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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야여화-61화 (61/649)

61화. 의도와 다른 행동

젊은 남자가 등에 메고 있던 소총을 풀고 보조석에 앉자, 장목화는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비위를 맞추려는 듯 웃으며 물었다.

“이름이?”

검은색 머리카락과 금색 눈동자를 가진 남자가 미간을 아주 살짝 구기며 답했다.

“차으뜸.”

“정말 좋은 이름이네.”

장목화는 아낌없는 칭찬을 퍼부었다.

“들었어? 네 이름보다 훨씬 좋은 이름이잖아.”

성건우는 고개를 돌려 용여홍에게 말했다.

그러자 용여홍은 조금도 불쾌해하지 않고 그에게 동조했다.

“맞아, 맞아.”

칭찬이 이어지는 가운데, 뒷좌석 문을 연 장목화가 성건우에게 말했다.

“중간자리에 앉아.”

뒤이어 그녀가 곧바로 덧붙였다.

“아니다, 일단 내려. 내가 중간에 앉을 테니.”

성건우가 약간 망설이자, 장목화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난 팀장이야!”

결국 어쩔 수 없이 차에서 내린 성건우가 뒷좌석 중간자리에 앉는 장목화를 바라보았다.

한편 차으뜸은 팀장이라는 말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장목화를 한 번 바라보았다.

목화는 이런 타이밍을 기다렸기라도 한 것처럼 그와 눈을 맞추며 예쁘게 웃어 보였다.

차으뜸은 별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으며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시선을 거뒀다.

장목화는 이에 실망하는 대신 살짝 앞으로 몸을 기울이면서 한 손으로 턱을 받치더니, 차으뜸으로부터 눈을 뗄 수 없다는 듯 그의 옆얼굴을 감상했다.

다시 자리에 앉은 성건우는 이 자리에서는 차으뜸의 뒤통수밖에는 볼 수 없으며, 수시로 앞쪽 의자의 머리받이에 시선이 가로막히기까지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자 그의 얼굴에 순간 감출 수 없는 실망감이 드러났다.

차으뜸은 전방의 부러진 다리를 바라보다가 불쑥 물었다.

“혹시 먹을 것 좀 있나?”

“있어!”

백새벽은 황급히 몸을 틀며 콘솔 박스를 열었다.

“있고말고!”

턱을 받치고 있던 손을 거둔 장목화도 이에 질세라 옷 주머니를 뒤졌다. 성건우와 용여홍 역시 몸을 세우고 뒤쪽을 돌아보면서 차으뜸에게 소고기 조림 통조림을 내어주려 했다.

당연하게도 가장 빨랐던 사람은 바로 백새벽이었다. 그녀는 차으뜸에게 압축 비스킷 한 봉지와 에너지 바 하나를 꺼내줬다.

“이거면 됐어. 너희들도 좀 먹어. 점심 식사 시간에도 쉬지 않고 돌아가면서 운전해야지.”

차으뜸은 백새벽으로부터 음식을 받아들며 마치 리더처럼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성건우를 비롯한 이들은 어떠한 이의도 표하지 않았다.

물 주머니에 든 물에 압축 비스킷과 에너지 바까지 다 먹어 치운 차으뜸은 물건을 내려놓은 뒤 잠시 기다리다가 백새벽을 돌아보았다.

“이제 출발하지.

서북쪽의 구릉 지대로 가는 거야.”

“알겠어.”

점심 식사를 마친 백새벽은 입에 음식을 한가득 넣은 채 답하면서도 상대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러자 차으뜸은 왼손을 뻗어 백새벽의 오른쪽 팔을 토닥이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운전 잘해.”

“그럴게!”

과분한 친절에 몸 둘 바를 몰라하던 백새벽은 곧장 자세를 고쳐 앉으며 지프차에 시동을 걸었다.

차으뜸은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뒷좌석도 돌아보았다.

“난 좀 쉬어야겠으니 너희들이 주위 상황을 잘 좀 살펴봐. 구릉 지대에 도착하면 깨워주고.”

“알겠어!”

장목화를 비롯한 다른 이들이 입을 모아 답했다.

차으뜸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에 어려 있던 웃음기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눈빛은 이상하리만치 냉담해졌다.

이내 주머니에서 하늘색 상자 하나를 꺼낸 그가 그것을 열었다.

달칵.

작은 소리를 내며 열린 상자 안에는 작은 거울이 들어있었다.

차으뜸은 거울 속 자신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오른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세심하게 정리했다.

반복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살핀 끝에 천천히 거울함을 거둬 넣은 그가 머리를 뒤쪽으로 기댄 채 눈을 감았다.

* * *

저녁 무렵, 지프차는 검은쥐 마을이 자리해 있던 그 구릉 지대로 돌아갔다. 이때 양범석의 23대대는 이미 멀리 떠난 상태였다.

한 번 더 일러두지도 않았지만, 장목화를 포함한 구조팀원들은 자명종이라도 된 것처럼 정확한 때에 맞춰 차으뜸을 깨웠다.

차으뜸은 어둑한 하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 밤에는 이곳에서 쉬었다가, 내일 아침에 마저 서북쪽으로 이동하자.”

“그래.”

백새벽은 익숙한 야영지를 찾아 지프차를 세웠다.

구조팀원은 앞다투어 텐트를 세우고 모닥불을 피운 후, 트렁크에서 군용 통조림 몇 개를 꺼냈다.

“물자가 꽤 풍족하네.”

문을 열어놓은 보조석에 앉아있던 차으뜸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구조팀원들을 여유롭게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쪽으로 살짝 뛰어온 성건우가 자발적으로 말했다.

“내가 저쪽에서 물을 떠 올게.”

그가 가리킨 쪽으로 시선을 옮기다 맑은 물의 수원지를 확인한 차으뜸이 몇 초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괜찮아, 지금 가지고 있는 물만으로도 며칠은 버틸 수 있으니까.”

“그래, 그래. 통조림이 데워지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데, 내가 노래라도 불러줄까?”

상대의 의견을 즉각 받아들인 성건우가 웃으며 물었다.

“⋯⋯.”

차으뜸은 의심스럽다는 눈빛으로 건우를 잠시 바라보았다.

“필요 없어.”

“그럼 골드코스트의 훌라춤은?”

성건우가 질문을 이어나갔다.

차으뜸의 미간이 구겨졌다.

“필요 없다니까. 난 좀 조용히 있고 싶어. 통조림이 다 데워지면 그때나 불러.”

“알겠어!”

성건우는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다.

돌아선 그가 모닥불 근처로 다가가자, 차으뜸은 하늘색 거울함을 다시 꺼내 그것을 열었다.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면서 약간의 표정 변화를 보인 그가 작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하, 정말 귀찮다니까⋯⋯.”

* * *

그렇게 밤은 무사히 지나가고 언제나처럼 검은 늪 황야 동쪽에서 태양이 떠올랐다.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이루어진 암암리의 경쟁 끝에 운전석에 앉게 된 것은 팀장의 권한을 이용한 장목화였다. 성건우와 용여홍, 백새벽은 어쩔 수 없이 뒷좌석으로 물러났다.

차으뜸은 손목에 찬 기계식 손목시계를 바라보면서, 시계판 위에 자리한 나침반을 활용해 위치를 확인했다.

“저쪽 방향으로 쭉 가면 돼.”

그가 가리킨 곳은 서북쪽의 어딘가였다.

아무런 이의도 표하지 않은 채 지프를 몰기 시작한 장목화는 구릉 지대를 빙 우회한 뒤 차으뜸이 가리킨 곳으로 향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위 지형은 점점 평탄해졌으며, 흙은 점점 검고 질척해졌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바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진흙 때문에 단단한 지면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지프차는 지금 거대 늪의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백새벽에 비해 이 지역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은 장목화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에 차를 두 번이나 빠뜨릴 뻔했다.

이에 어쩔 수 없이 운전석에서 쫓겨난 그녀는 뒷좌석의 중간자리로 돌아갔다.  장목화 대신 운전대를 잡은 백새벽은 칭찬받기를 기대하는 아이처럼 열과 성을 다해 차를 몰았다.

악랄한 환경에 한없이 느려진 지프차는 정오가 될 때까지 30킬로미터도 채 달리지 못했다. 이제 주위 늪에서는 각양각색의 식물들도 볼 수 있었다.

일반적인 식물에 비하면 이 식물들의 색은 지나치게 어둡거나 지나치게 현란해 아무래도 이상해 보였다.

장목화는 그래도 아직 팀장으로서의 직책은 기억하고 있는지, 성건우와 용여홍에게 충고했다.

“기이하게 변형된 식물이 밀집된 것으로 볼 때, 우리는 이미 오염 구역에 진입한 것 같아. 하지만 이곳의 식물들은 지나치게 괴이하거나 위험하지는 않으니까, 오염도 역시 그렇게 높지는 않을 거야.

이런 환경에서는 일반인도 활동할 수 있어. 하지만 보호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황이라면 최대 3일 이상을 넘기지 않는 게 좋아. 진보된 기술로 유전자 개조를 받은 사람이라면 열흘 정도는 버틸 수 있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식량과 물이 갖춰져 있어야 하지.”

차으뜸은 또 다시 고개를 돌려 장목화를 한 번 살폈다가 얼른 시선을 거두면서 측면을 가리켰다.

“이쪽으로 가지.”

“하지만⋯⋯.”

장목화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제기하려 했다.

그녀가 선택한 길은 오염도가 비교적 낮고 차를 몰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만약 멋대로 길을 바꿨다가 영역을 확대한 늪을 맞닥뜨리기라도 한다면, 차는 물론 그 안에 탄 사람들까지 전부 가라앉게 될 수 있었다.

“이쪽으로 가자고.”

차으뜸이 강조하듯 자신의 말을 반복했다.

“알겠어.”

백새벽은 결국 그의 의견에 따랐다.

방향을 튼 차는 백새벽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구역으로 진입했고, 이에 지프차의 속도는 더욱 느려졌다. 백새벽은 차를 모는 한편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도로의 상황을 판단했다.

* * *

대략 25분이 지나 차 안의 사람들이 점심 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장목화와 백새벽이 다시 역할을 바꾸려 했던 그때였다. 그들의 전방에 변화가 일어났다.

끝이 보이지 않는 깊고 검은 늪 안에서 한 줄기 한 줄기의 두꺼운 덩굴이 썩은 진흙에 범벅이 된 채 튀어나와 작은 숲을 형성하고 있었다.

흑청색을 띤 덩굴 한 줄기 한 줄기는 구렁이만큼이나 굵었으며, 그 표면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미세하고 붉은 가시가 나 있었다.

기이한 덩굴들은 한데 뒤엉킨 채 지프차 전방을 거의 완전히 뒤덮었다. 검은 늪 자체를 제외한 모든 구역은 그것에 의해 잠식되어 있었다. 하늘 역시 그 숲에 가려졌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문제 때문인지 어두워졌다.

굉장하지만 무시무시한 이 광경을 목격한 장목화와 백새벽, 성건우와 용여홍은 동시에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에 휩싸였다.

곧이어 그들은 거의 동시에 한 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우리가 왜 여기에 와 있는 거지?’

이때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린 차으뜸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긴장할 것 없어.”

그의 목소리는 성건우를 비롯한 모든 이들의 의문을 단숨에 씻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반한 듯 그를 바라보게 했다.

똑바로 앉은 차으뜸은 백새벽에게 어떻게, 어디로 운전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그 사이, 창밖에 자리한 구렁이 같은 흑청색 덩굴들을 바라보던 장목화의 왼손이 한 번 움찔했다.

본능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 종이와 펜을 꺼낸 그녀가 현재 상황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한편 차으뜸의 뒤통수와 밖을 에워싼 덩굴들을 번갈아 바라보던 성건우는 그것들 속에서 어마어마한 위험이 무르익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바로 그때였다. 뭔가가 그의 왼팔을 살짝 건드렸다.

이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린 성건우는 장목화가 건네고 있는 흰 종이를 발견했다.

현재의 상황이 상세하게 기록된 종이의 맨 마지막 부분에는 기이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

「⋯⋯거대 늪 깊은 곳에는 분명 이렇게 심각한 변이가 일어난 구역이 존재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내 왼팔의 칩은 이곳의 방사능 오염이 그렇게까지는 심각하지 않다고 알리고 있다. 어쩌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오염도가 이미 낮아진 걸까?

⋯⋯저 덩굴을 가득 뒤덮은 미세하고 붉은 가시들은 꼭 방금 막 피를 잔뜩 흡수한 것 같다⋯⋯.

⋯⋯내 왼팔의 칩에 따르면 현재 위치와 예정된 목적지인 하비스트 타운은 완전히 다른 방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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