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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야여화-63화 (63/649)

63화. 터널

물론 애쉬랜드에서 가장 흉악한 생물 중 하나인 인간에게 변이된 모기를 처리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만은 아니었지만, 그 모든 대항책은 특수한 장비에 의지하고 있었다. 특제 모기 퇴치액 분사총, 반고 바이오의 제초탄(除草彈), 유독 가스도 막아주는 생화학 보호복, 충분한 양의 소이탄, 아직 잘 발전하지 못한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동력 갑옷, 폭발의 핵심에서 높은 온도를 발생시키는, 구세계에서 기인한 극소수의 무시무시한 폭탄 등이 그 예였다.

안타깝게도 구조팀에게는 이 중 그 어떤 것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들을 태운 지프차의 문이나 창문이 꼭꼭 잘 닫혀있어 아무리 변이된 모기라도 억지로 그 사이를 뚫고 들어오지는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이 차는 배터리로 움직이므로, 모기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배기관 등을 막을 것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또한 변이된 모기의 주둥이 역시 고무 타이어에 펑크를 낼 정도로 단단하지는 못했다.

장목화를 비롯한 이들에게 이는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지만, 나쁜 소식 역시 존재했다.

통풍 시스템을 자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는 게 바로 그 점이었다. 그러지 않더라도 모기에 의해 해당 시스템은 막혀버리게 되었다.

그 때문에 차 안에서 공기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니 성건우를 포함한 이들은 공기가 견딜 수 없는 수준으로 줄어들기 전에 모기떼의 포위망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이 무시무시한 생물과의 조우를 경험해본 적이 있는 백새벽은 차으뜸이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창문을 닫고 통풍 시스템을 중지시켰다.

이어서 그녀는 힘껏 엑셀을 밟으며 습관적으로 차 안의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마. 변이된 모기는 대량의 식물이 존재하는 곳으로부터 멀리 벗어나지 못해. 덩굴로 뒤덮인 이 구역에서 빠져나가기만 한다면 저들도 우리를 포기할 거야.”

“왼쪽.”

차으뜸은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손을 들어 전방을 가리켰다.

장목화는 모종의 생각에 잠긴 양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변이된 생물이라고 해도 종족을 이어가려는 본능은 있어. 저 모기떼가 대량의 식물이 존재하는 곳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이 장소가 저들의 생존에 필요한 조건이 갖춰져 있는 곳이기 때문일 거야. 인간과 동물의 피는 저 녀석들에게 굉장히 유혹적인 간식 같은 것에 불과해.

맞아, 구세계가 파괴된 지 한참이 지난 이때, 종족을 이어나가려는 본능이 없었던 변이 생물은 일찍이 죽어 없어졌을 거야⋯⋯.”

차으뜸은 장목화의 혼잣말에 신경 쓰지 않고 흑청색의 덩굴로 둘러싸인 노면을 판별하는 데 집중했다.

몇 초 후, 지프는 벌떼처럼 몰려든 모기떼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퍽! 퍽! 퍽!

머리가 새빨간, 손가락만 한 하나하나의 모기들은 마치 작게 축소된 폭격기처럼 스스로를 폭탄으로 삼아 유리창을 향해 달려들었다.

성건우가 보기에 이는 해자 마을에서 난생처음 보았던 폭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모기들은 목숨을 걸고 유리창을 때리던 수많은 물방울 같았다.

비와 다른 점이 있다면, 눈앞의 모기들은 흘러내리는 대신 유리창에 그대로 붙어버린다는 것이었다.

퍽! 퍽! 퍽!

거의 한 줄기로 이어져서 들리는 소리 속, 앞 유리는 물론 양옆의 차창까지도 새카맣고 거대한 모기들로 뒤덮였다. 빽빽하게 밀집해 있는 암적색 머리와 날카로운 주둥이는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백새벽과 차으뜸은 더 이상 앞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벼랑 끝에 선 채 고삐 풀린 야생마 같은 지프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용여홍의 안색이 빠르게 창백해졌다. 그는 최대한 본인의 목숨을 구할 방법을 고민해보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도움을 줘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런가 하면 잔뜩 긴장한 장목화와 성건우의 표정에는 걱정스러움과 함께 약간의 의혹이 어려 있었다. 위태로운 상황 속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본능과 호르몬은 그들에게 현재의 이상 상황을 한 번 더 알려주고 있는 듯했다.

이때 차으뜸은 더 이상 전방을 살피지 않고 고개를 숙여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시계판 위에는 눈금이 잔뜩 새겨진 나침반이 붙어있었다.

“3시 12분 방향으로.”

차으뜸은 머릿속에 늪 깊은 곳의 평면도를 띄워놓은 채, 기기에 의지해 인간 내비게이터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백새벽은 시계의 각도로 방향을 가리키는 방식에는 익숙했지만, 이전까지는 이렇게까지 구체적인 시간으로 지도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곧바로 정신을 차린 뒤 핸들을 틀기 시작했다.

하지만 눈앞이 변이된 모기떼로 가득 뒤덮인 상황에 지시를 정확히 이행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지시 사항과 현실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차으뜸은 이에 개의치 않았다. 왜냐하면 그 역시 보조칩이 주입되어 있지 않거나 상응하는 유전자 개량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면, 빠른 속도로 차를 몰며 지시대로 움직이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그렇게나 구체적인 시간으로 방향을 가리킨 건 오차를 최대한 줄이기 위함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성건우가 불쑥 입을 열었다.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상태로 운전을 하면 돼.”

이전에 트렁크에 실린 군용 외골격 장치를 본 적이 있던 차으뜸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빨리 착용해.”

외골격 장치는 좁은 범위 내에서의 위치 측정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보통 종합 경보 시스템에 집중되어 있으며, 보조 칩을 통해 착용자에게 편의를 제공했다.

“내가 할게.”

장목화가 자원했다.

성건우와 용여홍은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곧장 몸을 돌리면서 트렁크에서 군용 외골격 장치를 끌어냈다.

그들의 도움 아래, 장목화는 매우 빠르게 금속 골격의 길이를 조정한 그 장치를 착용할 수 있었다.

“됐어.”

시스템의 자체 검사가 끝나자 그녀가 말했다.

“차 세워.”

차으뜸은 손목시계로부터 곧장 시선을 거두었다.

그러자 백새벽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익, 소리와 함께 맹렬히 속도를 줄이자, 성건우를 비롯한 모든 이들의 몸이 앞쪽으로 쏠렸다. 안전벨트를 단단히 메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한편 앞 유리와 양옆의 차창을 모조리 뒤덮고 있던 변이 모기들 역시 적잖이 나가떨어졌다.

안전벨트를 안 메고 있던 장목화의 경우에도 군용 외골격 장치를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정도의 관성 정도는 충분히 견뎌낼 수 있었다.

차가 멈춘 순간 곧장 안전벨트를 푼 백새벽은 기어를 변경하고 사이드 브레이크까지 당기더니 콘솔 박스를 밟고 뒷좌석으로 넘어갔다.

장목화는 검은색 금속 골격 장치를 착용한 두 팔을 뻗어 백새벽을 안아 든 후 그녀를 용여홍 쪽으로 넘겨주었다.

그러고는 새벽이 지나쳤던 길을 따라 빠르게 운전석에 올라탔다.

퍽! 퍽! 퍽!

머리가 붉은 변이 모기들은 또 한 번 앞뒤에서 마구 달려들면서 유리창을 빽빽하게 뒤덮었다.

파워팩 때문에 등받이에 몸을 기댈 수 없는 장목화는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인 채 다시 지프를 몰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쪽 손으로 핸들을 돌리는 한편 안전벨트를 맸다.

다시 고개를 숙인 차으뜸은 손목시계 위 나침반 바늘의 변화를 살피면서 끊임없이 방향을 가르쳐주었다.

보조 칩의 도움 아래 정확하게 지시 사항을 이행한 장목화는 눈앞이 검은 모기떼로 뒤덮인 악조건 속에서도 지프를 늪과 덩굴 사이로 몰았다.

* * *

고도로 집중한 상태에서 시간의 흐름은 모호하게 느껴졌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성건우를 비롯한 이들이 조금씩 당황하기 시작했을 무렵, 앞뒤 양옆의 유리창을 뒤덮은 거대한 모기들은 하나둘씩 떨어져 나갔다.

곧 지프로부터 모조리 떨어진 변이 모기들은 못내 아쉽다는 듯 뒤쪽으로 물러났다.

성건우와 용여홍, 백새벽은 그제야 눈앞에 자리한 끝없는 검은색 늪을 보게 되었다. 그 표면에서 자라난 식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저 수시로 기포가 끓어오를 뿐이었다.

“2시 24분.”

고개를 든 차으뜸은 더 이상 손목시계 나침반의 변화를 살피지 않았다.

장목화가 핸들을 돌리자, 차 안 모두의 눈앞에는 아래로 이어지는 길이 하나 나타났다.

늪 깊은 곳으로 기울어있는 길 끄트머리에는 새카만 구멍이 하나 자리해 있었다.

“들어가.”

차으뜸이 명령했다.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장목화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 길을 향해 차를 몰았다.

노면의 새카만 진흙은 질척질척해서 차 바퀴가 푹푹 빠졌지만, 그 진흙 깊은 곳에는 단단한 지지대가 존재하는 듯했다. 덕분에 묵직한 지프는 어렵지 않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차가 그 구멍 앞에 이르자, 장목화는 통풍 시스템과 함께 헤드라이트를 켰다.

성건우를 비롯한 이들은 순간 숨을 헉, 하고 들이마시며 앞 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광경을 살폈다.

구멍 안은 온통 새카맸으며,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려올 뿐이었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닿은 곳에서는 암벽과 함께 비교적 평탄한 노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노면에는 약간의 진흙이 묻어있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 같지는 않은데.”

장목화가 차를 구멍 안쪽으로 몰며 중얼거렸다.

“구세계에서 만들어놓은 지하 터널이야.”

차으뜸이 간단하게 대꾸했다.

장목화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몇 초간 고민하다가 말했다.

“이끼 같은 것도 없네. 뭔가 이상해⋯⋯.

이전에는 생물이 살기에 부적합한 곳이었나?”

차으뜸은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덤덤하게 말했다.

“앞쪽으로 쭉 가.”

터널 안에서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차가 지면의 균열이나 살짝 융기한 부분을 밟고 지나감에 따라 덜컹거리는 소리만 울릴 뿐이었다. 게다가 터널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메아리마저 줄어들었다.

깊고 괴이한 적막 속에서 성건우를 비롯한 이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마치 세상의 끝으로 향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 * *

그렇게 몇 분이 더 지났을 무렵, 점차 밝아지는가 싶던 전방에서 하나의 출구가 나타났다.

고글이 달린 헬멧을 쓴 장목화는 갑작스레 마주한 빛에도 끄떡하지 않고 차를 터널 밖으로 몰았다.

바깥의 태양은 이미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노을 아래의 대지는 황금빛으로 물든 듯했다.

그런가 하면 이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는 수십 미터에서 1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사방이 잠잠한 가운데 그런 건물들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마찬가지로 붉은 노을에 잠긴 건물들은 꼭 철근과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죽음과 적막의 숲을 형성하고 있는 듯했다.

사실 이전까지 건우와 여홍이 봤던 것 중 가장 높은 건물이라고 할만했던 건 폐허가 된 철강공장에 있었던 몇몇 굴뚝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 보니 그 굴뚝들은 눈앞에 자리한 여러 고층 빌딩에는 비할 바가 못 되는 듯했다.

그렇다고 철강공장에 있던 굴뚝의 높이가 무척 낮았던 것도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시각적인 충격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높이로 보나, 폭으로 보나, 고층 빌딩들은 철강공장의 굴뚝보다 훨씬 대단했다. 어느 면으로 따진다 한들 눈앞의 고층 빌딩은 그야말로 거대한 존재인 셈이었다.

성건우와 용여홍에게 가장 큰 충격을 안긴 사실은 그렇게 거대한 빌딩이 한두 채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 수는 가히 셀 수조차 없었다.

모종의 규칙에 따라 줄지어 늘어선 빌딩들은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 앞쪽으로도 한없이 뻗어있어 그 끝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순간 성건우와 용여홍은 자신들이 처음으로 인간들의 나라에 온 쥐가 되어 목을 빼고 그 주위를 구경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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