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방 수색
말을 마친 장먹화는 곧장 용여홍을 돌아보았다.
“이렇게 밀폐된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려고 할 때는 내부에 아무런 이상도 없는지부터 확인해야 해.
이건 단순한 불침번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왜냐하면 매우 협소하고 장애물도 많은 이런 공간에서는 도망을 치기도, 공격을 하기도 불편하거든. 때맞춰 뜻밖의 문제를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아.”
이 대목에서 장목화는 무의식적으로 차으뜸을 힐긋 바라보았다. 상대의 허술한 경계심에 의아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제8 연구원 특파원으로서의 자신감 때문인가? 아니면 이런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는 건가?’
차으뜸은 그녀를 보지 않고 등에 메고 있던 은색 소총을 풀더니, 상태가 좋은 황갈색 의자 하나를 앞쪽으로 당겨왔다.
뒤이어 오래된 티테이블 옆으로 다가간 그는 검은색 각 안에 든 휴지 몇 장을 뽑아 먼지가 잔뜩 앉은 의자를 훔쳐냈다.
이 광경을 본 용여홍은 성건우를 따라 방을 수색해야 할지, 차으뜸을 도와 주변을 좀 닦아야 할지 갈팡질팡했다.
“일단 이 점을 기억해두기만 해. 앉아.”
장목화는 그를 혼란에서 끄집어냈다.
이에 용여홍은 조건반사적으로 소파에 앉았다. 하지만 원래 무슨 색이었는지 알아볼 수 없는 소파는 그의 무게가 실리자마자 아래로 푹 꺼지면서 찌직 소리와 함께 갈라져 버렸다.
덕분에 용여홍은 소파에 거의 빠져버린 상태가 되었다.
부드러운 눈빛을 거두며 의기소침해진 부하를 바라보던 장목화가 낮게 웃었다.
“조심해. 이곳의 모든 것은 7, 80년, 심지어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된 골동품들이니까.
게다가 곳곳에 쌓인 먼지에는 얼마나 많은 세균과 바이러스가 있을지 몰라. 유전자 개량자라 쉽게 병에 걸리지 않는 체질이라고 해도 조심해야 해.”
“네, 팀장님!”
용여홍은 이전에도 수 차례 그랬던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큰 소리로 답했다.
“팀장⋯⋯.”
냉담한 눈빛을 드러낸 차으뜸은 용여홍이 했던 말을 낮게 반복하면서도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의자를 깨끗하게 닦아낸 그는 그 위에 앉았다.
용여홍과 백새벽은 소파와 의자, 티테이블을 닦기 시작했고, 성건우는 거실과 식당의 경계로 돌아가 집 안쪽의 길지 않은 복도로 향했다.
* * *
점점 밤이 되어가고 있는 이때, 집 안은 이미 어둑했다.
거실은 그나마 나았다. 하늘에 뜬 달은 없었으나 큼직한 통창을 통해 어느 정도의 별빛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장목화와 용여홍을 비롯한 이들은 힘겹게나마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복도로 들어간 성건우는 몇몇 사물의 윤곽만 간신히 분간할 수 있을 뿐이었다.
손을 뒤로 뻗어 등에 멘 카무플라주 패턴의 배낭 지퍼를 연 성건우는 그 안에서 외각이 오톨도톨한 은색 손전등을 하나 꺼냈다.
그는 이 손전등을 매번 벨트에 달고 다니지는 않았다. 가끔씩은 안전부 표식이 붙은 배낭에 넣어두기도 했다.
손전등의 주황색 불빛 아래, 성건우는 전방의 광경을 제대로 살필 수 있었다.
복도 양옆에는 적갈색의 나무문들이 붙어있었다. 하지만 그 나무문들은 복도를 기준으로 완벽한 대칭을 이루지도 않는 데다 스타일도 약간씩 달랐다. 입구에 가까워 보이는 왼편의 한 나무문에는 불투명하게 처리된 두꺼운 유리가 끼워져 있었다. 거의 끝에 붙어있는 오른편의 나무문에는 황동색 손잡이가 달려 있었으며, 그 손잡이의 곳곳은 녹이 슨 상태였다.
그런가 하면 복도 끝 벽 왼쪽에는 또 다른 적갈색의 문이 달려 있었다.
성건우는 일단 복도 왼편의 문으로 향했다. 그 문이 그로부터 가장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동안 그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아이스모스 권총을 꺼내 들기도 했다.
손전등을 든 손으로 문을 연 성건우는 곧장 그 안으로 달려드는 대신 바깥에 서서 손전등의 불빛을 비춰보았다.
문 안쪽에는 세면대, 교과서에 실린 것과 비슷한 변기, 그리고 움직일 수 있을 듯한 유리문으로 분리된 샤워부스가 배치되어 있었다.
“화장실이네.”
성건우는 낮게 중얼거리며 그 안으로 들어갔다.
한눈에 구석구석을 살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성건우는 폴짝 뛰어 천장에 달린 통풍구를 살피기도 하고, 쪼그려 앉아 변기통과 세면대 사이의 협소한 공간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 안에 누군가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화장실을 샅샅이 살핀 그는 그늘진 구석에서 약간의 이끼와 개미 몇 마리만 발견했을 뿐, 그 외에는 어떤 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검사를 마친 성건우가 변기통 앞으로 다가가 뚜껑을 열었다.
변기 안을 채운 물은 없었다.
과학 정신을 발휘해 변기 곳곳의 단추를 눌러본 성건우는 그것들이 모두 이미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몸을 일으켜 세운 성건우는 코를 몇 차례 벌름거리며 냄새를 깊게 들이마셔 보았다.
“냄새는 안 나네⋯⋯.”
몇 초 후 결론을 내린 그의 표정만으로는 안도한 것인지, 아쉬워하는 것인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이내 성건우는 샤워기도 만지작거려 봤지만 물은 나오지 않았다.
검사를 마친 그는 알 수 없는 모종의 생각에 깊이 빠진 듯했다.
잠시 후, 그는 아이스모스 권총을 벨트에 다시 찬 뒤 세면대 배수구의 마개를 뽑아버렸다.
심각하게 부식된 그 마개는 성건우의 거친 손길에 거의 부러지듯 뽑혀 나왔다.
마개를 옆쪽에 놓아둔 성건우는 한 손으로 몸을 받치고 폴짝 뛰어오르며, 세면대 양쪽을 밟고 안정적으로 섰다. 그러고는 턱과 가슴팍 사이에 손전등을 끼운 채 바지를 벗고 세면대 배수구를 조준했다.
생리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난 뒤 다시 폴짝 뛰어내린 성건우는 방금 전 뽑았던 금속 마개를 원위치로 돌려놓았다.
한편 화장실 밖의 거실, 민망한 소리를 들은 차으뜸은 미간을 찌푸린 채 코를 움켜쥐었고, 용여홍과 백새벽 역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크지 않은 소리를 듣지 못한 장목화는 압축 비스킷과 에너지 바 등의 식량을 분배하는 데 집중했다.
화장실 밖으로 나와 예의 바르게 문을 닫은 성건우는 한 손에는 권총을, 다른 한 손에는 손전등을 든 채 복도 끝으로 향했다.
복도 끝에 이른 그의 오른편과 왼쪽에는 문이 하나씩 자리해 있었다.
성건우는 권총과 손전등으로 양옆의 문을 가늠해보더니 왼편의 문을 선택했다.
선택한 문을 여는 와중에도 그는 여전히 조심스럽게 굴었다.
열린 문 안쪽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비교적 넓은 침대였다. 침대 위에는 옅은 녹색으로 보이는 더러운 시트가 깔려 있었으며, 같은 베갯잇으로 싸인 베개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침대 오른쪽에는 협탁이 하나 있었고, 협탁 오른쪽에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닿는 유백색의 장이 자리해 있었다. 다만 이 장은 곳곳이 부서져 있었다.
그런가 하면 침대 왼쪽에 자리한 탁자 위에서는 작지 않은 액정 모니터 하나와 금속으로 만들어진 검은색 상자 하나를 볼 수 있었다.
액정 모니터 근처에는 성건우가 알고 있는 마우스와 키보드, 그리고 벌집으로 둘러싸인 듯한, 짙은 파란색의 무언가가 있었다.
탁자 왼편에 자리한 것은 벽과 큼직한 창턱이었다. 창턱에는 쥐들이 갉아먹은 흔적이 곳곳에 가득한 갈색 카펫이 깔려 있었으며, 그 위에는 작은 나무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성건우는 손전등을 쥔 채 침대와 벽 사이의 길을 따라 그 창턱으로 다가갔다.
허리를 굽혀 주위를 자세히 살피던 그가 진한 아쉬움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쥐똥은 없네⋯⋯.”
약간의 의혹이 어린 그 목소리가 빈 방 안에서 살짝 울렸다.
이내 액정 모니터가 놓인 탁자 앞으로 향한 성건우는 권총을 쥔 손으로 갖가지 물건을 차례대로 건드려보았다.
반고 바이오의 전자과 출신인 그는 눈앞에 놓인 것이 컴퓨터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애써 머리를 굴리다 등에 맨 배낭을 살피던 그는 결국 이렇게 거대한 물건 가방에 쑤셔 넣으려고 했던 생각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집어 든 것은 검은색 벌집으로 둘러싸인 듯한, 손바닥보다 살짝 더 큼직한 물체였다.
자신의 전문 지식과 활동 센터의 소규모 시장에서 보고 들었던 것들을 결합한 끝에 성건우는 이것이 음악을 듣는데 쓰는 소형 스피커이리라 확신했다.
그는 얼른 스피커의 선을 뽑아 그것을 컴퓨터에서 완전히 분리했다.
침대 시트로 짙은 파란색의 스피커를 한 번 훔쳐내기까지 한 그는 등에 메고 있던 배낭을 풀고 그 스피커를 가방에 집어넣었다.
이 스피커를 아직 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물건에 맞는 완전한 부품을 찾기만 한다면 충분히 고칠 수 있을 것이었다.
배낭을 다시 맨 성건우는 권총과 손전등을 고쳐 쥐고 방 안 구석구석을 살폈다.
빠른 걸음으로 침대 반대편으로 돌아간 그는 일단 허리를 굽혀 침대 아래부터 살핀 뒤 협탁의 서랍을 당겼다.
협탁 위아래로 달린 두 개의 서랍 중 성건우가 먼저 연 것은 바로 위층의 서랍이었다. 그 안에는 갖가지 훌륭한 물건이 잔뜩 들어있었지만, 케케묵은 냄새가 짙게 풍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초박형⋯⋯ 아스피린⋯⋯ 감기약⋯⋯.”
그는 하나하나의 물건을 살펴본 뒤 되돌려 놓았다.
그 후 아래층의 서랍도 열어보았지만 그 안은 텅 비어있었다.
텅 빈 서랍을 몇 초간 응시하다가 시선을 거둔 성건우는 몸을 일으킨 뒤 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옷장 안에는 검은 재킷, 흰색 모슬린 드레스뿐만 아니라, 그로서는 설명할 수도 없는 스타일의 옷들이 걸려있었다.
줄을 맞춰 깔끔하게 걸린 옷들은 끔찍한 냄새를 풍긴다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한창 입혀지던 때와 아무런 차이도 없는 듯했다.
성건우가 드레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반고 바이오 내부의 여성들이 그런 옷을 상당히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드레스는 매우 실용적이지 못한 옷이었다. 환경을 통해 얻는 모든 에너지가 내부 생태 구역에 의해 통제되며, 그중에서도 생활 구역에 보급되는 에너지는 극도로 적은 반고 바이오 내부에서는 긴 소매 상의와 긴 바지가 가장 좋은 선택지이자 작업하기 가장 편한 복장이었다.
그 때문에 가정 형편이 넉넉한 여성들만이 공헌 점수를 내고 그만한 옷감을 구매한 뒤, 특정 관리층 친척이 가지고 있는 드레스를 흉내 내어 자신의 드레스를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드레스는 여자들이 가장 귀히 여기는 것 중 하나로, 연말 공연을 보러 가거나 특정 집단 활동에 참석할 때, 혹은 연인과 어딘가의 구석에서 데이트를 할 때만 입곤 했다.
성건우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그 흰색 모슬린 드레스를 만져 보았다.
옷을 걸어놓은 봉이 이미 썩었기 때문인지, 원래부터 균형 상태가 위태로웠기 때문인지, 성건우가 그것을 건드리자마자 봉은 툭 하고 떨어져 버렸다. 이에 그것에 걸려있던 수많은 옷 역시 바닥으로 추락했다.
성건우는 그것을 몇 초간 응시하다가 아이스모스를 쥔 손을 거뒀다.
그는 계속해서 옷장 안의 각 서랍을 살펴보았지만 가치 있는 물건은 발견되지 않았다.
곧 그 방에서 나온 성건우는 복도 오른편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까 전의 방보다 작은 이곳에 자리한 것이라고는 그다지 넓지 않은 침대 하나와 유백색 옷장, 그리고 전기스탠드가 놓인 책상 하나가 전부였다.
침대에 깔린, 수많은 금색 별로 장식된 짙은 파란색 시트는 이전 방에서 보았던 침대 시트보다 훨씬 더 귀여웠다. 하지만 그 시트 역시 곳곳이 오염되어 있었다.
방 안 구석구석을 살피던 성건우는 마지막으로 베개 근처에서 몸을 숙이면서 손전등으로 곳곳을 비춰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손전등을 침대 위에 올려놓은 성건우가 몸을 살짝 움직였다.
그리고 한 손을 뻗은 그는 손전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기둥이 비추는 침대 머리맡 가장자리에서 긴 머리카락 한 가닥을 집어 들었다.
흰색 머리카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