에 주위에 대한 관찰과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도록 했다.
계속해서 뛰던 그때, 돌연 방향을 튼 성건우가 비스듬히 떨어진 왼편의 열린 건물 안으로 달려들었다.
장목화를 포함한 이들은 이에 대한 반응으로 곧장 몸을 굴리며 버려진 차 뒤쪽에 몸을 숨겼다.
차으뜸 역시 멈춰서서 성건우를 돌아보았다.
외골격 장치의 종합 경보 시스템은 그에게 주위에 아무런 이상도 없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특이하게 생긴 은색 소총을 쳐들며 경계했다.
동시에 차으뜸은 종합 경보 시스템의 도움 아래 성건우의 목적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사방은 매우 어두웠지만 보조 설비를 갖춘 차으뜸은 비교적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도 어렵지 않게 거리 좌측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곳은 다른 거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밖을 향한 채 나란히 자리한 점포들의 문은 거의 다 열려 있었으며, 그 안의 집기나 시설들은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거나, 극도로 낡아 있었다.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어떠한 생기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각 점포의 간판 중 더러는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 있었고, 더러는 얼룩덜룩하게 퇴색되어 글자조차 알아볼 수가 없었다. 또 더러는 글자 일부가 떨어져 나가 있었고, 더러는 떨어질 듯 말 듯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그중 성건우가 들어간 가게의 간판은 아직 그 위에 걸려있었다. 파란색 바탕의 간판에는 겨우 두 개의 글자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수리----」
벌써 손전등을 꺼낸 건우는 그 협소한 가게 안의 곳곳을 비춰보았다.
빠른 속도로 각종 서랍을 열어보면서 작은 도구와 공구를 찾아낸 그는 포장 여부를 가리지 않고 각종 부품과 회로 등을 카무플라주 패턴으로 된 배낭에 쑤셔 넣었다
다시 배낭을 둘러메고 손전등을 벨트에 건 성건우는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을 든 채 가볍게 뛰어 거리로 돌아갔다.
헬멧을 쓴 차으뜸은 이 광경을 보고 성건우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의 경험에 따르면, 일단 그를 따르기 시작한 사람은 그가 자발적인 공격 의사를 표출하지 않은 이상 자기주장을 펼치지 않았으며, 오직 그의 지시에만 따라 움직일 뿐이었다. 이해할 수 없고 의심스러운 상황이라도 기껏해야 질문을 하거나 의견을 제시할 뿐이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장목화와 용여홍, 백새벽의 모습은 모두 정상이었다.
성건우의 앞에 이른 차으뜸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 멋대로 대열에서 이탈했지?”
성건우는 솔직하게 답했다.
“머리에 쥐가 나서.”
“⋯⋯.”
차으뜸이 눈이 가늘어졌다. 고글에 비친 성건우의 모습은 상대적으로 추상화되면서 과녁에 가까운 형태로 변했다.
이는 그가 은색 소총을 쳐듦에 따라 정조준 시스템이 자연스레 활성화되면서 나타난 화면이었다.
몇 초간 침묵하다 느릿하게 한숨을 토해낸 차으뜸이 결국 총구를 내리며 말했다.
“계속해서 목적지로 향한다.”
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줄곧 이쪽에 집중하고 있었던 장목화를 비롯한 이들은 빠르게 숨어있던 곳에서 나와 대열로 복귀했다.
* * *
다섯 명의 일행은 다시 한번 방금과 같은 대형을 갖춘 채 거리의 끝에 자리한 삼거리로 돌진했다.
이 도시 폐허에 부는 밤바람은 꽤나 싸늘했다. 용여홍은 이 밤바람을 맞고 지금 소등 시간 이후의 반고 바이오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방향을 틀어 왼쪽 거리로 접어들려던 그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땅 위로 올라오기 전 그의 가장 큰 바람은 진정한 하늘을 보는 것이었고, 두 번째 바람은 모든 것을 비추는 태양을 보는 것이었으며, 세 번째 바람은 교과서에 나온 별이 총총한 하늘을 보는 것이었다.
여태까지 첫 번째 바람과 두 번째 바람을 모두 이룬 그에게 세 번째 바람은 아직 이뤄지지 못한 채로 남아 있었다.
최근 꽤 오랜 시간 동안 이어진 이상 기후로 인해 밤하늘에는 언제나 구름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이따끔씩 몇 개의 별과 달의 일부만 볼 수 있었을 뿐, 별이 가득 박힌 맑은 밤하늘을 본 적은 없었다.
‘언제쯤 별이 총총한 하늘을 볼 수 있을까⋯⋯.’
하늘로부터 시선을 거둔 용여홍은 손을 들면서 어딘가를 겨냥하더니 방아쇠를 당기는 차으뜸과 장목화를 볼 수 있었다.
유일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장목화는 유탄발사기 대신 연합202를 꺼내 들었다는 것이었다.
탕! 펑!
두 개의 살짝 다른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은색백의 전광이 번쩍하는가 싶던 그때였다. 오른편 거리 중턱의 어느 가로수 위에서 구멍 뚫린 남루한 옷을 입은 채 곳곳에 맨살을 드러낸 누군가가 추락하면서 버려진 차 위로 떨어졌다.
쿠웅!
그의 피는 빠르게 주위를 물들였고, 그 손에 쥐어져 있던 조잡한 산탄총이 바닥에 떨어졌다.
“무심자야.”
왼팔만으로 유탄발사기를 안정적으로 받쳐 든 장목화가 말했다.
그녀의 야간 시력은 일반인보다 훨씬 더 뛰어났다.
그러자 백새벽이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저 총을 주워와야 할까요?”
“총은 필요 없어. 딱 보니 어느 황야유랑자 거점에서 직접 만든 것 같으니까.”
장목화가 고개를 저었다.
구세계가 파괴된 지 벌써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이때, 그 당시 만들어진 여러 총은 이미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었고, 그 총들에 맞는 규격의 총알 역시 적잖이 바닥나버렸다. 어느 정도의 생산 능력을 갖춘 대형 세력은 처음에는 물자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구세계의 무기를 모방했지만, 최근 수십 년 동안은 점차 내부적인 표준화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역시 과거의 무기를 참고로 하고 있었지만 참고한 무기의 종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오늘날 여러 유적 사냥꾼과 황야유랑자들이 손에 넣은 총은 수리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거나, 더 이상 그것에 맞는 총알이 없어서 사용이 불가했다. 이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한층 더 대대적으로 폐허를 수색하고 대형 세력으로부터 무기를 밀수하는 한편 자체적인 무기와 총알을 제작해보려 했다.
자체적인 무기 개발에 나선 이들에게 산탄총은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 필요한 설비가 상당히 간단했으며, 여러 황야유랑자 거점에는 그런 설비가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산탄총이 무심자의 손에 들어갔다는 건, 그 무기를 가지고 있던 유적 사냥꾼이나 황야유랑자가 무심자에 의해 이미 살해당했다는 뜻이었다.
“그럼 몸수색은요?”
백새벽이 질문을 이어나갔다.
“됐어.”
외골격 장치의 전자파 무기를 사용했던 차으뜸이 짧게 답한 뒤 돌아섰다.
백새벽은 고집부리지 않았다. 다섯 명의 일행은 계속해서 예정된 목적지를 향해 가볍게 뛰었다.
* * *
또 한 번 방향을 틀어 새로운 거리에 진입했을 무렵, 차으뜸이 돌연 속도를 늦췄다.
장목화 역시 들어 올린 손으로 허공을 누르며 성건우와 용여홍에게 멈추라는 사인을 보냈다.
조금 더 밝아진 달빛 아래, 성건우는 부연 먼지를 뒤집어쓴 전방의 검은색 폐차 한 대를 볼 수 있었다.
그 차 옆쪽의 바닥에는 한 사람이 앉아있었다.
각진 얼굴의 상대는 정장이라 불린 구세계의 옷을 입은 채 상반신을 차 문에 기대고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었다.
“오수혁⋯⋯.”
장목화는 단박에 상대를 알아보았다.
그는 이전에 황야에서 만났던 유적사냥꾼이었다.
또한 그는 그의 동료와 함께 웨이루 역 북쪽에서 새로운 폐허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구조팀에 알려준 장본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 오수혁은 혼자였으며 그 생사도 불분명했다.
“아직 숨이 붙어있어.”
목화는 감지된 전기 신호를 바탕으로 판단을 내렸다.
차으뜸 역시 그를 잠시 관찰하다가 입을 열었다.
“잠을 자고 있는 거야.”
잠을 자고 있다는 말에 장목화의 눈이 살짝 커졌다. 황급히 오른손을 든 그녀가 오수혁 쪽으로 총을 겨눴다.
하지만 그녀가 겨눈 것은 사람이 아니라 차의 유리창이었다.
바로 그때, 한발 먼저 나선 성건우가 오수혁이 몸을 기대고 앉은 차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소리와 함께 차의 유리창이 곧장 산산조각 났다.
오수혁은 당장이라도 깨어날 듯 눈꺼풀을 살짝 움직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돌연 표정을 구긴 그는 두어 번 경련하다가 축 늘어져 버렸다.
“죽은 건가?”
놀란 용여홍이 물었다.
“이론상 아직 살릴 기회가 있긴 한데⋯⋯”
장목화는 앞으로 나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그녀는 사방을 경계하는 한편 폐차를 향해 조금씩 다가갔다.
백새벽 역시 그녀를 따르며 경고했다.
“그 무시무시한 가위말이 이미 돌아왔을지도 몰라요.”
흠칫 놀란 용여홍은 잠들지 않기 위해 눈을 크게 뜨려 애썼다.
차으뜸은 아무런 말 없이 종합 경보 시스템에 의지해 주위에 숨어있을지 모를 적을 살폈다.
성건우는 전방의 오수혁을 바라보다 불쑥 입을 열었다.
“길거리에서 잠들 수 있습니까? 전 가능하지만⋯⋯.”
“가위말이 사람을 강제적으로 잠들게 할 수도 있는 걸까?”
순간적으로 성건우의 말뜻을 이해한 장목화가 대꾸했다.
“하지만 우리가 이전에 맞닥뜨린 녀석에게서는 그런 특성이 보이지 않았잖아.”
그녀와 성건우는 실제적인 악몽에서 깨어난 후, 저도 모르게 다시 잠들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다.
“한 번에 한 사람만 잠들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비교적 많은 목표를 마주한 상황에서 일단 포기한 것인지도 모르죠. 아니면⋯⋯.”
성건우는 고개를 들어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차으뜸을 바라보았다.
차으뜸은 혼자서 가위말을 맞닥뜨렸음에도 여태까지 살아 남아 있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성건우가 말을 이었다.
“아니면 이곳에 사람을 강제적으로 잠들게 하는 다른 괴물이 있는 것일 수도 있고요.”
그 말을 들은 용여홍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주위를 뒤덮은 어둠 속에 많은 것들이 숨어있을 것만 같았다.
“제가 가서 살릴 수 있는지 볼게요. 제 상태를 잘 봐주세요.”
이내 성건우는 자발적인 미끼가 되어 오수혁을 향해 다가갔다.
그가 막 앞으로 두 걸음을 내디딘 그 순간, 도시 폐허 어딘가에서 처량하고 거친 포효가 터져 나왔다.
구름마저 꿰뚫을 듯 울리는 소리는 듣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 * *
처량하고 거친 포효가 아직 울려 퍼지고 있는 와중, 도시 폐허의 곳곳에서도 비슷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다지 크지는 않으나 그 소리 역시 마찬가지로 머리를 저릿하게 했다.
무엇보다 무시무시한 것은 성건우를 비롯한 이들로부터 백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도 여러 갈래의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때 하늘을 뒤덮은 구름은 포효에 영향을 받은 듯 적잖이 흩어졌고, 노르스름한 달의 절반이 드러났다.
달에서 발산된 맑고 깨끗한 빛은 거리 끝에 자리한 수십 미터 높이의 고층 건물들을 비췄다.
짙은 어둠에 잠겨 있던 빌딩들의 유리창 안쪽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인영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