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60화 (60/649)

60화. 분위기 조정자

주위를 한 번 둘러본 그녀는 백새벽의 혼란스러운 표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왜소한 아가씨는 어떻게 이 대화에 끼어들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외로워? 네가 외부인처럼 느껴지니?”

장목화가 웃음을 머금은 채 물었다.

몇 차례의 표정 변화를 보이던 백새벽이 본능적으로 입술을 오물거렸다.

“저는 원래부터 외부인인걸요.”

그녀는 아직 정식 직원이 아니었고, 라디오의 뉴스에는 외부에 유출되어서는 안 될 기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그녀가 현재 묵고 있는 정식 직원 전환 대기자 구역에는 관련된 설비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이에 백새벽은 방금 전과 같은 대화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만약 이전에 방문했던 몇몇 거점에 명령을 전달할 때 썼던 방송용 확성기가 없었다거나, 안전부가 자리한 층에서 정각을 알리는 방송마저 듣지 못했더라면 그녀는 라디오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조차 몰랐을 것이었다. 많은 유적 사냥꾼은 철강공장 폐허의 쓰러진 건물이 라디오 방송국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작 라디오 방송국이 무슨 곳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회사 내 적잖은 고위급 직원들, 심지어 일부 관리층도 황야유랑자 출신인걸. 너도 정식 직원으로 전환된 후에는 공동 결혼에 참여할 수 있을 테고, 그럼 우리는 다 가족이 되는 거야.”

장목화는 일찍이 준비해놓기라도 한 듯한 위로의 말을 쏟아냈다.

“게다가, 생각해 봐, 내가 너와 더 친할 것 같아, 아니면 본 적도 없는 이사회의 직원과 더 친할 것 같아? 우리는 죽을 뻔한 위기를 함께 경험한 사이야. 부모만 다를 뿐, 사실상 자매나 다름이 없다고. 그런데 네가 왜 외부인이야?”

“우리는요?”

이 대목에서 끼어든 것은 역시 성건우였다.

“너희?”

장목화는 2초 정도 진지하게 고민했다.

“뭐 아직까지 남매라고 할 수는 없지. 만에 하나 나중에 공동 결혼에서 너희 둘 중 누군가와 새벽이가 맺어질지도 모르잖아?”

반고 바이오에 들어온 황야유랑자 선배로부터 공동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바 있던 백새벽은 장목화의 말을 듣고 못 참겠다는 듯 성건우와 용여홍을 번갈아 살펴보았다. 그 얼굴에는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표정이 걸려 있었다.

“이해해, 너한테 좀 과분한 상대이긴 하지.”

성건우는 새벽의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중얼거렸다.

백새벽은 그만한 경험과 식견, 소양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 얼굴을 살짝 일그러뜨렸다. 버럭 화를 내야 할지, 아니면 분노가 섞인 웃음을 터뜨려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허튼소리. 누가 너 같은 사람을 남편으로 삼고 싶어 하겠어? 만약 네가 말을 못 하는 데다 두 손과 두 발도 움직이지 못했다면, 너를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 조금 더 많았을지도 모르지.”

장목화는 그를 거칠게 비웃었다.

그녀는 성건우를 대할 때 조금도 조심스럽게 굴지 않았다. 지난 며칠 동안 함께 지내면서 상대의 마음이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이런 말로는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는다는 것을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그에 반해 용여홍에게는 절대 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팀장인 장목화는 전부터 사람이라고 다 같지 않으며, 사람마다 다른 대응 방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는 그녀가 안전부에서 환영을 받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백새벽의 시선과 표정 변화를 느끼고 자괴감을 조금 느낄 뻔했던 용여홍 역시 성건우의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마음속을 뒤덮으려 했던 그늘이 순간 흩어져 사라졌다.

이때 고개를 돌린 백새벽이 용여홍에게 말했다.

“미안, 방금 너희들이 내 남편이 된 상황을 잠깐 상상해봤는데 느낌이 좀 이상하고 어색해서 그랬던 거야. 다른 뜻은 없어.”

“괜찮아, 괜찮아.”

용여홍이 황급히 답했다.

그러자 장목화가 씩 웃으며 캐물었다.

“딱히 이상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면?”

“그럼 그 사람과 잘 기회를 찾아봤겠죠.”

백새벽이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뭐?”

놀란 용여홍이 빽 소리를 쳤다.

성건우와 장목화의 눈썹이 동시에 위로 쓱 올라갔다.

어째서인지 갑자기 웃고 싶어진 백새벽이 입을 열었다.

“애쉬랜드 위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야.

마음에 들면 최대한 빨리, 어떻게 해서든 상대와 하룻밤을 함께 보내려고 하지. 다음날까지 기다렸다가는 상대나 본인이 각종 이유로 인해 죽어버릴지도 모르니까.

팀장님, 전 줄곧 팀장님을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

“하하.”

장목화가 어색하게 웃었다.

“내가 중점을 둔 부분은 그게 아니었어.”

그녀는 곧 고민에 잠긴 듯한 표정을 드러냈다.

“이건 기록해둬야 할만한 이야기야.

구세계가 파괴된 후 애쉬랜드 위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연스레 형성된 일종의 풍습이니까.”

이러한 토론을 거친 후 백새벽은 어째서인지 자신과 장목화, 용여홍, 성건우 사이의 거리가 전보다 더 많이 줄어들었음을 느꼈다. 정말로 생사를 함께 해온 전우애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황야유랑자로 살았을 당시에도 여러 사람과 함께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환경이나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함께했을 뿐이라 우정 같은 감정이 섞여들 여유는 없었다. 위험한 처지에서 빠져나오기만 하면 서로를 향해 몰래 총을 겨눠야 할 때도 있었다.

그 때문에 구조팀원들과 함께 여러 차례의 위기를 넘겼다고는 해도 그녀가 느꼈던 감정이라고는 장목화의 소질에 대한 존경심과 성건우의 능력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상황의 압박으로 어쩔 수 없이 성장하고 있는 용여홍에 대한 동정뿐이었다. 동시에 그녀는 마음속으로 그들과 적잖이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백새벽이 세워두었던 마음의 벽이 조금 허물어지는 것을 느끼며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린 장목화가 웃음을 머금은 채 말했다.

“어때, 이제 진짜 팀원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

장목화의 밝은 웃음에 백새벽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팀장님⋯⋯.”

그녀는 장목화가 자신의 심리 상태를 그렇게까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장목화는 소리 내어 웃었다.

“팀장은 팀원 개개인의 능력을 높여줘야 할 뿐만 아니라 수시로 각자의 심리 문제에도 신경을 써야 해.

난 평소 두 신입, 아니, 개자식 한 명과 신입 한 명에 대한 지도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사실은 줄곧 새벽이 네 감정과 표현에 신경 쓰고 있었어.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해서 수많은 위험을 마주하게 될 테고, 그럴 때마다 서로의 뒤를 서로가 보호해줘야 해. 우리 사이는 친자매보다 더 좋아야 한다는 거야.

이전에도 말했다시피 난 언제나 팀원들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서 결정을 내려. 이 말은 여홍이나 건우한테만 하는 말이 아니라, 너한테 하는 말이기도 해.”

침묵한 채 입술을 깨물던 백새벽은 장목화를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못했다.

“아쉽네요, 팀장님이 여자라서. 안 그랬으면 오늘 밤 팀장님하고 자려고 했을 텐데요.”

이 말을 한 사람은 백새벽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목소리 톤을 높인 옆쪽의 성건우였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린 백새벽이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동료를 바라보았다.

“네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 줬어.”

성건우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런 생각 안 했어!”

말로는 그렇게 반박하면서도 백새벽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냥 그렇게 생각한 셈 쳐.”

성건우는 상대를 설득하려는 듯 대꾸했다.

“닥쳐!”

장목화는 마침내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소리치며 분노가 섞인 웃음을 흘렸다.

“조금 진지해질 수는 없는 거냐?”

성건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전 대부분의 시간 동안에는 언제나 진지합니다. 아주 가끔씩 분위기를 띄우려고 노력할 뿐이죠.

그리고 또 때로는 제 스스로를 통제할 수가 없어요. 이건 의사 선생님께서 증명해주실 겁니다!”

그의 목소리는 아주 당당했다.

“고마워 죽겠네!”

장목화는 이를 악문 채 뱉어내듯 대꾸했다.

기계 승려 정법과의 만남 이후, 성건우가 가끔 이상한 사고의 흐름을 보이는  이유를 대략적으로 짐작했던 백새벽과 용여홍은 이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상대를 무시했다.

사과를 마친 장목화가 원망의 눈초리로 성건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이지, 너 때문에 새벽이가 받은 감동이 다 달아나버렸잖아.”

“⋯⋯.”

백새벽은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상황에 더 이상 이 대화가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팀장을 바라보았다.

‘감동 같은 이야기는 제발 그만두세요! 너무 부끄럽다고요!’

다시 분위기가 원상태로 돌아온 것을 확인한 장목화가 몰래 웃으며 손을 휘둘렀다.

“자, 출발!”

이미 검은쥐 마을이 자리한 구릉 지대에 이르러 있던 이들은 철강공장의 폐허로 돌아가는 대신 곧장 동남쪽으로 향했다. 이는 목적지인 하비스트 타운 방향이었다.

* * *

가을에는 비가 잦았다. 지프차를 몰고 이동하던 구조팀은 점심 무렵 점점 두꺼워지던 구름과 점점 어두워지던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빗방울을 볼 수 있었다.

세차게 내리는 비는 아니었음에도 주위가 부옇게 흐려진 듯했다. 운전을 담당하는 백새벽의 시야도 덩달아 좁아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프차는 비교적 넓은 길에 이르렀다. 굉장히 깊어 보이는 강변의 길이었다.

강바닥에 자란 초록색 조류 때문에 그린리버라고 불리는 이 강은 검은 늪 황야 내 수많은 생물의 젖줄이었다.

이때 그린리버 위, 오랫동안 손보지 않은 듯한 다리는 이미 부러진 채 대부분이 강물에 잠겨 있었다.

“누군가가 날려버린 것 같은데.”

장목화는 그곳을 자세히 살피다 기초적인 판단을 내렸다.

“강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서 다른 다리로 이동하자.”

말을 마친 그 순간, 장목화는 둔덕 위 어느 다리 뒤쪽에서 걸어 나오는 한 사람을 목격했다.

쉬지 않고 내리는 이슬비 속, 그자는 검은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같은 색의 장갑을 끼고 있었다. 키는 180센티미터 정도였으며, 머리는 뒤쪽으로 가지런히 빗어 넘겨져 있었다.

등에 길고 기괴한 형태의 은색 소총 한 자루를 메고 있는 그는 한 손으로는 검은색 우산을 쥐고, 다른 한 손은 자연스레 늘어뜨린 채 한 걸음, 한 걸음씩 느릿하게 지프를 향해 다가왔다.

그의 생김새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장목화와 성건우를 비롯한 이들은 어째서인지 그로부터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원래는 핸들을 돌리려 했던 백새벽도 무의식적으로 동작을 멈추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상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에 이르렀다. 그는 머리카락이 검은색이었으며, 눈동자는 금색이었다. 그리고 눈썹은 곧게 뻗어있었고, 눈동자는 빛날 뿐만 아니라 얼굴선이 짙어서 꽤 잘생긴 편이었다.

그는 운전석의 창문을 똑똑 두드리더니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 열정적인 괴물을 드디어 따돌렸군.

혹시 나를 좀 태워줄 수 있겠나?”

“좋아.”

“그래.”

“문제없어.”

“얼른 타.”

백새벽, 용여홍, 장목화와 성건우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거의 동시에 답했다.

짙은 색 셔츠에 긴 바지, 검은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젊은 남자는 차 머리를 빙 돌아 보조석으로 다가오더니 차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엷은 미소를 머금은 채 목화를 향해 말했다.

“뒷좌석으로 가주겠어?”

“물론이지, 앉아, 앉아.”

장목화는 친절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비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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